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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혁이 다니엘 윤을 만난 것은 13년 전의 일이다.
당시 14세였던 그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로 인해서 부모를 잃었다.
그리고 아직 10세밖에 안된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보호자조차 없이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는 아직 몬스터가 서성이는 지역에 들어가는 것조차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결국 예정된 위험을 만났다.
무너진 편의점에 들어가려고 애쓰다가 몬스터를 만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를 구해준 것은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순백의 갑옷을 입고 온통 빛으로 이루어진 검을 든 자.
차준혁의 눈에는 신처럼 위대해 보이는 존재였다.
<누가 너한테 이런 일을 시켰지?>
그는 어린애가 이런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 같았다.
차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안 시켰어요.”
<아무도?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이러지 않으면 동생이 먹을 걸 구할 수 없으니까요.”
<…….>
그는 더 뭐라고 하지 않고 무너진 편의점의 잔해를 들어내어 차준혁이 먹을 것을 챙기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차준혁을 데리고 텔레포트해서 동생이 있는 곳에 데려다주고 사라졌다.
차준혁은 그것을 평생에 한번 찾아온 기적이라고 여기고 은인에게 마음 깊이 감사했다.
하지만 재회는 의외로 빠르게 이루어졌다.
나흘 후, 차준혁은 낯선 사람들 속에서 그를 발견했던 것이다.
재해로 쑥대밭이 된 그 지역으로 구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왔는데, 그중에는 장신에 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차준혁은 홀린 듯이 다가가서 말했다.
“저기…….”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차준혁은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지난번에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편의점에서 먹을 거 가져오게 도와주신 것도.”
“…….”
그 말은 청년, 다니엘 윤에게는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어떻게 알았지?”
차준혁의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다니엘 윤은 시치미를 뗄 생각조차 못 하고 그렇게 물었다.
“그, 그냥… 그때랑 똑같이 보였어요.”
“똑같이 보였다고?”
다니엘 윤이 차준혁의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기나긴 대화가 필요했다.
차준혁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의 순간부터 통제되지 않는, 그리고 구체화되지 않는 모호한 능력에 눈을 떴다. 그것은 아무런 판단 근거가 없는데도 앞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있는 능력이었다.
후에 순간 예지능력으로 구체화되는 이 능력은 재난 상황에서 차준혁이 동생을 데리고 생존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다니엘 윤은 차준혁과의 만남이 평범하지 않은 운명이라 느꼈고, 두 형제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나는 동안, 다니엘 윤은 차준혁의 모든 것이었다.
아버지나 다름없었고, 선생님이었으며, 그리고 인류를 위해 싸우는 영웅이었다.
* * *
차준혁은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선생님!’
본래 팀 이그나이트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던 그는, 작전명령을 무시하고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관측 시스템이 관측할 수 없었던 기묘한 지점, 그곳이 드러나면서 다니엘 윤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내지르는 비명의 정신파가 차준혁이 있는 곳에 닿는 순간, 차준혁은 주저 없이 그가 텔레포트로 향한 지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상념이 끊겼다.
그 앞을 몬스터가 가로막았다.
덩치가 4층 건물만큼이나 거대한, 검은 비늘과 홍옥 같은 눈동자의 도마뱀 같은 괴물이었다.
4등급 몬스터 블랙 드레이크다.
“비켜!”
차준혁이 거칠게 외치며 뛰어들었다.
블랙 드레이크는 가소롭다는 듯 아가리를 벌리고 불을 뿜었다.
화아아아악!
하지만 차준혁은 에어 바운드 스펠을 이용,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면서 블랙 드레이크의 측면을 급습했다.
파악!
에너지 블레이드를 뿜어내는 양손 대검이 블랙 드레이크의 몸통을 베고 지나간다.
하지만 블랙 드레이크에게는 경미한 상처다. 격노한 블랙 드레이크가 몸을 회전시키며 꼬리로 차준혁을 후려쳤다.
“큭!”
아슬아슬하게 피한 차준혁이 블랙 드레이크를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비키란 말이다!”
-마격탄!
차준혁은 허리에 차고 있던 대구경 권총으로 에너지탄을 쏘았다.
그렇게 블랙 드레이크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는 옆으로 돈다.
하지만 그것은 블랙 드레이크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대로 무시하고 달려간다.
쿵쿵쿵쿵쿵!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블랙 드레이크가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준혁은 가속 스펠과 도약 스펠을 이용해서 블랙 드레이크를 뿌리치고 계속 달렸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앞을 가로막았다.
“비키라고 했잖아! 개자식들아아아아!”
초조해진 차준혁이 외쳤지만 몬스터들이 그 말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투학!
그리고 초조함은 허점을 만드는 법이다.
천재적인 전투 센스를 자랑하는 차준혁이었지만 초조함으로 판단력이 둔해지자 몬스터들에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 이따위 놈들한테…….”
차준혁은 자신을 포위하는 트롤들과 긴다리늑대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답답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이따위 놈들에게 허비할 시간이 없는데!’
그때였다.
파지지지직!
하늘에서 날아든 한 줄기 뇌전이 트롤을 휘감았다.
카아아아아아!
트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뇌전은 트롤 하나만을 공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대로 죽죽 뻗어 나가면서 차준혁의 주변을 포위한 모든 몬스터들을 감전시켰다.
퍼어어어엉!
그리고 폭발하면서 그들을 일제히 튕겨내었다.
<어이.>
동시에 차준혁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셀레스티얼의 모습을 한 휴고 스미스였다.
<길 열어줄 테니까 가봐.>
휴고가 오버 커넥트로 워프 게이트를 열어주며 말했다.
잠시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차준혁이 말했다.
“…은혜는 잊지 않겠다.”
차준혁은 곧바로 휴고가 만든 워프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말이지.>
휴고는 워프 게이트를 닫고는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브리짓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같이 싸우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임을 알기에 꾹 참고 다른 헌터들의 전투를 도와주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짜증을 내는 휴고의 주변에서 몬스터들이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방금 전의 공격은 2등급 몬스터인 긴다리늑대들은 일거에 몰살시켰지만, 3등급 몬스터인 트롤들은 다 해치우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트롤들도 반수가량 죽었고, 살아남은 놈들도 너덜너덜하다.
<뒈져라.>
휴고가 화풀이로 폭발시킨 뇌격이 트롤들을 집어삼켰다.
* * *
휴고가 열어준 워프 게이트를 통과하자 다니엘 윤이 보였다.
우우우우우……!
곧바로 그에게 달려가려던 차준혁이 멈칫했다.
다니엘 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마력 파동이 그의 감각을 덮쳤기 때문이다.
“선생님!”
차준혁은 그 압박감에 저항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까지 접근하자 허공장이 충돌하면서 그를 밀어내었다.
<오지, 마라…….>
다니엘 윤은 차준혁을 알아보고는 어렵사리 말했다.
생각하는 게 힘들다.
뭔가를 말하려고 해도 파편화된 단어만이 떠오를 뿐, 그것을 문장으로 잇는 것이 잘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불씨가 남아 있나.’
다니엘 윤이라는 인간을 이루던 모든 것이 퇴색해 가고 있기에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소중한 것일수록 강한 불씨로 남아 있다.
영원히 그를 괴롭힐 것 같았던 상처의 아픔에 무감각해지고, 겪을 때마다 절망했던 죽음의 유사 체험마저도 흐릿해져 가는데…….
그런데도 늘 그의 등을 떠밀던 죄책감만은 이렇게도 선명하다.
‘나는, 이 지경이 되어서도… 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군.’
다니엘 윤은 이 죄책감이 정당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이 대실종의 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지금까지 자신은 인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다.
그저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
일이 곤란하게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
구할 수 있었던, 죄 없는 목숨들을 외면했다…….
‘나는 속죄하고 싶었나?’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은 늘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 속죄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용서받고 싶진 않았어.’
자신이 죽인 자들에게 용서를 구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피로 물든 손을 보며 죄책감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을 뿐.
죄책감은 죄책감일 뿐이다.
다니엘 윤은 속죄함으로써 그것을 지워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
과거의 모든 기억이 차갑게 식어버려도 죄책감만은 무겁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선생님?”
차준혁이 불길한 예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우!
그의 마력이 폭증하면서 강제로 변신이 시작되었다.
브리짓 카르타라는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성좌의 힘을 계승할 자들은 자의로 변신할 수 없다. 그들의 변신은 전적으로 구세록의 계약자의 의지로 이루어진다.
새하얀 갑옷이 전신을 감싸고, 머리 위에는 빛이 천사의 고리를 그려낸다. 그리고 등 뒤로 새하얀 빛이 마치 펄럭이는 망토처럼 분출되었다.
휴고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셀레스티얼의 모습이었다. 다만 뇌전의 사슬 대신 광휘의 검을 들고 있을 뿐.
<어째서입니까?>
관측 시스템이 이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을 변신시켰단 말인가?
다니엘 윤은 투구 속에서 그를 보며 웃었다.
또 한 가지, 아직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자신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아등바등 노력해 온 소년에 대한 기억.
<나를… 죽여다오.>
<…….>
차준혁은 바위처럼 굳어버렸다.
다니엘 윤이 쥐어짜듯이 말을 이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아직 인간의 마음이 남아 있을 때 죽어야 한다.
자살은 불가능했다.
라지알이 그를 제압하고 주입한 불가사의한 힘이 그의 정신을 이 몸에 가두어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자신을 죽여줘야만 한다.
지금 빙의해 있는 이 몸만이 아니라, 비밀 장소에 숨어 있는 진짜 자신까지도.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차준혁뿐이다. 성좌의 힘으로 셀레스티얼로 변신한 차준혁만이, 다니엘 윤 본인이 숨어 있는 곳까지 알고 있는 그만이 그 일을 해줄 수 있다.
<왜, 왜 그러시는 겁니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말씀해 주세요! 저보고 선생님을 죽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미안하다.>
<……!>
<준혁아, 제발…….>
다니엘 윤이 하얗게 표백되어 가는 자신을 붙잡고 애원했다.
하지만 차준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 * *
라지알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직인가. 상당히 끈질기군.”
쿠구구구구…….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의 주변은 초토화되어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염동충격탄!
그 연기를 뚫고 에너지탄이 날아들었다.
라지알이 그것을 피하자, 반대편에서 프리앙카가 나타나면서 불꽃의 활의 시위를 당겼다.
“역시 귀찮아. 비연이를 붙잡아놨어야 했는데.”
라지알이 짜증을 냈다.
투학!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놀라운 속도로 가속하면서 프리앙카를 치고 지나갔다.
<이, 이런……!>
프리앙카가 경악했다. 그녀의 눈이 라지알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리앙카!>
돌아선 라지알이 재차 공격하는 것을 저지한 것은 브리짓이었다.
뇌전의 사슬이 라지알의 팔을 휘감았다.
파지지지직!
격렬한 뇌전이 라지알을 덮쳤다.
하지만 라지알은 그것을 허공장으로 버텨내면서 스펠을 펼쳤다.
-인설레이트 필드!
그러자 그의 몸이 빛의 막으로 코팅되면서 뇌전을 미끄러뜨렸다.
라지알은 그 현상을 이용해서 뇌전의 사슬을 풀어내고는 눈을 빛냈다.
후우우우우!
붉은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고 넘실거린다.
그것을 본 브리짓은 오싹함을 느꼈다.
‘뭐야? 마력이 폭증하고 있어?’
라지알의 마력이 9등급 몬스터 수준으로 폭증하는 게 아닌가?
동시에 라지알이 움직였다.
쾅!
브리짓은 경악했다.
‘빠, 빨라.’
라지알이 크게 디딘 스텝 한 번으로 품 안까지 파고들어서 강렬한 훅을 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라지알은 딱히 지금까지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 프리앙카를 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속도만으로 보면 충분히 브리짓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브리짓이 당한 것은 정신 공격 때문이다.
폭증한 라지알의 마력에 브리짓의 주의가 쏠린 순간, 정신적 허점을 은밀하게 공략해서 체감 시간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너무 쉬운데?”
라지알의 양손이 기관총처럼 연타를 날렸다.
투타타타타타!
거기에 실린 스펠의 힘이 브리짓의 허공장을 뚫고 충격을 주었다.
퍼어어엉!
연타 후에 큰 일격이 날아들면서 브리짓을 날려 버렸다.
‘아악……!’
그 공격의 여파로 주변의 대지가 뒤집어지고, 브리짓의 허공장이 너덜너덜해졌다.
라지알이 추가타를 넣으려는 순간, 프리앙카가 옆에서 뛰어들었다.
‘아.’
하지만 프리앙카는 곧 자신이 라지알에게 농락당했음을 깨달았다.
라지알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약간의 페인트와 교묘한 정신 공격을 섞어서 프리앙카가 반응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쉽게 넘어가는 놈들이 어떻게 하스라를 쓰러뜨린 거지?”
라지알은 의아해하면서 사다모토 아키라를 공격했다.
콰직!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지알의 손이, 사다모토 아키라의 몸통을 관통하는 소리였다.
<커헉……!>
파지지지직!
라지알이 피로 물든 손을 빼내면서 새벽의 해머를 빼앗으려고 했다.
하지만 붙잡을 수가 없었다. 격렬한 반발력이 일어나면서 새벽의 해머가 부서져 간다. 주인이 아닌 자가 손에 넣을 수 없도록 강력한 방어조치가 취해져 있는 것이다.
“역시 안 되나?”
라지알은 혀를 차며 사다모토 아키라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이제 둘 남았군.”
브리짓과 프리앙카를 보며 말한 라지알이 스펠을 발하려는 순간이었다.
쾅!
측면에서 날아든 에너지탄이 라지알을 저지했다.
그 공격은 라지알의 허공장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나마 주의를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처음 보는 놈이군.”
용우가 브리짓 앞을 가로막고 서면서 라지알을 노려보았다.
“이건 또 뭐야? 이런 놈이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라지알이 재미있다는 듯 용우를 바라보았다.
둘은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용우는 한국어로, 라지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기 고향 세계의 말로 말했으니 당연했다.
서로를 차분하게 관찰하는 둘 사이에 침묵이 내리깔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라지알이었다.
“너, 정말 이 세계의 인류인가?”
텔레파시를 발하며 의사를 전달하는 그는 당혹스러워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럼 어쩔 건데?”
용우가 삐딱하게 대꾸하자 라지알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용우가 벼락처럼 뒤를 돌아보면서 가드를 올렸다.
쾅!
라지알이 뒤에 나타나면서 내지른 주먹을 막은 용우가 튕겨 나갔다.
앞에서 떠들고 있는 라지알은 환영이었던 것이다.
“제법인데?”
라지알이 웃었다.
몬스터들은 이런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몬스터와의 전투 경험이 풍부한 구세록의 계약자들은 라지알이 속임수를 거는 족족 걸려서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용우는 환영을 만들고 블링크를 발동하는 순간 방어에 들어갔다.
파지직……!
뿐만 아니다. 라지알의 뺨 쪽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아무리 봐도 고작 7번째 문이 열린 인류가 할 수 있는 짓이 아닌데.”
방금 전에도 라지알은 환영과 정신 공격을 섞어서 공격을 가했다.
그런데 구세록의 계약자들과 달리 용우는 완벽하게 그것을 방어해 냈으니 놀랄 수밖에.
재미있다는 듯 용우를 보던 라지알이 말했다.
“뭐, 좋아. 슬슬 타임아웃이 다가오기도 하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누구 마음대로?”
“물론 내 마음대로지. 다음에 또 만나자고.”
라지알은 그렇게 말하고는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
그가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고 있는 용우에게 브리짓이 물었다.
<왜 보내준 겁니까?>
브리짓은 용우가 라지알의 도주를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용우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더 급한 일이 있어. 저놈이 의기양양해서 물러나 줘서 다행이지.”
용우는 먼 곳에 시선을 던졌다.
“안 그랬으면 싸우는 동안에 위험한 적이 하나 더 늘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 눈이 멀어버릴 듯한 빛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