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99화 (9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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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 입장에서 보면 처음부터 결말이 정해진 승부였다.

차준혁이 순간예지능력의 본질을 모르는 채로 그것에 의존하는 이상, 그는 절대 용우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순간예지능력은 약점투성이야. 적절한 타이밍에 텔레파시로 슬쩍 찔러주기만 해도 허점투성이가 되거든.”

인간의 정신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혼선이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예지능력만큼 인간을 미치게 하는 능력도 드물다.

“이 방법을 응용하면 조금 전에 네가 체험한 것 같은 일도 가능해지는 거다.”

<…….>

망연하게 용우를 바라보던 차준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가짜 예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거냐?>

그에게 있어서 예지에 대한 신뢰는 숨 쉬듯이 당연한 믿음이다. 그 믿음이 무너지는 충격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 내가 어디를 어떻게 공격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네 뇌에 다이렉트로 꽂아 넣는 것만으로도 순간예지능력과 네 뇌가 그런 오답을 내는 거지.”

<거짓말…….>

“믿든 말든 그건 네 몫이야. 분명한 건, 여기서 네가 겪은 일은 앞으로 네가 적들에 의해서 겪을 일이라는 거지.”

<…….>

용우 입장에서는 차준혁에게 크나큰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다니엘 윤의 후계자이며, 앞으로의 싸움이 필요한 인재이기에.

한참 동안 침묵하던 차준혁이 말했다.

<아니,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그만큼 몸에 새겨줬는데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차준혁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깨지고 금 간 투구 너머에서 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너는 예지능력을 쓰지?>

“…….”

용우는 한 방 먹었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씩 웃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너는 나와 싸우는 동안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였어.>

차준혁은 그 태도에서 기묘한 기시감(旣視感)을 느꼈다.

정신없는 전투 상황에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제와 차분히 생각해 보니 알 수 있었다.

용우의 태도는, 지금까지 차준혁이 전투 속에서 보인 태도와 닮아 있었다.

“난 예지능력자가 아니야.”

<시치미를 떼는군.>

“하지만 그 비슷한 능력은 있지. 그 이상은 말해줄 이유가 없고.”

용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용우에게는 어떤 종류의 예지능력도 없다.

그저 용우가 지닌 능력, 악의를 통찰하는 능력이 전투 상황에서 예지와 비슷한 기능을 발휘할 뿐이다.

이 능력의 효용성은 예지에 비해 제약적이다. 상대를 파괴하겠다는 악의를 발하는 존재를 상대할 때가 아니라면 아무 쓸모도 없으니까.

대신 이 능력에는 예지능력 같은 약점이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용우가 쓰기에 더더욱.

“어쨌든 승부는 여기까지로 하지. 네가 납득 못 했다면 그걸로 좋아. 오늘 배운 걸 잊지 말도록 해.”

<잠깐!>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내가… 졌다.>

차준혁이 패배를 인정했다.

그를 잠시 바라보던 용우가 물었다.

“진심으로 나를 따를 수 있겠냐? 그럴 수 없다면 그만두는 게 서로에게 좋아.”

<할 수 있다.>

차준혁은 광휘의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며 한숨을 쉬었다.

<…알고 있어. 너를 원망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 정도는.>

서용우는 다니엘 윤을 죽인 원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를 구원해 준 은인이라고 해야 하리라.

차준혁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원망해야 할 것은 다니엘 윤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자신이었다. 다른 누구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반드시 차준혁 자신이 해냈어야 할 일을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이 따르지 못했다.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울분이 있었기에, 차준혁은 용우에게 이 승부를 요구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자신이 그랬던 이유를 깨달았다.

<조금은… 후련하군.>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마음이 있다.

그래도 싸우기 전에 용우에게 댄 이유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과연 서용우는 다니엘 윤이 미래를 맡길 만한 사람인가?

차준혁은 그 사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뭘 할 거지?>

차준혁이 치료 스펠로 부상을 치료하면서 묻자, 용우가 대답했다.

“팀을 만들 거야.”

<무슨 팀을?>

“이번 같은 일이 언제 일어나도 대비할 수 있는, 그런 팀을.”

<…….>

“일단 네가 두 번째 팀원이다.”

<내가 두 번째면, 첫 번째는 누구지?>

“곧 알게 될 거야.”

그날부터 용우는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용우에게 있어서 팀을 만드는 법적 절차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문제는 백원태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해결될 테니까.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스카우트요?”

헌터 관리부의 팀장, 김은혜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를?”

용우가 그녀를 스카우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그래. 팀을 굴리려면 업무 능력이 필요하니까. 당신이 적임자라고 생각했어.”

첫 만남이 좋지 않기는 했지만, 그 후로 김은혜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유능함을 입증해 왔다. 헌터 관리부에 몸담았던 경력과 용우에게 익숙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녀만 한 인재가 없었다.

“좀 생각해 보고 대답해도 될까요?”

“당신은 뭔가 야망이 있어서 그 일을 하고 있나?”

“야망이라뇨?”

“공무원으로서 말이야. 장관이 되겠다거나, 아니면 정치계에서 뭔가를 해내고 싶다거나… 그런 야망이 있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거냐고.”

“그런 건 아니죠.”

김은혜는 딱히 구체적인 비전이 있어서 헌터 관리부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헌터로 뛰기에는 전투 능력이 부족한 각성자였고, 또 고학력자였기에 자신을 대우해 주는 직장을 골랐을 뿐이다.

“그런 게 아니면 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조건은… 연봉은 5억 원, 팀의 실적에 따라서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어…….”

헌터 관리부 팀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우였다.

단숨에 마음이 기우는 김은혜에게 용우가 검지를 세워 보이며 마지막 조건을 말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유사시에 스스로를 지킬 힘 정도는 주지. 체외 허공장, 갖고 싶지 않나?”

김은혜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 * *

리사는 퇴원한 후로 한 달 반 동안 빡빡한 훈련 스케줄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그녀의 전투 능력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용우가 그녀의 훈련을 맡긴 트레이너들은 다들 비싼 값을 하는 이들이었다.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신체가 빠르게 발달하고, 마력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기초를 숙지해 냈다.

거기에 용우가 주는 스펠 스톤으로 지속적으로 특성과 스펠이 늘어났으며, 돈을 아끼지 않는 마력 시술로 마력도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리사가 물었다.

“제가 선생님의 팀에요?”

“그래.”

“저야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하겠지만… 괜찮은 건가요? 지금 제 수준으로도?”

리사가 불안해하며 물었다.

그녀는 지난 한 달 반 동안 스스로가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반면 용우가 요구하는 커트라인에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용우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각성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훈련을 받자 용우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지.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 둔 게 있어. 중요한 건 네 의지지.”

“저야 물론…….”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내게 은혜를 입었으니까 내가 뭘 바라든 무조건 따른다,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지는 마. 우희한테 무슨 말을 들을지 무서우니까.”

“어차피 똑같아요.”

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고민은 그날 다 끝냈으니까요.”

“힘들 거야. 목숨이 위험한 일도 수도 없이 겪게 될 거고.”

“알고 있어요.”

“내가 생각해 둔 방법이 네게 있어서는 악몽 같은 기억을 건드리게 될 수도 있어.”

“…….”

그 말에 리사가 움찔했다. 직감적으로 용우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곧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할게요. 선생님이 그런 방법을 선택하신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리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이유들은 병원에서 나오던 그날, 전부 과거에 버리고 왔으니까.

그녀가 바라는 것은 복수뿐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복수할 수만 있다면, 팬텀이라는 조직에 관련된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만 있다면 그녀는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그 목표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그녀는 생각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 * *

아티팩트 불꽃의 활의 주인, 유현애는 뜻밖의 사람에게 연락을 받고는 집을 나섰다.

업무 말고 사적으로 연락을 해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사람이었기에 도대체 무슨 용건이 있는지 굉장히 궁금했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크로노스 호텔 최상층 레스토랑의 VIP 룸으로 들어간 유현애가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어?”

마지막으로 본 지 두 달은 되었으니 확실히 오랜만이었다.

“그럭저럭요. 70미터급 엄청났다면서요? 언론에서야 전사자가 기적적으로 적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 들었어?”

“별로 들은 게 없어요. 우리 팀에서도 몇 명 갔었는데, 어땠냐고 물어보면 기밀이라고 쉬쉬하더라고요.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어요.”

“그랬군.”

“그리고 왠지 저는 한동안 모든 작전에서 배제된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

그럴 만도 했다.

군주 개체 하스라의 강림은 인류에게 치명적인 정보를 알려주었다.

아티팩트 보유자가 게이트 안에서 죽으면 아티팩트가 몬스터들의 손에 넘어간다.

그리고 그 아티팩트를 통해서 군주 개체가 9등급 몬스터 수준의 마력을 갖고 강림할 수 있다.

즉, 인류 입장에서는 앞으로 아티팩트 보유자를 게이트 안에 집어넣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행위가 되어버린 것이다.

‘성좌의 무기도 마찬가지.’

이것은 딜레마다.

그 힘이 없으면, 인류는 이제부터 나타날 적들을 막아낼 수 없다.

하지만 그 힘을 적에게 빼앗기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탄생한다.

‘아티팩트 보유자의 능력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써야할 만한 것도 아니고.’

성좌의 무기처럼 초월적인 힘을 가졌다면 모를까, 그 마이너 카피에 불과한 아티팩트에는 인류가 위험을 감수해 가면서 의존할 만한 가치는 없다.

유현애가 신중하게 물었다.

“아저씨는 뭔가 알고 계시지 않나요?”

“알고 있어.”

“말해줄 수 있나요?”

“있지. 다만 내가 지금부터 해주는 말이, 원래대로라면 네게 전달되어서는 안 되는 기밀 정보라는 걸 숙지하고 들어.”

그 말에 유현애가 바짝 신장하며 물었다.

“그런 걸 말해줘도 괜찮아요?”

“괜찮아. 그리고 네 문제니까 너한테는 말해주는 게 옳다고 본다.”

용우는 태도를 확실히 하고는 유현애가 원하는 정보를 말해주었다.

“네가 작전에서 배제된 건 아티팩트 보유자이기 때문이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

“그거 말고는 달리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아티팩트가 왜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럴 수밖에 없어.”

용우는 7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에서 밝혀진 진실을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유현애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럼 저는 더 이상 헌터로 활동할 수 없는 건가요?”

“헌터 관리부의 방침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지. 팀 반도호랑이 입장에서는 헌터 관리부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 거고.”

“…….”

유현애는 몸에서 힘이 죽 빠지는 걸 느꼈다.

허탈했다.

각성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꿈이고 삶이었던 프로 게이머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가진 각성자의 힘은 뼈아픈 상실과 평생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대가로 지불하고 얻은 것이다.

이 힘으로 헌터로 활동해서 세상에 공헌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새로운 삶의 목표였다.

그런데 그 목표가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좌절되다니…….

망연자실한 유현애에게 용우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번에 팀을 만들 거야.”

“팀요?”

“소수 정예의 팀이지. 지금까지의 내 활동을 몇 명의 정예 헌터를 더해서 팀 단위로 확대하는,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면 돼.”

그 말에 유현애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물었다.

“…혹시 저를 그 팀에 스카우트하시려는 건가요?”

“그래. 조건은 섭섭지 않게 대우해 주지. 다만 그 조건은 금전적인 부분은 아닐 거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열정 페이로 일해라, 뭐 그런 소리는 아니죠?”

“그건 아니지. 하나만 예를 들지. 난 너를 배틀 힐러로 만들어줄 수 있어.”

“네?”

유현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금전적인 부분에서의 보장은 없지만 앞으로 팀이 처리할 일들이 굵직할 테니까 인센티브는 두둑하겠지.”

“아니, 잠깐. 저 지금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저를 배틀 힐러로 만든다니, 그런 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하는 소리지.”

“…….”

“네가 OK한다면 팀 반도호랑이와의 협상은 이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거야.”

“하지만 헌터 관리부가 제 활동을 원치 않는다면서요?”

“거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이게 오늘 너를 만나는 또 다른 용건이기도 하고.”

“어떤 선택지인데요?”

“첫 번째는 헌터 관리부가 뭐라고 지랄하든 무시한다.”

“…….”

상상도 못 한 대답에 유현애가 멍청한 표정으로 용우를 바라보았다.

용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널 쓰겠다는데 지들이 뭘 어쩔 거야? 시끄럽게 짖어대면 그냥 이 나라를 떠서 미국 가버리면 돼. 너는 물론이고 네 가족 이민 문제와 비용까지 다 책임져 주지.”

“와…….”

유현애는 기가 막혀서 입만 뻐끔거릴 뿐,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선택지는… 좀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르겠군.”

“아니, 지금 첫 번째 선택지만 해도 과격함이 넘쳤거든요? 그거보다 과격한 방법이 있어요?”

“있지.”

“뭔데요?”

어디 한번 들어보자는 표정을 짓는 유현애에게, 용우가 폭탄선언을 날렸다.

“아티팩트를 나한테 넘겨. 대신 그 공백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널 강하게 만들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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