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68화 (6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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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태가 충격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그는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탈하게 웃더니 말했다.

“사실 오늘 용우 씨에게 중요한 용건이 있었는데… 용우 씨가 워낙 폭탄을 많이 던져대서 별로 안 중요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군요.”

“무슨 일입니까?”

용우가 의아해하며 묻자 백원태가 사장실에 설치된 프로젝터를 켰다.

“보여줄 게 있습니다.”

인류 문명은 꾸준히 회복기를 걸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각성자 헌터들의 수준이 높아졌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술 수행 능력은 그 이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인류는 몬스터들이 점거했던 땅을 되찾고, 파괴되었던 인프라를 복원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13년이 지나 지금까지도 어쩔 수가 없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 백두산 부근에서 찍힌 영상입니다.”

백원태가 용우에게 하나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영상을 본 용우는 놀랐다.

“이건… 몬스터들끼리의 싸움입니까?”

“8등급 몬스터, 은갑옷거북과 가이아 드래곤이 충돌했습니다.”

백원태가 설명했다.

둘 다 아직 인류가 손쓸 도리 없는 재앙이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서 8등급 이상의 몬스터가 세상에 출현하면 인류는 그 지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에도 8등급 몬스터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구 북한 영토의 2할을 수복한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던 이유였다.

영상은 처음에는 위성 촬영으로 시작해서 고고도 정찰용 드론의 영상으로 바뀌었다.

“아시다시피 8등급 몬스터들은 영역 의식이 뚜렷합니다. 자기 영역에서 좀처럼 나오는 일이 없고, 그래서 8등급 몬스터끼리 싸우는 일도 드물죠.”

그런 습성을 파악했음에도 인류는 안심하지 못했다. 늘 8등급 몬스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끼리 충돌했다는 건… 3가지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화면에서는 그야말로 괴수 대결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8등급 몬스터들은 인류의 생물학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은갑옷거북은 전장 60미터를 넘는 거체에 정체불명의 외계 금속으로 이루어진 비늘이 전신을 덮고 있었으며, 가이아 드래곤은 몇 개의 에너지 코어를 중심으로 흙과 암석 그리고 금속이 모여서 용의 형상을 이룬 존재였다.

이 둘이 싸우는 광경은 실로 초현실적이다.

“3가지 가능성이라는 건 뭡니까?”

“첫째, 놈들의 영역에 먹잇감이 남지 않아서 다른 영역을 넘볼 경우. 둘째, 놈들이 지금까지 파악한 것과 다른 습성에 눈을 떴을 경우. 그리고 마지막 가능성은… 근시일 내로 8등급 이상의 고등급 몬스터가 존재하는 새로운 게이트가 열린다는 신호입니다.”

“8등급 이상의 몬스터가 나오는 게이트라면… 65미터급 이상이 출현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백원태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우가 지구로 돌아온 뒤로 지금까지 발생한 가장 대규모 게이트는 미국에서 발생한 55미터급이었다.

그런데 65미터급 이상이라…….

“가능성은 꽤 높습니다. 8등급 몬스터들의 충돌이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거든요.”

일본, 러시아, 인도, 중국 등지에서도 8등급 몬스터들의 충돌이 관측되었다.

“재작년 유럽 때도 똑같았습니다. 아마 빠르면 한 달, 늦어도 두 달 안에 출현할 겁니다.”

“어디서 출현할지는 알 수 없습니까?”

“그건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다들 바라고 있겠죠.”

쓴웃음을 짓는 백원태에게 용우가 물었다.

“뭘 말입니까?”

“차라리 아프리카나 그린란드처럼 아예 몬스터들의 땅이 된 곳에 열리기를. 하다못해 도심과 생산지역에서 떨어진 곳에서 열리기를…….”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각국은 도시 집약적인 체제를 구축했다. 게이트 브레이크로 세상에 풀려난 몬스터들의 위협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28년 현재 한국에는 한적한 시골 마을, 산골 마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살아간다.

도시가 아닌 곳은 곧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게이트 재해에 맞서 거주 지역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 1부대를 포함해서 각국의 최정예 헌터들은 지금부터 스케줄 조정에 들어갈 겁니다.”

헌터 관리부는 언제든지 최악의 게이트 재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최정예 헌터들의 컨디션을 관리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7세대 헌터들의 잠재력이 완전히 개화하지 않은 시점에서 8등급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을까?

“우리 전력 분석 팀은 아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에 도입될 신병기들을 고려하더라도…….”

헌터 장비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마력 반응 코팅은 보다 내구성과 반응성이 개선된 제3세대가 개발 완료 되어 곧 실전 투입 될 예정이다.

본래는 최소한 로켓 사이즈의 탄두에나 탑재할 수 있었던 마력 반응 탄두는 제2세대에서 극적으로 소형화에 성공, 근접전 헌터 장비와 소총용 그레네이드탄에 탑재될 예정이다.

이 장비가 투입되면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 헌터들의 화력으로도 3등급 몬스터까지도 잡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한국 헌터 업계의 경우 각 팀의 정예들에게 꾸준히 M슈트를 보급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에서는 M슈트와 동시에 연구·개발이 진행되어 온 신병기들을 투입할 예정이다.

“신병기들에 대해서는 용우 씨가 나보다 잘 알겠죠. 테스터니까.”

“예. 뭐, 저야 테스터라고는 해도 충분히 테스트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들어간 거라, 마무리를 완벽하게 하기 위한 추가 데이터 제공 정도만 하고 있지만.”

용우는 종종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에서 그 신병기들의 테스터 일을 하고 있었다.

고문료 이상의 대가를 받고 있으며, M슈트와 마찬가지로 장비를 지급하는 건 물론이고 유지 보수까지 전부 저쪽에서 책임져 주는 조건이다.

8등급 몬스터를 포함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대규모 게이트가 어디에서 출현할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세계 각국은 이례적으로 협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그런 태도는 재앙이 터지기 직전까지만 유지될 것이다.

일이 터지고 나서는 자국의 헌터들을 보내주는 것에는 야박하게 굴리라.

백원태가 말했다.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군요. 이번에는 용우 씨가 있으니까. 용우 씨도 당분간은 스케줄을 느슨하게 잡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어차피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콘셉트 때문에 게으르다고 욕먹는 몸이니까 의뢰 안 받고 잠수 타도 상관없을 겁니다.”

“…흠흠.”

용우가 째려보자 백원태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 * *

다시 일주일이 지나 7월 초가 되자 용우는 병원으로 향했다.

리길순, 아니, 이제는 리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신분을 얻은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서 오세요.”

리사는 처음 팬텀에게서 구출했을 때와는 다른 사람처럼 달라져 있었다.

심한 영양실조라서 해골처럼 앙상했던 그녀는 병원 VIP실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자 보기 좋게 살이 올랐다.

지금의 그녀는 약간 어두운 인상의, 10대 후반의 소녀로 보였다. 머리카락을 일부러 쇼트커트로 쳤더니 언뜻 보면 소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준비 끝났으면 갈까?”

“네.”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는 환자복 대신 반팔 와이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전에 한번 용우와 함께 찾아왔던 우희가 선물한 옷이었다.

우희는 좀 더 여성스러운 옷을 선물하고 싶어 했지만 리사는 활동하기 편한 옷을 원했다.

‘언제 누구에게 습격당하더라도 옷 때문에 행동이 제약되는 경우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범죄 조직에 납치당해서 온갖 끔찍한 일을 당했던 사람의 말이다.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희는 리사의 사정을 듣고는 그녀와 같이 사는 것을 허락했다.

‘집이 너무 넓어서 휑한 느낌이 든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걸 허락할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용우는 이 문제로 우희를 설득할 자신이 별로 없었기에 그녀가 반감을 보이지 않고 그러자고 해준 것에 놀랐다.

‘내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지만.’

용우는 리사의 처지를 동정했고, 그녀를 구출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우희가 그녀와 함께 사는 것을 받아들여 준 것이 기뻤다.

“…….”

문득 용우는 자신의 옆에서 따라오던 리사가 걸음을 멈춘 것을 알아차리고 돌아보았다.

리사는 VIP 구역에서 나가 일반 병동으로 들어서는 지점에서 꼼짝 않고 멈춰 있었다.

“왜 그래?”

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백하게 굳어만 있었다.

“괜찮아?”

용우가 다가가자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말했다.

“손… 좀 잡아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의 표정에는 딱히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용우는 그녀의 눈이 불안감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병원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리사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병실에서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거동이 가능해진 후로도 절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아서 재활 운동조차도 담당자를 병실로 들여서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래.”

용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눈에 띄게 안도했다.

그녀는 팬텀에 납치된 후로 8개월 동안이나 바깥을 보지 못하고 갇혀서 끔찍한 생체 실험을 당했다.

시간 감각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현실 감각조차도 망가져서 자신의 기억이 실제로 겪은 일인지 아니면 악몽의 일부였는지를 분간하기 어려워했다.

그런 경험을 했는데 정신이 멀쩡할 리가 없다. 병실에만 처박혀 있을지언정 병원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용우가 손을 잡아주자 그녀는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당당한 발걸음으로 용우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이게 용우 님 차예요?”

리사가 용우의 차를 보고는 놀랐다.

고급 차가 많은 병원 주차장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차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좀 눈에 띄지? 짐이 많지 않으니 그냥 뒷좌석에 실어두자.”

백원태가 준비한 리사의 위장 신분은 7세대 각성자였다.

7세대 각성자에 대한 것은 아직까지도 전산 데이터에 추가 사항을 끼워 넣을 여지가 있었는지라 의외로 수월하게 처리가 되었다. 누군가 리사의 정체에 의문을 품고 전문적으로 파고든다면 발각될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젠 용우 님이라고 부르는 건 그만두고 그냥 용우 씨라고 불러.”

“아, 하지만 제 은인이신데 그렇게 막 부르기는 좀…….”

“앞으로 같은 집에서 살 텐데 님 소리 듣기는 너무 부담스러워.”

“그, 그럼…….”

리사가 잠시 망설이다가, 뭔가 결심을 굳힌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응?”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용우는 잠시 동안 리사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그 물음을 들은 리사의 행동은 조금 전의 말보다 더 용우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주차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던 것이다.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

“제게 힘이 있다고 하셨죠.”

용우는 리사에게 자신이 그녀에 대해 알아낸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해주었다.

너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네게 고통을 준 놈들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너 자신이 이미 각성자로서의 힘을 갖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리사는 한가지 결의를 품었다.

“그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요, 제 손으로 직접.”

리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말하는 내용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고개를 들어 용우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그 앞을 꿰뚫어버릴 듯 강렬했다.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용암 같은 감정이 그 속에서 춤추고 있었다.

그 눈을 본 용우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렇군.’

용우는 병원에서 깨어난 리사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너는 우리와 닮았어.’

어비스에서 수도 없이 보아온 눈빛이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분명 뻔한 대답들이 나올 것이다.

꿈, 희망, 사랑, 동경… 기타 등등, 기타 등등.

하지만 어비스의 각성자들은 그런 것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단어를 나열해놓기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것들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치가 아니었다.

그들을 살게 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증오였다.

세상 사람들은 증오는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때로 사람은 무언가를 미워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

비록 그 끝이 새카맣게 불타 스러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무엇인가를 증오하는 동안에는 오늘을 살아갈 수는 있다.

꿈도, 희망도, 사랑도 오늘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증오가 빛나는 것들보다 가치 있는 오늘도 있는 것이다.

어비스의 사람들은 그런 오늘을 살아가다가 죽었다.

“내가 네게 복수하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리사의 눈을 바라보던 용우가 물었다.

“넌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지?”

“무엇이든.”

리사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제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든 해드리겠어요. 제 손으로 복수할 수 있다면, 이 목숨이라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용우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역시 닮았어.’

그녀는 자신들과 닮았다.

먼 앞날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꿈도, 희망도, 동경도 모두 부서진지 오래다.

돌아볼 것도, 그리워할 것도 흐릿해져서 오직 미움만으로 앞을 향할 뿐.

“좋아.”

그래서 용우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알겠으니까 일단 일어나. 다른 사람이 보면 내가 경찰에 신고 당할지도 모르니까.”

“네.”

리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재빨리 일어났다.

용우는 그녀를 앞좌석에 태우고 차를 출발시켰다.

“조만간 트레이닝 센터에 가보자. 네 소질과 적성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니까.”

“네.”

지난 한 달 반 동안 용우는 꾸준히 리사를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었다.

리사는 몸 상태가 회복되자 처음에는 말하기 어려워하던 사실들을 조금씩 이야기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렸지만 어쩌다가 팬텀에 납치되었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세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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