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치이이이익……!
용우는 시스템이 포신을 급속 냉각 시키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이런. 포신이 못 버티는군.’
7세대 헌터들조차도 터득하지 못한 최고위급 스펠, 페이즈19의 마력, 거기에 빙설의 창과 M-링크 시스템과 듀얼 부스트 시스템의 증폭 과정까지 거치자 윙 슈트의 포신이 버티지 못했다. 억지로 쏜다면 한 발 정도는 더 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확도가 심각하게 떨어질 것이다.
‘아직 시험해볼 게 남았는데.’
용우에게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위력을 더 올릴 수 있는 수단이 남아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볼 것을.
용우는 개인 회선을 열고 말했다.
“권 박사님, 미안합니다. 너무 거칠게 다룬 것 같습니다.”
[설마 그 포신이 일격에 망가질 줄이야. 왜 하필 지금이에요? 이런 트러블을 일으킬 거면 테스트 때 해줬어야죠.]
권희수 박사는 기뻐하는 건지 슬퍼하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미안하군요. 어쨌든 내 윙 슈트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일단 수송기 편으로 보내줘요. 최대한 빨리 포신을 교체해 볼게요. 설마 당신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용우는 주변을 살폈다.
이 전장에 투입된 윙 슈트는 용우의 것을 포함해서 총 6기였다.
국내 톱클래스라는 평가를 받는 저격수들이 윙 슈트에 탑승해서 6, 7등급 몬스터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4킬로미터 고도에서 날아드는, 지금까지 인류가 기록한 한계를 초월하는 공격에 6, 7등급 몬스터들마저도 착실하게 대미지를 입고 있었다.
‘훌륭하다.’
권희수의 병기 개발 능력은 최고다. 그녀는 헌터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들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킬 결과물을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용우가 윙 슈트의 고도를 상승시키자 그를 떨구고 날아갔던 수송기가 되돌아왔다.
철컥!
윙 슈트가 수송기의 수송용 프레임과 결합하자 용우는 강화 외골격을 열고 뛰어내렸다.
“이놈까지는 끝내고 가야겠지.”
지상에서는 어마어마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용우의 일격으로 허공장이 뚫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몸에 커다란 구멍이 꿇린 바람용이 미쳐 날뛰는 중이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날아가고 바위가 데굴데굴 구르다가 기류에 말려 올라간다. 휘말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광풍이었다.
하지만 용우는 개의치 않았다.
‘구멍을 메꾸지 못하는군.’
바람용은 한 번에 너무 큰 타격을 입어서 회복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상처를 재생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허공장에도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였다.
철컥!
용우는 아공간에서 제우스의 뇌격을 꺼내서 바람용을 조준했다.
굳이 빙설의 창이나 M-링크 시스템를 쓸 것까지도 없다.
저 상태의 바람용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염동염마탄(念動炎魔彈)!
고열을 발하는 붉은 에너지탄이 극초음속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앙!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미 극심한 상처를 입었던 바람용의 코어가 파괴되면서 에너지 반응이 끊겼다.
지금까지 인류가 잡아낼 수 있는 한계치라고 평가되던 7등급 몬스터가 단 2번의 공격만으로 끝장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용우는 넓게 펼쳐진 전장을 누비면서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어!
키가 4미터에 달하는 배불뚝이 거인형 괴물, 오우거가 숲을 헤치면서 돌진해 왔다.
“잘 만났다.”
-마격탄!
소총 사격 한 발만으로 오우거의 머리통이 날아간다.
오우거의 거구가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땅에 쓰러져서 미끄러졌다.
-뇌전망!
파지지지직!
용우를 중심으로 반경 50미터의 지면을 따라서 뇌전의 그물망이 펼쳐졌다.
그워어어어어!
우렁찬 비명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산개해서 포위망을 형성하려던 오우거들이 순식간에 무력화되고, 용우는 그 사이를 유유히 누비면서 하나하나 숨통을 끊어놓기 시작했다.
에너지 드레인과 정화를 병행해서 마력을 보충하면서.
“몇 번이든 반복할 자신이 있겠지?”
용우는 오우거들 중 한 마리는 일부러 마지막까지 살려두었다.
텔레파시를 발하며 던진 말에 오우거, 아니, 지휘관 개체인 오우거 로드가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물론이다. 너희들은 이길 수 없다. 여기서 다 죽게 될 것이다.>
“설마 저 8등급을 믿고 그런 소리 하는 건 아니지?”
용우는 오우거 로드를 비웃으면서 소총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전기 충격으로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 오우거 로드가 눈을 빛냈다.
-염동충격탄!
용우가 접근하기를 기다렸다가 기습적으로 스펠을 날린다.
퍼어어엉!
오우거 로드가 발사한 에너지탄이 용우를 꿰뚫었다.
하지만 오우거 로드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환영?>
“그래.”
뒤쪽에서 용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오우거 로드가 급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
-영파탄!
물리적 영향력은 전혀 없는 투명한 푸른 섬광이 오우거 로드의 몸통을 때렸다.
<아아악……!>
소리조차 울리지 않았지만 오우거 로드는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어때? 마땅히 느꼈어야 할 고통의 맛은?”
<이, 이놈……!>
콰직!
용우는 비틀거리는 오우거 로드에게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그아아아아아악!>
정신체를 공격하는 투명한 푸른 불꽃, 아스트랄 플레어를 휘감은 나이프였다.
“도망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퇴로는 이미 차단했거든.”
<뭐라고?>
“내가 숨통을 끊기 전까지는 그 몸이 네 감옥이라는 소리지.”
<그, 그럴 리가 없어!>
오우거 로드가 비명을 지르면서 뭔가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역시 긴급 탈출 수단도 갖고 있었군.”
용우가 오우거 로드를 비웃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빙의한 몸에서 정신체를 탈출시키지 못하도록 퇴로를 막아버렸다.
<너는… 너는 대체 뭐냐? 탑에는 이런 힘이 없을 텐데!>
“구세록과 각성자 튜토리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은걸?”
푹!
용우는 유들유들하게 말하며 푸른 불꽃을 휘감은 나이프 또 한 자루를 오우거 로드의 몸에 찔러 넣었다.
<끄아아아아악! 그, 그만! 제발 그만해……!>
오우거 로드가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했다.
“아무리 다쳐도, 죽어도 아픔이 없으니까 의기양양할 수 있었지? 몇 번이고 계속할 수 있다고? 과연 오늘 이후에도 그럴 수 있을까?”
용우는 악마처럼 웃으며 오우거 로드를 파괴해 갔다.
그 파괴 행위는 단순히 신체를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행동에 철저하게 정신을 파괴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자신이 절대 맛보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있던 것, 고통에 유린당하는 오우거 로드는 발광했다.
“게임 감각으로 침략자 놀이를 하는 건 여기까지야. 이제부터는 한 놈 한 놈에게 알려주지. 네놈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용우거 오우거 로드의 정신에 다시는 잊지 못할 상처를 새겨주고 있을 때였다.
[포인트 C-34의 트롤들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신경 쓰이는 무전이 들려왔다.
용우가 귀를 기울이자 서포터들이 정찰 데이터를 이야기했다.
[4, 5등급 몬스터들이 모여서 방어진을 짜고 있습니다. 트롤 족장이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팀-5th가 방어진과 교전 중.]
[트롤들은 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있습니다. 트롤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있고 그 가운데서 트롤 족장이 뭔가를… 잠깐. 저건 설마?]
용우는 전술 시스템이 포착한 관측 영상을 띄워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이건 뭐야?’
기괴한 광경이었다.
50마리의 트롤들이 원을 그리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지휘관 개체, 트롤 족장이 뭔가를 말하는 중인데 그 손에 들린 것은 바로 빙설의 창이었다.
‘아티팩트가 왜 저기 있지?’
7세대 각성자 중 아티팩트 보유자는 7명.
그중 한 명, 남중국 출신으로 빙설의 창을 보유했던 각성자는 사망했다.
그러니까 저기 있는 빙설의 창은 소유주가 죽으면서 행방에 묘연해진 아티팩트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투콰콰콰쾅……!
4, 5등급 몬스터들이 방어진을 짜고 있다고 해도 공중까지는 어쩔 수 없다.
폭격기가 날면서 투하한 대형 항공 폭탄이 트롤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앙!
반응 탄두가 탑재된 대형 항공 폭탄의 위력은 엄청나다. 지휘부는 3등급 몬스터인 트롤들을 이 일격으로 해치울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저건 뭐야?]
하지만 폭발이 걷히고 드러난 풍경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트롤들은 죽지도, 다치지도 않았다.
투명한 빛의 막이 트롤들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발의 여파로 그 주변이 엉망진창이 되고, 방어진을 짜고 있던 4, 5등급 몬스터들이 나가떨어졌지만 트롤들은 멀쩡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놔두면 안 좋겠군. 윙 슈트를 저쪽으로 투입하지.]
항공 폭탄이나 원거리 포격이 통용되지 않는다면 가장 유효한 공격 수단은 윙 슈트의 공격이다.
“여기는 제로.”
거기까지 듣던 용우가 무전에 끼어들었다.
“내가 가겠다.”
그러자 지휘부는 잠깐 침묵한 뒤 대답했다.
[알겠다. 별도의 지원이 필요한가?]
“아니, 혼자서 충분하다.”
용우의 결정에 지휘부는 토를 달지 않았다.
제로라는 헌터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용우는 오우거 로드를 돌아보며 흥이 깨졌다는 듯 말했다.
“운 좋은 놈.”
파악!
움직임이 완전히 봉쇄당한 채로 고통에 시달리던 오우거 로드의 목이 몸통과 분리되면서 숨통이 끊어졌다.
<크아, 아……!>
정신체가 육체를 떠날 때, 공포와 안도감이 뒤섞인 정신파가 흘러나왔다.
용우는 오우거 로드의 시신에서 마력을 빨아들이고는 텔레포트했다.
파직!
단번에 트롤들 사이로 진입할 생각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트롤들을 감싼 방어막이 공간 좌표 설정을 방해한 것이다.
“제법 단단하군.”
용우가 텔레파시를 발하며 말하자 안쪽에서 반응이 돌아왔다.
<대적자인가? 아니, 뭔가 이상하군…….>
“너희들에게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를 가르쳐 줄 사람이지.”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손가락이나 빨면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트롤 족장이 용우를 비웃었다.
그러는 동안 주변에 쓰러져 있던 4, 5등급 몬스터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대로 두면 용우를 덮쳐 올 것이 틀림없었다.
‘이놈들에게 시간을 주면 안 돼.’
용우는 트롤 족장과 눈을 마주하는 순간 그 사실을 직감했다.
후우우우우우!
돌풍이 휘몰아치면서 빙설의 창이 용우의 손에 쥐어졌다.
-형상 복원!
용우는 빙설의 창으로 마력을 증폭하면서 빙설의 창 마이너 카피를 만들어서 쥐었다.
-M-링크 시스템 가동!
M슈트의 양 손바닥과 팔등, 그리고 명치에 설치된 투명한 원형 파츠에 소모재가 채워지면서 푸른빛을 발한다.
뿐만 아니다. 팔과 다리, 몸과 헬멧까지 액상 물질이 흐르는 길이 빛의 띠로 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폭발하듯 증폭되는 마력 파동에 트롤 족장이 경악했다.
저 공격은 방어막을 뚫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이쪽이 빠르다!>
트롤 족장이 아티팩트 빙설의 창을 쥔 채로 절박하게 외쳤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빛의 띠가 빙설의 창을 휘감고 무언가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용우는 그것을 관찰하겠다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프리징 버스트!
빙설의 창 마이너 카피에 강력한 스펠의 힘을 불어넣는다.
-초열투창!
그리고 마력이 최대 출력으로 증폭되는 순간, 블링크로 100미터 밖으로 물러나면서 빙설의 창 마이너 카피를 던졌다.
스펠로 ‘발사’된 빙설의 창 마이너 카피가 한순간에 마하 4까지 가속하면서 트롤들을 감싼 방어막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아!
새하얀 충격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창끝과 방어막이 충돌하는 순간 폭발한 스펠의 힘이 극저온의 한기 파동을 쏟아낸다.
굳건했던 방어막이 뚫리면서, 그 안에 있던 트롤들이 한기 파동에 휩쓸려 얼음상으로 변해 버렸다.
“늦지 않았다고? 어디가?”
용우는 하얗게 얼어붙은 그들에게 다가가며 비아냥거렸다.
<…그래.>
그런데 그때 트롤 족장의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우리가 빨랐다.>
콰자작! 콰드드드득!
얼어붙은 트롤들이 연달아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용우가 주변을 둘러보자 터져 나간 얼음 사이로 트롤들의 피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 한 지점에 집결하고 있었다.
“무슨 쓸데없는 의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용우는 핏물이 집결하는 지점에서 마력 파동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감지하고는 제우스의 뇌격을 겨누었다.
“형태를 갖추기 전에 끝장내 주지!”
방아쇠를 당기자 에너지탄이 쏘아져 나간다.
꽈아아아앙!
폭음이 울려 퍼졌지만 용우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허공장이 전개됐어.’
갑자기 강력한 허공장이 전개되면서 그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용우가 다음 공격을 가하기 전에,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구……!
70미터급 게이트 내부의 필드, 그 광활한 공간이 통째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일그러지면서 그 한복판에 시커먼 구멍이 뚫린다.
‘하늘이 열려? 이건 뭐야?’
처음 보는 현상에 용우도 경악했다.
구멍이 열리는 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불길한 느낌이 덮쳐왔다.
‘잠깐. 이건, 어디선가……?’
용우가 의문에 골몰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구멍이 뚫리는 것은 잠깐이었다. 금방 구멍이 닫히면서 용우가 감지했던 거대한 존재감이 꺼지듯이 소실되었다.
‘텔레포트까지?’
놀란 용우가 급히 전술 시스템의 관측 데이터를 볼 때였다.
쉬이이익!
얼음 속에 파묻혀 있던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초고속으로 저편으로 날아갔다.
‘노리는 건 다니엘 윤인가?’
용우는 그 방향을 보고 적의 목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생존해 있는 가이아 드래곤과 합세해서 다니엘 윤을 노릴 의도다.
“젠장!”
용우는 곧바로 다니엘 윤과 가이아 드래곤이 있는 지점으로 텔레포트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 세계의 인류여.>
그리고 그곳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Chapter28 전원 집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