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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강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아득한 고대라면 모를까, 지금의 인류라면 누구나 살인이 최악의 죄악이라는 상식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어려운 일이었다.
“…….”
도시 변두리의 오래된 식당, 그 뒷문에서 이어지는 지저분한 골목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앞머리가 비스듬한 쇼트커트, 그리고 검은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외모였다. 중성적이면서도 아름다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동자에는 음울한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피가 묻은 나이프를 들어서 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너무 쉽네요.”
그 앞에는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가 숨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보아서 결코 곱게 죽지 못했으리라.
그를 잔인하게 죽여 버린 그녀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보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고작 일반인이야. 네 입장에서는 어린애 손목 비틀기보다 쉽게 죽일 수 있는 게 당연하지.”
그 뒤쪽, 벽에 기대어 선 남자가 말했다.
한 달쯤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얼굴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작전 중 부상으로 인해서 헌터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판정을 받고 은퇴한 인물, 서용우.
“기분은 좀 풀렸어?”
“잘 모르겠어요.”
나이프를 내리고 허공을 올려다보며 대답하는 것은 용우의 제자, 리사였다.
“딱히 기쁘지도, 후련하지도 않네요. 복수라는 건 좀 더 달성감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별로 미워하지 않았던 거겠지.”
“…….”
그 말에 리사는 중년 남자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굳이 공들여서 고통을 줄 필요는 없었을 것 같아요.”
리사에게 살해당한 중년 남자는, 그녀가 팬텀에 납치당하기 전에 일하던 식당의 사장이었다.
그가 매일 아침 소량의 아니마가 들어있는 건강 음료를 나눠주지 않았다면, 리사는 팬텀에 납치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리사에게 끌려 나온 사장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리사는 그의 몸을 찌르고, 회복시키기를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고통을 주다가 죽였다.
용우가 물었다.
“사죄하게 만들지 않은 거, 괜찮아?”
“필요 없어요.”
리사는 사장에게 단 한 마디도 허락하지 않았다.
말없이 칼로 찌르고, 또 찔러서 고통으로 발광하게 만들다가 죽였다.
“이 사람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는 하나도 알고 싶지 않아요.”
혹시 그에게 만인이 동정할 만한 사연이 있었다고 해도 알고 싶지 않다.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리사가 당한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고통 속에 죽어간 사람들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니까.
“어차피 사죄한다고 받아줄 것도 아니고, 사연을 안다고 용서할 것도 아니니까요.”
그때 리사에게 지금 같은 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팬텀에게 잡혀가지 않고 끝났다면, 사장이 그런 이야기를 저지른 이유를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위협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거나, 그런 이유가 있었다면 용서해 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리사는 철저하게 힘없는 피해자였고, 사장에게 무슨 사연이 있다 한들 참작해줄 이유가 없었다.
‘살인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군.’
리사에게서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도, 저지르는 동안에도 전혀 거부감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첫 살인의 흥분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장을 끌고 나와서 고통을 줘가며 죽이는 과정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게 수행했다.
용우는 새삼 그녀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존재임을 깨달았다.
‘결국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 나도, 너도…….’
지구로 돌아온 지도 벌써 1년.
그동안 죽 생각했다.
마음의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동생과 재회해서 어비스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흐르는 피는 절대로 멈추는 법이 없었다.
인간다운 삶은 고통에서 눈을 돌릴 수 있게 해줄 뿐, 상처를 없애줄 수는 없었다.
‘복수는 우리를 치료해 줄까?’
용우는 그 의문의 답을 알고 싶었다.
“그럼 뒤처리해.”
“예.”
리사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검은 구멍이 열리더니 사장의 시신이 그 안으로 끌려들어 가서 사라졌다.
아공간 스펠 ‘시공의 보물고’였다.
리사가 퇴원해서 용우의 제자가 된 지도 3개월 반.
그 기간 동안 리사는 계속해서 용우에게 특성과 스펠을 공급받아서 올라운더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치이이이익……!
그리고 리사가 일으킨 불길이 그 자리에 남은 혈흔을 한차례 태우고 지나갔다.
살인의 흔적을 지운 두 사람은 곧바로 워프 게이트를 통해서 그 자리를 떠났다.
* * *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국제 정세는 크나큰 변화를 겪어왔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대표적인 강대국들이 몰락하고, 풍족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던 국가들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인류는 예전보다 훨씬 특정한 지역에 도시를 구축하고 그 안에 모여 사는, 인구밀도가 높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대만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였다.
게이트 재해의 피해가 가장 적고, 헌터 전력도 뛰어나서 헌터 선진국으로 불린다.
국토방위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세계 각국의 자본이 몰려서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또한 7개국으로 쪼개져서 쇠락해 버린 중국의 일부 영토를 병합하기까지 했으니 역사상 최고의 성세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눈부신 역사의 이면에는 한 남자의 존재가 있었다.
‘놈이다.’
대만의 그림자 총통이라 불리는 남자, 허우룽카이는 모니터에 출력되는 보고 사항을 보면서 몸을 떨고 있었다.
허우룽카이가 보고 있는 것은 팬텀의 관리 시스템이다.
지난 2주간 엄청난 속도로 팬텀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연구 시설 두 개가 파괴당하고, 아니마 생산지도 하나 초토화되었다.
그리고 아니마의 유통을 맡고 있는 팬텀의 거점들도 세 곳이나 괴멸당했다.
‘노골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건… 도발이겠지.’
허우룽카이가 이를 악물었다.
공격자는 단 한 명이었다.
헌터용 배틀 슈트를 입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바이저를 써서 정체를 감춘 인물이다.
CCTV에 촬영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전투를 벌이는 정체불명의 헌터는, 팬텀 입장에서 보면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팬텀은 범죄 조직으로서는 상당한 무력을 보유한 조직이다.
하지만 팔라딘이나 셀레스티얼을 제외한 그들의 무력은 한계가 명확했다.
체외 허공장을 가진 데다가 마력도 출중한, 1급 헌터 장비들을 아낌없이 쓰는 존재를 상대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그 인종차별주의자 놈들이 그리워지다니…….’
허우룽카이는 미켈레와 엔조 모로를 떠올리는 스스로에게 짜증을 냈다.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그들과 동양인인 허우룽카이의 사이가 좋았냐 하면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목적을 위해 손잡고 있었을 뿐.
하지만 조직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공격받는 상황에 처하자 그들의 부재가 아쉬웠다.
‘빨리 팔라딘과 셀레스티얼을 투입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
허우룽카이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망설이는 자신이 있었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다들 그렇듯 허우룽카이 역시 중증 PTSD 환자였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지닌 힘, 빙의는 대가 없이 편리한 힘이 아니다.
아무리 빙의로 죽음의 리스크를 피한다고 해도 전투 스트레스까지 회피할 수는 없다.
게다가 빙의할 때마다 시신이 되어버린 몸의 주인이 남긴 강렬한 사념과 죽음의 이미지에 정신적으로 공격받는다.
그런 이유로 구세록의 계약자들은 한번 빙의를 하고 나면 한동안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곧바로 다시 빙의해서 전투에 나서는 것은 정말로 강한 결의가 있지 않고서야 힘들다.
하물며 빙의한 채로 죽음을 경험한다면?
그 여파는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였다.
70미터급 게이트에서 빙설의 군주 하스라에 의해 죽음을 유사 체험 한 허우룽카이는 한참 동안 현실감을 잃고 광기에 고통받았다. 떨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성좌의 힘을 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뭔가 수를 써야 해.’
허우룽카이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다음 순간, 그의 의식이 현실을 떠나서 정보 공간으로 들어갔다.
“애비게일 카르타.”
“요즘 뜸하더니 갑자기 무슨 볼일이지?”
애비게일 카르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경고한다. 제로에게 협력하는 걸 관둬라.”
“무슨 소리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강력한 정보력이 없으면 불가능해. 네가 협력하고 있을 게 뻔하지 않나?”
허우룽카이가 살기를 내비쳤다.
세계 각지의 팬텀의 주요 시설들을 타격하는 것은 단지 강력한 무력과 신출귀몰한 이동 능력이 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 대부분은 일반인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었으며, 기업이나 세력이 강성한 범죄 조직과의 협력으로 숨겨져 있었다.
몇몇은 아예 국가 요인들에게 비호를 받으면서 그 나라의 국민들을 실험체로 쓰고 있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중요한 시설들만 골라서 철저하게 때려 부순다는 것은, 팬텀의 조직망을 파악하는 탁월한 정보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강국이 되었다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수준 미달이다.
애비게일 카르타가 미국의 정보망을 빌려줬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했다.
그러나 애비게일 카르타는 코웃음을 쳤다.
“어이없군. 왜 네 무능을 내 탓으로 돌리는 거지?”
“정말 해보자는 거냐?”
“짖어대는 소리 들어주기도 지겨운데, 정말 그렇게 해줄까?”
“뭐?”
“네가 전에 말했지. 두 자리나 비었으니 빈자리를 하나 더 늘리는 걸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과거에 허우룽카이는 애비게일 카르타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 그렇게 싸우길 바란다면, 지금 바로 브리짓을 보내주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움찔했던 허우룽카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 때였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당신들 대화 수준이 참 한심하군.”
문득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허우룽카이가 깜짝 놀라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항상 정보 공간에서 들어와서 익숙한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준혁, 이제야 낯짝을 보이는 건가?”
죽은 다니엘 윤에게서 광휘의 검을 계승한 백발의 청년, 차준혁이었다.
차준혁은 허우룽카이를 무시하고 애비게일 카르타에게 물었다.
“애비게일 카르타, 저놈을 칠 건가? 진심으로?”
“왜 묻지?”
“그럴 거면 관두라고 하려고. 내가 막을 거니까.”
차준혁의 말에 애비게일 카르타와 허우룽카이 둘 모두 놀랐다.
애비게일 카르타가 물었다.
“이유는?”
“선생님은 저놈을 빌어먹을 개자식이라고 불렀지만…….”
차준혁이 허우룽카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캡틴은 저놈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거든. 쓸데가 있다고.”
“캡틴? 제로를 말하는 건가?”
“그래. 그것 때문에 굳이 온 거야. 당신이랑 싸우고 싶진 않으니까 저놈이 시끄럽게 짖어대도 너그럽게 봐줘.”
“흠, 제로가 그러길 바란다면, 그러지.”
애비게일 카르타는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대화를 듣는 허우룽카이는 수치심과 분노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마치 자신의 목숨 따위는 냉장고 속의 캔 음료를 꺼내듯 언제든 처리할 수 있다는 저 오만함이라니!
‘이놈들이 감히!’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싸우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냉정한 계산과, 그것을 웃도는 공포감이 솟구치고 있었다.
브리짓 카르타만이라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까지 팬텀을 통해서 그러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거기에 다니엘 윤보다 전투 능력이 높을 게 확실한 차준혁이 더해진다면?
“프리앙카와 사다모토 아키라는 없나?”
차준혁은 굴욕으로 몸을 떠는 허우룽카이를 무시하며 물었다.
“프리앙카는 자기 일로 바쁜 것 같고, 사다모토 아키라는… 그날 이후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원래부터 참여율이 저조해.”
“항상 있는 건 아닌가 보군. 그럼 이만.”
차준혁이 미련 없이 나가 버리자 애비게일 카르타가 허우룽카이를 보며 냉소했다.
“목숨을 건진 걸 기뻐하도록 해, 대만의 황제 폐하.”
“…….”
허우룽카이는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하고 정보 공간에서 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