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00화 (1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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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수 박사는 자기 연구실에 처박혀서 연구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7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에서는 귀중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얻었다. 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은 앞으로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득 그녀가 의자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언제 오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던 곳에 홀연히 서용우가 나타나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다음 날에는 올 줄 알았는데 2주라니…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대답을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더군요.”

“대답을 들려주겠어요?”

“박사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성좌의 무기를 연구할 수 있게 해주겠습니다.”

권희수가 요구한 것은 바로 성좌의 무기를 연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다니엘 윤은 권희수를 계승자로 설정하고, 마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마력이 성장할수록 권희수가 지닌 특유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해서 남들이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답을 빠르게 얻고는 했다.

하지만 다니엘 윤이 해준 일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결코 성좌의 무기와 그 힘을 휘두르는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역시 당신은 그럴 수 있었군요.”

용우의 대답에 대한 권희수의 반응은 좀 묘한 구석이 있었다.

허락을 기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용우가 물었다.

“다니엘 윤은, 허락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겁니까?”

“예.”

“이유를 압니까?”

“정확한 이유는 몰라요.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못을 박았어요.”

“…….”

그것은 용우에게는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내가 느낀 불쾌감이 이것과 관계가 있었나?’

지금까지 용우는 고집스럽게 성좌의 힘으로 변신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성좌의 힘을 받아들여서 변신하는 것으로 자신이 다룰 수 있는 힘이 대폭 상승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럼에도 그 감각을 도저히 감수할 수가 없었을 뿐.

동시에 머릿속 한구석에서 경고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건 한번 받아들이면 돌이킬 수 없어.’

용우는 위험을 알아차리는 자신의 감을 신뢰했다. 그렇기에 리스크를 감수하는 한이 있어도 고집을 관철해 온 것이다.

‘구세록과 구세록의 계약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애비게일 카르타에게 정보를 더 캐낼 필요가 있겠군.’

아무래도 아직 더 알아내야 할 정보가 남은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자신을 ‘계약자’라고 칭하는 것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용우는 미켈레를 죽이고 빙설의 창을, 엔조 모로를 죽이고 대지의 로드를 강탈했다.

그것은 그들이 죽기 전에 용우를 계승자로 설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용우는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을 다 계승하지는 못했다.

둘의 구세록과도 접촉해 본 적이 없고,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리고 특별히 ‘계약자’라고 불릴 만한 계약의 과정을 거친 적도 없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소통의 수단으로 쓰고 있는 정보 공간 역시 용우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채였다.

‘내가 얻지 못한 것들이 구세록과 계약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이겠지.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구세록에 내재된 기능을 사용할 권한을 받는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쓰는 능력, 예를 들면 각성자의 시신에 빙의하는 것이나 정보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구세록에 내재된 기능이라면?

그렇다면 그런 기능을 쓰는 대가로, 그들에게 강제되는 계약 조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성좌의 무기를 누군가에게 주는 건 신중하게 진행해야겠군. 어차피 하스라 때문에 계획을 대폭 수정하긴 했지만.’

생각에 잠긴 용우에게 권희수가 물었다.

“언제부터 연구에 협력해 줄 수 있나요?”

“당분간은 곤란합니다.”

“잠깐씩이라도 좋은데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좌의 무기로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고 있는 일이요?”

“예.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권희수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용우는 말해주지 않았다.

용우가 권희수를 찾아오는 게 늦어진 이유는 팀을 결성하는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개인적인, 군주 개체 하스라를 쓰러뜨림으로서 얻은 것 때문이었다.

“대신 이걸 드리죠.”

용우는 아공간에서 얼음처럼 투명한 질감의 창을 꺼냈다.

권희수가 눈을 빛냈다.

“빙설의 창이군요. 아티팩트인가요?”

“예. 군주 개체 하스라의 코어 역할을 했었습니다. 한번 부서진 것을 이어놓기는 했는데, 아티팩트로서의 기능은 복원이 안 되더군요.”

“그럼 의미가 없잖아요?”

“정말 그렇습니까?”

장난치냐는 듯 묻는 용우의 말에 권희수가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물론 아니죠.”

유현애의 불꽃의 활을 통해서 아티팩트에 대한 연구 데이터는 상당히 쌓여있다.

멀쩡한 아티팩트와 망가진 아티팩트, 둘의 데이터를 비교해 보면 분명 얻을 수 있는 게 있으리라.

“당분간 갖고 놀 장난감으로는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이것보다는 텔레파시 연구 쪽을 서둘러 주십시오. 그쪽에서 성과를 내면 재미있는 걸 하나 더 드릴 테니까.”

“재미있는 거?”

“박사님이 좋아할 만한 겁니다.”

“흠……. 알겠어요.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나 시간이 없는 건가요?”

“이미 마감 기한을 넘겼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용우는 단언했다.

“이미 70미터급 게이트 안에서 정신 공격을 쓰는 놈들이 나타났으니까요. 구세록의 계약자들조차도 군주 개체와 타락체의 정신 공격에 농락당했습니다.”

“아,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맥없이 당한 국면들이 있었군요.”

권희수는 놀라지 않고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미 7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의 전투 데이터를 남김없이 검토했다.

그중에는 아무리 봐도 연결성을 이해할 수 없는 국면이 여럿 있었고, 이에 대해서는 전투 데이터 해석에 특화된 인공지능들도 딱히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우의 이야기를 들으니 빠진 퍼즐 조각이 나타난 느낌이다.

권희수가 말했다.

“연구 속도를 가속하려면 필요한 게 있어요.”

“박사님을 텔레파시 능력자로 만들어주면 됩니까?”

“저는 물론이고, 협력해 줄 몇 사람을 더 추가했으면 좋겠네요. 한두 명으로는 진도 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니까요.”

엄청난 요구였지만, 요구하는 권희수나 들어주는 용우나 태연했다.

“인원을 선별해서 저한테 보내주십시오. 돈 문제는 김은혜 팀장하고 이야기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

용우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뭐든지요.”

“성좌의 무기 연구 협력을 하게 되면, 박사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까?”

그 말에 권희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사람 과거를 궁금해하는 타입인 줄 몰랐는데요?”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물어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남의 과거사를 묻는 건, 흥미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흥미의 문제가 아니다? 이상한 관점이네요. 흥미도 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이유가 있나요?”

권희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만약 박사님이 과거사를 물어보면 대답해 주는 대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게 당연한 세상에 떨어진다면, 그래도 흥미가 있다는 이유로 물어보겠습니까?”

“어비스는 그런 곳이었나요?”

“남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큰 사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랬다.

처음에는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경계와 불신으로 무장한 채 모두를 노려보게 되었다.

“그럼 제 과거를 궁금해하는 건, 흥미 말고 어떤 이유인가요?”

그 말에 용우는 잠시 대답을 생각했다.

왜 이제 와서 권희수의 과거사를 듣고 싶어 하는가?

그 이유는 다니엘 윤의 죽음 때문이었다.

다니엘 윤과의 마지막 교감으로 그가 품은 감정을 느낀 용우는,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쩌면 그는… 용우와 서로 등을 맡기는 사이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닮은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리고 용우는 권희수에게서도 다니엘 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날 권희수가 내보인 진짜 얼굴은, 용우로 하여금 어딘가 그립고 가슴 아픈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닮은 구석이라……. 저와 당신이?”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확인해 보고 싶군요.”

그 말에 권희수가 웃었다. 용우에게 딱 한번 보여줬던, 그 지친 웃음이었다.

“그래요.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대신 그때가 되면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줄 수 있나요?”

그 물음에 용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기꺼이.”

* * *

7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의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9월 초, 또 다른 이슈가 한국 언론을 달아오르게 하기 시작했다.

‘아티팩트 불꽃의 활의 주인 유현애, 팀 반도호랑이를 떠나다!’

유현애가 팀 반도호랑이를 떠나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그녀와 친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미나 역시 팀 반도호랑이를 이탈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백원태는 그 소식이 1면을 장식한 신문을 보다가 용우에게 물었다.

“이미나가 그 정도의 인재였습니까?”

용우가 유현애를 팀원으로 고른 것은 이해가 간다. 일단 아티팩트 보유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메리트가 있으니까.

하지만 굳이 이미나를 함께 데려온 선택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팀 반도호랑이 기준으로는 뛰어난 베테랑 헌터다. 하지만 팀 크로노스 기준으로 보면 괜찮은 중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용우가 말했다.

“유현애의 멘탈을 생각하면 같이 데려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데려온 겁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실력 있는 베테랑이니까요.”

5세대 각성자인 이미나는 헌터로서는 성장기가 끝났다고 봐야 할 인물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업계의 상식 안에서의 이야기였다. 용우는 그녀를 얼마든지 더 성장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 이유만으로 300억 원을 투척하다니, 용우 씨도 참…….”

용우는 유현애와 이미나를 탈 없이 넘겨받기 위해 팀 반도호랑이에 300억 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했다.

팀 반도호랑이의 사장은 유현애를 풀어주는 것에 대해서는 시원시원하게 응했다. 유현애가 프로 게이머 시절부터 팬이었기에, 헌터 관리부의 압력으로 그녀를 아무것도 못 하도록 방치해 둬야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나를 데려오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그녀는 팀 반도호랑이 입장에서 꼭 필요한 인재였으니까.

“예의 차원에서 지불한 겁니다. 그 정도면 이미나 씨의 공백을 메꾸고 부대를 리빌딩하기에 충분하겠죠.”

지금의 용우에게 300억 원은 그런 이유로 쓸 수 있는 금액에 불과했다.

8, 9등급 몬스터의 시신과 스펠 스톤을 거래함으로써 얻은 돈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이었다.

백원태가 물었다.

“그럼 팀원은 용우 씨까지 다섯 명으로 끝입니까?”

“예.”

“정말 적긴 하군요. 그걸로 괜찮겠습니까?”

용우의 팀원은 리사, 차준혁, 유현애, 이미나뿐이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더 인원을 충원하겠다고 하면 후보로 올릴 만한 사람들은 팀 크로노스, 팀 블레이드, 팀 이그나이트의 헌터들 정도일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아, 그건 제발 그만둬 주십시오.”

백원태가 장난스레 양손을 합장했다.

용우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기본적으로는 저 혼자 하던 일을 좀 더 확장해서 하는 팀이니까요. 규모가 커지면 제대로 조직을 꾸려야 할 테고, 외부로 드러내야 하는 정보가 많아지니 피곤합니다.”

용우의 팀은 행정 데이터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은혜는 용우의 개인 에이전트로 고용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팀원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뭉치는, 한없이 느슨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런 구조를 취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외부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위함이 가장 컸다. 법인을 만들고 기업화를 하면 상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정보를 드러낼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슬슬 배틀 힐러 서용우를 정리해야 할 것 같군요. 그 건에 대해서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무슨 뜻입니까?”

백원태가 놀라서 묻자 용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위장이 힘들어집니다.”

배틀 힐러 서용우는 어디까지나 7세대 각성자였다.

차세대 기대주지 현역에서 최정예로 평가받는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사람들은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다.

‘왜 저런 중요한 작전에, 한국에 두 명밖에 없는 배틀 힐러가 참전하지 않는 것일까?’

제로가 참가하는 작전에는 배틀 힐러 서용우가 참가할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배틀 힐러 서용우의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둘 모두가 특정 작전에 참가하는 쪽이 당연한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용우는 그렇게 되기 전에 배틀 힐러 서용우의 신분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백원태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리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 생각입니까? 설마 죽음을 위장하려고요?”

“굳이 그럴 이유가 없죠. 전 죽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더 이상 배틀 힐러 서용우가 일선에서 활동하지 않기만 하면 되고, 그런 이유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지요.”

용우가 웃었다.

* * *

그로부터 열흘 후, 한국의 언론들은 팀 크로노스 1부대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던 배틀 힐러 서용우가 사경을 헤매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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