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55화 (5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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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록의 계약자들이 술렁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한국 헌터 업계의 거물이 된 놈이 왜 경찰 지원 따위를…….”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용우가 추측한 대로 팬텀은 구세록의 계약자, 정확히는 그들 중 3명이 연합해서 만들어낸 조직이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이 조직은 구세록이 전한 지식 중 가장 악랄한 것을 이용해서 인간을 모르모트화하고 있다.

이 조직은 그들이 만들어낸 마약 ‘아니마’를 퍼뜨리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들의 목적은 마약상들과 달리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니마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간에게 퍼뜨려서 중독자 중에 특정한 반응을 보이는 자를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까지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세상에는 의지할 곳 없는 인간이 넘쳐났다.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그런 인간들이.

그런 인간들 사이로 퍼져 나간 아니마는 그들에게 수많은 실험용 샘플들을 제공해 주었다. 그 샘플들을 이용해서 추악한 연구를 진행한 끝에 그들은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양지의 연구자들이 도달하지 못한, 오로지 인륜을 저버리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는 성과를.

“다니엘 윤, 이런 정보를 모르고 있었나?”

“미켈레, 네가 나한테 따지고 들 처지인가? 내가 분명히 한국에서 저 팬텀이라는 쓰레기들을 치우라고 경고했을 텐데?”

다니엘 윤이 금발의 이탈리아인 남자, 미켈레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의 살기를 느낀 미켈레가 가면 속에서 비아냥거렸다.

“구세록의 선택도 받지 못한 동양 원숭이들을 이런 식으로나마 쓸모 있게 만들어준 내게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네놈이 영국의 영광을 강탈해서 한국을 살렸으니, 한국은 감히 신의 뜻을 거스른 죄를 그런 식으로라도 속죄해야 한다.”

“닥쳐. 망상병자.”

다니엘 윤과 미켈레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지금 미켈레가 말하는 것은 사실 구세록의 계약자들 사이에서는 해묵은 문제였다.

미켈레는 구세록의 광신도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구세록이야말로 신이 내린 계시라고 믿었으며, 처음 구세록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낸 7개 국가야말로 신에게 선택받은 국가들이라고 주장했다.

그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일본

대만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인도

멸망한 영국을 제외하면 모두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헌터 강국들이다.

한국 또한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헌터 강국이지만, 구세록이 출현한 국가 리스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니엘 윤이 구세록을 만난 것은 영국 여행 도중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구세록의 계약자가 되었으면서도 영국이 아니라 한국을 지켜왔고, 미켈레는 감히 구세록의 선택을 저버린 그 행위가 죄악이라고 주장해 왔다. 물론 다니엘 윤은 미켈레의 주장을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치부해 왔고.

그런 사정이 있으니 구세록의 계약자들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최악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득 한 사람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금발 단발머리의 여성, 카르타였다.

“미켈레, 분명히 한국에서 팬텀을 철수시키는 데 동의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말에 미켈레가 불쾌한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그는 곧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만 그래도 이미 뿌려놓은 것들의 성과는 갖고 철수해야 할 것 아닌가? 단계적으로 철수 중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는 건가?”

“한국에서는 셀레스티얼 샘플이 여럿 발견되었다. 그 샘플들에 대해서 몇 가지 확인 작업과 기본적인 실험을 진행하느라 좀 늦어질 수밖에 없었지.”

당연히 네가 내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뻔뻔한 미켈레의 태도에 다니엘 윤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살기만 뿜어내었다.

미켈레가 말했다.

“어쨌든 이번 일은 내 문제니 내가 수습하도록 하지.”

“잠깐.”

카르타가 말했다.

“이걸 빌미로 0세대 각성자에게 손쓸 생각 아닌가? 너는 0세대 각성자를 처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잖아?”

“부정하진 않겠다. 신의 뜻에서 벗어난 이레귤러는 당장에라도 없애야 해. 하지만…….”

미켈레가 코웃음을 쳤다.

그는 구세록을 신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내린 계시이며, 인류가 겪은 재앙은 모두 그동안 쌓아온 죄업을 속죄하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팔라딘으로 0세대 각성자를 처치하는 게 가능할 것 같은가?”

“…….”

그 말에는 금발 단발머리 여자도 반박할 수 없었다.

“오히려 시험하기 딱 좋은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허우룽카이, 오버 커넥트의 유지 시간은?”

그러자 허우룽카이라 불린, 긴 검은 머리카락을 목 뒤로 묶은 남자가 말했다.

“길어봐야 앞으로 40초.”

“나머지 샘플 둘은 포기해야겠군. 제기랄, 하필이면 희귀 샘플들을…….”

미켈레가 짜증을 냈다.

다니엘 윤과 카르타에게 늘어놓은 말은 둘러대기 위해 떠든 거짓말이 아니었다.

저곳에 있던 실험체들은 팬텀 조직의 실험체 중에서도 정말로 귀중한 것들이었고, 더 심도 깊은 연구를 위해 해외에 있는 비밀 연구 시설로 이송하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직 2명이나 옮기지 못한 상황에서 일이 터지다니…….

“간다.”

미켈레가 가면 속에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시공간을 넘어서 거대한 힘이 용우가 있는 인천항에 떨어졌고, 그 힘을 받아들인 ‘그릇’이 하얀 갑옷의 형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 * *

콰아앙!

폭음이 울리며 하얀 갑옷이 컨테이너 벽까지 날아가서 처박혔다.

그를 날려 버린 용우는 여유롭게 한 걸음 내디뎠다.

바삭.

살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하얀 갑옷이 발한 빙결 파동은 강력했다. 반경 10미터가 새하얗게 얼어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용우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기술의 차이를 논할 것까지도 없다. 현재 용우의 마력은 하얀 갑옷을 웃돌고 있었다.

“조악한 짝퉁이군.”

용우가 하얀 갑옷을 조롱했다.

성좌의 아바타가 휘두르는 빙결의 창의 힘은 이 정도가 아니다.

아니, 유현애의 아티팩트 불꽃의 활만 봐도 하얀 갑옷의 창과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을 내재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력 반응 코팅보다는 훨씬 나아. 샘플로 가져가면 권 박사가 비싸게 사주겠는데?”

그렇게 말하는 용우의 손에 마술처럼 양손 대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파지지직!

마력 반응 코팅 처리가 된 칼날이 푸른 스파크를 튀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면서도 하얀 갑옷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기계도 아닐 텐데.’

싸우는 것 말고는 아예 다른 기능이 없는 것 같은 태도였다.

치지지직……!

그때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던 워프 게이트가 한 지점으로 수축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스펠의 지속 시간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용우의 주의가 거기에 쏠린 순간이었다.

하얀 갑옷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해 왔다.

‘단순하군.’

그러나 용우는 차갑게 웃었다.

그 허점은 의도된 허점이었던 것이다.

용우가 하얀 갑옷이 찔러온 창을 가볍게 피하면서 반격했다.

파아아아앙!

컨테이너가 통째로 뒤흔들렸다.

하얀 갑옷은 창으로 허공장을 증폭해서 공격을 막아내고는 반격을 가해왔다. 컨테이너 벽을 박차고 포탄처럼 돌격하면서 창을 찔렀다.

-프리징 필드!

또다시 스펠이 터지면서 한기 파동이 컨테이너 안을 휩쓸었다.

모든 것이 하얗게 얼어붙는 가운데 하얀 갑옷만이 빠르게 움직였다. 새하얀 기운을 두른 그가 얼어붙은 용우를 향해 발차기를 내질렀다.

-블링크!

하지만 그 순간 용우가 사라졌다.

하얀 갑옷이 주춤하는 순간, 용우가 그의 뒤쪽에 나타나서 양손 대검을 휘둘렀다.

-용참격(龍斬擊)!

에너지 칼날이 뻗어나가면서 하얀 갑옷의 왼손을 잘라 버렸다.

<……!>

하얀 갑옷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마격탄(魔擊彈)!

퍼어어엉!

용우가 아무런 장비도 없이 발한 에너지탄이 하얀 갑옷의 얼굴을 때렸다.

허공장 때문에 충격이 오지는 않았지만 일순간 시야가 섬광으로 가려진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하얀 갑옷의 뒤를 점한 용우가 양손을 뻗었다.

파지지직!

허공장이 서로 충돌하면서 격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고작 이 정도냐?”

용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동시에 그의 양손이 하얀 갑옷의 허공장을 통과해서 양팔을 붙잡았다.

“이것도 대응 못 하나?”

하얀 갑옷이 용우를 떨쳐 버리려고 할 때였다.

퍼어어엉!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하얀 갑옷의 팔뚝이 터져 나갔다.

용우가 손을 놓고 물러나는 순간, 그가 잡고 있던 지점이 폭발한 것이다.

그 결과 하얀 갑옷의 왼 팔뚝이 반쯤 끊어지고 오른 팔뚝도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하얀 갑옷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다.

‘이래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군. 마치 뇌가 표백되고 전투 인공지능이라도 심어진 것 같아.’

용우는 그 사실이 기분 나빴다.

하얀 갑옷은 변신 전에는 분명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기계적일 수가 있는가?

팍!

용우가 하얀 갑옷의 머리통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하얀 갑옷이 창의 힘을 발동시키려고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방금 전의 충격으로 창을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파지지직!

용우의 손에 닿은 그의 머리에서 격렬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그아아아아악!>

처음으로 하얀 갑옷이 인간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이다.

용우의 손을 통해 침투해 온 정체불명의 힘이 그의 뇌를 칼로 헤집는 것 같았다.

콰아아아아아!

어느 순간, 하얀 갑옷의 전신에서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의 머리를 붙잡고 있던 용우도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뭔가 왔군.’

용우가 노려볼 때였다.

<어이가 없군.>

거만한 정신파가 울렸다.

<이렇게 쉽게 당할 줄이야. 전투 데이터가 별로 안 쌓인 그릇이라고는 해도…….>

“너, 조금 전까지하고 다른 놈이군?”

용우는 오싹함을 느끼며 물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태도만 바뀐 게 아니다.

인간 그 자체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저 몸을 조종하는 주체가 바뀌었다고 할까?

‘분명 조금 전에 접촉한 그놈이다.’

용우가 하얀 갑옷의 머리를 붙잡고 한 것은 과격한 촉진 행위였다.

그것은 신체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용우는 갑작스럽게 흑인 남자에게 주어진, 마치 먼 곳에서 그에게 내려진 것 같은 그 힘을 추적하고 있었다.

만약 상대가 원거리에서 힘을 내리고 연결을 끊었다면 추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힘을 내려준 후에도 연결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용우는 촉진을 통해서 그에게 닿았다.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한 접촉의 순간, 상대가 직접 권속의 몸에 강림한 것이다.

<이레귤러, 너에 대한 처분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지.>

하얀 갑옷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다. 인간이라면 더 이상 전투 수행이 불가능한 중상이다.

그러나 그 몸을 차지한 정체불명의 존재는 여유 만만 했다.

우우우우우우!

그리고 용우는 곧 그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하얀 갑옷이 지닌 마력이 극한까지 응축되고 있었다.

<죽어라.>

그리고 하얀 갑옷이 터져 나가면서 강렬한 폭발이 컨테이너 안을 휩쓸었다.

* * *

쿠구구구궁……!

폭음이 울리며 땅이 가볍게 진동했다.

“뭐야?”

“뭐가 폭발했어?”

밖에 있던 경찰들이 경악했다.

아무리 봐도 아지트 안에서 폭탄이 터진 모양새지 않은가?

다들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 폭발로 컨테이너가 주저앉기라도 한다면?

그럼 높다랗게 쌓인 컨테이너들이 연쇄적으로 쓰러지면서 대형 사고가 터질 것이다.

“…….”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컨테이너들이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그뿐이었다.

[여기는 제로.]

다들 침을 꿀꺽 삼키는 가운데, 무전으로 용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쪽 진압은 끝났다. 방금 전의 폭발로 적 다수 사망. 하지만 아직 제압된 생존자가 다수 있으니 바로 진입해서 구속해 주길 바란다.]

“조금 전의 폭발은 뭐였나? 안쪽의 붕괴 위험은 없나?”

[없진 않을 것 같다.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알겠다.”

중대장이 부하에게 말했다.

“바로 인근에 대피 경보 때려. 그리고 크레인 기사 불러서 저기 쌓인 컨테이너들을 옮길 수 있도록.”

곧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팬텀 조직원들이 줄줄이 끌려나오며 안쪽에 남아 있던 대량의 아니마의 운반 작업이 이루어졌다.

* * *

구세록의 계약자 7명 중 하나, 이탈리아인 미켈레는 자신의 집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0세대 각성자…….”

그는 바위처럼 딱딱한 인상의 백인 남자였다. 나이는 40대 후반이었지만 누가 봐도 30대 초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팬텀 조직에 속해 있는 ‘그릇’을 통해서 마주했던 용우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몸에 열이 나서 땀이 흐르고 숨이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팬텀에서 금단의 인체 실험을 통해서 만들어낸 ‘그릇’에 힘을 부어넣는 것은 게이트 안에서 각성자의 시신을 통해 ‘고스트’라 불리는 존재로 강림하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아직까지는 아주 어색하고 부담감이 크다. 그런 주제에 성능은 형편없었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셔츠 단추를 풀고 정수기로 향하던 그는 문득 움찔하며 멈춰 섰다.

오른손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통증을 느껴졌기 때문이다.

“…….”

생소한 통증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릇에 힘을 부어넣어 봤지만 이런 후유증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미켈레는 이 통증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그때.’

그릇에 힘을 부어서 변신시키고 정보 공간에서 사태를 관조하고 있을 때였다.

변신한 그릇과 접촉한 용우의 마력이, 미켈레와 그릇 사이의 연결 고리를 따라서 그에게까지 닿았다.

그 순간 마치 불에 덴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고, 그는 놀란 나머지 직접 정신을 그릇에다 옮기면서 힘을 쓰고 말았다.

“역시… 그놈은 위험하다.”

구세록에 기록되지 않은 이레귤러라는 것만으로도 그 위험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구세록의 예언이 어그러지기 전에 제거해야 해.”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의 눈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 * *

백원태는 새벽 늦은 시간에 용우의 집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경찰의 팬텀 검거 작전에 협력한 용우가 백원태에게 전화해서 비밀리에 와주기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용우의 목소리가 심각해서 백원태는 이유를 묻지 않고, 아무도 대동하지 않은 채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이건 뭡니까?”

백원태가 내민, 고급 멜론이 든 쇼핑백을 본 용우가 물었다.

“집들이 선물입니다. 어쨌든 이사한 집에 처음 오는 거니까 예의는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들이 선물로 먹을 건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이 시간에 휴지를 사들고 오기도 좀 그래서…….”

“감사히 받겠습니다.”

용우가 피식 웃자 백원태가 물었다.

“여동생분은?”

“재웠습니다. 아침까지는 안 깰 겁니다.”

“…….”

“부작용은 없는 방법으로 재웠습니다. 아무래도 우희는 모르는 편이 좋을 일이라서.”

용우는 섬뜩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하고는 백원태를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방의 불이 켜지는 순간, 백원태는 숨을 삼켰다.

한 소녀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연구소에서 실험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입을 법한 하얀 옷을 입은 그녀는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것처럼 피부가 창백했다.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했고 몸은 앙상하게 말라서 식사를 잘 하지 못하는 환경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원태가 긴장한 어조로 물었다.

“…이건 누굽니까?”

“신원 정보는 저도 모릅니다.”

이어지는 용우의 말에 백원태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아이는 팬텀의 실험체니까요.”

Chapter18 악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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