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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는 리사가 있는 곳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폐건물이 되어버린 빌딩 옥상 위에 은신한 채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의 존재가 발각되면 허우룽카이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서였다.
전투가 시작된 지금은 좀 더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있다. 안티 텔레포트 필드가 펼쳐졌기에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 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네.’
허우룽카이에게 들릴 염려가 있기에 리사는 입을 닫고 마음속으로 대답을 떠올리는 이미지로 대답했다.
<피지컬은 네가 위야. 하지만 확실히 썩어도 준치군.>
허우룽카이가 예상한 대로 방금 전의 공격은 리사 입장에서는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멀쩡하게 일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용우가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연습 상대야. 이제부터는 내가 조금씩 도와줄 테니까 귀를 열어둬.>
‘예.’
대답하는 리사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복수할 대상에게 밀렸다는 사실이 분했기 때문이다.
텔레파시로 그런 기색을 읽은 용우가 말했다.
<머리를 식혀. 어차피 지금 전초전일 뿐이야. 놈을 좋은 연습 상대로 삼고, 자존심을 짓밟아주자. 하는 김에 고통도 듬뿍 안겨주고.>
그 속삭임을 들은 리사는 흥분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용우의 말이 옳다. 이 싸움은 복수의 끝이 아니다.
그리고 방금 전의 감정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니 창피했다.
일대일로 허우룽카이와 싸워서 밀렸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자신은 허우룽카이와 정정당당한 스포츠 대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대일로 그와 대결해서 이긴다는 승부욕과 호승심 따위는 정말 쓸데없었다.
<훈련 받은 대로 해. 부족한 부분은 내가 보조해 줄 테니까.>
리사는 그 말에 따랐다.
정신없이 퍼붓는 허우룽카이의 공격을 빠른 움직임으로 피하고, 굉음의 도끼로 발하는 진동파는 폭발을 일으키는 스펠이나 빙결 파동을 터뜨리는 것으로 받아내면서 거리를 좁혔다.
거리를 두고 화력전을 벌이면 허우룽카이가 확실히 우위였다.
리사의 마력이 더 높은 데도 불구하고, 허우룽카이는 자신이 지닌 권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통달해 있었다.
굉음의 도끼의 권능으로 대기를 컨트롤해서 리사의 움직임을 방해하면서, 화력을 유효적절하게 퍼부어대는 판단력과 기술이 있었다.
강력한 몬스터와 수도 없이 싸워온 전투 경험 덕분일 것이다. 대인전 경험은 부족하겠지만 화력전에 대해서만큼은 달인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접근전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졌다.
쾅!
리사의 발차기가 허우룽카이의 몸통에 꽂혔다.
주춤주춤 물러나는 허우룽카이가 도끼를 휘두른다.
투학!
그러나 리사는 그것을 창으로 걷어내면서 하단 돌려차기를 작렬시켰다.
-프리징 필드!
휘청거리는 허우룽카이에게 전방위 빙결 스펠이 작렬했다.
허우룽카이는 허공장을 집중해서 막아냈지만, 그 순간을 노려서 리사의 창격이 꽂힌다.
<크악!>
결국 허우룽카이가 비명을 질렀다.
리사의 창에는 아스트랄 플레어가 휘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리사는 허우룽카이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정신체를 상처 입히는 스펠을 쓰고 있었다.
허우룽카이의 당혹감이 텔레파시로 흘러나왔다.
‘당황스럽겠지.’
그의 심리가 손에 잡힐 듯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용우는 싸늘하게 웃었다.
초반에는 분명 허우룽카이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완전히 몰아넣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리사의 전투 능력이 급상승해서 전세를 뒤집어 버린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용우의 개입이다.
리사가 방어하기 힘든 공격은 대신 막아주었고, 리사의 공격이 정타로 꽂히도록 허우룽카이의 감각을 교란했다.
그 방식이 너무나 교묘해서 허우룽카이는 아직도 용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쓸 만하군, 셀레스티얼은.’
용우가 소유한 빙설의 창으로부터 힘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일까?
리사에게 개입해서 전투를 보조하기는 굉장히 수월했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관없다 싶을 정도였다.
‘역시 리사는 특별해.’
팀을 결성한 후, 용우는 리사를 빙설의 창의 계승자로 설정했다.
휴고 스미스처럼 성좌의 무기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서 셀레스티얼로 변신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실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용우는 구세록의 계약자들처럼 정보 공간을 이용할 수는 없었지만, 성좌의 무기를 다루는 것만큼은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리사를 셀레스티얼로 변신시킨 성과는 놀라웠다.
‘무엇보다 변신했을 때의 힘은…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지. 놈들이 특이 샘플이니 뭐니 난리를 칠 만도 했어.’
리사가 셀레스티얼로 변신했을 때의 마력은 용우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원래 마력이 페이즈13인 휴고 스미스가 변신했을 때와 대등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리사는 전투 센스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차준혁, 휴고 스미스, 유현애라는 천재들과 비교하면 범상한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셀레스티얼로 변신했을 때의 강화 폭은 전투 센스와 경험의 부족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크아악!>
허우룽카이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리사가 그를 땅에다 처박고 아스트랄 플레어를 휘감은 창으로 몸통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파지지지직!
허공장이 충돌하면서 격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리사의 허공장이 허우룽카이의 허공장을 빠르게 잠식해 간다. 이미 창에 꿰뚫려 구멍이 난 허우룽카이의 허공장은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리사 혼자서 싸웠으면 아슬아슬했겠군. 졌을 가능성이 높아.’
허우룽카이가 전투 경험이 풍부한 데 비해 리사는 전투 경험이 별로 없다.
팬텀이 만들어낸 셀레스티얼에는 용우가 예전에 파악한 약점, 조종자의 의지가 전달되기까지의 시간 차가 존재한다는 약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허우룽카이는 마력이 앞서는 리사를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마력 말고도 리사가 허우룽카이를 앞서는 요소가 있다.
바로 대인전 기술이었다.
용우는 팀원들에게 타락체와 언데드를 상대하기 위한 대인전 기술을 전수했다.
팀원들의 감상은, 모두들 유현애와 일치했다.
‘정말 끔찍하게 못 가르친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지리멸렬한 설명은 처음인데.’
‘텔레파시로 이미지까지 전달해 주면서 하는데도 이렇게 알아먹기 어렵다니, 정말 개떡 같군.’
하지만 차준혁과 유현애, 휴고는 개떡같이 가르쳐도 찰떡같이 배울 수 있는 천재들이었다. 몇 번 보여주고, 대련으로 몸에 새겨주는 것만으로도 그 원리를 파악하고 재현할 수 있을 정도의 무서운 재능을 가졌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이 습득한 기술을 이미나와 리사에게 가르쳐 주는 것으로 팀의 기술 전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리사는 아직 미숙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익힌 대인전 노하우는 어비스에서 용우가 갈고 닦은 귀중한 것이다. 인간을 상대로 할 때는 벌레를 죽이듯 힘으로 쳐 죽이기만 했던 허우룽카이와는 근본적인 인식부터가 달랐다.
<이, 이런… 애송이 주제에!>
<내가 말했지.>
리사가 허우룽카이의 몸통을 찌른 창을 더 깊숙이 찔러넣으며 말했다.
<고통을 가르쳐주겠다고.>
<아아아아악……!>
허우룽카이가 비명을 질렀다. 창에 찔려서 몸을 헤집는 고통이 그의 정신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해둬.>
리사가 속삭였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당신은 앞으로 몇 번이든 이 고통을 반복하게 될 거야.>
허우룽카이의 고통이 느껴진다.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사태일 것이다.
팔라딘과 셀레스티얼은 구세록의 계약자가 빙의할 때마다 지는 리스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만들어낸 연구 성과다. 그런데 이렇게 고통을 느끼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예상에서 벗어난 상황은 인간을 동요하게 만든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고통은 냉정한 판단을 둔화시킨다.
허우룽카이는 이 둘의 시너지 효과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부탁한다, 허우룽카이.’
용우는 허우룽카이를 보며 진심으로 바랐다.
‘힘내서 살아라. 리사가 죽이기 전까지 자살하지만 마라.’
앞으로도 리사는 팬텀을 차근차근 파괴해 나갈 것이다.
조직원들을 죽이고, 연구원들을 죽이고, 그들을 후원하거나 비호하는 자본가들과 권력자들도 죽일 것이다.
그 과정은 허우룽카이의 피를 말리게 할 것이다.
서서히 낭떠러지로 밀리고 있는데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절망감을 심어줄 터.
‘적당한 선에서 잡아 죽여야지.’
목숨에 대한 집착이 강한 놈이겠지만 그 정도로 궁지에 몰리면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곤란했다. 리사는 심각한 탈력감에 빠질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시간 끌지 말고 적당한 날을 잡아서 죽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굉음의 도끼를 리사에게 계승해 주면 완벽한 마무리가 되리라.
‘계승 후보로 설정된 사람이 다른 성좌의 무기를 계승할 경우, 그 권한 설정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 수 있겠지.’
계승자 설정은 한번 해버리면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성좌의 무기를 계승할 후보로 선택받은 상태에서 다른 성좌의 무기를 계승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용우의 경우는 확실하게 미켈레에게서 빙설의 창을 계승한 상태에서 엔조 모로에게서 대지의 로드를 계승받았다.
결과적으로 둘이 충돌해서 당시에는 한쪽을 봉인할 수밖에 없었지만, 권한 자체는 둘 다 갖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허공장 잠식이 거의 끝나갈 때, 허우룽카이가 몸을 비틀며 절규했다.
<리사, 이탈해!>
용우의 외침에 리사는 즉각 반응했다. 그녀는 창을 놔버리면서 뒤로 전력으로 뛰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한 박자 늦게 허우룽카이가 폭발했다.
반쯤 무너지다시피 했던 공장 건물을 완전히 폐허로 바꿔 버리는 대폭발이었다.
쿠구구구구…….
폭발로 날아올랐던 파편들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용우가 리사의 곁에 나타나며 말했다.
“수고했어.”
<…놈이 도망쳤어요.>
리사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하며 말했다.
전투는 그녀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결과를 불만스러워하고 있었다.
허우룽카이를 붙잡아놓고 차근차근 고통을 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우룽카이는 승패가 났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빙의를 해제하고 셀레스티얼을 자폭시켰다.
“그것도 나쁘지 않아.”
<어째서요?>
“이번에 도망쳤으니 다음에도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놈이 그렇게 믿도록 내버려 둬.”
용우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맞아요. 이번에는 예행연습일 뿐이었으니까.>
“그럼 돌아가자.”
<네? 하지만…….>
리사가 놀라서 물었다. 원래는 오늘 팬텀의 거점 한 곳을 더 습격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쉬어. 예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셀레스티얼로 변신하는 것은 그만한 부담을 져야 하는 일이다.
거기에 허우룽카이라는 강적과 전투를 치른 지금 리사는 심력과 체력 모두 크게 소모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다른 데를 친다 한들 놈이 다시 나오진 않을 거야.”
지금쯤 허우룽카이는 충격에 빠져 있을 것이다. 서서히 목이 죄어오는 기분일 터.
“무조건 서두르는 게 능사가 아니야. 이럴 때는 배려가 필요해.”
<배려요?>
“놈이 지금의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도록 기다려 주는 배려.”
<…….>
용우의 속삭임을 들으며 리사는 허우룽카이의 심정을 상상했다. 그리고 셀레스티얼의 갑옷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아주 행복하게.
Chapter34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