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93화 (9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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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

시간조차 얼어붙은 것 같은 풍경 속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후두두두두둑!

그리고 마른땅에 갑자기 굵직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용우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어비스에서 누군가를 죽일 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왔던 소리였으니까.

“많군.”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것은 대부분 마력석이었다. 용우가 하스라의 전투에서 쓴 것보다도 훨씬 많은, 어쩌면 용우가 지닌 마력석의 총량에 필적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마력석 같지만 뭔가 다른, 특이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용우는 그것들을 자신의 아공간에 넣어보았다.

‘마력석은 지구에서나 여기에서나 공통적인 존재인가?’

아공간에서 물건을 꺼낼 수 없기에, 이곳의 물건을 아공간에 수납할 수도 없는 상황을 걱정했다.

그런데 마력석은 깔끔하게 수납이 되었다.

‘그리고 역시… 군주 개체라 불리는 놈답게 거느리고 있는 백성이 있나 보군.’

정보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라고는 하지만 수많은 의념이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된 그 모습은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와 닮아 있었다.

이 세계는 광활했으며, 그리고 그 속에는 하스라 말고도 수많은 존재들이 있었다.

‘도시.’

용우는 하늘로 날아올라서 지상을 굽어보았다.

무너진 돔형의 건물을 중심으로 지름이 20킬로미터를 넘는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 도시가 온통 얼어붙어 있다는 것이다.

하스라의 죽음과 함께 폭발한 한기 폭발이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인 도시였다.

인간이라면 도시에 발 들이는 순간부터 죽어갈 수밖에 없는, 도저히 생존 불가능 할 정도의 혹한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전부 다 언데드다.’

그렇기에 시민 중에 산 자는 하나도 없었다. 용우가 감지한 5만을 넘는 존재가 모조리 언데드였다.

용우는 지금까지 싸운 존재들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선물을 주지.”

용우가 지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선다운 버스트!

그의 손바닥에서 가느다란 한 줄기 섬광이 도시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전술핵에 필적하는 대폭발이 도시를 집어삼켰다.

지구에서 다니엘 윤이 썼을 때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이었다.

게다가 용우는 한 발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용우는 하스라를 죽인 순간부터 자신의 의식이 현실의 인력에 이끌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부터 하스라의 존재를 붙잡아서 여기 왔고, 존재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최대한 많이 죽인다.’

지금 상황은 용우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이번 일로 이 정보 세계에 올 방법을 알아냈지만, 다음에 다시 왔을 때 적들이 이렇게 무방비하다는 보장은 없다. 용우가 오는 상황을 상정하고 함정을 준비할 위험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걸 버틴 놈이 한둘이 아니라니.’

다시금 도시의 언데드들을 감지해 본 용우가 혀를 내둘렀다.

단 일격으로 5만에 달했던 놈들 중에 1만 정도가 소멸했다.

그런데 분명히 폭발 범위에 있던 놈들 중에도 버틴 놈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군주 개체인 하스라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강력한 놈들이 수두룩하다는 뜻이다.

용우는 빠르게 제2격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아앙!

또다시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도시를 쓸어버렸다.

‘그럼 물러나 볼까?’

용우는 더 상황을 살펴보는 대신 곧바로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이 정도로 요란하게 대파괴를 일으켰으니 적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 도시의 고위 언데드들은 그렇다 치고 다른 군주들이 올 수도 있으리라.

“다음에 다시 보지. 그때는 이 정도로 끝나진 않을 거야.”

그리고 용우의 모습이 허깨비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 * *

용우의 의식이 하스라의 본체가 있는 정보 세계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용우가 돌아오는 순간, 바로 앞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콰직!

하스라의 코어 역할을 하던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 두 동강 나는 소리였다.

-형상복원!

용우는 그것을 잡고 복원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겉모습은 복원할 수 있었지만 아티팩트를 아티팩트이게 하는 근본적인 무언가가 부서져 버린 것 같았다.

‘빙설의 창의 봉인을 풀어보기 전에는 답이 안 나올 것 같군.’

용우는 나중을 기약하기로 하고 그것을 아공간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의식을 집중해서 아공간을 살펴보았다.

‘있다. 확실하게 가져왔어.’

정보 세계에서 하스라를 죽이고 얻은 부산물은 확실하게 아공간에 수납되어 있었다.

용우에게는 최고의 결과였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브리짓이 물었다.

용우는 설명하는 대신 질문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봐.”

<…….>

“싫으면 관둬. 대답해 줄 사람이 너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

브리짓은 한숨을 쉬고는 대답해 주었다.

<당신이 그 군주 개체를 붙잡고 있는 동안 접근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의 폭풍이 휘몰아쳤습니다. 그리고 그게 멎고 나니 그런 상황이군요.>

하스라가 저항하면서 발생한 현상인 모양이었다.

용우가 말했다.

“군주 개체는 죽었다.”

<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그리고 확실히 말해두겠는데…….”

용우는 브리짓과 프리앙카, 사다모토 아키라를 보며 경고했다.

“군주 개체의 부산물, 손 댈 생각은 버려.”

<…….>

하스라가 죽으면서 대량의 마력석과 부서진 화신이 남았다.

용우는 그것을 저들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 모든 것을 아공간에 쓸어 담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은 것 같군.”

8등급 몬스터 가이아 드래곤에 이어 군주 개체인 하스라까지 쓰러뜨렸다.

그런데 아직까지 게이트가 소멸할 조짐이 없다.

“코어 몬스터가 남아 있어서만은 아닌 것 같은데. 다니엘 윤은 어떻게 됐지?”

용우는 일루전 큐브가 펼쳐진 지점을 전술 시스템으로 살펴보았다.

그 지점은 아직도 일루전 큐브가 펼쳐진 상태라 관측 시스템이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예감이 안 좋군…….>

사다모토 아키라가 그렇게 말하더니 텔레포트로 그 지점으로 향했다.

프리앙카와 브리짓도 그 뒤를 따르고, 용우는 하스라의 부산물을 수거해서 아공간에 넣으면서 생각했다.

‘마력 반응까지 사라졌다.’

관측 시스템은 거대한 일루전 큐브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직전에 기록된 마력은…….’

전술 시스템에 기록된 데이터 로그를 검색해 본 용우가 경악했다.

‘이건?!’

관측 불가 상황이 되기 전, 다니엘 윤과 마주하고 있던 존재들은 둘 다 8등급 몬스터 수준의 마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형?’

거기까지 데이터 로그를 본 용우의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타락체!”

용우는 급히 구세록의 계약자들의 뒤를 따랐다.

* * *

일루전 큐브 안은 외부의 관측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것은 일루전 큐브만이 아니라 소리와 마력까지도 완벽하게 차단하는 별도의 스펠이 추가적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니엘 윤의 도주를 막기 위한 안티 텔레포트 필드까지도.

“역시 인류는 너무 섬세해. 망가뜨리지 않고 손에 넣기가 어렵군.”

격전에 의해 초토화된 대지에서 그렇게 중얼거린 것은 상아빛 피부와 뾰족한 귀를 가진 붉은 눈의 청년, 라지알이었다.

그 앞에는 다니엘 윤이 갑옷이 반쯤 부서진 채로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크윽……!>

그런 그의 앞에 서 있던 소녀가 돌아선다.

“왜?”

“…….”

소녀는 말없이 스펠을 발동했다. 오버 커넥트가 발동하면서 워프 게이트가 열렸다.

“가려고? 뭐 네가 해줄 일은 끝났기는 한데…….”

“…….”

소녀는 대답하지 않고 워프 게이트로 사라져 버렸다.

“협조성 없기는.”

라지알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니엘 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다니엘 윤이 몸을 일으키며 광휘의 검을 라지알에게 겨눈다.

“아직도 나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나?”

라지알은 안쓰럽다는 듯 다니엘 윤을 바라보았다.

다니엘 윤은 그에게 광휘의 검을 겨눌 뿐, 그 이상의 공격 행동은 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행동이 구속당하거나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게 아니다. 그런데도 라지알을 공격할 수가 없다.

‘이, 이대로는…….’

다니엘 윤은 뇌에 안개가 낀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사고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억의 연결이 불규칙하게 무너져 내린다.

눈앞의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데, 오감이 멀쩡하게 작동하는데도… 그 정보를 받아들여 해석하는 정신만이 고장 나버렸다.

‘눈앞의 존재는 적이다.’

그런데 적의가 일어나지 않는다.

‘눈앞의 존재를 쓰러뜨려야 한다.’

그런데 공격할 방법도, 이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다니엘 윤은 의문을 품었다.

‘왜 적이지?’

적의도 없고, 공격할 이유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상대를 적이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아아아아아악!>

다니엘 윤이 비명을 지르면서 광휘의 검을 휘둘렀다.

파지지지직!

그러나 라지알은 놀란 기색조차 없이 맨손으로 그것을 막아낸다.

공간이 진동하면서 격렬한 스파크가 일지만 라지알은 전혀 밀려나지 않고 속삭였다.

“괴롭겠지. 나도 알아.”

속삭이는 라지알의 몸을 감싸고 붉은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우!

그 기운이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라지알의 마력이 폭증한다.

8등급 몬스터 수준에 준했던 마력이 9등급 몬스터 수준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네 안에서, 네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갈 거야.”

타락체가, 자신이 타락했던 과정을 되새기며 말했다.

“네가 아팠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아무렇지도 않아질 거야.”

상처로 남은 기억만이 아니다.

즐거웠던 기억도.

화가 났던 기억도.

그리워할 기억조차도 모두…….

“전부, 아무렇지도 않아질 거야.”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전혀 실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무런 상관없는 타인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무감동해진다.

“그리고 알게 될 거야.”

자신이 집착했던 모든 것들이 길가의 쓰레기보다도 무가치했다는 사실을.

인생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희로애락 모든 것이 부질없는 꿈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아아아아아악!>

다니엘 윤이 비명을 질렀다.

사고력이 흐려지면서 생각이 가닥가닥 끊어져서 난잡하게 흩어진다.

논리가 사라졌다.

인과를 모르게 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의문은 떠오르는 순간 흩어져 버리고, 답까지 가는 길은 모두 끊어져 버렸다.

그렇게 인간이 ‘마음’이라 이름 붙인 것이 퇴색되어 간다.

“이런.”

문득 라지알이 고개를 들었다.

“하스라가 당한 건가? 잘난 척은 다 하더니만. 아무리 불완전한 강림이라고 해도 군주씩이나 되는 작자가 어쩌다가 이런 약해 빠진 놈들한테 당한 거야?”

라지알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가 외부와 격리해 버린 공간 속에서 새벽의 해머를 든 사다모토 아키라가 뛰어들어 왔다.

“쯧.”

라지알이 혀를 찼다.

다니엘 윤이 텔레포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다모토 아키라 때문이다. 그가 새벽의 해머로 외부와의 격리를 위해 라지알이 펼쳐둔 모든 스펠을 파괴하며 들어왔기에 안티 텔레포트 필드도 깨져 버렸다. 다니엘 윤은 거의 무의식중에 그 사실을 감지하고 도피를 선택했을 것이다.

“뭐, 어차피 다 끝난 일이지.”

하지만 라지알은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다니엘 윤을 타락체로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작업은 끝났다. 이제는 무슨 수를 써도 도망칠 수 없다.

남은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

“오늘은 더 동료를 늘릴 힘이 안 남았는데. 비연이도 돌아가 버렸고…….”

라지알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왔던 타락체 소녀는 다니엘 윤을 제압한 시점에서 돌아가 버렸다. 자기 일은 끝났다는 것처럼.

“후우, 나도 집에 가고 싶군. 남은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한숨을 쉰 라지알은 사다모토 아키라를 보며 붉은 눈동자를 빛냈다.

Chapter30 Bl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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