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79화 (7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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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브리짓 카르타, 쓸모 있는 패가 될 수 있겠어.’

미켈레와 엔조 모로가 말한 정보에 따르면 브리짓 카르타의 전투 능력은 탁월하다.

계승자로서 전장에 투입된 후로 채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애비게일 카르타의 전성기를 능가했을 정도다.

엔조 모로는 그게 가능했던 이유를 단순히 브리짓의 전투적 재능이 뛰어나서라고 보지 않았다.

브리짓 카르타가 5세대 각성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애비게일 카르타는 1세대 각성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대외적 활동을 위해 그렇게 위장했을 뿐이다.

그녀는 각성자 튜토리얼에 소환된 적이 없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일반인이면서 구세록의 계약자가 되었고, 성좌의 힘으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에 비해 브리짓 카르타는 5세대 각성자로서, 성좌의 무기를 계승하기 전부터 뛰어난 전투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 가설은 올바른 것 같군. 확신을 얻으려면 한 번쯤 싸워보는 게 확실하지만…….’

사실 용우는 조금 고민했다.

거기서 브리짓 카르타를 공격해서 싸워볼 것인가, 아니면 그냥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지만 지금의 용우에게도 브리짓 카르타와의 전투는 꽤 큰 리스크였다.

용우는 특유의 능력으로 최소한 브리짓에게는 자신을 향한 악의가 없음을 통찰했다.

저쪽에서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데 굳이 그런 리스크를 질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용우는 그녀와 휴고를 그냥 보내주었다.

‘역시 성좌의 힘은 절대치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용우는 빙설의 창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성좌의 무기에 담긴 거대한 힘은 증폭 장치에 가깝다.

단순히 1의 힘을 어느 정도 증폭한다는 식은 아니다. 상당히 복합적인 룰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힘이 클수록 더 큰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남은 건 휴고 스미스의 고속 성장 부분인데… 이건 리사를 통해서 확인해 봐야겠지.’

용우는 현재는 봉인해 둔 성좌의 무기, 대지의 로드를 리사에게 주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어차피 성좌의 무기는 한 사람당 하나밖에 가질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주기에는 너무 위험한 힘이다.

무엇보다 용우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힘이기에, 용우는 단순한 팀원이 아니라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그런 사람은 리사뿐이다.

‘백 사장님이 현역에 복귀한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백원태는 이제는 현역에 복귀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일개 헌터로서 전장에 나서서 싸우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재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이용해서 도움을 주는 쪽이 훨씬 가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일러.’

아직 리사는 거대한 힘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용우는 일단 그녀와 성좌의 무기를 연결해서 성장을 가속시키는 방법을 연구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걸로 권 박사 문제도 확실해졌군.’

용우는 브리짓, 휴고 두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그동안 품고 있던 미심쩍은 문제 하나를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 문제는 내가 직접 처리하기보다는… 백 사장님한테 부탁하는 게 낫겠지.’

용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백원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팬텀의 납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납치 대상이 된 사람이 7세대 각성자 중에서도 주목받는 인물, 배틀 힐러 서용우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관심이 폭발했다.

그 일 이후로 우희는 한동안 입시 학원조차 가길 포기하고 집 안에 틀어박혔다.

기자들이 집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집까지 찾아왔다가 경비원들에게 끌려 나간 것도 수 차례였다.

그리고 전화번호는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집요하게 연락을 시도하는 놈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받아.”

“응? 뭐야, 오빠?”

우희는 용우가 내민 신형 휴대폰을 받아 들고는 어리둥절해했다.

“새로 하나 개통했어. 네 휴대폰은 당분간 꺼두고 그거 써.”

“…고마워, 오빠.”

요즘은 휴대폰 없으면 인간관계 자체가 단절되어 버리는 시대다.

우희는 한마디 말도 안 했는데 새 휴대폰을 준비해 준 오빠의 배려가 고마웠다.

“아, 그리고…….”

우희가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나가서 뭔가 사오거나 할 때는 용우가 다녀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택배로 다 처리할 생각도 했지만 기자가 택배 기사로 위장해서 들어오는 바람에 직접 쇼핑을 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용우도 얼굴이 알려지긴 했지만 우희와는 사정이 다르다. 집을 드나들 때는 텔레포트로 드나들었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갈 때는 환영 스펠로 적당히 위장하고 다녔기 때문에 기자들은 바로 앞을 지나가는 그도 알아보지 못했다.

“고맙다고 전해달라더라.”

용우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경호원의 말을 전해주었다.

총격에 맞고 쓰러졌던 경호원은 우희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다만 경호 업체는 손을 떼겠다는군. 위약금은 됐다고 했고, 경호원들한테는 추가로 보상금을 지급했어.”

“잘했어. 사람이 죽었는데 위약금까지 받아내는 건 좀…….”

경호원들은 최선을 다했다. 다만 그들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태였을 뿐이다.

“다만 김경숙 씨는 혹시 개인적으로 고용해 줄 의사가 있냐고 물어왔어.”

“경숙 씨가?”

우희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북한 난민 출신인 김경숙은 경호원 중에서는 가장 우희에게 친숙한 인물이었다.

늘 같이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번 사태에서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용우가 손을 쓰기 전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가 굳이 우희의 경호원으로 고용되길 바라는 건 좀 의외였다. 마지막에는 팔라딘에게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팀원 중에 일을 그만두겠다는 사람도 있어서 당분간 일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모양이야. 하지만 일을 쉬기에는 형편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더군.”

김경숙은 북한에서 탈출할 때 가족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탈출했다. 남한에 정착한 후로는 그녀처럼 그 공동체에서 경제 활동이 가능한 사람들이 나머지를 부양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인원이 17명이나 되고, 한창 교육비가 들어가는 아이들도 있어서 수익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사정을 들은 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좋아. 경숙 씨가 옆에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아.”

“그럼 고용하도록 하지.”

용우 입장에서도 그녀가 우희 옆에 있는 편이 든든했다.

솔직히 김경숙 한 명으로는 불안하지만 새로 계약할 만한 경호 업체를 구할 때까지는 그나마도 감지덕지다.

게다가 이번 사태가 워낙 크게 이슈가 되어서 경호 업체들이 계약하겠다고 나설지가 의문이었다.

‘우희에게 호신책을 줘도 한계가 명확하고…….’

용우는 꾸준히 우희를 강하게 만들어왔다.

지금의 우희는 보유한 스펠이나 마력을 보면 헌터 업계에서도 충분히 귀한 대접을 받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전투에 맞지 않았다.

용우가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리사가 물었다.

“저기, 선생님. 제가 언니를 따라다니면 안 될까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기에 용우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심이야?”

“네.”

팬텀이 우희를 납치하려고 한 것은 리사에게도 충격이었다.

같이 지낸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리사는 우희에게 정이 들었다. 우희가 증오스러운 팬텀에게 큰일을 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활화산 같은 분노가 치솟았다.

“마음은 고마워. 하지만 안 돼.”

“왜요? 제 정신적인 문제 때문인가요?”

“아니, 아직은 이르기 때문이야. 넌 아직 한 사람 몫을 한다고 볼 수 없다.”

리사의 잠재력은 대단히 뛰어나다. 그러나 잠재력은 끌어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피지컬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도 싸우는 기술을 배우고 훈련해서 완숙해지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리사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지만, 아직까지는 주어진 힘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미숙련자일 뿐이다.

“괜찮겠다 싶을 때부터는 부탁하도록 할게.”

“네.”

리사는 풀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사흘 후, 용우는 텅 빈 카페에서 브리짓과 마주 앉아 있었다.

“미국은 일처리가 빠르군.”

오늘 아침에 4억 달러가 계좌로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브리짓은 4억 달러가 입금이 되자마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한국 정부와도 이야기가 되어서 완전히 합법적으로 처리된 돈이니 걱정 말라는 내용이었다.

브리짓이 말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노력했습니다만 이것저것 절차가 많아서 늦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통째로 빌리신 겁니까?”

“그래. 또 드론이 보이면 때려 부수고 싶어질 것 같아서.”

“…….”

용우의 한마디에 브리짓의 말문이 막혔다.

알기 쉬운 경고였다. 어설픈 장난질은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고.

4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액도 그의 입장에서는 ‘이런 짓을 해놓고 나랑 괜찮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으면 이 정도는 내야지?’라는 제스처에 불과했다.

용우가 말했다.

“뭐부터 이야기할까? 미국 정보국의 대변자로서의 이야기? 아니면 구세록의 계약자로서의 이야기?”

“일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브리짓은 고민하지 않고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질답 시간에 대한 대가로 1시간당 100만 달러를 지급하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 미국에서 당신을 고용하고 싶습니다만…….”

“그것도 한국 정부와 협상을 마친 부분인가?”

“예. 하지만 조건은 당신과 직접 협상해야 합니다.”

“파견료를 기본 1억 달러로 설정하고 시작하지. 작전 성과에 따른 수익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이야기를 해봐야겠고.”

“…….”

“왜? 비싸게 느껴지나? 최신예 전투기 한 대보다도 싼 가격인데.”

“하긴 그렇지요.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만.”

“미국에서 굳이 나를 부른다면 예상이 빗나간 위기 상황이거나, 작전 시작 전에 이미 미국의 헌터 전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상황이겠지. 그런 상황에 내가 미국까지 날아가게 만드는 비용이 1억 달러면 너무 저렴하지 않을까? 내 입장에서는 공익적인 면을 고려해서 저렴하게 책정한 건데.”

“양보할 수 없는 선이라는 거군요.”

“그래.”

용우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용우와 미국의 관계를 설정하는 협상이 별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브리짓은 용우가 말하는 조건을 거의 반박 없이 수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엄청 무리한 조건을 던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여자, 별로 열심히 협상을 할 생각이 없군.’

용우도 딱히 미국과 척을 질 생각이 없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는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는 조건을 던졌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개인이 국가와 그런 조건으로 계약을 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도 그만한 가치가 용우에게 있다는 뜻이다.

브리짓이 말했다.

“미 정보국의 대변자로서의 일은 이걸로 된 것 같습니다. 질답 시간에 들어가기 전에, 구세록의 계약자로서 이야기하죠.”

“그럼 내가 먼저 묻지.”

용우는 고개를 삐딱하게 갸우뚱하며 물었다.

“너희는 내 적인가?”

“…….”

순간 브리짓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용우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봤을 뿐이다. 그런데 무성의하게 툭 던진 것 같은 그 한마디 질문이 그녀에게 어마어마한 부담감을 안겨주었다.

“아닙니다.”

“그건 구세록의 계약자 전원의 입장인가, 아니면 애비게일 카르타의 입장인가?”

“후자입니다.”

“너희들의 의지는 제각각이라고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브리짓 카르타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구세록의 계약자가 공유하는 건 일종의 시스템입니다. 서로가 시스템의 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시스템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칠 뿐이지 그 이외의 문제에 있어서는 제각각 다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외부인이 그 시스템의 일원을 죽여 버려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

용우가 이죽거리며 던진 물음에 브리짓의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브리짓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해답을 준비해 둔 터였다.

“잠깐 이야기 괜찮으시겠습니까?”

“누구와?”

“어머니께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녀가 어머니라 부르는 것은 물론 애비게일 카르타일 것이다.

“좋아.”

용우의 대답을 듣자마자 브리짓이 휴대폰을 들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바깥, 좀 떨어진 곳에서 대기 중이던 검은 정장의 요원들이 17인치 사이즈의 노트북을 들고 와서 용우 앞에다 세팅해 주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짓을 하는군.”

용우가 중얼거리자 브리짓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그녀가 다른 요원들과 함께 카페에서 나가자 노트북 화면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백인 여성이었다. 금발 단발머리에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양녀인 브리짓 카르타와 마찬가지로 유창한 한국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0세대 각성자. 애비게일 카르타입니다.]

미국을 수호해 온 구세록의 계약자, 뇌전의 사슬의 주인 애비게일 카르타가 용우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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