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97화 (9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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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윤의 모습을 한 남자가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여러 번 본 걸로 되어 있습니다만…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알고 있어. 뭐라고 부르면 되지?”

“그냥 다니엘 윤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

용우는 굳이 그의 정체를 캐묻지 않았다. 별로 관심이 가는 부분은 아니었으니까.

다니엘 윤이, 자기가 죽을 때를 대비해 준비한 사업가로서의 대역.

그것만 알면 충분했다.

“그렇게나 정교한 대역이라니 대단하군. 성형수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닐 텐데?”

“성좌의 힘으로는 가능하더군요.”

“의태인가.”

용우는 왜 이토록 완벽한 대역이 가능한지 알아차렸다.

의태(擬態)라 불리는 스펠이 있다.

일시적으로 변신할 수 있는 다른 스펠보다는 사용 조건이 까다로운 스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한 번 의태 스펠로 변화하면, 그 효과가 영구적으로 지속된다는 점이다.

‘각오가 되어 있는 거군.’

그는 의태를 통해서 지문과 홍채까지도 다니엘 윤과 동일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평생을 다니엘 윤의 대역으로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선택이다.

“나를 부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일단 앞으로 당신에게 협력하고 싶습니다.”

“어떤 식으로?”

“무엇이든. 이미 백원태 사장과 오성준 사장이 그런 관계인 걸로 압니다만. 국내의 일이라면 그 둘보다 낫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만, 해외와 관련된 일이라면 좀 더 나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용우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두 번째는?”

“유언장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언장?”

“마스터의… 그러니까 다니엘 윤의.”

“…….”

“이 방으로 들어가서 보시면 됩니다. 보고 나면 내용은 자동으로 폐기될 테니 신경 쓰지 마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차를 준비해 둘까요?”

“아니, 필요 없어.”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앞으로 제가 도와 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십시오.”

다니엘 윤의 대역은 그렇게 말하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혼자 남은 용우는 유언장이 준비되어 있다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걸린 벽걸이 TV가 자동으로 켜지면서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제로, 아니… 서용우.]

화면 속의 다니엘 윤이 말하기 시작했다.

[네가 이걸 보고 있다는 것은, 내가 죽었다는 뜻이겠지.]

다니엘 윤은 팀 이그나이트의 CEO로서 용우를 만났을 때는 예의 바르게 존대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영상 속에서는 사업가로서의 가면을 벗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유언장을 새로 만들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이 유언장이 쓰일 일이 없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아쉬운 타이밍이기도 하거든. 서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은 관두고 너와 직접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니까.]

그 말에 용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 그 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났다.

[네게 이런 유언장을 남긴 것은, 부탁하고 싶은 게 몇 개 있어서다. 나는 네가 지금의 인류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보다도 더.]

그렇게 생각했기에 용우가 미켈레를 죽였을 때도 적대하지 않았고,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연합해서 용우를 치는 것을 막았다.

만약 그때 다니엘 윤이 용우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용우는 구세록의 계약자 6명 전원의 합공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애비게일 카르타는 현명하고 유능하다. 이미 너는 그녀와 손을 잡았겠지. 그러니 그녀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니엘 윤은 구세록의 계약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허우룽카이를 죽이면 대만과 중국 본토에 큰 영향이 있을 거다. 엔조 모로가 죽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하지만 너는 그런 문제를 고려하지 않겠지. 나도 그러라고 부탁하지 않겠다.]

그래도 세계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게이트 재해만은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다니엘 윤은 부탁했다.

[프리앙카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교섭 상대로서는 나쁘지 않지. 하지만 그녀는 필요하다면 우리 중 누구보다도 냉혹하고 폭주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다수의 죽음조차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허우룽카이를 능가할 정도지.]

“…그렇겠지. 너희들 중 미치광이 투톱이니.”

용우가 중얼거렸다.

미켈레와 엔조 모로를 통해서 정보를 얻었기에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짓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허우룽카이는 중국의 파멸을 위해서 억 단위의 인간이 죽어가도록 방치했다.

아니, 그저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개입할 수 없도록 적극적으로 막아서기까지 했다.

프리앙카 역시 비슷한 과거가 있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전, 광활한 국토와 어마어마한 인구를 자랑하던 인도의 국내 정세는 혼돈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종교 문제, 분리주의 문제 등등…….

프리앙카가 인도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컨트롤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선별적 구제.

수많은 인간이 게이트 재해로 죽도록 방치함으로써, 그들로 인해 발생하던 문제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면, 그것으로 새로운 문제가 탄생한다. 하지만 게이트 재해가 인간을 죽이면, 인간들끼리 안고 있던 문제가 사라진다.’

그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 결과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전, 13억 4천만 명에 달하던 인도 인구는 13년이 지난 지금 6억 7천만 명까지 감소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프리앙카의 선별적 구제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프리앙카가 선별적 구제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인도 인구는 지금보다 2억 명은 더 많았을 것이다.

다니엘 윤이 말을 이었다.

[사다모토 아키라는 말이 통하는 놈이 아니다. 돈에도, 권력에도 관심이 없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꿔 나가겠다는 야심조차 없어.]

전투에 있어서는 든든한 아군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애비게일 카르타보다도 더 심각하게 망가져 있는 인물이다.

[일본에 출현하는 게이트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만, 일본이라는 국가가 국제적으로 어떤 문제를 겪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지. 게이트 재해를 제외하면 그를 움직이는 것은 딱 한 가지, 절대적인 원칙이다.]

문화에 대한 규제를 용납하지 않는다.

만화나 소설, 애니메이션, 영화 같은 창작물에 대해서 검열과 규제를 부르짖는 자들은, 그 목소리가 커져서 사회에 실행을 강요하는 시점에서 반드시 사다모토 아키라에게 죽었다.

“…….”

용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사다모토 아키라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300명 이상을 죽이고 ‘피의 레지스탕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대량 살인의 이유가 저것이었다고?

[원래 사다모토 아키라는 소년만화 잡지에서 액션 만화를 그리던 만화가였는데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아내와 딸을 잃고 만화가로서도 은퇴했어. 아마 그때 얻은 정신적 문제가 그를 저렇게 만든 거겠지.]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에 있어서는 그의 활동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한국에서 군부 독재가 시작되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위기 상황에서 국가는 우경화(右傾化)되기 쉽다.

일본은 과거 역사만 봐도 특히 그런 경향이 심각하게 드러나는 나라였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에도 당연하다는 듯 과거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들을 착취하여 군비를 늘려가면서 주변 국가에 대해 음흉한 야욕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가 이런 분위기로 굴러가면 반드시 터지는 문제가 있다.

바로 문화에 대한 검열과 규제였다.

[결과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지.]

일본의 극우파 정치가들, 한창 권력이 강해지던 군부의 인물들, 그들을 지원하는 자산가들과 기업의 간부들, 시민 단체의 주요 인물들이 차례차례 사다모토 아키라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사실 그가 표식을 남겨가면서 살해한 인물만 300명 정도고, 실제로 죽인 인간은 3천 명을 가뿐하게 넘는다.

우경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20세기 중국의 홍위병처럼 행동하던 조직들이 만화가나 소설가 등을 박해했다가 사다모토 아키라에게 학살당했다.

거대 야쿠자 조직들도 비슷한 이유로 수십 명이 살해당해서 공중분해되는 일이 몇 번이고 있었다.

사다모토 아키라의 학살로 인해서 일본의 야쿠자 세력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전과 비교할 때 2할 미만으로 줄어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사회적 균형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문화를 탄압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대한 보복이었지.]

사다모토 아키라는 결코 대국적인 시야를 갖고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눈이 미치는 곳에서 절대적인 원칙을 거스르는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그 문제를 일으킨 놈을 죽여 버리는 것은 거의 반사 행동에 가깝다.

[놈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좋을 거야. 네가 딱히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인물은 아닐 테니, 놈이 살인마라는 이유로 없애 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그렇긴 해.”

용우는 순순히 인정했다.

허우룽카이를 죽여 버리기로 한 것은 그가 자신을 건드렸기 때문이지, 그가 해온 일들이 불의함을 용서할 수 없어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손도 피로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환경에 강요받았다고는 하지만 용우는 수없이 많은 인간을 죽여 왔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벗어났어도 굳이 인간을 죽이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자신이 누군가를 도덕적인 이유로 심판한다면 그건 코미디 아니겠는가?

그런 이유로 용우는 프리앙카나 사다모토 아키라가 해온 일들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미친놈들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그들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으니 응징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놈들을 없애 버릴 마음이 들었을 때 거리낄 필요는 없겠지.’

어쨌거나 용우는 구세록의 계약자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너무 약해.’

그 사실이 짜증 났다.

인간적으로 짜증 나는 놈들이라면 최소한 전투적으로는 도움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현재 인류의 수준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그들은 엄청나게 강하다.

하지만 앞으로 찾아올 위험을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약하다.

‘광휘의 검은 차준혁에게 계승되는 시점부터, 브리짓 카르타와 비슷한 수준이 되겠지.’

그리고 브리짓 카르타는 용우가 생각한 커트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인물이었다. 지금 그대로는 안 되고 좀 더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긴 하지만.

‘허우룽카이는 그렇다 치고 다른 둘도 세대교체를 해버리는 쪽이 나을 수도 있지.’

이제부터 몰려올 적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럴 필요성이 있다. 용우는 그렇게 판단했다.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내가 죽으면 차준혁이 광휘의 검을 계승할 거다.]

다니엘 윤은 그 사실이 달갑지 않은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이 업을 누구에게 물려주고 싶진 않았어. 내가 모든 걸 다 막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브리짓 카르타의 사례를 봤기에, 차준혁에게 광휘의 검을 계승해 주면 자기보다 훨씬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차준혁에게 구세록의 계약자의 자리를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자신이 품은 어둠을 모르는 채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준혁이에게는 너를 따르라는 말을 남겨두었다. 내 말은 잘 듣는 녀석이니 그렇게 할 거야.]

“…….”

용우는 정말 그럴지 의문이었다.

‘하긴 자기가 어떻게 죽을지는 몰랐겠지.’

다니엘 윤이 이 유언장을 남긴 것은 이번 전투가 벌어지기 전이다. 스스로의 죽음을 예감했더라도 어떤 식으로 죽을지는 알 수 없었으니 저런 소리를 할 수 있었으리라.

과연 차준혁은, 그의 눈앞에서 다니엘 윤을 산산조각 내버린 용우를 따를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용우는 차준혁이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해서 도망칠 곳 없이 절망에 몰렸던 다니엘 윤을 구원해 주었으니까.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게 이성적으로 움직이던가?

‘모르겠군.’

어쨌거나 용우는 차준혁이 앞으로의 싸움이 필요한 인재라고 보았다.

한 팀이 될 수는 없어도 그가 광휘의 검으로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긴 할 것이다.

[준혁이를 잘 부탁한다.]

영상 속의 다니엘 윤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용우는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차준혁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것 같았다.

[할 말은 다 한 것 같군. 마지막으로 선물이 하나 있다.]

동시에 왼쪽 벽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솟아난 원판 위에 마력석을 깎아서 만든 듯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는 열쇠가 있었다.

“그랬군.”

용우는 그것을 보자마자 피식 웃었다.

“이래서 아공간이 안 열렸던 건가.”

70미터급 게이트 안에서 다니엘 윤을 죽였을 때, 용우는 당연히 일어나야 할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살짝 당혹감을 느꼈다.

그가 죽었는데도 아공간이 해제되고 그 안에 수납되어 있던 물건들이 쏟아지는 일이 없었다.

[마력석과 고등급 몬스터의 시체들이다. 돈보다는 그쪽이 낫겠지.]

자신의 아공간과 별개의 아공간을 만들고, 그것을 여는 권한을 열쇠로 만드는 것은 용우도 가진 기술이었다.

다니엘 윤은 정말로 진지하게 자신이 죽을 가능성을 인지하고, 대비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뒀다. 부디 뒷일을 부탁한다.]

그 말을 끝으로 영상이 꺼졌다.

“부탁은 들어주지. 대가는 충분히 받았으니까.”

용우는 아공간의 열쇠를 집으면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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