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팬텀은 흔적을 지우고 도망 다니는 솜씨가 능숙한 조직은 아니었다.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들의 마약 ‘아니마’를 조금이라도 더 퍼뜨리는 것에 주력한다.
그런 방침을 고수하는 것은 그들에게 무력과 기이한 도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꼬리를 밟혀서 경찰과 충돌하더라도 그들을 뿌리칠 자신이 있으니 그런 도박 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제정신으로는 안 보이는데.’
16년 전에 비하면 많이 악화되었다지만 그래도 한국은 치안이 좋은 나라다. 당연히 경찰을 대놓고 건드린 범죄 조직은 무사할 수가 없다.
하지만 팬텀은 그래도 상관없다는, 정말로 막나가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탕탕! 타타탕!
그들은 경찰 특수기동대들을 발견하자마자 거침없이 총질을 해대었다. 밤의 인천항 컨테이너 박스 사이에서 전쟁터 한복판처럼 총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썩을 약쟁이들!”
중대장이 욕설을 내뱉었다.
시작은 조용했다.
특수기동대원 중에는 은신 스펠을 보유한 각성자가 있었다.
그는 완벽하게 모습을 감춘 채 컨테이너 박스 중 하나로 위장한 팬텀의 아지트로 접근했고, 경계를 서는 놈들을 소리 없이 처리했다.
하지만 그가 아지트 문을 여는 순간부터 사태가 긴급하게 돌아갔다.
“으히히히!”
팬텀 조직원들과 특수기동대가 총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는 뒷문! 각성자들이 기습해 왔습니다! 한 경장이 당했습니다! 우 경사가 버티고는 있지만…….]
팬텀의 아지트는 붙어서 배치된 컨테이너 5개에 구멍을 뚫고 이어서 한 건물처럼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문이 앞뒤로 달려 있기에 특수기동대는 양쪽을 포위한 채로 작전을 개시했다.
그런데 팬텀의 각성자 전투원이 아지트가 아닌 곳에서 출현, 측면과 후면에서 경찰 특수기동대를 급습했다는 게 아닌가?
“뭐라고?”
중대장이 당황했다.
투콰쾅……!
그리고 뒷문 쪽을 촬영하던 관측용 드론들 중 하나가 터져 나갔다.
앞문 쪽에서 대기 중이던 용우가 중대장에게 말했다.
“뒷문 쪽 지원 가겠습니다.”
“돌아가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차라리…….”
컨테이너는 6줄로, 그리고 5층으로 쌓여 있다. 옆으로 돌아서 반대편으로 가려면 한 세월일 것이다.
“전 금방 갈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헌터 관리부는 제로를 보내주면서 말했다.
“작전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가 할 수 있다고 하면 할 수 있다고 이해하셔야 할 겁니다.”
결국 중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합니다.”
“가는 김에 앞을 정리해 두고 가죠.”
“네?”
중대장이 당황했지만 용우는 설명하는 대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다들 깜짝 놀랐다.
“어?”
“무, 무슨 짓입니까?”
다들 은폐물 뒤에 숨어서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용우가 몸을 다 드러낸 채로 뚜벅뚜벅 걸어갔기 때문이다.
“저 자식은 뭐야?”
“쏴버려!”
팬텀 조직원들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들은 잠시 멈칫했다가 용우를 향해 집중사격을 시작했다.
파파파파!
하지만 그들의 총탄은 용우의 몸에 닿지 못했다.
허공에 물결처럼 번져가는 푸른빛의 파문이 모든 총격을 차단했다.
“허공장?”
당황하는 그들을 관찰하는 용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놈들, 약을 한 상태인가?’
총질을 해대고 있는 조직원들에게서 마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좀 이상했다. 그들은 말기 중독자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확인해 볼까?’
용우는 한걸음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콰당탕!
그들이 엄폐물로 삼았던 철제 박스들을 레고 블록 쓸어버리듯이 치우고는 주먹을 내지른다.
뻐억!
단 일격으로 한 놈이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또 한 놈이 내미는 총구를 피하면서 가볍게 수도치기를 가했다.
빠각!
“으아아아악!”
하지만 용우 입장에서 가볍게 친다 해도 일반인의 뼈가 부러지기에는 충분했다.
“흠.”
용우는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머리를 붙잡고 촉진(觸診)을 실시해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이래? 들은 거하고는 다른데?’
분명 마력 기관은 없다.
하지만 저출력이기는 해도 마력이 안정적으로 체내에서 돌면서 신체의 반응속도를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마 전체적인 감각은 좀 더 큰 폭으로 향상되고 있으리라.
“이 자식! 죽어! 죽으라고!”
투타타타타타!
그런 용우의 옆쪽에서 다른 조직원들이 소총을 갈겼다.
하지만 소용없다. 모조리 용우의 허공장에 막힐 뿐이다.
적이 총을 쏘든 말든 용우는 촉진을 마치고 조직원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왼손을 들어 올렸다.
-뇌전망(雷電網)!
파지지지직!
일순간 용우를 중심으로 그물처럼 형성된 뇌전이 사방을 휘감았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출력을 상당히 낮췄지만 그것만으로도 인간을 무력화하기에는 충분했다.
“앞문 돌입은 맡기겠습니다.”
짧게 말한 용우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도약!
발을 구른 지점에서 빛의 고리가 발생하면서, 용우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높이 치솟았다.
대각선으로 뛰어오른 용우는 컨테이너 박스를 밟고 재차 도약 스펠을 사용, 건너편 컨테이너 박스 더미를 밟고 다시 뛰는 것으로 5층으로 쌓인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섰다.
“맙소사.”
경찰들이 신음했다.
아군의 접근을 저지하던 적들이 무력화되었으니 곧바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 당연한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용우가 보여준 모습에 압도되고 만 것이다.
* * *
뒷문은 앞문과는 상황이 달랐다.
특수기동대원들은 뒷문으로 팬텀 조직원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총구를 겨누고 있다가 난데없이 기습을 당했다.
경찰들은 은신 스펠을 쓴 대원이 팬텀의 경계병을 제거하는 것과 동시에 관측용 드론을 띄워두었다.
하지만 팬텀의 각성자 전투원 3명이 높이 날고 있는 관측용 드론들의 사각지대, 층층이 쌓인 컨테이너 외벽에 거미처럼 달라붙어서 접근해 왔던 것이다.
“키키키키킥!”
그리고 그들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탕!
동료들이 여기저기 쓰러진 상황이라 특수기동대 입장에서는 함부로 사격을 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었다. 적들이 돌진해 오면서 사격각이 나오자 방아쇠를 당겼고, 명중시켰다.
그러나 적들은 총에 맞아도 잠시 움찔할 뿐이었다.
‘방탄조끼!’
소총탄도 막아낼 수 있는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총격을 버텨내고 돌격해 와서 특수기동대를 공격했다.
-에어 바운드!
퍼어어엉!
대기가 폭발하면서 특수기동대가 장난감처럼 나가떨어졌다.
“이야아아아아!”
쓰러지면서도 총을 놓지 않았던 대원이 발작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그 사격은 적 각성자의 몸을 난타했다.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고 해도 그게 전신을 방어해 주지는 않았다. 팔다리에 총탄이 꽂히면서 피가 튀었다.
“키키킥, 안 아파… 안 아프다고!”
하지만 적 각성자는 마치 고통을 모르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면서 웃었다.
물론 고통이 없을 뿐이다. 총탄은 착실하게 인체를 파괴했기에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히이이익…….”
그러나 대원 입장에서는 그것까지 살필 정도로 냉정해질 수가 없었다. 소총탄을 몇 발이나 맞았으면서도 쓰러지지도 않고 다가오는 적을 보며 패닉에 빠질 뿐이다.
그런 대원 앞으로 다가온 적 각성자가 손을 들어 올릴 때였다.
“꺼져!”
다른 놈과 싸우고 있던 각성자 대원, 우 경사가 뛰어들면서 팔을 뻗었다.
-마격탄!
본래 원거리 공격용 스펠은 아무런 도구 없이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우 경사의 손바닥에서 쏘아진 푸른 에너지탄이 적 각성자를 쳐서 날려 버렸다.
퍼어엉!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우 경사와 싸우고 있던 또 다른 적 각성자가 허점을 찔러서 나이프를 휘두른 것이다.
-섬광참(閃光斬)!
일순간 날붙이 끝에서 에너지 블레이드를 발생시키는 스펠이다.
나이프 끝에서 분출된 섬광이 우 경사의 등판을 베었다.
“크악!”
우 경사는 방탄 방검복을 입고 있었지만 에너지 블레이드는 간단하게 그것을 갈라 버렸다. 등짝이 베이면서 피가 확 튀었다.
“죽어!”
상대는 곧바로 찌르기를 가하면서 섬광참을 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우 경사의 몸이 푹 꺼지듯이 가라앉았다.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몸을 땅으로 내던지듯 숙이면서 양손으로 손바닥을 짚고, 그 반동으로 양발차기를 날려서 적을 강타했다.
쾅!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적 각성자가 장난감처럼 날아가 컨테이너에 처박혔다.
“헉, 허억… 으으윽.”
우 경사가 비틀거렸다. 마력 컨트롤로 상처를 지혈했지만 이미 출혈의 영향으로 신체 컨디션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우, 우 경사님!”
우 경사에게 구원받은 대원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 옆에서 또 다른 적 각성자가 공격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 경사는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피해내면서 반격했다.
-마격탄!
그리고 그대로 뛰어들면서 태클을 걸었다.
상대를 쓰러뜨리면서 그대로 팔을 꺾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태클이 성공해서 땅에 엎어지는 순간, 그 충격으로 등의 상처가 격통을 호소했다.
“으윽.”
적 각성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우 경사의 안면을 후려쳐서 떨궈내고 일어났다.
“이 새끼, 죽여 버리겠…….”
콰직!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린 누군가 각성자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비틀어서 부러뜨렸다.
“끄아아아악!”
한 박자 늦게 적 각성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팔을 부러뜨린 자는 그러든 말든 인정사정없이 발차기로 허벅지를 때렸다.
투학!
단 일격으로 각성자가 주저앉았다. 허벅지 근육이 끊어지고 다리뼈가 부러졌으니 버틸 수가 없었다.
공격자는 그런 그의 머리통을 한 대 툭 건드리듯이 쳤다.
털썩!
그러자 팔다리가 부러진 격통에 시달리던 각성자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 버렸다.
“각성자가 아니마에 중독되면 이런 꼴인가?”
그리고 음성 변조기로 변조된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컨테이너 산을 넘어온 용우가 난장판이 된 현장을 걸었다.
그를 알아본 우 경사가 눈을 크게 떴다.
“제로?”
“부상자를 수습하고 재정비하시지요.”
용우가 서서히 다가오는 두 명의 적 각성자를 보며 말했다.
“이놈들은 내가 정리해 드릴 테니.”
* * *
일순간 정적이 그 자리를 지배했다.
용우를 멍청하니 바라보던 적 각성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큭! 이 새끼는 또 뭐야?”
“기습으로 재미 좀 보더니 세상이 만만해 보이나 보네. 똥폼 잡으니까 좋냐?”
용우는 잠깐 혼란을 겪었다.
한 놈은 태국어로 말하고 한 놈은 영어로 말했기 때문이다.
태국어는 못 알아들었지만 영어는 알아들었다. 용우는 대답하는 대신 헬멧 안에서 피식 웃었다.
파악!
그리고 다음 순간, 용우가 단 한 걸음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서 앞차기를 꽂아 넣었다.
“커어……!”
용우의 앞차기를 맞은, 태국어로 떠들어대던 각성자가 피를 토했다.
단 일격으로 갈비뼈가 와장창 나가 버렸다. 용우는 비틀거리는 그를 지나치면서 머리통을 한 대 쳤다.
툭!
가볍게 건드리는 것 같은 동작이었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각성자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고작 이 수준으로 까분 건가? 대미지를 주기 위해서 기술을 쓰는 게 아니라 안 죽이고 제압하기 위해서 기술을 써야 하는 판인데.’
용우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일반인 상대로야 재미를 봤겠지만 이놈들의 신체 능력이나 마력은 헌터 기준으로 보면 삼류다. 각성자 튜토리얼에 소환됐다가 겨우 살아남기만 해서 돌아온 놈들이리라.
“너만 남았군.”
그 말에 혼자 남은 각성자가 움찔했다.
용우가 우 경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경찰 작전이 처음이라 그러는데, 이 경우에는 투항을 권고하는 쪽이 맞습니까?”
“뒤를 봐요!”
우 경사가 기겁해서 외쳤다.
용우가 그들을 돌아보는 순간, 적 각성자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팍!
하지만 용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 발 뒤로 빠지면서 손을 붙잡았다.
“아아아악!”
그리고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적 각성자의 손목이 부러졌다.
퍽!
이어서 용우의 주먹이 적 각성자의 복부에 깊숙이 꽂혔다.
그리고 용우가 그대로 몸을 돌리면서 적 각성자의 뒷목을 붙잡고 그대로 땅에 처박는다.
“카악……!”
비명을 지르는 적 각성자를 땅에 누르면서 용우가 촉진을 행했다.
‘약쟁이라 강할 줄 알았는데 잔챙이잖아.’
각성자가 셋이나 되는데 용우 상대로 스펠을 써본 놈이 하나도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스펠의 숙련도가 너무 떨어져서 쓰지도 못하고 용우한테 처맞은 것이다.
용우는 그의 머리를 한 대 쳐서 기절시키고는 말했다.
“이놈들을 구속하시지요. 저는 돌입하겠습니다.”
앞문으로 돌입한 이들은 이미 전투 중이었다.
그리고 뒷문 쪽에서도 각성자들이 틈을 만들어주길 기다리던 팬텀 조직원이 고개를 내밀더니 권총을 겨누고 쏘았다.
투앙!
하지만 권총탄으로는 용우의 허공장에 흠집도 낼 수 없었다.
“오지 마! 멈추란 말이야!”
용우가 총격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오자 팬텀 조직원이 겁에 질렸다.
퍽!
용우는 일격에 그를 무력화하고는 총을 빼앗아서 부쉈다. 그리고 그를 한 손으로 들어서 대원들에게 던져주었다.
“…….”
대원들은 다들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 사람 도대체 뭐야?”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말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소문을 들어서, 혹은 미디어를 통해서 일류 헌터가 상식을 초월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을 자신들의 현장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충격을 선사했다.
마치 영화 속의 초인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상식을 파괴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존재.
용우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