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65화 (6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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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윤은 눈을 떴다.

“음…….”

빙의, 미켈레를 비롯한 몇몇은 ‘강림’이라 불리는 권능을 쓰고 나면 마치 생생한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와 비슷한 몽롱함과 혼돈에 사로잡힌다.

그 혼돈은 실로 불쾌하고 피곤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되는,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다.

‘결국 스페어를 써버렸군. 미켈레, 그 망상병자 때문에…….’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구세록의 계약자는 각성자의 시신에만 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신은 반드시 게이트 안에서 죽은 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각성자의 시신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구세록의 계약자들은 급할 때를 대비해서 각성자의 시신을 구해두었다. 그들 역시 용우처럼 아공간을 다루는 스펠 ‘시공의 보물고’를 쓸 수 있었기에 시신을 구하기만 하면 보관은 어렵지 않았다.

한숨을 쉰 다니엘 윤은 현실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의식을 날려 보냈다.

“미켈레는 저지했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모이는 정보 공간으로.

그곳에는 미켈레를 제외한 6명이 모여 있었다.

“미켈레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술이라도 마시고 있겠지. 그놈 성질 잘 알면서.”

키득거리며 말한 것은 엔조 모로였다.

다니엘 윤이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네놈이 지금 웃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무슨 뜻이지?”

엔조 모로가 표정을 굳혔다.

다니엘 윤이 말했다.

“스페어를 쓰는 김에 네놈들이 애지중지하는 팬텀의 연구 시설 몇 개를 날려줬는데, 어디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시지.”

“……!”

경악의 정신파가 번져 나갔다.

그 진원지는 프랑스인 엔조 모로와 대만인 허우룽카이였다.

이 둘이 미켈레와 함께 팬텀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멤버였던 것이다.

엔조 모로가 이를 갈았다.

“다니엘……!”

“한국에서 냉큼 꺼지라고 했을 때 말을 들었어야지. 그리고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앞으로 빙의할 때마다 여가 활동 삼아서 팬텀의 주요 시설을 박살 낼 생각이니까. 그게 미켈레의 장난질에 협력한 대가다.”

엔조 모로는 미켈레가 서용우를 납치해서 공격하는 것을 다른 계약자들에게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다니엘 윤은 미켈레에게서 위험한 조짐을 느낀 순간부터 그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엔조 모로가 미켈레를 향한 시선을 가리는 것이 오히려 미켈레가 용우를 향한 행동을 시작한다는 것을 다니엘 윤에게 알려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엔조 모조와 허우룽카이가 다니엘 윤을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다니엘 윤이 같잖다는 듯 물었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끝장을 보자, 이거냐? 네놈이 그렇게 나오면 한국이라고 무사할 것…….”

“경고하지. 한국 헌터계를 대상으로 장난질을 치는 순간부터 경고도 협상도 없다. 팬텀만이 아니라 프랑스와 대만도 같이 망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

엔조 모로가 움찔했다.

그때 카르타가 끼어들었다.

“그쯤 해둬. 엔조 모로, 허우룽카이.”

그녀는 경멸을 담아 말했다.

“지금까지 팬텀을 묵인해 준 것만으로도 너희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처사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함께 인류를 지켜온 동지였다.

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한다 해도 그들의 역할이 너무나 크기에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

팬텀은 다니엘 윤이 소중하게 지켜온 한국에 진출해서는 안 되었다.

“한국을 건드린 시점에서 너희들은 다니엘 윤이 팬텀을 없애 버려도 할 말이 없는 처지가 된 거야. 이번 건은 명백히 너희들의 과실이야. 다니엘 윤과 싸우겠다면 나는 다니엘 윤 편에 서겠다.”

“나도 동감이다.”

“싸우든 말든 상관없는데 나한테 피해만 안 오게 해.”

다른 계약자들이 한마디씩 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 엔조 모로와 허우룽카이는 분한 마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 * *

오버 커넥트가 만들어낸 검은 구멍 안으로 끌려 들어오는 순간, 미켈레는 경악에 휩싸여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역시 다니엘 윤, 그놈인가? 젠장!’

그 말고는 자신을 오버 커넥트로 납치할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푹.

그의 서재와 이어진 반대편 워프 게이트로 떨어지는 순간, 칼날이 그의 몸통을 뚫고 나왔다.

“……!”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미켈레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런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네놈과 달라서 별로 관대하지 못하거든. 선택의 기회 따윈 없어.”

“네, 네놈은……!”

그 목소리가 용우의 것임을 깨달은 미켈레가 경악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오버 커넥트를 쓸 수 있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납득할 수 있다. 용우가 지금까지 공간 간섭계 스펠을 써왔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알아냈을까?

물론 용우는 미켈레가 그 의문에 골몰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푹!

또 한 자루의 칼날이 그의 몸통에 꽂혔다. 폐를 관통하는 위치였다.

“……!”

입에서 비명 대신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리고 용우가 심장과 폐를 관통당한 그를 걷어찼다.

파학!

쓰러지는 그의 왼팔이 잘려 나갔다.

“깨끗하게 잘린 채로 내버려 두면 재생하기도 쉽겠지?”

용우는 잘린 미켈레의 왼팔을 잡고 스펠을 발해서 태워 버렸다.

“역시 변신하기 전에도 일반인은 아닌가? 심장을 꿰뚫었는데도 안 죽는군. 일단 죽인 다음 살려볼 생각이었는데.”

용우가 해맑게 웃었다.

방금 전에 칼로 미켈레의 심장과 폐를 찌르고 팔을 잘라 버린 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미소였다.

“0세대 각성자, 이 자식, 가, 감히 나를……!”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진짜 멍청한 놈이네?”

셀레스티얼을 원격조종할 때야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었으니 언어의 차이는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본신으로 만났으니 둘 모두가 알고 있는 언어를 쓰지 않으면 말이 안 통한다.

파악!

용우는 싸늘하게 웃으며 그의 다리를 베었다. 칼날에서 뻗어나간 에너지 칼날이라면 원거리에서도 다리를 절단하는 것 정도는 손쉬운 일이었다.

“크아악……!”

“생명력이 질긴 건 알겠는데… 냉큼 변신 안 하고 뭘 떠들어대고 있는 거야? 안전한 곳에서 남의 몸만 조종해서 싸우다 보니 위기 감각이라는 게 없냐?”

용우가 일부러 영어로 도발하자 미켈레가 격분했다.

“소원대로 해주……!”

파악!

용우는 그가 지껄이는 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에너지 칼날이 그의 목을 반쯤 베었다.

“아, 목소리가 짜증 나서 그만.”

그걸로 끝나지도 않았다.

펑!

관통력을 높인 에너지탄이 미켈레의 몸통에 주먹만 한 구멍을 뚫어버렸다.

“이렇게까지 해도 안 죽고 변신할 수 있군. 대단한걸? 머리가 부서지지만 않으면 되는 건가? 아니면 설마 머리가 부서져도 정신체만 무사하면 재생 가능 한가?”

그럼에도 미켈레의 마력이 폭증하면서 변신하기 시작했다.

허공장이 몸을 감싸고, 몸에 꽂힌 칼날이 뽑혀 나가면서 갑옷이 그의 몸을 감싼다.

그의 갑옷 역시 게임 캐릭터처럼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백은색의 표면 위로 청금색 문양이 복잡한 패턴으로 양각(陽刻)된 갑옷을 입었고, 손에는 얼음처럼 투명한 질감의 창을 들었다.

용우가 아는 성좌의 아바타, 빙설의 창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역시 네놈들에게 있어서 빙의라는 건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목숨을 아끼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군.”

<죽음을 재촉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마, 0세대 각성자!>

변신을 완료한 미켈레가 텔레파시로 외쳤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마력 파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구구구구구!

휘몰아치는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용우가 웃었다.

‘이놈도 본신의 마력만으로도 7등급 몬스터와 동격.’

현재 인류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힘이다.

용우 역시 꾸준한 회복으로 인류가 한계로 규정지은 영역을 돌파했다. 그러나 지금 미켈레가 보여주는 것에 비견할 수준은 못 되었다.

<역시 네놈은 위험해. 여기서 제거하겠다.>

미켈레의 정신파에서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묻어나고 있었다.

변신한다고 해서 용우가 입힌 부상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성좌의 힘이 생명 유지 장치 역할을 해주기는 하지만 대신 지속적으로 마력이 소모된다. 어느 정도 재생력이 발휘되기는 하지만 그것도 그만큼 많은 마력을 소모한다.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치료 스펠을 쓰는 수밖에 없다. 방해받지 않는 환경에서 집중적으로.

<내게 싸움을 건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과연 그렇게 될까?”

용우는 씩 웃으며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퍼어어어엉!

그러자 미켈레의 갑옷 안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아아아아악!>

기가 살아서 공격 태세를 취하던 미켈레가 주저앉았다.

“너희들의 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이미 봤어.”

다니엘 윤과 암흑거인의 전투는 용우에게 상당한 데이터를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설마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네놈을 변신시켰을까?”

용우가 마음만 먹었다면 미켈레는 변신도 못해보고 죽었을 것이다.

아무리 일반인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생명력을 가졌어도 몸이 산산조각 나면 뭐 어쩌겠는가?

하지만 용우는 일부러 그에게 변신할 기회를 주었다.

철저하게 우위를 쥘 수 있는 준비를 해둔 채로 구세록의 계약자들의 전력을 파악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비루한 목숨을 붙여놓는 데 얼마나 많은 마력이 들어갈까? 궁금하군.”

그제야 미켈레는 용우가 자신을 공격한 것이 단순한 신체 파괴에 그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용우는 칼날에는 스펠로 형성한 맹독이 묻어 있었으며, 강력한 저주의 힘이 몇 가지나 깃들어 있었다.

‘아, 안 돼.’

심장이 파괴되었다. 폐도 갈가리 찢어졌다.

뿐만 아니다. 아예 성한 장기가 없다. 팔다리도 잘려 나갔고 몸에는 앞뒤를 관통하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다.

팔과 다리가 한 짝씩 날아가고 목은 반쯤 베어져 나갔다.

지금의 그는 갑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생명 유지 장치에 타고 있는 수준이다. 성좌의 힘이 아니었다면 살아 있을 수가 없었다.

-리스토어 힐…….

미켈레는 곧바로 치료 스펠을 발하려고 했다.

물론 용우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염동뇌격탄!

총을 꺼내지도 않고 맨손으로 에너지탄을 날린다.

미켈레가 허공장으로 막았지만 그 순간 용우가 그의 뒤를 잡았다.

파지지직!

둘의 허공장이 부딪치면서 대지가 진동했다.

허공장의 출력은 미켈레 쪽이 압도적으로 우위였다.

그런데 서로 충돌하는 순간 용우의 허공장이 미켈레의 허공장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잔재주가 통할 것 같으냐!>

미켈레는 허공장을 확장해서 용우를 떨쳐내었다. 그리고 곧바로 스펠로 공격에 나섰다.

-프리징 필드!

그를 중심으로 한기가 해일처럼 휘몰아쳤다. 일순간에 반경 100미터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용우는 어마어마한 한기를 뚫고 뛰어들었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군.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나?”

빙설의 창의 주인과 싸우는 만큼 용우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미켈레도 바보라서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아니다.

상태가 최악이라 빠르고 정확한 사고가 불가능했다. 그럴 때는 몸에 익은 버릇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으윽!>

미켈레는 연속 블링크로 그 자리를 이탈한 다음 치료 스펠을 쓰려고 했다.

파지지직!

그러나 용우는 단 한 번의 텔레포트로 그를 따라잡고 맹공을 펼쳤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용우가 미켈레를 비웃었다.

이미 용우는 그의 존재 그 자체를 공간 좌표로 설정했다. 그 좌표 설정을 지워 버리지 않는 한, 미켈레는 세상 어디로 가도 용우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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