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71화 (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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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와 우희, 리사가 사는 아파트는 40층짜리 고층 아파트였고 그들의 집은 맨 꼭대기 층에 있었다.

우희는 자신의 집 바로 위, 즉 아파트 옥상에서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우희는 조금 전까지의 일을 되새겨 보았다.

김경숙에 차에서 나가서 팔라딘과 대치했을 때, 용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용우는 다짜고짜 물었다.

‘우희야, 무사해?’

‘으, 응. 하지만 이제 잡힐 것 같아. 경숙 씨가 위험해.’

‘알겠다. 아침마다 너한테 새겨줬던 거, 기억하지?’

보름쯤 전부터였다.

용우는 아침마다 우희를 붙잡고 오른팔의 팔뚝에다 뭔가를 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물어보면 용우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조치’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기억은 하는데… 그게 뭔데?’

‘눈 감고 있어.’

‘왜?’

‘하라는 대로 해. 잠깐 어지럽고 나면 다른 데 가 있을 거야. 꿈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그런 줄 알아. 설명은 나중에 해줄게.’

그 말대로 눈을 감았더니 정말로 갑자기 현기증이 난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리고 갑자기 바람이 느껴져서 눈을 떠보니 아파트 옥상이 아닌가?

“오빠, 도대체 뭘 한 거야?”

우희는 멍청하니 중얼거렸다.

* * *

공간 간섭계 스펠들은 공식적으로는 세계 어디에도 보유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종류와 특성을 아는 자가 없었다.

용우와 구세록의 계약자들을 제외하고는.

공간 간섭계 스펠은 종류가 다양하다.

블링크는 100미터 안쪽의 단거리 이동이 가능하다.

텔레포트는 좌표만 확보할 수 있으면 어디든 한 번에 갈 수 있다.

오버 커넥트는 거리에 상관없이 두 지점을 잇는 워프 게이트를 만들어낸다.

용우는 미리 지정해 둔 아파트 옥상의 좌표를 이용해서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단숨에 서울까지 텔레포트해 왔다.

텔레포트는 공간 좌표를 탐색하고 설정하는 데 큰 마력을 소모하지만, 일단 좌표가 설정되어 있다면 블링크와 비슷한 마력 소모만으로도 지구 어디든 단번에 갈 수 있는 스펠이었다.

우희를 공간 좌표로 설정해 놨으면서 곧바로 그녀에게 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리버스 포지션!

좌표 각인을 새겨둔 상대와 자신의 위치를 뒤바꾸는 스펠을 써서 우희와 위치를 뒤바꾸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용우가 이 자리에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 * *

팔라딘은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있었다.

기습으로 그의 팔을 잘라 버린 용우가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라이트닝 블로!

주먹이 팔라딘의 복부에 꽂히면서 뇌전이 터졌다.

-용참격!

나이프에서 뻗어 나온 시퍼런 섬광이 팔라딘의 몸통을 깊숙이 가르고 지나갔다.

팔라딘은 허우적거리며 물러났다.

처음에 기습당해서 너무 크게 맞았다. 한 팔이 잘린 것은 너무 뼈아픈 타격이었다.

용우가 헬멧 속에서 악귀처럼 웃으며 말했다.

“대지의 로드인가.”

팔라딘이 들고 있는 것은 길이 1미터 20센티 정도 되는 가느다란 지팡이다. 끝에는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7성좌 중에서 대지의 로드의 힘을 받은 결과물이 분명했다.

-어스 바운드!

쿠과과과과!

팔라딘은 어떻게든 용우의 공격 흐름을 끊기 위해 스펠을 발했다. 그를 중심으로 도로의 아스팔트가 원형으로 터져 나가면서 파편이 사방을 강타했다.

“고작 이 정도냐?”

하지만 용우는 허공장으로 그것들을 받아내며 걸어왔다.

굳이 기기묘묘한 기술을 동원해 가며 싸울 필요도 없다. 지금의 용우는 힘으로도 팔라딘을 압살할 수 있으니까.

-마격탄!

용우의 마격탄이 팔라딘의 머리를 강타했다.

파지지직!

그리고 용우가 양손을 뻗었다. 허공장과 허공장이 충돌하면서 격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팔라딘이 머리를 얻어맞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그의 허공장을 잠식한 용우의 양손이 양팔을 잡는다.

헬멧 안쪽에서 용우가 잔인하게 웃었다.

콰아아앙!

용우가 붙잡았던 지점이 폭발하면서 팔라딘의 양팔 모두가 끊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악!>

팔라딘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전혀 상대가 안 된다.

팔라딘은 페이즈13 수준의 마력과 허공장, 그리고 그 톱클래스 헌터들과 비교해도 더 다양한 스펠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마이너 카피이기는 해도 대지의 로드까지 장비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처음에 기습당해서 큰 대미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이 안 갈 정도로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다.

‘속 빈 깡통들.’

용우는 팔라딘을 비웃었다.

저 힘을 제대로 쓴다면 제법 훌륭할 것이다. 용우의 상대는 안 된다 해도 그럭저럭 반항은 해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팔라딘은 훈련도, 경험도 부족한 티가 역력했다. 눈앞의 팔라딘만이 아니라 용우가 본 모든 팔라딘은 모두 그랬다.

‘그 힘이 아깝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용우는 팔라딘의 특성과 약점을 파악했다.

팔라딘은 소모품이다.

일단 변신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변신 자체가 그릇이 되는 실험체에게 큰 부담을 준다.

그러니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변신을 하지 않으면 딱히 전투 능력이 대단하지 않고, 변신 자체가 귀중한 기회비용을 소모하는 것이다 보니 변신해서 훈련할 기회도 없을 것 아닌가?

“이렇게까지 해도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신중한 놈인가 보군. 아니면 겁이 많은 놈인가?”

주저앉는 팔라딘의 머리를 용우가 붙잡았다.

“하지만 안다.”

용우가 팔라딘의 얼굴 앞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대지의 로드의 주인, 보고 있겠지?”

용우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똑똑히 들어둬라. 너는 이제 곱게 죽긴 틀렸어. 하긴 어차피 곱게 죽여줄 생각도 없었지만.”

용우는 그렇게 말하며 나이프 한 자루를 팔라딘에게 찔러 넣었다.

그리고…….

파지지지직!

나이프로 찌른 부위에서 투명한 푸른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동시에 팔라딘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너도 비명을 지르고 있을까?”

용우는 그 비명 앞에서도 웃는다.

아스트랄 플레어로 정신체를 공격했다. 과연 비명을 지르는 것은 팔라딘뿐일까, 아니면 거기에 힘을 불어넣은 구세록의 계약자도 함께일까?

콰직!

용우는 투명한 푸른 불꽃을 발하는 나이프 또 한 자루를 팔라딘에게 찔러 넣었다.

그리고 만족하지 못한 듯 하나를 더 찔러 넣는다.

“일단은 3개로 할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덤덤하게 말하는 용우의 앞에서 팔라딘은 발광하고 있었다.

용우는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보지 않았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아스트랄 버스트!

그리고 빛이 폭발했다.

섬광을 제외한 물리적 영향력은 전혀 없는, 기묘한 폭발이었다.

* * *

프랑스를 대표하는 헌터 팀, 에스쁘아의 CEO실은 방음이 완벽한 방이었다.

그만이 아니라 구세록의 계약자들은 완벽한 방음, 완벽하게 출입을 통제하는 것에 편집적인 집착을 갖고 있다.

성좌의 힘을 쓸 때는 외부와 격리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방은 설령 안에서 의자를 들어서 책상을 내려친다고 하더라도 문 너머에 있는 비서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현대 기술만이 아니라 스펠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엔조 모로는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그는 무언가를 판단할 만한 사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쿠당탕!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던 엔조 모로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는 소리였다.

“헉, 헉, 허억…….”

엔조 모로는 한참 동안이나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찌나 비명을 질렀는지 숨을 몰아쉬는 것만으로도 목이 따끔거린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고 이마를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눈으로 들어가서 따가웠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엔조 모로는 공포와 고통으로 몸을 떨었다.

‘내가… 살아 있나?’

그렇게 끔찍한 고통을 겪었는데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인가?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

그가 진정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아무리 쉬고, 물을 벌컥거리면서 마셔도 진정이 안 되어서 진정제까지 먹고 효과가 돌기를 기다렸다.

쨍그랑!

그리고 잠시 늘어져 있다가 물을 더 마시려고 했던 그는, 손이 덜덜 떨려서 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깨진 컵을 내려다보던 그는 찡그린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보았다.

지지직…….

오른손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이, 이건 또 뭐야?”

생소한 그 통증이 마치 자신에게 찍힌 낙인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엔조 모로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놈은 뭐든지 할 수 있는 건가?”

자신이 당한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직접 팔라딘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힘을 빌려주고 자율적으로 전투하게 만들었을 뿐.

그런데도 자신에게 이토록 끔찍한 고통을 선사할 수 있다니,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0세대 각성자는 정말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나도… 살해당하는 건가, 미켈레처럼?”

엔조 모로의 목소리가 덜덜 떨려 나왔다.

그는 미켈레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서용우가 자신을 찾아서 공격하기 전에 그를 통제할 수단을 마련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서용우의 유일한 가족, 여동생 서우희를 납치해서 인질로 잡는 것.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없애는 수밖에 없어. 놈이 공격해 오기 전에 먼저.”

엔조 모로는 그나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떠올렸다.

‘허우룽카이… 너도 응할 수밖에 없다.’

팬텀의 관계자들은 서용우의 공격 타깃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엔조 모로는 그 점을 이용해서 허우룽카이를 협력하도록 만들기로 했다.

‘적어도 내일, 늦어도 사흘 안에는 공격한다.’

사실은 지금 당장 실행하는 게 좋으리라.

하지만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았다. 방금 전에 맛본 끔찍한 경험은 그에게서 전투 의지를 말살해 버렸던 것이다.

그렇기에 엔조 모로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빠르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사실은 너무나 늦은 것임을.

* * *

용우는 산산이 흩어지는 팔라딘을 보고 있었다.

“이제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았겠지. 물론 뉘우칠 기회 따위는 없겠지만.”

용우는 팔라딘을 조종하던 대지의 로드의 주인을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하얀 갑옷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서 허공으로 녹아버리듯 사라지고, 그릇이 되었던 동양인 남자는 숨이 끊어진 채로 쓰러졌다.

이제까지 쓰러뜨린 팔라딘들이 그랬듯 이 남자 또한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마치 뇌를 표백당한 것처럼.

‘아마도 세뇌겠지.’

용우는 고스트들이 자신과 대등할 정도로 다양한 스펠을 보유했다고 상정했다.

그렇다면 행동을 완전히 구속한 상대를 장시간에 걸쳐 세뇌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차피 세뇌는 약물과 폭력에 심리적 기술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일.’

거기에 스펠을 양념처럼 뿌려서 뇌를 백지 상태로 만들었다면 놀랄 것도 없었다.

만약 용우가 구출하지 않았다면 리사 역시 같은 운명을 겪었으리라.

그러나 용우는 철저하게 도구로 이용당한 남자를 죽였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처지를 동정하지만, 그뿐이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 몇 번이고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용우는 결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복수는 해주지.”

용우가 죽은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뿐이리라.

문득 용우는 잘려 나간 팔라딘의 손이 쥐고 있던 것, 대지의 로드의 마이너 카피를 집어 들었다.

치지지직……!

팔라딘의 갑옷처럼 부서지던 지팡이가 격렬한 스파크를 발하기 시작했다. 마력과 허공장을 컨트롤해서 지팡이의 형상을 붙잡아둔 용우가 새로운 스펠을 꺼내 들었다.

-형상 복원!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부서져 가던 대지의 로드 마이너 카피가 다시 원래 형태로 수복되는 게 아닌가?

“이런 거였군. 쓸 만하겠는데?”

복원을 완료한 용우는 그것을 아공간에다 넣어두었다.

그리고 백원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딥니까, 용우 씨?]

백원태는 상황을 알고 있었는지 곧바로 그렇게 물었다.

“서울입니다. 알고 계시는 것 같으니 짧게 말하죠. 제 여동생이 납치당하는 건 저지했습니다. CCTV와 차량 블랙박스는 다 부쉈으니 저에 대한 게 노출될 가능성은 적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전송하는 위치에 팔라딘이었던 남자의 시신이 있습니다. 아마 곧 경찰이 와서 수습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용우 씨는 경찰과는 얽히지 않을 거지요?]

“네. 여동생이나 안심시켜 주러 가야겠습니다.”

[그러세요. 저녁때 내가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일을 끝내두죠.”

용우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통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경호원 김경숙을 한번 바라본 다음, 경찰이 오기 전에 텔레포트로 현장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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