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87화 (87/225)

1

텔레포트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그것을 보는 순간, 용우는 직감했다.

‘위험해.’

무수한 전투 경험에서 비롯된 위기 감지 능력이 경고해 오고 있었다.

저것은 정말로 위험한 존재라고.

‘이런 놈이 있었나.’

그것은 마치 정교한 얼음조각상 같은 존재였다.

전신을 아름다운, 실전성과는 거리가 먼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 가득한 갑옷으로 두른 존재.

다만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얼음으로 조각된 가짜에 불과하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저벅…….

키 2미터의 얼음조각상이 한 걸음 나섰다.

온통 얼음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면서도 의지를 갖고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것은 저 존재가 움직인다는 사실이 아니다.

[새로운 코어 에너지 반응이 출현했습니다.]

서포터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말해야 하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9등급입니다.]

순간 무전이 난리가 났다. 너도나도 비명처럼 그 진위 여부를 물어 왔기 때문이다.

9등급 몬스터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

대적 불가의 재앙.

출현하는 순간, 인류는 그곳이 아무리 소중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포기해야만 한다.

지금의 인류가 무슨 수를 써도 어찌할 수 없으니까!

[신이시여…….]

다들 갑자기 출현한 절망 앞에서 패닉에 빠져 있을 때였다.

<나는 눈과 얼음의 군주.>

상대는 우아하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 텔레파시는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드넓은 전장 전역에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하스라.>

그것은 처음으로 빙의가 아닌 다른 형태로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군주 개체였다.

그그그그그…….

하스라의 뒤쪽으로 가이아 드래곤이 꿈틀거린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폭력적인 본능조차 억누르고 명령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용우는 하스라를 뚫어져라 관찰했다.

‘코어가 없군. 아티팩트가 코어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아.’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 하스라의 몸속에 자리한 채로 코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티팩트가 코어 역할을 해서 군주 개체를 강력한 형태로 출현할 수 있게 한다…….’

용우에게는 모든 것이 누군가가 짜놓은 각본처럼 보였다.

하스라가 그런 용우를 보며 말했다.

<그대가 바로 에우라스와 볼더를 패퇴시킨 자로군.>

“그래. 너희들의 목적은 뭐지?”

<기둥이 둘이나 없어졌다 했더니, 하나는 그대의 손에 가 있었나? 흠, 이상한 일이군. 분명 기둥을 가졌는데 왜 대적자의 존재감이 안 느껴지지?>

하스라는 용우의 질문을 무시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용우를 가리켰다.

파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하스라의 손에서 발사된 섬광이 용우에게 작렬했다.

<이건……!>

다니엘 윤이 경악했다.

마력을 끌어 올리는 낌새도 없었다. 그런데 작렬하는 지점에서 극저온의 한기 파동이 폭발하는 광선이 발사된 것이다.

일순간에 용우가 있던 자리에 수십 미터에 달하는 삐죽삐죽한 얼음덩어리가 생겨났다.

<아, 제법이구나. 에우라스와 볼더가 깨진 것도 이유가 있었군.>

하스라의 정신파는 웃는 것 같았다.

투아아앙!

동시에 하스라의 눈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뿐이다. 하스라의 막강한 허공장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네놈들 세계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에게 소총을 겨눈 용우가 말했다.

“군주니 뭐니 하는 계급 놀이는 지구에서는 한물 간 지 오래됐어. 1세기 전에 지나간 유행이지.”

용우는 그렇게 말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앙!

하스라는 날아드는 에너지탄을 피하지도 않았다.

-오만의 거울!

그가 스펠을 펼치자 허공장이 한순간에 변화하면서 그 앞에 거울처럼 매끈하게 잘린 얼음판이 나타난다.

파아앙!

그리고 그 얼음판을 때린 에너지탄이 온 방향 그대로 되돌아가서 용우를 노렸다.

‘반사 스펠? 저런 게 있었나?’

다니엘 윤이 처음 보는 스펠에 경악할 때였다.

-오만의 거울!

용우는 하스라와 거의 동시에 똑같은 스펠을 펼치고 있었다.

하스라가 반사한 에너지탄이 한 번 더 반사되어서 하스라를 노린다.

물론 하스라도 아직 반사 스펠을 펼쳐둔 상태이기에 다시 되튕겨졌지만…….

콰직!

갑자기 허공에서 출현한 나이프 한 자루가 하스라의 반사 스펠을 꿰뚫었다.

<이런.>

반사 스펠은 에너지탄은 반사할 수 있지만 물질이 충돌하는 것에는 취약하다.

그 특성을 알고 있던 용우는 환영으로 감춘 나이프를 투척해서 하스라의 반사 스펠을 노린 것이다.

콰아아앙!

반사 스펠이 깨진 하스라의 허공장 위로 에너지탄이 작렬했다.

잠시 하스라의 시야가 마비된 순간, 블링크로 그의 뒤를 잡은 용우가 양손을 뻗었다.

파지지지지직!

허공장과 허공장이 충돌하면서 격렬한 스파크가 일었다.

그 스파크의 출력이 어마어마했다. 반경 수십 미터를 끓어오르게 할 정도였다.

‘큭……!’

용우는 그 막강한 반발력에 이를 악물었다.

페이즈19의 마력을 빙설의 창으로 증폭시키고 있는데도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압력이 걸린다.

하지만 용우에게는 특유의 허공장 잠식 기술이 있었다. 놀랍게도 출력이 훨씬 높은 하스라의 허공장이 용우의 허공장보다 빠르게 깎여 나갔다.

<훌륭해!>

하스라는 위기감은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정신파로 감탄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상성이 나쁘구나. 나와 그대는 서로를 강하게 하는 존재이니.>

“뭐?”

용우가 의아해하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우!

갑자기 하스라의 마력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의 파동이 주변을 하얗게 빙결시킨다.

다니엘 윤과 가이아 드래곤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정도였다.

[군주 개체의 마력이 더 상승합니다! 두 배를 넘었습니다!]

[말도 안 돼! 고장 난 거야!]

무선으로 서포터의 비명이 들려왔다. 9등급만 해도 인류가 기록한 마력 수치의 절정인데 그것이 다시금 폭증하고 있는 것이다.

용우는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그 볼더라는 놈이 유현애와 만났을 때와 같은 현상인가!’

당시 유현애의 아티팩트 불꽃의 활과 불꽃의 군주 볼더는 공명을 일으켰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양쪽의 마력이 통제에서 벗어날 정도로 폭증하는 것.

“큭……!”

용우는 마력이 날뛰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용우에게 하스라가 손을 겨누었다.

“……!”

순간 용우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 공격!’

하스라가 텔레파시를 이용한 정신 공격을 가해왔기 때문이다.

일순간 사고를 단절시켜 버리는 그 공격에 용우가 비틀거리는 순간이었다.

-염동빙결탄!

극초음속으로 날아든 에너지탄이 용우의 허공장을 종잇장처럼 관통했다.

<호오.>

하스라가 감탄했다.

용우는 일순간 정신 공격에 당했으면서도 몸을 틀어서 직격당하는 것을 피했던 것이다.

콰아아아앙!

한참 날아간 에너지탄이 뒤쪽에서 폭발했다.

반경 50미터의 수분이 일순간에 얼어붙으면서 고슴도치 같은 얼음 구조물이 형성되고 주변에 한기가 휘몰아쳤다.

‘일격으로 끝날 뻔했군.’

용우는 전율했다.

염동빙결탄은 용우가 즐겨 쓰는 염동염마탄이나 염동뇌격탄과 동급의 스펠이다.

그런데 하스라가 빙설의 창과 공명으로 마력을 폭증시켜서 날린 염동빙결탄은, 용우가 아까 전 윙 슈트에 탄 채로 바람용에게 날렸던 그 일격에 필적하는 파괴력이었다.

‘정신 공격이라니, 군주 개체도 쓸 수 있었나?’

어비스에서도 텔레파시를 이용해서 정신을 공격한 적은 언데드와 타락체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허를 찔렸다. 용우가 지닌 특유의 능력, 악의를 통찰하는 능력이 아니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하하. 그대는 정말 유능하구나. 웬만하면 죽이고 싶지 않은데? 어디 한 번 더 시험해 보겠다.>

하스라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었다.

<피해!>

별것 아닌 동작이다.

그러나 그 동작을 보는 순간, 용우는 곧바로 다니엘 윤에게 텔레파시로 경고하고 자신은 텔레포트로 수백 미터 후방으로 빠졌다.

……!

모든 것이 하얀색으로 덧칠되었다.

중심부, 바로 하스라가 있던 지점에서는 마치 우뚝 선 탑처럼 하얀 기류가 솟구치고 있다.

그리고 그 반경 700미터가 한순간에 빙결되어서 새하얀 한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악……!

한 박자 늦게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7등급 얼음용의 빙결 파동을 몇 배로 증폭시킨 것 같은 공격이다.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을 어마어마한 압력으로 쏘아낸 것이다.

‘텔레포트로 빠지는 게 1초만 늦었어도 위험했다.’

용우는 오싹해졌다.

사실 그는 빙설의 창이 있기에 한기에 아주 강력한 면모를 보인다. 그러니까 직격당했어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다니엘 윤은 무사할까?

‘그놈이 벌써 당해 버리면 곤란한데.’

용우가 위기감을 느낄 때였다.

투앙……!

모든 것이 순백으로 바뀐 필드 한복판에서 굉음이 울리면서 뭔가가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다.

‘저건…….’

투앙! 투아앙! 투아아아앙!

6발 연속으로 쏘아 올려진 것은 사람보다도 커다란 얼음덩어리들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용우는 무전을 켜고 외쳤다.

“모두 방어 태세 갖춰! 얼음꽃이 간다!”

[얼음꽃? 그, 그게 뭐요?]

“항공 폭탄보다 더 위험한 빙결 폭탄이 가고 있다고 생각해! 죽고 싶지 않으면 모든 방어 수단을 동원해서 막아! 그리고 서포터 팀은 전술 시스템으로 예상 피격 지점을 계산해서 경고해!”

얼음덩어리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필드 곳곳으로 낙하해 가고 있었다.

쾅!

그러자 지상에서 저격수가 쏜 에너지탄이 그중 하나를 요격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대구경 저격총으로 쏜 염동염마탄인데도 그 얼음덩어리의 궤도를 바꾸지 못했다.

용우도 가만있지 않았다.

제우스의 뇌격을 꺼내서 그중 하나를 겨냥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빙설의 창으로 마력을 폭증시키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염동염마탄!

극초음속으로 날아간 초고열의 에너지탄이 얼음덩어리를 때렸다.

콰아아아앙!

조금 전 다른 헌터가 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이다.

그 일격으로 얼음덩어리가 깨져 나갔다.

용우는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는 얼음덩어리 하나를 추가로 격추시켰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저편에서 쏘아져 올라간 섬광 한 발이 또 하나를 쳐서 격추시키는 데 성공했다.

‘무사했군.’

용우는 그것이 다니엘 윤이 한 일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요격은 거기까지였다.

쾅……!

10킬로미터 저편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앙……!

더 가까운 곳에서도.

쿠아아아앙!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도 폭음이 울려 퍼졌다.

얼음덩어리가 떨어진 지점에서 한기와 충격파가 폭발하면서 반경 500미터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그 한복판에는 높이 20미터가 넘는, 꽃처럼 아름다운 얼음 구조물이 생겨나 있었다.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자들은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대신 비현실적이고 기괴한 공포를 느꼈다.

[팀 5th?]

문득 서포터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당했나.’

용우가 이를 악물었다.

현재 이 필드에서 전술 행동 중인 전투 팀은 5개.

그중 하나가 당했다.

피격 지점에 너무 가까이 있던 탓에 충분한 거리까지 이탈하지 못한 것이다.

[여, 여기는 팀 5th.]

팀 5th의 생존자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대장과 여진이가… 아, 아니, 다들…….]

보고하는 그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용우는 곧바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텔레포트했다.

‘아.’

현장에 도착한 용우는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4개의 얼음상이 부서지고 있었다.

팀 5th의 구성원 중 4명이 전면에 나서서 바디 벙커까지 들고 전력으로 방어막을 펼쳤다.

하지만 전면에 선 4명은 모두 얼어붙어서 충격파에 두들겨 맞고 산산조각이 났고, 그들의 뒤에 있던 자들도 숨만 붙어 있을 뿐 처참한 몰골이었다.

“정신 차려. 지금부터 치료할 테니까 정신 줄 꼭 붙들고 있어.”

용우는 빙설의 창의 힘을 끌어내서 그들의 몸에서 한기를 걷어내고, 증세가 심각한 자부터 치료 스펠로 치료하면서 상황을 살펴보았다.

‘놈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하스라는 처음 나타난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마치 자신의 공격이 불러일으킨 인간들의 혼란을 지켜보면서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음?’

문득 용우가 고개를 들었다.

꽈르릉! 꽈릉!

한 줄기 벼락이 하스라를 강타하면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왔군.’

용우는 그 벼락이 발생한 지점에서 빠르게 강하하고 있는 실루엣을 발견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