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58화 (58/225)

1

작년에 데뷔한 이후 용우는 한 달에 1, 2회 정도의 페이스로 게이트 제압 작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한국 헌터 업계 기준으로는 일반적인 페이스였다.

목숨 걸고 게이트에 돌입해서 몬스터와 싸우는 전투 스트레스는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기에 헌터 관리부는 각 헌터 팀들에게 되도록 많은 휴식 시간을 보장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게으른 천재.”

유현애의 인사를 받은 용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건 무슨 헛소리야?”

“요즘 SNS나 인터넷 헌터 커뮤니티에서 아저씨 부르는 별명이 그거예요.”

“응?”

“아저씨 올해 2번밖에 전투 참가 안 했잖아요. 그래서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고 있어요.”

“…….”

그러고 보니 그랬다.

벌써 6월 초인데 배틀 힐러 서용우 신분으로 수행한 전투는 아직 2회뿐이었고 이번이 3회째였다.

인터넷에서는 지윤호의 뒤를 잇는 차세대 배틀 힐러가 헌터로서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었다.

지금까지 배틀 힐러 서용우로서 참가한 전투에서 신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기에 더 그랬다.

물론 용우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실제로는 50미터 제압 작전 같은 굵직한 작전을 포함해서 꾸준히 전투를 치러왔으니까.

하지만 제로의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이상 세상에서 용우를 보는 시각은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대로 떠들어대라고 해.”

용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상관없었다.

용우는 그 흔한 SNS 계정 하나 없는, 이 시대에는 상당히 희귀한 인간이었다.

“어쨌든 오늘 잘 부탁해요.”

오늘 용우는 팀 반도호랑이의 의뢰를 받고 배틀 힐러 서용우로서 여기에 왔다.

팀 반도호랑이의 1부대는 1월에 지휘관 개체의 첫 출현으로 인해서 큰 타격을 입고 한동안 휴식에 들어갔다.

1부대의 역할이 크기에 팀 반도호랑이는 발 빠르게 리빌딩에 들어갔고, 2부대와 3부대의 베테랑 헌터들을 투입하는 것으로 일단 1부대를 정상화시켰다.

하지만 역시 사고 전과 비교하면 전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원래 다수의 부대를 돌리는 헌터 팀들은 어디나 1부대가 최고의 인원들을 모은 1군이고 나머지는 2군 역할을 하니 어쩔 수 없다.

2군 취급받는 부대들은 베테랑이라고 해도 헌터 업계의 최전선에서는 밀려난 헌터들의 자리인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각성자들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강해지고 있으니까.

오래된 헌터들은 아무리 노련하고 뛰어나도 최전선에서 요구하는 전투 수행 능력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그 요구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전설로 불린 오성준이 은퇴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정상급 헌터들조차도 남들보다 오래 버틸 뿐,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다.

팀 반도호랑이가 전력을 회복하는 것은 유현애를 비롯한 7세대 각성자들이 충분히 성장한 후, 아마도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이 되리라.

용우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내가 활약할 일이 안 생기도록 잘해.”

“아, 말 좀 예쁘게 해주면 안 돼요?”

“안 돼.”

“까칠한 아저씨 같으니. 그나저나 차 샀어요?”

게이트가 출현한 곳은 도심 한복판이었다.

팀 반도호랑이의 헌터들은 헬기로 왔지만 용우는 혼자 검문을 지나서 게이트 근처까지 차를 몰고 왔다. 그의 에오제스 화이트울프의 매끈한 하얀 차체는 도로에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저거 에오제스 화이트울프죠? 5억 넘는다던데.”

“옵션 다 넣으니까 6억 8천만? 뭐, 그쯤 되던데?”

“…….”

“너희 팀에도 비싼 차 타고 다니는 사람 많을 텐데. 너도 사려면 얼마든지 살 수 있잖아?”

지금의 헌터들은 벌이가 좋다. 하위권 팀의 헌터들이더라도 대기업 사원들 연봉을 훨씬 웃도는 수익을 올린다.

유현애도 연봉만 50억 원에 달한다. 매 작전 때마다 벌어들이는 인센티브까지 합치면 올해 총수익은 그 2배를 넘을 것이고, 내년에는 몸값이 더 오를 것이다.

“그렇기야 한데, 비싼 차 사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면허도 없고.”

“하긴 팀의 매니저가 따라다니면서 일해주는데 차는 필요 없겠지.”

“그래도 화이트울프 차주는 주변에 한 사람도 없어서 직접 보니까 신기하네요.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이거 게이밍 마우스 같지 않아요?”

“…….”

6억 8천만 원짜리 차를 순식간에 싸구려로 격하시키는 비유였다.

‘아, 젠장. 진짜로 그렇게 보이잖아.’

화이트 컬러에 검은 라인과 LED를 넣어서 빛이 나게 만든 게이밍 마우스라면 이미지가 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작전 끝나고 나 한번 태워주면 안 돼요?”

“안 돼.”

“짠돌이.”

“여태 몰랐냐?”

용우와 유현애가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근육질의 여성 헌터 이미나가 다가와서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오늘 잘 부탁합니다.”

“예. 잘 부탁합니다.”

용우와 악수를 나눈 그녀가 유현애에게 다가가서 귓속말로 물었다.

“저분이랑 다른 데서 만났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그 말에 유현애가 뜨끔했다. 공식적으로 두 사람은 거의 접점이 없는 사이니까.

이미나는 딴에는 작게 속삭였지만 청각이 좋은 용우에게는 다 들렸다. 그래서 용우도 뜨끔하고 유현애가 어떻게 둘러댈지 귀를 기울였다.

“연구소에서 몇 번 만났어요. 저분도 권희수 박사님한테 불려가서…….”

“그래? 여태 한 번도 말 안 했잖아.”

“이야기하기도 좀 그래서…….”

“그랬구나. 그럼 혹시 저분 요즘 활동 없었던 게 그쪽 일 때문이야?”

“아마도요?”

유현애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 얼버무렸다.

권희수 박사와 관련된 일은 비밀 엄수 서약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아서 핑곗거리로 삼기가 좋았다.

이미나도 대충 말할 수 없었다는 것으로 납득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용우에게 말했다.

“가시죠.”

곧 용우는 모두가 모여 있는 막사로 가서 팀원들과 간략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팀원들이 용우를 보는 시선은 미묘했다.

용우는 그들 중 상당수를 위기에서 구해준 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로의 가면을 쓴 채로였다. 배틀 힐러 서용우는 그들 입장에서는 나이와 배경 때문에 대하기 짜증 나는 후배 헌터일 것이다.

‘평판이 나쁘니 할 수 없지.’

배틀 힐러 서용우의 실력은 이미 업계에서도 인정받았다. 같이 뛰어본 헌터들은 용우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은 어떨까?

신인 주제에 배틀 힐러라는 특수성을 이용, 헌터 라이센스 시험을 치르지도 않고 헌터가 되었다.

헌터 팀에 소속되지 않고 백원태의 비호하에 프리랜서가 되어서 일을 까다롭게 고르며, 좀처럼 사냥에 나서지도 않는다.

‘평판이 좋으면 이상하군.’

스스로가 처한 상황이 쉽게 납득이 간다.

이게 다 백원태 때문이었다.

‘그 아저씨의 주책맞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바람에 이런 꼴이 되다니…….’

용우는 마음속으로 이런 상황을 기획한 백원태에게 소소한 저주의 말을 퍼부어주었다.

곧 브리핑을 마친 부대장이 말했다.

“팀 리빌딩 후로 지난번 임무를 잘 처리했지만, 이번에는 30미터급이다. 모두 긴장을 놓지 않도록.”

팀 반도호랑이가 용우를 부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고를 당하기 전의 1부대라면 30미터급 게이트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1부대로는 좀 불안한 감이 있기에 용우를 고용해서 만약을 대비한 것이다.

“그럼 돌입한다.”

분대장 이미나를 필두로 한 근접 전투원들의 도입으로 3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30미터급 게이트에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5등급 몬스터가 존재한다.

운이 나쁘다면 2마리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정찰 단계에서는 5등급 몬스터의 수를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작년에 용우가 구원하러 갔던 팀 블레이드 2부대 같은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만큼이나 중요성이 높은 문제가 또 있었다.

“휴머노이드가 있으니 지휘관 개체가 출현할 가능성을 반으로 놓고 진행해야겠군.”

휴머노이드 타입의 3등급 몬스터, 트롤이 있었다.

트롤은 2미터를 넘는 키를 가졌지만 몸은 비쩍 말랐고, 팔다리가 인간보다 훨씬 길며, 피부는 가만히 서 있으면 나무와 잘 분간이 안 가는 몬스터였다.

심한 매부리코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으며 숲에서의 기동성과 전투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정찰하기는 편한 지형이군.”

게이트 안의 환경은 다양하다.

이번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평야 지대였다.

넓은 들판과 그 끄트머리로부터 이어지는 완만한 숲지대.

호수도 없고 험한 지형도 없기에 정찰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헌터들 입장에서 보면 좋은 지형이 아니다.

저격수가 자리 잡을 포인트도 마땅치 않고, 적들을 흩어놓고 하나하나 처리하기도 어렵다. 적들이 출입구 쪽에 구축한 진지를 노리기도 쉽다.

“화력으로 밀어야겠어. 문제는 5등급 몬스터가 무엇이냐인데…….”

퍼어엉!

그때였다.

숲 쪽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드론 한 대가 격추당해서 낙하했다.

“뭐야? 설마 악마숲인가?”

5등급 몬스터 중에 헌터들이 상대하기 싫어하기로는 압도적인 랭킹 1위가 바로 악마숲이다. 그 광역 포격 능력 때문에 전술에 제약이 생기니 당연했다.

“아닙니다.”

곧바로 부정한 것은 서포트 팀이 아니었다.

용우가 먼 곳을 보며 말했다.

“지휘관 개체일지도 모르겠군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1부대장은 올해로 30세. 용우보다 업계 경력은 훨씬 길었지만 나이가 적었기에 존대를 해주었다.

그가 놀라서 묻는 순간, 숲속에서 붉은 에너지탄 하나가 날아올라서 상공을 때렸다.

퍼어엉!

숲을 적외선 스캔하고 있던 또 한 대의 드론이 격추당했다.

용우가 말했다.

“저게 스펠이 아니면 불꽃도마뱀 같은 놈이 나온 걸 텐데, 이 지형에서 나올 가능성은 없지 않습니까?”

“젠장, 결국 나왔나.”

부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지휘관 개체가 출현하는 것만으로도 작전 수행 난이도가 확 올라간다.

그런데 그 지휘관 개체가 공중 타격이 가능한 놈이라니 그야말로 최악이 아닌가?

“드론을 높이 올려서 디코이(Decoy: 미끼)를 내리고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모아. 그동안 RC카로 빠진 지형 데이터를 파악한다. 무인 전차도 발진 준비시켜.”

부대장의 판단은 빨랐다. 그가 말했다.

“부대를 셋으로 나눈다. 각성자는 알파 분대와 브라보 분대로. 나머지는 나와 함께 찰리 분대로. 알파 분대는 좌측, 브라보 분대는 우측, 그리고 찰리 분대는 진지 방어.”

1부대의 각성자 헌터는 8명이다. 용우가 합류해서 9명이 되었다.

부대장이 용우에게 물었다.

“브라보 분대와 함께 타격에 참가해 줄 수 있겠습니까?”

“문제없습니다.”

배틀 힐러는 전투 수행이 가능한 힐러다. 용우의 근접전과 사격 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브라보 분대장은 이미나였고, 유현애가 포함되어 있었다.

용우는 분대장이 자신을 브라보 분대에 배치한 이유가 그것이리라 짐작했다.

“이렇게 손발 맞춰보기는 처음이네요. 잘 부탁해요, 아저씨.”

“그래.”

용우가 등에 메고 있던 소총을 들었다.

배틀 힐러 서용우일 때는 시공의 보물고를 쓸 수 없다. 그래서 전투에 쓸 장비를 전부 들고 다녀야 하고, 그것이 전투 수행 능력을 제한하는 점이 상당히 짜증 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모두가 겪는 상식적인 한계니까.

‘과연 어느 정도의 변수일까?’

저 지휘관 개체는 과연 그 상식적인 한계 안에서 격파할 수 있는 상대일까?

용우는 그 사실이 궁금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