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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104화 (10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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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는 한적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태블릿으로 2015년에 흥행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간혹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휴대폰이 울렸다.

“왜?”

상대는 차준혁이었다.

[시킨 일 처리했다.]

“뭘?”

[애비게일 카르타가 허우룽카이와 한판 붙을 기세길래 막아뒀어.]

“아, 그 건인가. 고맙다.”

[…너한테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이상하군.]

투덜거린 차준혁이 물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그 애한테 너무 지독하잖아.]

용우는 팀원들에게 공평하게 정보를 주지 않았다. 팀으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은 모두 알려줬지만,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는 정보는 알려주는 사람을 고르고 있었다.

리사의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은 차준혁과 휴고 스미스 둘이다.

그들은 리사가 팬텀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다는 것도, 얼마 전부터 세계 각지의 팬텀 조직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구세록의 계승자들에게는 알려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금 전 같은 역할을 맡길 수도 있으니까.

“지독하다라…….”

용우는 그 말을 곱씹듯이 중얼거리더니, 차준혁에게 물었다.

“넌 동정받고 싶은 거냐?”

[뭐?]

“소중한 사람이었던 다니엘 윤을 잃어서 안됐다. 마음이 너무나 아프겠지. 상처받은 너는 싸울 필요 없어. 싸움은 내가 대신해 줄게. 뭐, 이런 동정을 받고 싶냐고.”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차준혁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전화 너머로도 그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왜 리사한테는 그러려고 하지?”

하지만 이어지는 용우의 목소리가 그의 분노에 찬물을 끼얹었다.

“리사가 너보다 어린 여자니까 본인의 마음이 어떻든 험한 일 따위는 하지 말고 얌전히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보여?”

[…….]

싸늘한 용우의 말에 차준혁은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불쌍한 어린애 보는 어른이라도 된 기분은 버려. 혹시라도 리사한테 그런 태도는 안 보이는 게 좋을 거다.”

용우는 그렇게 경고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 * *

2028년 11월 초.

리사는 완전무장한 채로 낯선 도시의 낡은 공장 안을 걷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용우가 제로로 위장할 때와 흡사했다. 차이점이라면 M슈트를 입지 않았다는 것 정도라 겉으로 봐서는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젠장! 이 미친놈은 대체 뭐야!”

영어로 떠들어대는 욕설이 들렸다.

차곡차곡 쌓인 박스 너머에서 고개를 내민 거구의 흑인이 그녀를 향해서 소총을 갈겼다.

투타타타타!

리사는 허공장으로 그것을 비껴내면서 옆으로 뛰었다.

그녀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는 격을 달리한다. 옆으로 빠르게 달리는 것만으로도 사격이 따라갈 수 없게 되어버린다.

탕!

그리고 달리면서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흑인의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다.

타탕! 탕!

적은 그 하나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기습을 당해도 리사의 허공장이 일격에 뚫리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허공장과 초인적인 움직임으로 적들을 농락하면서 하나하나 숨통을 끊어갔다.

이곳은 팬텀의 아지트였다.

치안이 악화된 도시를 주름잡는 범죄 조직으로 위장한 채로 다른 마약과 섞어서 아니마를 유통시키는 거점이다.

그런 만큼 백 명도 넘는 인원이 있었고, 무장 상태도 상당히 흉흉한 편이었다.

하지만 전투 개시 후 채 20분도 안 되어서 반수가 리사에게 죽어나갔다. 그들의 화력으로는 도저히 리사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리사.>

그때 리사에게 용우의 텔레파시가 날아들었다.

<드디어 온다, 대비해.>

쿠우우우웅……!

어디선가 굉음이 울려 퍼지며 강렬한 마력 파동이 리사의 감각을 덮쳤다.

리사는 소총을 아공간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정말로?”

쿠궁! 쿠우우우우웅!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마력의 주인, 새하얀 갑옷으로 전신을 감싼 존재가 리사에게 다가왔다.

머리 위에는 굵직한 빛의 고리가 떠서 일렁이고 있었고, 등 뒤로는 새하얀 빛이 마치 펄럭이는 망토처럼 분출되고 있었다.

그 손에 쥔 무기는 백색의 커다란 도끼였다.

“셀레스티얼.”

<정말 제로가 아니었군.>

리사의 중얼거림에 셀레스티얼을 원격조종하는 허우룽카이가 반응했다.

허우룽카이는 세계 각지의 팬텀을 공격하는 리사의 존재가 용우가 변장한 것이라 판단했다. 촬영된 영상을 보면 용우라고 하기에는 많이 약해 보였지만, 그것조차도 자신을 끌어내기 위한 함정이라 의심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손 놓고 있었던 것이 그런 의심 때문은 아니다.

70미터급 게이트에서 죽음을 유사 체험 한 여파가 잦아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넌 뭐냐? 왜 팬텀을 적대하지?>

“당신이구나.”

리사는 헬멧 속에서 웃었다.

그를 본 순간부터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허우룽카이.”

그 말에 허우룽카이가 움찔했다.

<정체가 뭐냐? 제로하고는 무슨 관계지? 아니면 애비게일 카르타의 끄나풀인가?>

그의 입장에서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정체는 완벽하게 감춰져 있다. 팬텀 조직원들, 심지어 제법 넓은 관할을 가진 고위 간부들조차도 자신들의 주인이 허우룽카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런데 셀레스티얼과 마주하자마자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는 것은, 서용우나 혹은 다른 구세록의 계약자와 깊은 관계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리사는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말했다.

“만나고 싶었어, 당신을.”

복수를 시작하고 나서 수많은 살인을 저질러 왔다.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사장을 죽이는 것을 시작으로 아니마를 퍼뜨리는 팬텀 조직원들을 죽이고, 과거의 자신 같은 사람들을 잡아와서 잔혹한 인체 실험을 자행하는 연구원들도 죽였다.

하지만 리사가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작은 만족감뿐이었다.

복수는 그녀가 기대했던 것보다 달콤하지도, 흡족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우려했던 것처럼 괴롭지도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같은 무덤덤함, 그리고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는 작은 만족감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감동의 크기를 잣대로 삼으면 일상에서 집안일을 잘 해냈을 때의 뿌듯함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정말로.”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금 나타난 존재가 허우룽카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두근거림이 얼마만일까.

볼에 홍조가 돌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광채가 샘솟고 있다.

“만나서 정말 기뻐.”

리사는 자신이 차갑게 식어 있었던 것이 아직까지 ‘진짜’를 만나지 못해서였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들은 결국 한 사람을 죽이기까지의 과정에 불과했다. 자신이 증오하는 모든 악덕의 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가지를 잘라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 죽여줄게. 이제부터 몇 번이라도.”

<망상이 지나친 년이로군. 감히 내 말을 무시한 대가가 무엇인지 알려주마!>

허우룽카이가 분노했다.

셀레스티얼로 강림한 그의 입장에서 보면 리사는 한 대 툭 치면 죽을 정도로 연약한 존재였다. 체외 허공장과 다양한 스펠을 가졌다는 점은 놀랍지만, 가장 중요한 마력이 페이즈5 정도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셀레스티얼의 마력은 그릇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한 페이즈17 이상이다.

파지지지직!

허우룽카이가 성큼성큼 걸어가서 리사와 허공장을 부딪쳤다.

그것만으로도 격렬한 스파크가 일면서 리사의 허공장이 순식간에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짓눌러 죽여주지.>

허우룽카이가 조롱의 말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구우우우우웅……!

둔중한 소리가 울리면서 마력 파동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뭐야?>

허우룽카이가 당황했다.

급속도로 깎여 나가던 리사의 허공장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복원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공에서 홀연히 출현한 물질들이 리사와 결합하면서 그녀의 모습이 급격하게 변해갔다.

<설마…….>

허우룽카이는 그 현상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셀레스티얼!>

경악하는 그의 앞에서 리사의 모습이 변해갔다. 마치 허우룽카이 자신과 거울에 비친 상처럼 닮아 있는 모습이었다.

머리 위에는 빛의 고리가 떠 있고 등 뒤로는 펄럭이는 망토처럼 보이는 빛이 분출되고 있는 존재, 셀레스티얼.

다만 그녀의 손에 들린 무기는 순백의 도끼가 아니라 표면에 냉기가 맺혀 흐르고 있는 순백의 창이었다.

‘애비게일 카르타가 제로에게 정보를 공유한 건가?’

허우룽카이가 신음했다.

애비게일 카르타가 성좌의 무기를 운용하는 방식은 다른 구세록의 계약자들에게도 수수께끼였다.

그녀는 구세록의 계약자로서의 권능을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브리짓에게 성좌의 무기를 주고 전투를 대행시키고 있으며,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휴고 스미스를 셀레스티얼로 변신시킬 수 있었다.

<날 짓눌러 죽인다고 했지?>

리사가 창을 들어 허우룽카이를 겨누며 말했다.

<난 당신에게 고통을 가르쳐 줄게.>

진짜와 가짜가 만났다.

성좌의 무기의 계승자로 선택받은 자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권능의 그릇.

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콰과과광……!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공장의 천장이 터져 나갔다.

인류의 규격을 초월한 셀레스티얼끼리 격돌한 결과였다.

쿠과과과과광!

대기가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그 진동파가 자연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을 보인다.

누군가의 의도대로 명확한 지향성을 갖고 한 지점을 덮친 것이다.

리사가 그 진동파를 맞고 잠시 주춤한 순간, 대기를 컨트롤하는 허우룽카이가 대규모 파괴 스펠을 발했다.

-구전광(球電光)!

공처럼 빚어낸 뇌전이 연달아 폭발했다.

꽈과과과광……!

그리고 그 속에서 허우룽카이가 굉음의 도끼로 충격파가 터지면서 리사의 허공장을 두들겨 댔다.

<젠장!>

하지만 신음을 흘린 것은 허우룽카이였다.

-프리징 버스트!

리사가 허공장이 깎여나가거나 말거나 공격을 버텨내면서 반격했기 때문이다.

냉기가 폭발하면서 허우룽카이의 몸 절반이 얼어붙었다.

<무식한 년!>

막 힘을 최대치로 방출한 직후라서 피할 수가 없었다.

서로 안티 텔레포트 필드를 펼친 상태라서 공간 간섭계 스펠로 회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파지지직!

직후 폭발을 뚫고 뛰어든 리사가 창으로 허우룽카이를 찔렀다. 허우룽카이가 창의 공격 지점에 허공장을 집중하면서 도끼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투학!

갑자기 리사의 창 앞에 동그란 빛의 원이 나타나더니, 그 지점으로부터 충격이 폭발해서 허우룽카이를 튕겨내었다.

‘이건 뭐야?’

당황하는 허우룽카이에게 리사가 연달아 스펠을 날렸다.

-염동빙결탄(念動氷結彈)!

에너지탄이 연달아 쏘아져 나가서 허우룽카이를 강타, 폭발하면서 지독한 한기가 퍼져 나갔다.

투앙!

하지만 다음 순간, 허우룽카이가 날린 진공파가 리사를 쳐서 날렸다.

쿠구구구구구!

허우룽카이를 중심으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얼음이 깨져 나갔다.

튕겨 나가던 리사가 그 진동파에 맞고 땅바닥에 처박힌다. 그리고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땅과 대기가 흔들리면서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죽어라!>

승기를 잡은 허우룽카이가 도끼를 들어 올리며 스펠을 발했다.

꽈아아아아앙……!

폭발이 공장 벽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았다.

‘막았어?’

허우룽카이가 당황했다.

전투의 흐름상 리사는 지금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흩어지는 폭연 속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만만치 않지?>

그리고 리사는 용우의 텔레파시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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