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75화 (7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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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되었군.”

다니엘 윤은 인터넷에 뜬 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프랑스의 헌터 팀 에스쁘아의 CEO 엔조 모로 실종.’

용우의 예측과 달리 그 뉴스가 나오기까지는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당연히 프랑스 현지에서는 난리가 났다.

에스쁘아는 프랑스 최고의 헌터 팀이며, 유럽 전역을 통틀어도 가장 강력한 헌터 팀이었다.

그 CEO인 엔조 모로는 프랑스 헌터 업계는 물론이고 유럽 전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홀연히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충격이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연 이 소식의 진짜 의미를 아는 자는 몇 명이나 될까?

‘그는 이미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다니엘 윤은 자신의 예감이 들어맞았음을 알았다.

서용우가 그동안 제로의 신분으로 보여준 능력은 경이적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조차도 위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힘을, 구세록의 계약자조차 살해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리라.

그리고 이제는 성좌의 무기조차 그 손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성좌의 무기 둘이 한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사실 다니엘 윤은 미켈레에게 살의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차라리 저놈을 죽여 버리고, 자신이 빙설의 창까지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수도 없이 해봤다. 상당히 구체적으로 승산을 계산해 본 적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성좌의 무기 2개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미켈레를 죽이는 것으로 성좌의 무기 하나를 영영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미켈레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로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인류는 빙설의 창과 대지의 로드를 영영 잃어버린 것일까?

다니엘 윤은 그 사실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는 구세록만 믿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구세록에는 구세록의 계약자가 살해당하는 경우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내용도 없었다.

이제는 예언을 믿고 차근차근 나아가던 시기는 끝났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혼돈 속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길을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것보다 더 눈길이 가는 일이 있었다.

“하필이면 이렇게 어수선할 때 움직이다니, 미국 놈들…….”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에 뜬 보고서에는 중대한 정보가 언급되어 있었다.

서용우의 정체가 0세대 각성자임을 알아낸 미국이 움직였다.

다니엘 윤에게는 참으로 고약한 타이밍이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언제 어디서 8등급 몬스터를 포함한 초대형 게이트가 열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때 한국 정부와 협상을 마치고 서용우와 접촉을 시도하다니…….

“게다가 브리짓과 휴고 스미스를 보내다니,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거지, 카르타?”

다니엘 윤은 오늘자로 입국한 2명, 백인 여성과 거구의 라티노 청년의 사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 * *

용우는 리사의 훈련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있었다.

주로 시설이 완벽한 크로노스 그룹의 트레이닝 센터를 이용했지만, 비밀리에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소멸한 게이트의 필드를 이용했다.

리사가 퇴원한 지도 한 달.

그녀는 업계 종사자들이 보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딱히 용우의 가르치는 능력이 출중해서는 아니다.

‘난 역시 남을 가르치는 재주가 없어.’

용우는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의 기량 중에 연구와 훈련 같은 정상적인 학습 과정으로 만들어진 부분은 얼마 없다.

심지어 재능도 마찬가지다.

그럼 대체 어떻게 이렇게나 강해질 수 있었을까?

어비스에 떨어져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수많은 인간을 죽여 왔기 때문이다.

어비스는 인간이 인간을 죽일 때마다 강해지는 곳이었다.

인간을 죽일 때마다, 죽은 인간을 이루던 근본적인 힘의 일부를 얻는다.

그 힘은 한 가지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것이었다.

알기 쉬운 부분이라면 마력이 있다. 인간을 죽일 때마다 그들의 마력 일부를 흡수해서 마력 기관이 강해진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어비스에서 생존한 시간 동안 누적한 것, 예를 들면 전투 기술이나 특수한 재능이 발현된 결과물 같은 것도 얻을 수 있었다.

용우의 경이로운 마력 통제력은 재능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고 노력으로 이룬 것도 아니다.

인간을 죽여서 그들이 이루어낸 것을 흡수하는 일이 누적되면서 도달한 경지다.

‘나는 나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을 해주고, 나머지는 전문가에게 맡긴다. 그게 제일 나은 방법이야.’

그리고 2028년의 대한민국은 돈과 인맥만 있으면 최고의 훈련 시설과, 가르치는 데 이골이 난 전문가들을 붙여줄 수 있었다.

리사는 주기적으로 마력 시술을 받았고, 헌터가 되기 위한 다방면의 전투 기술 교육을 여러 전문가들에게 받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는 아직 용우가 그녀에게 해주는 것은 스펠 스톤을 공급해 주는 것 정도다.

어느 날 문득 리사가 물었다.

“선생님, 제가 배우는 것들은 괴물과 싸우는 법이에요.”

“헌터가 되려면 익혀야 하는 것들이지.”

“이걸로 사람과 싸울 수 있을까요?”

리사가 갈망하는 힘은 헌터로서의 힘이 아니다.

그녀는 팬텀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원한다.

범죄 조직의 구성원들을 죽이고 그 조직을 파괴하며, 종국에는 그 배후에 있는 거대한 힘의 소유자까지도 파멸시키는 것이 그녀의 복수였다.

“넌 배울 게 아주 많아.”

“…….”

그녀도 알고 있었다.

용우가 잡아준 교육 스케줄은 굉장히 빡빡했다.

육체 강화 특성을 가진 각성자인 그녀가 다 소화하기도 전에 녹초가 되어버릴 정도로.

“지금 배우는 것들만 잘 배워도 범죄 조직 정도 박살 내는 건 아주 쉬운 일이 될 거야. 당장 사람과 싸우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실감을 원한다면, 격투기를 추가해 줄까? 일단 몸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나서 배우게 하려고 했는데.”

“…아니, 괜찮아요. 선생님이 생각한 예정대로 진행해 주세요.”

시퍼런 독기를 품은 리사도 지금보다 교육 스케줄이 늘어난다는 것에는 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제자로 키우는 건 처음이라,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이 있어. 지금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마음이 급해봤자 몸이 그 마음 따라가 주는 건 아니니까.”

“…예.”

리사는 약간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용우가 물었다.

“복수를 시작한다고 치면… 뭐부터 하고 싶어?”

“사장부터 죽여 버릴 거예요.”

리사는 시퍼런 증오를 내보이며 말했다.

그녀가 팬텀에 납치당하게 된 계기는, 그 직전까지 일하던 식당의 사장이 매일 아침에 아니마를 섞어서 나눠준 건강 음료였다.

사장이 팬텀의 적극적인 협력자였는지 아니면 푼돈을 받고 연결되어 있는 정도였는지는 모른다.

리사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거라면 지금 당장도 가능한데… 가볼까?”

“아뇨.”

의외로 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준비를 마친 후에 시작하고 싶어요. 그놈 하나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으니까.”

“그다음에는?”

“저 같은 사람들이 있는 연구소를 찾아내서, 거기에 있는 놈들을 다 죽여 버릴 거예요.”

“몇 군데 알아두긴 했어.”

용우는 미켈레와 엔조 모로에게서 팬텀에 대한 정보를 꽤 많이 알아냈다.

뿐만 아니다.

엔조 모로를 처치한 후에는 그가 집에 숨겨놨던 팬텀의 통합 관리 데이터까지도 얻어내었다.

아니마 제조 시설은 물론이고 주요 연구 시설에 대한 것도 들어 있었다.

뿐만 아니다.

각국의 정부 인사와 기업체 등 팬텀과 관계를 맺고 돈을 제공하거나 편의를 봐주던 놈들이 누군지도 전부 들어 있었다.

‘이놈들을 다 죽여 버리면 세상이 아주 재미있어지겠지.’

큰 충격이 세상을 덮쳐 혼란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용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리사가 원한다면 이들 전부를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그들의 입장 때문에, 그들이 쥐고 있는 무언가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그냥 용서해 줘야 한다?

웃기는 소리다.

힘 있는 놈은 힘없는 약자에게 가혹한 짓을 저지를 때 아무 망설임 없이 저지른다.

하지만 힘없는 약자가 그 가해자에게 복수할 때는 그가 죽었을 경우에 생길 일을 걱정해 줘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복수자에게는 대안을 준비할 의무가 없다.

그런 건 가해자에게 권력을 쥐어준 자들이 걱정해야 할 문제다.

‘네 증오가 과연 세상을 얼마나 바꿔놓을지…….’

용우는 리사를 보며 생각했다.

‘헌터로 실전 투입 할 정도가 되려면 3개월 정도면 되겠지만… 어느 정도 쓸 만해진다는 걸 1차 목표로 잡는다면 적어도 반년은 있어야겠지.’

리사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지만 실전에 투입할 정도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문제는 허우룽카이를 그때까지 살려둘 수 있을지로군. 주제 파악 못 하고 설치지 말아야 할 텐데…….’

용우는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들었으면 어이없어했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우 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이다.

그는 이미 팬텀의 주인 3명 중 2명을 처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허우룽카이뿐이다.

용우는 웬만하면 그만은 리사를 위한 선물로 남겨두고 싶었다.

허우룽카이까지 죽여 버려도 팬텀이라는 조직은 남아 있을 것이다. 붕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리사가 차근차근 부숴 버릴 여지는 충분히 있을 터.

‘그래도 역시 알맹이 없는 복수는 만족스럽지 못할 테니까.’

용우는 제자이자 장래의 팀원으로 선택한 리사를 위해 그 정도 성의는 보이고 싶었다.

* * *

“오빠.”

늦은 밤,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용우에게 우희가 다가왔다.

“음?”

“안 자고 뭐 해?”

“잠이 별로 안 와서.”

그 대답에 우희가 옆에 앉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혹시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자?”

“글쎄.”

“거의 안 자는 거 아니야?”

“…….”

용우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결국 정직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래도 2시간 정도는 자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고도 몸이 버텨?”

“나는 그 정도가 컨디션 유지를 위한 마지노선이야. 사실 그만큼 자는 것도 힘들지만…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면 어떻게든 되긴 해.”

“왜 힘든데?”

“…….”

“아니, 미안해. 대답하지 않아도 돼.”

용우의 대답을 짐작한 우희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로, 그리고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돌아온 이후로 잠들기만 하면 악몽에 시달릴 때가 많았다.

살아오면서 쌓은 좋은 기억들은 다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리고, 끔찍한 기억들만이 생생한 모습으로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것은 의지력으로 극복되는 문제가 아니다. 마음가짐만으로 그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편하고 행복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나아졌던 우희의 그런 증상은 얼마 전에 팬텀의 납치 시도로 인해서 다시 심화되었다.

그 사건에 대해서 언론에서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우희는 공부에 전혀 집중을 못 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약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좀처럼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우희는 슬며시 용우의 팔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

“리사는 저래도 괜찮을까?”

“본인이 원한 일이야.”

“그래도. 그렇게나 힘든 일을 겪고 이제야 사람답게 살 기회를 얻은 건데… 그런 애에게 굳이 싸우는 법을 가르치고, 사람을 죽이게 하는 게 옳은 일이야?”

용우는 리사와의 약속을 우희에게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우희는 리사와도 잘 지내고 있었고 용우가 모르는 고민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우희도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잘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리사가 스스로의 소망을 우희에게 털어놓았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용우가 그러지 말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용우는 시선을 창밖에다 둔 채 말했다.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야.”

“그럼?”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거야.”

“…….”

“리사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세상 어디엔가 자기를 지옥으로 처넣고 온갖 고통을 줬던 작자들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걸 알면서?”

우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믿지 않을 거짓말이었으니까.

“다른 해답이 있으면 좋겠지. 다 잊고 행복해질 수 있는,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용우는 말끝을 흐렸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있었다. 말하다 보니 그것이 공허한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용우는 자신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그런 방법 따위는 필요 없어.’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막을 내릴 수 있는 동화의 엔딩 같은 방법이 있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

우희가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된 걸까.”

“…….”

용우가 대답하지 않은 것은 답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자신도, 우희도 그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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