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67화 (6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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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레가 사라졌다.”

그 사실을 구세록의 계약자들에게 고하는 엔조 모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미켈레가 용우를 처치하거나 사로잡으려고 했다가 다니엘 윤에게 저지당한 그날 이후로 3주가 지났다.

미켈레는 그동안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며칠간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보 공간을 이용한 통신은 물론이고 전화나 문자, 이메일에도 반응이 없는 시간이 길어지자 불안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엔조 모로는 직접 이탈리아로 미켈레를 찾아갔다.

미켈레의 이웃들에게 물어본 결과, 그는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엔조 모로가 텔레포트로 집 안으로 침입해 보니 서재는 엉망이 되어 있고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들은 썩은 내를 풍기며 벌레가 꼬여 있었다.

“마치 그날 거기서 어디로 꺼져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 버렸어.”

엔조 모로가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알리자 다른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반응했다.

“스스로 모습을 감춘 게 아닐까?”

“다니엘 윤에게 공격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숨은 거 아니야?”

엔조 모로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휴대폰이 서재에 떨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

아무리 모습을 감춘다고 하더라도 휴대폰을 그런 식으로 방치해 두지는 않을 것이다. 추적을 막고자 한다 해도 최소한 눈에 안 띄는 것에 감추거나 버리거나 하는 것이 정상적인 선택일 터.

“엔조 모로, 설마 미켈레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물은 것은 다니엘 윤이었다.

그의 물음에 정보 공간에 경악의 물결이 퍼져 나갔다.

엔조 모로가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다니엘 윤, 네가 손을 쓴 건 아니겠지?”

“그 망상병자 놈을 혐오하긴 하지만, 그런 놈이라도 세상에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다니엘 윤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구세록의 계약자 7명은 13년 동안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가면서도 세상을 지켰다. 그 힘을 이용해서 어떤 추악한 짓을 해왔든 간에, 그들이 인류를 지켜왔다는 공적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엔조 모로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카르타가 물었다.

“짐작 가는 바가 있는 건가?”

“…미켈레는 0세대 각성자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정보 공간이 술렁였다.

카르타가 물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0세대 각성자는 우리의 상식으로 잴 수 없는 존재지.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엔조 모로는 그것 말고 다른 가능성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엔조 모로는 미켈레가 살해당한 것 이상으로 끔찍한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서용우가 미켈레를 살해하고, 빙설의 창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경우를.

‘0세대 각성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어떻게든 그의 칼날이 우리를 향하지 못하도록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해.’

궁지에 몰린 그는 위험한 발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 * *

용우는 비밀리에 훈련을 하고 싶어지면 백원태의 배려를 부탁했다. 팀 크로노스 본사의 훈련시설 일부를 독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미켈레와의 싸움으로 소멸한 게이트 내부의 필드로 이동하는 법을 알게 된 후로, 용우는 현실적 제약에 묶이지 않고 마음껏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굳이 백원태에게 부탁해서 팀 크로노스 본사의 훈련시설 일부를 빌린 것은, 이곳에서만 가능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첨단 장비들로만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얻고 싶었다.

“벌써 이 정도까지…….”

백원태는 훈련장에서 측정된 데이터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훈련 전, 용우는 마력 시술을 받았다.

용우가 마력 시술시에 투입하는 마력석 정제 용액의 양은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다른 헌터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훈련을 마친 용우는 사장실에서 백원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슬슬 트레이닝 센터 쪽에서는 마력을 크게 제한해야 하게 되어서요.”

“그럴 것 같더군요. 놀랐습니다.”

백원태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5등급 몬스터 수준의 마력이라니…….”

어느새 용우의 마력이 5등급 몬스터 수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용우가 지구로 귀환한 지 채 1년이 안 지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성장세, 아니, 회복세는 두렵기까지 하다.

용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그렇죠.”

용우는 아공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팔거나 쓰지 않고 필요할 때를 위해 그냥 보관만 해두고 있었다.

돈이라면 한번 전투를 치를 때마다 넘치도록 벌고 있었고, 마력 기관을 회복하는 것도 정기적으로 마력 시술을 받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돈과 마력 회복 양쪽에 쓰지 않는다면 굳이 그것을 처분할 이유가 없었다. 용우에게는 마력석도 훌륭한 전투 자원이었으니까.

백원태가 물었다.

“혹시 지금 용우 씨의 마력이면, 페이즈를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 되는 겁니까?”

“지금은 페이즈로는 18 정도일 겁니다. 제 경험상 페이즈 20은 되어야 6등급 몬스터의 영역으로 들어서니까요.”

“페이즈 18…….”

백원태가 놀라서 입을 벌렸다.

5등급 몬스터 수준이라는 것은 측정 데이터를 봐서 알고 있지만, 페이즈 기준으로 들으니 또 느낌이 다르다.

“며칠 전에 미국의 6세대 헌터가 페이즈 13의 마력을 공표했죠. 슬슬 페이즈 13이 하나둘씩 나올 것 같지만 그 기록이 깨지려면 또 1, 2년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용우 씨는 훨씬 앞서가고 있군요.”

“아직 멀었습니다. 이 정도로는 고스트들과 힘겨루기는 못 하니까요.”

용우에게 있어서 마력 회복의 의미는 단지 출력과 저장량이 상승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마력이 높아질수록 쓸 수 있는 스펠이 더욱 다채로워진다.

또한 마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만 활성화되는 특성들도 되찾는다.

거기에 마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만 구사 가능한 응용 기술들도 있다 보니 실질적인 전투 능력의 증가는 마력 수치로 가늠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고스트라고 하니 말인데… 그건 어떻게 된 겁니까?”

백원태가 진짜로 묻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용우가 훈련 중에 정말 놀라운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빙설의 창은, 혹시 아티팩트입니까?”

용우는 훈련장에 광범위하게 허공장을 펼치고는 그 안에서 빙설의 창을 꺼내서 연구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7세대가 갖고 나타난 7개의 아티팩트 중에 소실된 하나, 데뷔 전에서 사망한 남중국의 아티팩트 보유자가 가졌던 것이 바로 빙설의 창이었다.

그러니 백원태가 용우가 지닌 빙설의 창을 그 아티팩트가 아닌가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용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아티팩트의 오리지널입니다.”

“오리지널?”

“고스트… 정확히는 구세록의 계약자라는 놈들이 갖고 있는 성좌의 무기입니다.”

그 말에 백원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용우의 말이 뜻하는 바를 한 번에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몇 초 후에야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한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났다.

“고스트에게서 빼앗은 겁니까?”

“예.”

“…….”

백원태는 입을 쩍 벌리고 용우를 보았다.

용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한테 싸움을 걸어온 한 놈만 처리했습니다. 팬텀의 주인으로 보이는 놈이었죠.”

“용우 씨, 지금 회복한 수준만으로도 벌써 고스트를 능가한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직 힘으로는 많이 밀립니다.”

용우가 딱 잘라 부정했다.

“하지만 싸움이라는 게 무조건 힘센 놈이 이기는 건 아니니까요.”

미켈레가 워낙 허점을 많이 보여줘서 가능했던 승리였다.

“그리고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 놈들이 그런 힘을 휘두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제 손에 들어왔으니까.”

용우는 미켈레에게 죽음조차 허락지 않는 고문으로 필요한 정보를 뽑아냈다.

그리고 빙설의 창의 소유권을 계승받는 조건으로 그를 파괴와 재생이 무한히 반복되는 끔찍한 고통의 수레바퀴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당분간은 비밀리에 연구할 생각입니다.”

용우에게도 성좌의 힘은 미지의 영역이다.

어비스에서도 성좌의 아바타들은 홀연히 나타나서 전장을 휩쓸고 다시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현애를 통해서 아티팩트를 연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빙설의 창에 대해서 파악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미 실전에서 써먹기에는 충분할 정도고, 연구를 통해서 그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용우는 자신이 품고 있던 막연한 예감이 확신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이놈들이 가진 성좌의 힘은… 완전하지 않아.’

광휘의 검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사실이다.

그때 그가 보여준 힘은 용우의 기준으로 보면 어비스의 종반기까지 살아남은 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어비스에서 수도 없이 본 성좌의 아바타들의 힘은 그 이상이었다.

문득 용우가 물었다.

“연구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텔레파시 연구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서 텔레파시 스톤을 취하게 하고 연구진을 꾸렸습니다.”

“하긴 연구라는 게 뚝딱 이뤄지진 않겠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겠군요.”

용우는 아쉬워하면서도 납득했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 생각한 바가 하나 있습니다. 사장님의 도움을 좀 받고 싶은 건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제가 고스트를 죽여 버리기는 했습니다만… 그들이 세상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그들 없이도 문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려면 얼마나 더 걸릴까?

8세대나 9세대쯤에는 가능할까?

‘가능성은 있지. 하지만 그때쯤에도 불가능할 수도 있어.’

지구의 각성자들은 어비스의 각성자들과 달리 현대 문명의 힘을 빌려 본신의 기량만으로는 불가능한 전투 능력을 보인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용우에게는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잠재력이 커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아직까지는 너무 약해.’

7세대의 잠재력이 완전히 개화한다고 해도, 구세록의 계약자 없이는 문명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용우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하지만 저는 결국 놈들을 다 죽여 버리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용우는 미켈레를 죽인 시점에서 자신과 그들의 사이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놈들이 하기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광휘의 검이 보여준 태도, 그리고 미켈레로부터 뽑아낸 정보는 용우에게 약간의 여지를 남기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 빈자리를 메꿀 대안이 필요합니다.”

“용우 씨가 그 대안이 될 생각입니까?”

“예.”

용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저 말고는 아무도 대안이 될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

실로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하지만 백원태는 반박할 수 없었다.

용우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 혼자서는 힘듭니다. 이제부터 팀을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팀을? 하지만 누구를 팀원으로 들일 겁니까?”

백원태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현 시점에서 용우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다. 과연 그와 호흡을 맞출 만한 사람이 있기는 할까?

“당장 눈여겨 본 인재는 둘 정도입니다.”

“팀을 만든다면서요? 고작 두 명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전투 수행원만 봐도 서포터까지 최소한 40명은 있어야…….”

“제가 만들려는 팀은 기존 헌터 팀 같은 기업이 아닙니다. 기존에 제가 제로로서 하던 일의 스케일을 키우려는 것뿐이죠.”

“어디까지나 다른 팀과 협업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아주 특수한 팀을 만들겠다는 거군요.”

백원태는 용우의 구상을 이해했다. 그런 거라면 어려울 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 제안에 응해준다는 보장도 없고, 만약 응해줄 경우에는 충분한 보상을 준비해야 해서 돈이 좀 필요합니다.”

“투자 필요하세요? 용우 씨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투자해 드리죠.”

“투자는 됐고요.”

눈을 빛내던 백원태는 용우가 고개를 젓자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놀라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8등급 몬스터의 사체를 팔고 싶군요. 얼마나 쳐주시겠습니까?”

용우의 제안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말문이 막혔던 백원태는 용우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8등급 몬스터는 어디서 잡은 겁니까?”

“아직까지는 잡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잡은 놈이 갖고 있더군요.”

미켈레를 죽였을 때, 용우는 어비스에서 수십 번도 더 겪었던 익숙한 현상을 겪었다.

상대의 아공간이 해제되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이 쏟아져 내렸던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석이었다.

용우가 아공간에 보관하고 있는 것보다도 더 많았다. 물론 용우가 어비스에서 스스로를 봉인하기 전, 최후의 전투에서 워낙 많은 마력석을 소모해 버려서 그런 것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몬스터들의 사체였다.

저등급 몬스터의 사체는 있지도 않았다.

최소 6등급부터 시작해서 8등급 몬스터의 사체도 있었으며…….

“일부이긴 하지만 9등급 몬스터의 사체도 있습니다. 값만 잘 쳐주시면 사장님을 1순위 구매자로 올려 드리죠.”

“…….”

백원태의 표정이 정말 볼 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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