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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62화 (6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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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반도호랑이 1부대가 30미터급 게이트에 돌입하기 3시간 전.

프랑스 파리의 오래된 카페 한구석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구릿빛 피부에 푸른 눈동자, 그리고 약간 빛바랜 금발을 가진 약간 처진 눈매의 중년 남자였다. 붉은 셔츠의 단추를 가슴팍까지 풀어헤치고 하얀 재킷을 입은 남자는 요즘 유행하는 휴대폰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띠리리리리…….

그러다 문득 벨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휴대폰 화면에 뜬 상대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히죽 웃었다.

“여어, 미켈레.”

[모로.]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은 구세록의 계약자의 일원이며, 범죄 조직 팬텀을 뜻대로 움직이는 미켈레였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남자는 엔조 모로.

프랑스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헌터 팀 에스쁘아의 CEO이며 구세록의 계약자이기도 했다.

엔조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웬일이야?”

[알면서 묻지 마라.]

미켈레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마음만 먹으면 정보 공간을 통해서 세계 어디든 연결될 수 있는 그들이 굳이 전화를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구세록의 계약자들에게 알리기 싫은 일을 처리하고 싶을 때.

엔조가 피식 웃었다.

“진짜 하려고?”

[싸우는 건 내가 한다. 다른 놈들의 이목만 막아주면 돼. 특히 다니엘 윤, 그 빌어먹을 불신자가 알게 되면 반드시 개입해 올 거다.]

“못 말리겠군. 알겠어. 최대한 막아보지.”

[나중에 답례하지.]

“필드와 오버 커넥트는?”

[알아서 할 거다. 넌 이번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걸로 해둬.]

“무운을 빌겠어.”

전화가 끊어지자 엔조 모로는 휴대폰을 보며 뱀처럼 웃었다.

“하여튼 광신도 새끼는 말이 안 통한다니까. 뭐, 어쨌든 재미있군. 아끼던 셀레스티얼까지 동원하는데 과연 0세대 각성자가 버틸 수 있을까? 되도록 생포되어 주면 좋겠는데.”

* * *

검은 구멍 속으로 끌려 들어오는 순간, 용우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했다.

‘오버 커넥트!’

워프 게이트를 만들어내는 스펠, 오버 커넥트였다.

누군가 게이트 안에 워프 게이트를 열어서 용우를 다른 장소로 납치한 것이다.

‘고스트인가.’

거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주변을 가득 채웠던 어둠이 사라지면서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블링크!

용우는 워프 게이트의 반대쪽 문으로 나오는 순간 허공장을 펼치면서 블링크를 썼다. 들어가자마자 기습당하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걱정 마라.>

그러나 마치 용우의 그런 행동을 비웃는 듯한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어차피 네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부른 것이니.>

용우는 텔레파시를 발한 자를 바라보았다.

“…고스트 레플리카.”

얼마 전 인천항에서 팬텀 검거 작전에 참가했을 때 격돌했던 하얀 갑옷, 고스트 레플리카가 보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4명이었다.

‘전부 그때와 같은 타입이군.’

전부 빙설의 창을 들고 있었다.

‘한 놈이 여러 개체를 동시에 내보내는 것도 가능한 건가? 그럼 유니크한 개체가 아니라 일종의 전투병이라는 건데…….’

용우는 고스트 레플리카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인천항에서 싸웠을 때는 고스트와 관련이 있는 것치고는 별로 성능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산형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놀라운 성과다.

‘장비로 보나 정신파로 보나 그때 그놈이겠고.’

처음 말을 걸어온 자의 텔레파시는 기억에 있었다.

팬텀 검거 작전에서 마지막 순간 몸의 주인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던 정체불명의 남자다.

용우는 아마도 그가 7인의 고스트 중 빙설의 창의 주인이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최소한 한 개체는 직접 조종하는 거니까 지난번하고는 다르겠지. 그래도 4개체를 동시에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인천항에서 싸웠을 때, 고스트 레플리카는 전혀 용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수가 4명이나 된다면 어떨까?

게다가 그중 하나는 전투 기술도 월등하다면?

‘어디 실력을 볼까?’

용우는 슥 훑듯이 주변 지형을 살폈다.

어딘지 모를 암석 지대였다.

한쪽으로는 바다가 보였고 해안을 따라서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하게 솟아난 암석군들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는 야트막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섬인가?’

용우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고스트 레플리카라, 비루한 놈들이 생각할 만한 명칭이로군. 이 그릇의 이름은 팔라딘. 자신을 바쳐 신의 뜻을 행하는 숭고한 존재다.>

“팔라딘이라. 그럼 고스트라 불리는 너희들의 정식 명칭은 뭐지?”

<우리는 구세록이 내려준 성좌의 힘으로 인류를 수호하는 자들.>

팔라딘이 마치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구세록의 계약자.>

그는 구세록의 계약자 미켈레였다.

자신들을 소개한 미켈레가 말을 이었다.

<0세대 각성자, 너는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네게 속죄의 기회를 주지. 인류를 구하기 위한 연구에 너 자신을 제공해라.>

그 말에 용우의 입매가 비틀렸다.

일그러진 웃음을 지은 용우가 그를 노려보았다.

“모르모트가 되라는 건가?”

<그래. 그것만이 존재 자체가 대죄인 네가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하,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은 용우가 물었다.

“무슨 근거로 그딴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들어나 볼까?”

<어비스, 그 죄업의 전장에서는 아무도 돌아와서는 안 되었다.>

“…….”

순간 용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이죽거리던 모습이 거짓말인 것 같다. 한없이 차가운 살의가 팔라딘을 향하고 있었다.

<구세록은 위대한 신이 가련한 인류에게 내려준 구원의 계시. 예언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그 예언을 어그러뜨리는 너 같은 이레귤러는 존재 자체가 인류를 위협하는 해악이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지는군. 어비스에 대해서 뭘 알고 있지?”

<그곳은 인류에 해악을 끼치는 죄인들이, 다가올 재앙에 맞서 인류에게 속죄하기 위한 연옥이었지. 신의 의지로 선택받은 너희들은, 그곳에서 모두 죽는 것만이 죄를 씻는 길이었음이 분명하다.>

용우의 얼굴에 표정이 돌아왔다.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너, 어비스에 대해서 잘 모르는군?”

<과연 그럴까? 구세록은 생존자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너희들은 모두 그곳에서 죽을 운명이었다. 그리고 죄인 24만 명의 죽음이 각성자 튜토리얼을 여는 기반이 되었지.>

“뭐?”

<어비스로 파병된 24만 명의 죄인이 의무를 다하는 순간, 세계는 예정된 운명을 맞이했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가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 성좌의 힘이 주어졌으며, 각성자 튜토리얼이 열렸다. 자, 이래도 내가 어비스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은가?>

의기양양해하는 미켈레의 말에 용우는 곧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잠시 그를 탐색하듯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랬군. 조금 전과는 달리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고.”

<감히 죄인 주제에 신의 뜻을 대행하는 사도인 내 말을 품평하는가?>

미켈레가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용우는 싸늘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놈은 정신파가 정직해.’

어비스에서는 서로를 약탈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렸었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텔레파시로 대화할 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나중에는 그 기술을 무력화하기 위해 진실을 거짓처럼,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는 기술도 누구나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하긴 우리 같은 기술을 익혀야 할 이유가 없었겠지.’

지구에서는 그런 기술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지닌 성좌의 힘은 인류의 수호자라고 자칭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대적은 몬스터였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 중에는 그들이 계략을 쥐어 짜내야 할 만큼 위험한 존재가 없었을 테니까.

용우가 물었다.

“여긴 어디지?”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

“왠지 난 여기랑 비슷한 곳을 아는 것 같은데.”

<해외여행 경험이 풍부한 모양이군.>

“그럴 리가. 그저 게이트 안의 필드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을 뿐인데?”

<…….>

잠시 침묵하던 미켈레가 웃었다.

<감각이 예리하군. 그래, 여기는 게이트 안의 필드다.>

순간 용우의 눈이 빛났다.

‘역시 방심하고 있군.’

완전히 방심하고 있다. 용우를 다 잡은 물고기로 생각하기에 정보를 말해주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이 정도는 말해줘도 상관없는 사소한 정보라고 생각한다.

혹은 중요한 정보라도 어차피 제압할 놈이기에 얼마든지 떠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우위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오만해진다.

용우는 어비스에서 이런 부류를 여러 번 봐왔다.

“그랬군. 하지만 몬스터는 하나도 안 보이는데, 네놈들이 전부 처리하기라도 한 건가?”

<헌터들이 처리했다.>

“음?”

<코어 몬스터를 잃은 게이트는 소멸하지. 하지만 잘 생각해 봐라. 공간이라는 게 문이 사라진다고 없어져 버리는 걸까?>

“게이트가 사라질 뿐 그 안의 필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는 이미 제압된 게이트의 내부다……. 그런 건가?”

<그렇지.>

“흥미롭군. 아무래도 네놈들은 아주 아는 게 많은 것 같은데?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도 그렇고.”

<차근차근 알려주지. 너를 무릎 꿇린 다음…….>

순간 용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블링크!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던 팔라딘의 뒤를 잡았다.

-라이트닝 블로!

용우의 일권이 적의 등판에 꽂혔다.

꽈아아앙!

기습당한 팔라딘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치명타는 되지 못했다. 팔라딘이 허공장을 견고하게 전개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단하다. 처음부터 기습당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거야.’

수적 우위를 믿고 방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용우의 전투 능력을 얕잡아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콰아아앙!

그런 용우를 향해서 날카로운 얼음 칼날이 내리꽂혔다.

용우가 피하자 얼음 칼날이 꽂힌 자리에서 냉기가 폭발하면서 주변을 새하얗게 얼렸다.

<블링크, 아직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사용자가 없는 스펠인데 자유자재로 쓰니 참 골치 아프군.>

물론 고스트, 아니, 구세록의 계약자 자신들은 제외한 이야기이리라.

용우는 소총을 들어서 마격탄을 갈겨주고는 다시 공간을 뛰어넘었다.

파지지지직!

정면에서 나타난 용우가 허공장으로 미켈레를 들이받았다.

일순간 허공장 잠식이 일어나면서 적의 허공장이 열렸지만…….

<나한테는 안 통한다!>

미켈레가 직접 조종하는 팔라딘은 허공장 잠식에 대응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용참격!

그러나 용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나이프를 붙잡고 일격을 날렸다.

파아아앙!

허공장에만 집중하던 미켈레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맞아버렸다.

충격으로 날아가는 그에게 용우가 소총을 겨누는 순간이었다.

-프리징 버스트!

또 다른 팔라딘이 전력으로 용우를 향해 투창 공격을 가했다.

콰아아아아아!

그 파괴력은 조금 전에 날아든 얼음 칼날과는 차원이 달랐다.

떨어진 지점이 충격으로 박살 나서 흩어지다가 거기서 터져 나온 냉기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치 암벽 한쪽에 커다란 얼음 밤송이가 달라붙은 것 같은 기괴한 형상이었다.

쿠르르릉……!

그리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얼음이 부러지면서 바다 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장갑 정도는 가능하겠군.’

용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적들로부터 거리를 벌리고 장비를 교체하고 있었다.

아직 적들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모른다. 거리를 벌렸다 해도 느긋하게 배틀 슈트를 갈아입을 여유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장갑 정도는 교체할 수 있다. 용우는 시공의 보물고를 열고 양쪽 장갑을 M슈트의 건틀릿 파츠로 교체했다.

<촐랑촐랑 도망치는 솜씨가 일품이군. 일단 술래잡기를 끝내도록 하지.>

숲에서 장비를 교체하는 용우에게 적의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쿠우우웅……!

뭐라고 떠들어대든 무시하던 용우는 다음 순간 덮쳐온 마력 파동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5등급 마수 수준?’

인간의 한계라고 일컬어지는 페이즈 12의 마력은 4등급 몬스터 수준이다.

그런데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마력이 분출되고 있었다.

용우는 위험을 감수하고 나무 위로 올라가서 마력 파동의 진원지를 보았다.

구구구구구……!

그리고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동양인 청년이 변신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또 하나가 추가되는 건가?’

용우는 곧바로 소총을 들어서 그 청년을 쏘았다.

-염동충격탄!

초음속으로 쏘아져 나간 푸른 에너지탄이 표적을 덮친다.

‘이런.’

하지만 빗나갔다.

이곳에는 용우를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소총의 전자식 스코프만을 의지해서 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용우는 그것만으로는 500미터 거리의 저격을, 그것도 급하게 쏴서 성공시킬 사격 실력이 없었다.

“큭…….”

용우는 블링크로 거리를 좁힌 다음 제2격을 날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목표한 지점으로 날아갔다.

퍼어어어엉!

하지만 청년을 감싸며 펼쳐진 허공장이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허공에서 홀연히 출현한 물질들이 청년과 결합하면서 그의 모습이 급격하게 변해갔다.

지난번에 본 팔라딘의 변신 과정과 똑같다. 하지만 결과물은 달랐다.

“뭐야? 팔라딘 다음에는 천사야?”

팔라딘보다 훨씬 화려한 존재였다.

기본적인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머리 위에는 굵직한 빛의 고리가 떠서 일렁이고 있었고, 등 뒤로 분출된 하얀빛은 마치 펄럭이는 망토처럼 보였다.

<정답이다. 이 그릇은 셀레스티얼.>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팔라딘에게서 들려오던 미켈레의 텔레파시가 새로운 존재, 셀레스티얼에게서 들려왔다.

‘몸을 갈아탔나.’

팔라딘은 여전히 4명이다. 움직임이 멀쩡한 걸 보면 원래 주인에게로 제어권이 돌아간 모양이다.

‘혐오스러운 놈이군.’

인간을 모르모트로 쓰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들의 의지를 박탈하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기까지 하다니.

자기는 전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타인의 목숨을 멋대로 칼날 위에 올려두고 있지 않은가.

그 사실에 혐오감과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

셀레스티얼이 창을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가 갑자기 중간 과정을 생략한 것처럼 용우 앞에 나타났다.

‘블링크를 쓸 수 있었나!’

용우가 놀랐다. 팔라딘과 달리 셀레스티얼은 블링크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프리징 필드!

셀레스티얼을 중심으로 냉기가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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