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01화 (1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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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애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지금 병원에 실려 가서 사경을 헤맨다는 그 사람 맞죠?”

뉴스가 뜬 휴대폰 화면을 흔들어대는 그녀에게 용우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 셈이지.”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예요?”

“배틀 힐러 서용우를 은퇴시키려고. 제로와 활동이 겹치면 곤란하니까.”

“아, 하긴 그렇겠네요. 갈수록 속이기 힘들어질 테니…….”

유현애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제로가 활동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질 테니 배틀 힐러 서용우라는 위장 신분은 방해가 될 뿐이다.

용우가 물었다.

“마음은 정했어?”

“네.”

유현애는 긴장되는지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불꽃의 활을 넘길게요. 하지만 그 전에 설명을 듣고 싶네요. 저한테 뭘 주실 건가요?”

유현애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였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살면서 이렇게나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있어서 불꽃의 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각성자 튜토리얼에 소환되는 순간, 영영 손에서 떠나 버린 꿈과 맞바꾼 무언가였다.

또한 불합리하게 소환당한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목숨을 걸고 쟁취해 낸, 영원히 잊지 못할 그 시간을 긍정해 주는 기념비였다.

그럼에도 유현애는 불꽃의 활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날개라고 생각했던 불꽃의 활이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족쇄가 되고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유현애가 전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면, 불꽃의 활은 훌륭한 핑곗거리가 되어줄 것이다. 그것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헌터로서 싸우면 안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헌터는 유현애의 새로운 삶이었고, 꿈이었다.

프로 게이머가 되고 싶었던 유현애는 지금은 훌륭한 헌터가 되고 싶었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쟁취한 힘으로 사람들을 지켜내는, 인류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꿈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용우가 대답했다.

“첫 번째는 이미 말한 대로 특성과 스펠. 난 너를 올라운더로 만들어줄 수 있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두 번째는… 이거다.”

용우는 허공에다 손을 대고 스펠을 썼다.

-형상복원!

그러자 허공에 얼음처럼 투명한 질감의 창 한 자루가 나타났다.

냉기를 두른 그 창을 본 유현애의 눈이 커졌다.

“빙설의 창이잖아요?”

“모조품이야.”

“네?”

“진짜의 주인도 나지만, 이건 진짜를 본떠서 만든 모조품이야. 성능도 떨어지고 존재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지.”

“아티팩트를 복제할 수 있다고요? 아무리 아저씨라도 그런 일이 가능해요?”

“아티팩트가 아냐.”

“네?”

놀라는 유현애에게 용우가 설명해 주었다.

“아티팩트 자체가 모조품이니까. 진품은 아티팩트가 이 세계에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 성좌의 무기라고 해.”

용우는 성좌의 무기와 구세록의 계약자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고스트가 그런 존재였군요…….”

“아티팩트는 성좌의 무기의 열화 복제품이야. 아마도 앞으로 한 세대에 일곱 개씩 늘어나겠지.”

“아저씨는… 진짜를 가졌으면서 왜 가짜를 탐내는 거예요?”

“가짜지만 이 시점에서는 세상에 일곱 개뿐인 가짜니까. 아니, 하나는 부서졌으니까 이제 여섯 개뿐이군. 어쨌든 그 정도로 희소한 가짜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아티팩트 보유자와 그 소유권을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과연 성좌의 무기를 두 개 가졌을 때와 똑같은 반발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골 때리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리스크를 지더라도 용우는 그 답을 확인해 두고 싶었다.

용우는 형상복원으로 만든 빙설의 창 모조품을 없애고는 말했다.

“나는 네게 고스트와 비슷한 힘을 줄 수 있어.”

휴고 스미스가 그랬던 것처럼, 유현애는 성좌의 무기 계승 후보로서 셀레스티얼의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일단은 불꽃의 활을 넘겨받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 따라와.”

유현애는 어디냐고 묻지 못했다.

용우가 다짜고짜 스펠을 썼고, 갑자기 공간이 진동하면서 허공에 새카만 구멍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어, 이거… 그때 그거잖아요?”

유현애 입장에서 보면 불꽃의 군주 볼더와 처음 마주했던 전투에서 용우가 납치당할 때 봤던 바로 그 검은 구멍이었다.

“맞아. 워프 게이트지.”

“워프 게이트?”

“뜻을 몰라서 물어보는 건 아니겠지?”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런 게 가능한 거였어요?”

“지금까지 내가 한 일들을 생각해 봐.”

“…….”

유현애는 잠시 과거를 되새겨 보다가 말했다.

“확실히 아저씨라면 그런 일도 가능할 것 같네요. 그럼 설마 그때 그 일도 아저씨의 자작극이었어요?”

섬뜩한 가능성을 떠올린 유현애가 표정을 굳혔다.

용우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냐. 다만 놈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도 할 수 있을 뿐이지.”

“놈들이 누군데요?”

“이제부터 알려주지. 이제부터 네가 알아야 할 것들이 꽤 많아. 그리고 그걸 알면 알수록 발을 빼기 힘들어질 거야.”

“이제 와서 뭐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하세요?”

유현애는 코웃음을 치고는 용우를 따라서 워프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벼랑 아래로 파도가 치는 섬의 풍경이 펼쳐졌다.

“여긴 어디에요?”

“소멸한 게이트의 내부 필드.”

“네?”

“게이트가 소멸한다고 해서 그 내부 필드가 소멸하는 건 아니야. 들어가는 문이 사라질 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지.”

유현애가 놀라서 입을 벌렸다.

용우는 그 모습이 재밌는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럼 시작하지.”

“어떻게 하면 되죠?”

“일단 불꽃의 활을 소환해.”

유현애는 그 말대로 따랐다. 허공에서 출현한 붉은 대궁을 그녀가 쥐었다.

다음에는 용우 차례였다.

구구구구구……!

순간 유현애는 오싹함을 느끼며 한 걸음 물러났다.

‘이게 뭐야?’

마치 곧 해일이 덮칠 해변에 서 있는 기분이다. 뭔가 거대하고 무서운 것이 온다는 확신이 드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파지지지직!

허공에 격렬한 스파크가 튀면서 유현애의 허공장을 밀어내었다. 유현애는 반사적으로 뒤로 뛰어서 거리를 벌렸다.

“젠장, 아직도 불안정하군.”

용우는 속으로 유현애의 빠른 반응을 칭찬하면서 무언가를 소환해서 손에 쥐었다.

“…그 칼은 뭐예요?”

유현애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용우가 소환한 것은 길이가 그의 키 정도 되는 거대한 양손 대검이었다.

그 검의 외형은 굉장히 독특했다.

일단 일반적인 양손대검보다 훨씬 크다. 길이가 긴 것은 물론이고 검면도 2배는 넓었다.

손잡이 부분과 칼막이 부분은 새카만 빛깔을 띠고 있는데 그 질감이 마치 암석을 매끈하게 깎아놓은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칼날은 얼음을 깎아서 만든 것처럼 투명했으며, 그 안쪽에서는 시퍼런 빛이 물결치듯이 흘러나와서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특징적인 생김새였다. 하지만 유현애가 놀란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어떻게 그런…….”

유현애는 마력 컨트롤에 있어서는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용우도 그 천재성을 인정해서 팀원으로 끌어들였을 정도로.

그렇기에 그녀는 용우가 들고 있는 양손 대검의 무서움을 알아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안 나는, 절망적으로 거대하고 강력한 괴물이 무기의 형상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무서워할 것 없어. 융합은 잘 이뤄졌고 지금은 안정화되고 있는 중이니까. 갑자기 폭발할 일은 없을 거야.”

“…그게 대체 뭐예요?”

“아티팩트의 오리지널, 성좌의 무기.”

“아티팩트 중에 그렇게 생긴 건 없는데요?”

“난 성좌의 무기의 형태를 바꿀 수 있어.”

용우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물론 자신의 능력이 자랑스러워서는 아니었다. 유현애에게 설명하지 않은 진짜 이유가 있었다.

용우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빙설의 창과 대지의 로드를 하나로 합쳐놓은 결과물이었다.

* *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우는 한 사람이 성좌의 무기 두 개를 동시에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자신이 힘을 회복해서 두 무기의 반발을 찍어 누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두 개를 동시에 쓰느니 차라리 하나만 쓰는 게 나을 정도로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용우는 둘 중 하나를 리사에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빙설의 군주 하스라를 처치하고 얻은, 그의 코어 파편들이 그 계획을 바꿔놓았다.

원래 몬스터의 코어 파편이라는 것은 결국은 마력석이다. 좀 더 농축된 마력석이라 연구용으로 가치가 뛰어날 뿐이다.

하지만 하스라의 코어는 달랐다.

정보 세계에서 하스라의 본체를 처치하고 얻은 전리품을 검사해 본 용우는, 그중에서 특이한 파편들을 발견했다.

부서진 하스라의 코어 파편들이었다.

파편들을 한데 모아 이런저런 실험을 해본 용우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하스라의 코어는 마력석과 달리 연소되어 사라지지 않고 그 형상을 지키는 성질을 지녔다는 것을.

부서진 것을 한데 모으자 다시 하나로 합칠 수도 있었고, 그 안에 있는 마력이 소모되더라도 사라지지 않았다. 가만히 놔둬도 소모된 마력이 채워지는 것이 무슨 공상 속의 영구기관 같았다.

용우는 그 힘이 성좌의 무기와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차이점이라면 일단 성좌의 무기들은 무기로서의 성질이 뚜렷한 편이다. 아마도 제작 시에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부여된 성질일 것이다.

그에 비해 하스라 코어의 힘은 훨씬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하스라의 코어인 만큼 내재된 마력은 빙설의 창과 유사했지만,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서 훨씬 더 범용적으로 쓸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좌의 무기보다 확실하게 더 좋냐 하면 그건 아니다. 증폭 효과는 성좌의 무기보다 떨어졌고, 스펠처럼 내재된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서 활용성이 천지 차이로 달라질 물건이었다.

용우는 운 좋게도 몇 번의 실험만으로도 아주 기가 막힌 활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스라 코어를 이용하면 빙설의 창과 대지의 로드의 반발 작용을 없애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거기에 하스라 코어의 힘을 더해서 순환시키는 것으로 한층 성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 * *

물론 용우는 그런 사실을 유현애에게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았다. 애당초 누구에게도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유현애가 물었다.

“어쨌든 엄청나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떡하면 되나요?”

“어렵지 않아. 불꽃의 활의 계승자를 설정하겠다고 강하게 생각해 봐.”

“계승자요?”

유현애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말에 따랐다.

그러자 불꽃의 활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

유현애가 놀랐다.

눈앞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메시지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치 홀로그램 메시지를 보는 것처럼 설명과 선택지가 보이고 있었다.

용우가 물었다.

“뭐가 보이나?”

“어, 무슨 컴퓨터 화면처럼 선택지가 보여요. 설명이랑. 근데 이거 왜 한글이죠?”

“네 뇌에 있는 언어 정보를 쓰고 있겠지.”

“계승자를 아저씨로 선택하면 돼요?”

“그래.”

“했어요. 그다음은요?”

“네가 불꽃의 활의 소유권을 포기하면 돼.”

그 말에 유현애는 그녀 자신에게만 보이는 선택지를 노려보았다.

“…….”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는, 이윽고 뭔가를 놔버린 듯 힘 빠진 표정을 지었다.

“…했어요.”

동시에 불꽃의 활이 그녀의 손을 떠나 용우에게로 날아왔다.

‘역시.’

그것을 쥔 용우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확인하고 싶었던 답 하나를 얻었다.

‘아티팩트의 소유권은 성좌의 무기의 소유권과 충돌하지 않는다.’

성좌의 무기 두 개를 쓰려면 하스라 코어를 이용해서 하나로 합쳐놓는 형태밖에 답이 없었다.

하지만 아티팩트 불꽃의 활은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로 사용 가능 하다. 그로 인한 장비의 다양성은 용우에게는 꽤 유용하게 활용될 부분이었다.

문득 용우는 유현애가 허탈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괜찮아?”

설마 그녀가 울 줄은 몰랐다. 용우는 당혹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요…….”

유현애는 자신의 심정을 표현할 말을 찾아서 잠시 고민했다.

“제 일부가 사라진 느낌이네요.”

“…….”

“제 안에 당연히 존재하던 뭔가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 허탈하기도 하고, 왠지 슬프기도 하고 그래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는 유현애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용우는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화제를 돌렸다.

“네게 설명해 줄 게 많아.”

“그렇겠죠.”

“하지만 너 말고도 설명을 들어야 할 사람이 있으니, 팀원들이 모이면 한꺼번에 설명할게.”

“언제 모일 건데요?”

“지금.”

“네?”

용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텔레포트로 사라져 버렸다.

“엥?”

혼자 남겨진 유현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잠깐만. 이봐요, 아저씨?”

사람을 이런 곳으로 데려온 다음 그냥 버리고 사라져 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그녀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의 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유현애가 흠칫해서 그곳을 바라보자 허공에 또 다른 검은 구멍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 구멍은 한 남자를 뱉어내고 쪼그라들어서 사라졌다.

‘어, 저 사람 설마?’

유현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남자는 백발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청년,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리는 헌터 차준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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