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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아악!
주변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얼어붙는다. 기습을 허용한 용우는 몸의 표면이 얼어붙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블링크!
하지만 그 냉기가 뼛속까지 침투해 오기 전, 용우가 블링크로 그 자리를 이탈했다.
미켈레가 곧바로 블링크를 써서 따라붙었다.
투학!
용우의 발차기가 미켈레의 창과 격돌했다.
“큭……!”
미켈레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데 비해 용우는 멀찌감치 튕겨 나갔다.
착지한 후에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젠장, 확실히 팔라딘보다 훨씬 강하군.’
창과 격돌한 다리가 하얗게 얼어붙어서 뼛속까지 냉기가 침투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좀 생각이 바뀌었나?>
미켈레는 빈틈을 드러낸 용우를 곧바로 덮치는 대신 여유로운 태도로 말을 걸어왔다. 마치 너 같은 건 언제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듯이.
“글쎄.”
용우가 다리를 한 번 털자 체내로 침투해 왔던 냉기가 빠져나가면서 얼음이 부서져 떨어졌다.
‘마력은 5등급 수준. 지금의 나보다는 약간 더 우위군. 저 빙설의 창 레플리카도 팔라딘의 것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아티팩트보다는 좀 떨어지는 것 같지만…….’
용우는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면서 미켈레를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오직 고통만이 네게 진실을 알려줄 것 같군. 소원대로 해주마.>
미켈레가 낮게 웃으면서 창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빛의 파문이 퍼져 나갔다.
-안티 텔레포트 필드!
그 스펠을 알아본 용우가 눈을 크게 떴다.
효과가 미치는 범위에서 공간 도약을 억제하는 스펠이었다.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지만 발동 속도나 효과가 크게 억제당한다. 공간 억제를 펼친 본인도 똑같은 제약을 받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상관없다.
블링크가 봉해져서 불리한 것은 용우지 그들이 아니었으니까!
“와…….”
용우가 그를 보며 감탄성을 흘렸다.
그러자 미켈레가 조롱조로 물었다.
<왜 그러나? 도망칠 구석이 막히고 나니 좀 후회되기 시작하나?>
“…오랜만이야.”
<음?>
“사람하고 싸우는 기분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야. 마지막으로 타락체와 싸웠을 때 이후로 처음인가.”
용우는 겁먹기는커녕 씩 웃고 있었다.
“어디 인류를 지켜왔다는 고스트의 실력을 한번 볼까?”
-에너지 스킨!
용우가 몸 위로 얇은 에너지막을 덧씌우는 스펠을 걸었다. 근접 전투원들이 애호하는 스펠로 갑옷보다도 단단한 방어력을 제공한다.
-마인드 부스트!
그리고 용우가 인지 속도를 가속하는 스펠을 걸면서 돌진했다.
-피지컬 부스트!
곧바로 또 하나의 가속 스펠이 발동된다.
한차례 가속한 인지 속도가 2배 더 빨라지고, 육체 역시 동일한 속도로 가속되었다.
<가속 스펠을 믿었나? 어리석군!>
그러나 가속 스펠은 미켈레 역시 쓸 수 있었다. 그 역시 피지컬 부스트로 가속하면서 용우에게 창을 내질렀다.
투학!
다음 순간, 미켈레가 휘청거렸다.
‘뭐지?’
분명히 용우에게 창을 겨누고 찌르기를 날렸다.
그리고 그의 창과 용우의 양손 대검이 충돌하는 순간, 갑자기 용우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충격이 그의 어깨를 강타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방을 벌이는 와중에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프리징 필드!
그가 일단 창을 크게 휘두르면서 냉기 파동을 폭발시켰을 때였다.
폭발하는 냉기를 뚫고 그 앞에 불쑥 권총의 총구가 들이밀어졌다.
-마격탄!
에너지탄 한 발이 그의 머리통을 때렸다.
허공장 때문에 에너지탄이 직접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맞은 충격 때문에 머리가 확 꺾이고 말았다.
-용참격!
용우가 시퍼런 빛을 발하는 나이프로 미켈레의 몸통을 갈랐다.
파지지지직!
그러나 미켈레의 반응이 빨랐다. 허공장을 전면에 집중시켜서 그 공격을 튕겨내는 게 아닌가?
“제법이군!”
<이놈!>
반동으로 물러나는 용우를 미켈레가 창으로 찔러 버렸다.
휘이이이잉!
그러나 그 창격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이건……!’
순간 미켈레는 용우가 쓴 트릭이 뭔지 깨달았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라이트닝 블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발생한 뇌전이 강렬한 타격과 함께 미켈레의 몸통에 꽂혔다.
<커억……!>
타격점을 따라서 뇌전이 체내로 침투하는 일격은 미켈레에게도 제대로 먹혔다.
용우가 푹 숙여지는 미켈레의 머리 옆을 후려갈겼다.
콰아앙!
폭음이 울리며 미켈레의 목이 확 꺾였다.
용우가 추가타를 날리려는 순간, 미켈레가 스펠을 발했다.
-파이어 필드!
화아아아악!
그를 중심으로 화염이 폭발했다.
용우는 허공장을 강화해서 그것을 막아냈지만 밀려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은신과 환상으로 장난을 치다니! 쳐 죽여주마!>
동시에 그가 스펠을 발했다.
-섀도우 그랩!
은신이나 환상을 파괴하는 스펠이다.
그와 마주하고 있던 용우의 뒤쪽에서 또 다른 용우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그가 보고 있던 용우는 스펠로 만들어낸 환상이고 진짜는 은신 스펠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보는 것과 실체가 어긋나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이제 그 짓거리는 통하지 않는다.>
“마술 트릭 하나 간파했다고 의기양양하셨군?”
용우가 씩 웃었다.
“뭐, 네 실력은 대충 다 봤다. 그럼 본격적으로 놀아볼까?”
<소원대로 해주지.>
이번에도 먼저 뛰어든 쪽은 용우였다.
미켈레가 창을 내지른다. 창술만은 제대로 익혔는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절도가 있었다.
그러나 용우는 마치 찌르기의 타이밍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 앞에서 멈춰서더니 엇박자로 파고들었다.
투학!
일권이 몸통을 때렸다.
-라이트닝 블로!
뇌전이 폭발하면서 미켈레의 몸이 튀어올랐다.
미켈레는 뒤로 펄쩍 뛰면서 거리를 벌렸지만 용우는 주저 없이 쫓아 들어온다. 그리고…….
투학!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 이게 대체……?>
미켈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의 몸이 아니기에 고통은 미미했다.
애당초 팬텀을 통해서 팔라딘과 셀레스티얼을 만든 이유가 각성자의 시신에 빙의하는 것보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으니까.
통증은 어디까지나 조종하는 그릇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신호 수준에서만 받아들이고 그 이상은 차단해 버린다.
그것은 즉 일반적으로는 반응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반응한다는 것이다. 뇌가 흔들리는 타격을 받았을 때도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반응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기에 연타를 맞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투콱!
빠져나오면 또 맞는다.
공방의 흐름이 일방적이다. 미켈레가 뭘 어떻게 하려고 해도 용우와 거리를 벌리지 못하고 두들겨 맞았다.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냐!>
미켈레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도 없었다.
‘확신했다.’
그런 그를 보며 용우는 싸늘하게 웃었다.
‘이놈은 괴물 사냥꾼이야. 그뿐이다.’
미켈레가 조종하는 셀레스티얼의 힘은 훌륭하다.
마력과 내구도 면에서는 지금의 용우를 능가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미켈레에게는 대인전 기술이 없다.
각성자로서 각성자를 상대해서 철저하게 부수고 죽이기 위한 노하우가 존재하지 않는다.
‘타락체까지 나올 것도 없어. 언데드만 나와도 부족함을 통감하게 될 거다.’
어비스의 지옥 같은 3년, 그 하반기부터 등장한 최악의 적들.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는 언데드.
인간보다 강하고, 인간만큼 영리한 타락체.
이들과의 싸움은 단순히 강한 몬스터와의 싸움이 아니었다.
몬스터의 강점과 인간의 강점을 융합시킨 재앙과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 속에서 어비스의 각성자들은 배울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사냥하는 법을.
그리고 그들이 터득한 기술은 언데드와 타락체를 사냥하는 경우에만 쓰인 것이 아니었다.
<크억!>
또다시 일격이 들어갔다.
용우가 쓰는 수법은 간단하다.
허공장을 이용해서 위치와 간격을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체외 허공장 사용자끼리 격투전으로 맞붙을 때는 일반인이 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 추가된다.
바로 서로의 허공장이 맞부딪칠 때의 반응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간격 개념을 갖게 된다. 허공장이 전개된 범위가 자신이 사수해야 하는 거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의식은 허공장이 반응할 때 거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투학!
용우는 그 점을 이용해서 미켈레를 농락하고 있었다.
허공장의 범위를, 형태를, 밀도를, 심지어 얇게 만들어서 여러 겹으로 펼치기까지 하면서 미켈레가 자신이 의도한 타이밍에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엇박자로 찌르고 들어가서 정타를 넣고 있는 것이다.
‘역시 이놈들은 인간이야.’
또다시 일권으로 미켈레의 머리를 때리면서 용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켈레는 자존심이 대단히 강한 인물이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에게는 아주 손쉽게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대기 중인 4명의 팔라딘에게 합공을 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 때문에 그 수단을 고르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압도적으로 우위라고 믿기 때문에 어떻게든 스스로 이 상황을 뒤집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진짜 튼튼하군. 튼튼하기로는 몬스터 저리 가라인데?”
<닥쳐라!>
이 정도로 두들겨 맞았는데도 미켈레의 전투 능력은 거의 떨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프리징 필드!
그가 찌르기를 가하는 척하면서 한기 파동을 폭발시켰다.
“또 그거냐?”
그러나 용우는 마치 자신을 집어삼키는 한기 파동이 허상에 불과한 것처럼 뚫고 들어왔다.
<아니?!>
-용참격!
어느새 뽑아 든 나이프에서 시퍼런 에너지 칼날이 뿜어져 나오더니 미켈레가 조종하는 셀레스티얼의 몸통을 갈랐다.
콰지지지직!
셀레스티얼의 몸통이 부서지면서 기다란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 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커먼 어둠이 피처럼 뿜어져 나올 뿐이다.
<크으윽, 이, 이 자식……!>
용우는 싸늘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열기나 냉기, 뇌전처럼 한 가지 속성에 특화된 적은, 용우에게는 비교적 싸우기 쉬운 편이다. 각 속성에 특화된 방어 스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군주 개체들과는 달리 다른 속성의 스펠도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 하지만 빙설의 창 덕분에 한기 계통 스펠이 가장 위력이 크고 쉽게 쓸 수 있어서 극단적인 의존성을 보인다.’
그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심리다.
용우는 상대가 인간임을 확신한 순간부터 하나하나 착실하게 약점을 찔러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놈들이 구현한 방식은 지휘관 개체처럼 완전하지 않아. 시간 차가 있다.’
전투를 수행하면서 관찰한 결과, 용우는 그들에게서 치명적인 약점 하나를 발견했다.
저것은 마치 인간이 게임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리면 캐릭터가 그것을 수행하기까지 미세한 시간 차가 존재한다.
결코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미미하나마 용우가 인식할 수 있는 시간 차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문제다.
게임을 할 때야 서로 동등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 괜찮다. 게임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몬스터거나, 아니면 성능만으로도 압살할 수 있는 상대라면 문제없다.
하지만 용우는 그중 어느 조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금까지 약점이라고 느끼지 못한 것이 용우 앞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만다.
문득 용우가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너희들 본체도 마찬가지일까?”
<뭐라고?>
미켈레 입장에서는 뜻 모를 물음이었다.
용우도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라 혼잣말을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고스트 본체가 이거보다 강해봤자 그뿐이겠는데.’
용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끝내기 단계에 들어갔다.
쾅!
갑자기 미켈레의 몸이 크게 한쪽으로 기울였다.
<뭐, 뭐지……?>
미켈레가 당황했다.
갑자기 오른쪽, 귀 바로 앞에서 폭음이 터진 것 같았다.
자기 몸이 아니기에 고막이 찢어지거나 청각이 망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놀라서 몸이 반응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용우는 그 틈을 놓칠 만큼 어리숙하지 않았다.
콰직!
시퍼런 빛을 발하는 용우의 나이프가 미켈레의 몸통을 깊숙이 찔렀다.
<크어……!>
미켈레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들으며 용우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쉬운 싸움이었다.
미켈레는 강한 인간과 싸우는 법을 몰랐고, 자신의 약점을 몰랐다.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도 아니라 여럿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자존심을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인의 목숨을 희생시켜 가면서 원격조종을 택한 시점에서, 네 한계는 뻔했다.’
자기 목숨은 아깝지만 그래도 자기 손으로 직접 혼내주는 기분은 맛보고 싶다.
그런 이유로 타인의 목숨을 희생시켜 가면서, 그 몸을 강탈해서 원격조종한다.
목숨이 위협받는 공포가 싫고, 자기가 고통받는 것도 싫지만 그러면서도 자기 손으로 직접 상대를 짓밟는 실감과 쾌감만은 누리겠다.
이 얼마나 비겁하고 추악한 태도인가?
용우는 그로 인한 허점을 용서 없이 찔렀다. 그가 쓴 수법은 미켈레의 몸이 본인의 몸도 아니고 갑옷 형태이기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속임수였다.
마력을 가공해서 만들어낸 투명한 젤을 미켈레를 때리면서 붙여두었다.
그리고 그 젤을 수신기로 이용해서 골전도 이어폰과 비슷한 방식으로 소리를 발생시켰다.
<이래봤자 소용없다……!>
미켈레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용우에게 손을 뻗었다.
이것은 어차피 자기 몸이 아니다. 용우를 붙잡고 자폭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다.”
용우가 씩 웃었다.
미켈레는 그 웃음을 보며 불길함을 느꼈다. 이놈이 또 뭘 하려는 것일까?
-아스트랄 플레어!
그 답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아아아아아아악!>
몸을 찌른 나이프에서 투명한 청색 불꽃이 폭발하면서, 상상도 못 한 격통이 그의 정신을 강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