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83화 (8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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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태는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능력으로 박사님과 다니엘 윤의 연결 고리를 포착했습니다. 아주 희미하지만 성좌의 힘이 당신에게 연결되어 있다더군요.”

“그런 걸 봐서 알 수 있다고요?”

권희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난 일을 되새겨 봐도 권희수와 용우는 신체 접촉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걸 알아냈단 말인가?

“처음 봤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더군요.”

하지만 팬텀을 통해서 팔라딘과 셀레스티얼을 접하고 분석하면서부터, 용우는 그녀를 수상하기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켈레와 엔조 모로와 싸워서 죽이고, 브리짓 카르타와 휴고 스미스를 만나고 나자 미심쩍었던 짐작이 확신으로 변했다.

“무섭네요. 그런데 하나는 틀렸어요.”

“뭐가 말입니까?”

“윤 사장님은 나한테 능력을 준 게 아니라, 내 능력을 알아보고 그걸 다룰 수 있는 힘을 준 거예요.”

“무슨 능력입니까?”

“난 마력의 구조를 미세 영역까지 보고 조정할 수 있어요. 스펠이 완성되기까지의 짧은 시간을 한없이 늘려서 확대해 보고 감각적인 의미에서… 그러니까 마력 구조상 녹색의 띠가 여럿 발생한다면 그건 어째서인지 이해할 수 있죠.”

“그런 게 가능합니까?”

권희수가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백원태가 경악했다.

그도 각성자였기에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각성자들은 다들 스펠의 본질을 모른다.

그냥 몸에 각인된 기술을 쓸 뿐이다.

마치 운전사나 전투기 조종사가 자기가 조종하는 기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모르면서도 그것들을 놀라울 정도로 멋지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 본질을 이해한 자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탁월하게 사용해 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이야기였다.

“이런 능력을 가진 게 나 혼자는 아니에요. 닥터 슈하이머, 닥터 브래드, 닥터 나카모토, 닥터 리우도 같은 능력의 소유자죠.”

독일의 프란츠 슈하이머는 인류를 구원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이끄는 연구 팀이 마력석을 이용한 상온 핵융합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화석 연료 채굴에 심각한 문제를 겪은 인류 문명은 버티지 못하고 붕괴했을 것이다.

미국의 마이클 브래드는 헌터 업계에서 권희수와 필적하는 평가를 받는 권위자였다. 마력 반응 탄두와 마력 반응 코팅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나카모토 사유키는 코어 에너지 탐지 기술과 방사능 제거 기술의 원천 기술을 만들어냈다.

대만의 리우 샤오화는 게이트 탐지 기술과 게이트 브레이크까지의 시간을 산출하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생각해 보세요. 마력학이라는 건 굉장히 이상한 속도로 발전했죠. 아무리 인류가 그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는 하나…….”

권희수는 옛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당시에 인류는 마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어요. 기존의 학문들이 구축한 세계관을 박살 내버리는 새로운 변수였죠. 그런데도 마력학은 아주 빠르게 정립되고 성과를 내기 시작했어요.”

그 중심에는 권희수를 포함한 몇몇 천재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하나의 성과를 내놓을 때마다 게이트 재해에 대한 인류의 대응 능력은 확연히 상승했고, 헌터들의 전술 트렌드가 변화하고는 했다.

“어떤 학문이 정립되어 기초를 다지는 것에는 긴 시간이 필요해요. 그 대부분이 기존에 존재했던 것의 파생에 불과한데도.”

물론 다른 학문과는 달리 마력학의 발전에는 인류의 총력이 집중되었다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다.

최고의 두뇌들, 최고의 환경, 막대한 연구 자금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새로운 학문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그렇게 단기간에 이뤄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학계에서는 지금까지도 마력학이 정립된 초창기를 가리켜 인류 역사의 미스터리로 취급하고 있다.

신이 인류를 위해 한 시대에 한 명이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들을 무더기로 내려준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권희수의 차분한 설명을 들은 백원태가 물었다.

“…그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가 당신들에게 특이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란 말입니까?”

“우리가 기초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은, 말하자면 커닝이었어요. 우리는 신이 선물한 커닝 페이퍼를 갖고 있었던 거죠.”

기초 이론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정립되었기에, 인류가 투입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단단한 기초 이론 위에서 정보량을 불려가고 기술을 실현해 가는 속도는 인류가 절박해하는 만큼 빨랐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의 순간에, 우리는 이 능력을 받았어요. 그리고 전 그 순간 알게 되었죠. 우리에게 주어진 이 능력으로 뭔가를 해내지 못한다면, 인류는 멸망한다는 걸.”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학자가 아니라 군인으로서의 삶을 강요받았다.

문명이 파괴당하는 절박함 속에서, 권력을 쥔 군부는 권희수가 지닌 학자로서의 재능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살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1세대 각성자로서 전장에 투입되어야만 했다.

“백 사장님도 몇 번이나 만났죠? 고스트를.”

“예.”

“제가 처음 만난 고스트가 윤 사장님이었어요.”

권희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상정한 것을 뛰어넘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방어선이 붕괴했다. 잠깐 동안 의식을 잃었던 권희수는 파트너로 일하던 같은 소대의 각성자가 피투성이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며 망연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 앞에서, 그 시체가 일어나서 다른 무언가로 변모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권희수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저는 윤 사장님에게 재능을 알리고 계약을 맺었죠. 그때는 전선에서 빠져나가서 연구자로서 일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힘을 빌릴 수 있게 되었어요.”

권희수의 특수한 능력에 성좌의 힘은 확실히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하나만으로도 노벨상을 노릴 수 있는, 세계를 놀라게 하는 원천 기술을 여럿 만들어내면서 인류에 공언했다.

백원태가 혀를 내둘렀다.

“기적이군요.”

“뭐가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의 순간에, 전 세계에서 고작 5명만이 그 힘을 받았는데 그들이 모두 세계적인 석학으로…….”

“그럴 리가요.”

권희수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백원태의 말을 잘랐다.

“음?”

의아해하는 백원태에게 권희수가 말했다.

“단순히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훨씬 많았을걸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5명은 넘었어요.”

“네? 그럼 그 사람들은…….”

“다 죽었죠.”

“…….”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가진 것만으로는 쓸모가 없어요. 연구자로서의 능력이 있어야 의미가 있죠.”

“아, 그렇군요.”

백원태는 자신이 생각 못 한 부분이 뭐였는지 깨달았다.

권희수를 포함한 5명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그 능력을 받은 사람 중에 학자로서의 자질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초기 전 세계를 뒤덮었던 게이트 재해의 대혼란 속에서 생존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권희수는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말했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 윤 사장님하고만 할 수 있었는데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고 나니까 좀 후련해요.”

피식 웃은 권희수가 백원태에게 물었다.

“이제 궁금증은 다 풀렸어요?”

“그런 것 같군요.”

“그럼 이제 이걸 대가로 저한테 뭘 바라는지 말해보세요.”

권희수가 백원태가 준, 8등급 몬스터의 시신이 찍힌 사진을 팔랑팔랑 흔들면서 물었다.

비밀이 밝혀져서 동요하는 것 같은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비밀은 그저 비밀일 뿐, 켕기는 구석 따위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새로운 연구 테마를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것도 가장 메인으로 연구해서, 빠르게 결과를 낼 것을 목표로.”

“뭘요?”

“용우 씨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앞으로 인류를 덮칠 재앙의 형태에 대해서.”

백원태는 용우를 통해서 알게 된, 어비스에 존재했지만 아직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위협에 대해서 권희수에게 말해주었다.

굳이 권희수에게 비밀을 밝히고 설득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서용우가 그러길 바랐기 때문이다.

“용우 씨는 정말로 시간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용우는 크로노스 그룹이 텔레파시 연구를 진행하는 속도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언제 언데드와 타락체가 인류 앞에 등장할지 모른다.

그런데 과연 정상적인 속도로 연구해서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시간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박사님이 유일할 겁니다.”

권희수가 연구를 진행해서 성과를 내기까지의 속도는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그렇기에 불과 13년 동안 그렇게나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권희수가 말했다.

“좋아요. 받아들일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대가도 비싸게 받는 셈이고, 무엇보다 내 연구는 실용성을 가장 중시하니까요. 필요성이 가장 높은 연구를 우선순위로 돌리는 건 합리적인 일이에요. 그럼 이제부터 서둘러야겠군요.”

의욕이 솟는 듯 눈을 빛내던 권희수가 말했다.

“하지만 나도 한 가지, 요구하고 싶은 게 있어요.”

“뭡니까?”

권희수는 요구 사항을 말했다.

* * *

기본적으로 구세록의 계약자들은 그 힘을 이용하는 활동을 서로에게 감추기가 어렵다.

특히 작정하고 주목하고 있다면 더더욱.

미켈레가 엔조 모로의 협력까지 받아가면서 다니엘 윤의 눈을 속이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그의 움직임을 알아채게 만들었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카르타, 무슨 꿍꿍이속이지?”

허우룽카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히스테릭해지고 있었다.

“뭐가 말이지?”

“한국에 가서 0세대 각성자를 만난 건 도대체 뭐였냐고 묻는 거다. 게다가 구세록과 접촉까지 시켰지.”

“그걸 네게 보고할 의무는 없는데?”

애비게일 카르타가 쌀쌀맞게 대답하자 허우룽카이가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켈레도, 엔조 모로도 죽었다.”

“심각한 전력 공백이 발생했지. 그래서?”

“0세대 각성자가 범인이라면, 다음 타깃은 나겠지.”

허우룽카이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가 그놈과 손잡았다면…….”

“손잡았다면?”

“너를 죽일 수도 있다. 어차피 7개의 의자 중 2개가 비었어. 이제 와서 하나쯤 더 비우는 걸 망설일 이유는 없다.”

“협박이 서투르군.”

카르타는 코웃음을 쳤다.

“브리짓을 상대로 네 승산이 얼마나 될까?”

“…….”

그 말에 허우룽카이가 가면 너머로 침묵했다.

브리짓 카르타의 전투 능력은 구세록의 계약자 중 최강이다.

그 사실은 구세록의 계약자 전원이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각성자가 최신 세대일수록 강해지듯이, 5세대 각성자이면서 성좌의 무기를 계승한 그녀의 전투 능력은 막강했다.

“네가 생각하는 건 뻔해. 전력은 너 혼자만이 아니라는 거겠지?”

“잘 알면서도 나를 도발하는 거냐?”

허우룽카이는 서용우가 습격해 올 경우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는 절대 혼자 다니지 않는다. 팔라딘과 셀레스티얼의 그릇들을 무장 경호원으로 대동하고 있다.

혼자라면 몰라도 그의 힘을 나눠받은 군단이 함께한다면 승산은 전혀 달라진다.

하지만 애비게일 카르타는 그를 비웃었다.

“안심하도록 해. 그가 너를 어떻게 하든 나는 관여하지 않을 테니까.”

“손잡았다는 걸 인정하는군.”

“좋은 관계를 맺었지. 하지만 그와 너의 문제는 나와는 상관없어. 그 점은 확실히 해두지.”

“…수작을 부린다면 후회하게 될 거다. 난 죽어도 혼자 죽을 생각은 없어.”

허우룽카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정보 공간에서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정보 공간에서 나온 애비게일 카르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설마 스스로 나설 줄은 몰랐다.]

인사도 없이 대뜸 그렇게 말한 것은 다니엘 윤이었다.

“확실히 해둬야 했으니까. 그가 나를 죽일 생각이라면, 최소한 브리짓과 휴고는 살려야만 했어.”

[…그는 어디까지 알고 있지?]

“예상한 대로야.”

애비게일 카르타가 쓴웃음을 지었다.

서용우는 그녀와 만나기 전부터 그들 전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은 그녀로 하여금 미켈레와 엔조 모로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역시 그렇군.]

“어쩔 생각이야?”

[어차피 서로 알 거 다 알고 있는 이상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건 그만두는 게 좋겠지.]

“만나볼 생각이라면 신중하도록 해.”

[충고 고맙게 받아들이지.]

다니엘 윤은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는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 직후에 터진 사건 때문이었다.

* * *

용우는 사람이 넘치는 서울 시내 한복판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우희가 겪은 납치 시도 때문에 그의 얼굴도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약간의 환영으로 얼굴을 바꿔 보이게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볼 걱정 따위는 없었다.

모르는 얼굴들이 넘치는 것을 보면 안심이 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계.

혼자 이방인이 된 것처럼 아무하고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들 사이를 걸을 수 있는 시간.

그 속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과거도, 거기서 비롯된 감정들도 다 잊어버리고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띠리리리리…….

그런 용우의 평온을 깬 것은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지?”

용우는 발신자가 김은혜 팀장임을 알아보고 물었다.

그러자 김은혜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성에 게이트가 열렸어요.]

“그런데? 구체적인 상황은?”

[현재는 막 열린 것이 포착된 단계입니다.]

그 말을 들은 용우의 표정이 묘해졌다. 게이트가 막 열린 단계에서 자신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할 이유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어지는 김은혜의 설명은 용우를 납득시키고도 남았다.

[70미터급입니다.]

예고된 순간 세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재앙이 마침내 찾아온 것이다.

Chapter27 무너진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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