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52화 (5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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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는 인류의 희망이다.

게이트 발생이라는 재해가 지구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섭리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상, 각성자가 없으면 인류는 스스로를 지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연 각성자는 인류에게 있어서 축복이기만 한가?

“크윽…….”

경찰 한 명이 팔이 부러진 채로 컨테이너에 처박혀 있었다.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일격으로 자신의 팔을 부러뜨린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별로 덩치가 큰 남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경찰이 총을 겨누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옆으로 파고들더니 발차기 한 방으로 이 꼴로 만들었다.

‘각성자인가? 아니, 리스트에는 이런 놈은 없었는데?’

경찰은 뭐라고 투덜거리면서 다가오는 그를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였다.

높이 쌓인 컨테이너 위쪽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뛰어내려서 남자를 덮쳤다.

“크악!”

먹이를 덮치는 맹수 같은 공격에 남자가 나가떨어졌다.

그를 덮친 것은 비쩍 마른 한국인 남자였다. 환자복 같은 옷을 입은 그가 경찰을 보며 외쳤다.

“일어나서 도망쳐! 도망쳐서 알려! 이놈들의 조직은 인공적으로 각성자를 만드는… 크악!”

필사적으로 외치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나가떨어진 남자가 아닌, 키가 크고 깡마른 태국인이 나타나서 그를 걷어찼기 때문이다.

“입이 가볍군, B-1.”

태국인은 영어로 말했지만 한국인 남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B-1 따위가 아니야!”

B-1이라 불린 한국인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태국인이 피식 웃더니 총을 꺼내서 경찰을 겨누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우우우우!

B-1의 몸에서 푸른빛이 일기 시작했다.

투명한 푸른빛이 마치 갑옷을 입은 것 같은 실루엣을 만들어내고, 공기가 진동할 정도로 강렬한 마력 파동을 뿜어내었다.

비쩍 마른 몸에 힘줄이 돋아난 B-1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태국인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앗!”

괴성과 함께 내지른 일격이 태국인의 방어 위를 때렸다.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태국인이 나가떨어졌다.

“크윽, 이 개자식이!”

발끈한 태국인이 몸을 튕기듯이 일어났다. 그러자 그의 눈이 빛나며 마력 파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B-1이 그와 대치하며 외쳤다.

“가! 경찰! 가서 이놈들에 대해서 알려!”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에 경찰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러진 팔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경찰의 뒤쪽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게이트 재해는 언제 어디서나 나타난다.

그렇기에 헌터의 일은 끊이지 않고, 그들에게 보장된 휴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용우는 그동안 헌터로 일하면서 그 당연한 진리를 배웠다.

그런데 2028년 5월 말에 그를 찾아온 일은 좀 특수했다.

“경찰에 협력해 달라고?”

새로 이사한 집에 선물을 들고 찾아온 김은혜는 이질적인 의뢰를 가져왔다.

김은혜가 용우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일은 그쪽 전문가가 따로 있잖아? 난 몬스터와 싸우는 게 전문이지 범죄자 검거에는 전혀 지식이 없는데.”

“그렇긴 하죠. 근데 다른 헌터들한테 이런 일에 협력을 요청하면 거절하는 이유가 좀 달라요.”

“돈이 안 되어서?”

“일단은 그거죠. 물론 그것만은 아닐 거예요. 헌터들 입장에서는 몬스터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테니까. 일단 정신적으로 한계죠.”

헌터들은 몬스터와 목숨 걸고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목숨 걸고 괴물과 싸우는 본업 말고 다른 일에 위험을 감수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것도 ‘사회정의에 공헌해 달라’는 이유로 헐값으로 부려먹으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염치없는 짓이리라.

“그걸 잘 알면서 나한테 이런 일을 들고 온 이유는?”

“경찰들 사정이 아주… 안 좋아서요. 이번 일을 수사하면서 7명이나 사망자가 나왔어요.”

“7명? 그거 엄청 많은 거 아닌가?”

전쟁터라면 모를까, 경찰이 수사 중에 7명이나 죽은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2028년 현재를 기준으로 봐도 그랬다.

용우가 실종되었던 2012년 당시와 비교하면 한국의 치안은 상당히 악화되었다.

사실 그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언제 어디서 게이트가 열리고, 제압 작전이 실패해서 자기가 살던 곳이 전장이 될지 모르는 시대다. 사람들은 늘 항거할 수 없는 재앙이 자신을 덮쳐서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공포와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북한이 멸망하면서 한국 사회로 편입된 수백만의 북한 난민들 역시 완전히 융화되지 못하고 온갖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 난민들과 함께 유입된 엄청난 양의 북한 총기도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골칫거리다.

그럼에도 한국은 아직까지 평화롭고 치안도 좋은 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일단 높은 헌터 전력 덕분에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선진국이었고, 그리고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상황이 막장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봐도 한국보다 상황이 좋은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김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많은 거죠. 검거 시도에서 사망한 인원이 5명이고 수사 중에 실종된 수사관도 2명 있어요.”

“그러고도 검거에 실패했다는 거군.”

“그래서 제가 여기 와서 이렇게 부탁하고 있는 거지요. 이번 일은 각성자 범죄예요. 그것도 상식을 초월한 사태라서 경찰 측에서 자존심을 굽히고 꼭 좀 헌터들의 무력 지원을 부탁해 온 상황이에요.”

용우는 약간 흥미가 동했다,

“설명해 봐.”

“문제가 되는 곳은 팬텀이라는 조직이에요. 아시아 전역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놈들이죠.”

“아시아 전역이라고? 규모가 엄청나군.”

“네. 그래서 골치 아프죠. 총화기로 무장하고 경찰 상대로 총질하는 놈들이거든요.”

“…….”

한국에서 경찰 상대로 총질하는 범죄 조직원들이라니, 2012년에 실종됐던 용우의 상식으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게다가 각성자 전투원들의 수가 굉장히 많아요. 헌터들이 부업으로 그 조직에 용병으로 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그게 아니면 도저히 납득이 안 갈 정도라서…….”

한숨을 쉰 김은혜가 말했다.

“어쨌든 팬텀은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에요.”

“규모만 봐도 그럴 만한데. 근데 그 조직이 하는 일이 뭐길래?”

“마약 사업이 주력이에요. 참고로 마약을 유통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들이 유통하는 마약이 대단히 특수하다는 게 더 문제예요.”

“어떻게 특수하다는 거지?”

“팬텀의 독자적인 마약 ‘아니마’는 마력석을 가공해서 만들었다고 추정되고 있어요. 이 마약은 일반인에게 각성자의 감각을 체감시켜 준다고 하죠.”

마력 기관이 없는 인간이, 마력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그것만이라면 그냥 좀 특이한, 중독성이 강한 마약으로 치부했을 거예요.”

문제는 아니마를 장복하다 보면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용우가 놀랐다.

“일반인을 각성자로 만들어준다는 건가?”

“아뇨.”

하지만 김은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마의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만 마력을 인지하고,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될 뿐이에요.”

“마력을 인지하고 다룰 수 있다면 각성자잖아? 스펠이 없을 뿐이지.”

“하지만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단계… 그러니까 중독 증상 말기까지 가도 마력 기관이 생기지는 않아요.”

그 말에 용우가 눈을 크게 떴다.

“마력 기관 없이 마력을 다룬다고? 그게 가능한가?”

“말기 단계에서는 증상이 심해지면 발작을 일으키는데 그때마다 마력이 물리적 영향력을 띠고 폭주하게 돼요. 그러다가 한계에 달하면 폭탄처럼 터지는 거죠.”

“폭탄처럼? 그럼 설마…….”

“중독자 본인도 죽어요.”

즉, 중독성이 엄청나게 강한 데다가 중독 증상 말기에 이르면 확실하게 죽음이 예약되는 마약이라는 뜻이다.

“팬텀은 이 약을 적극적으로 유통시키고 있어요. 다른 약과 섞어서 교묘하게 뿌리는 방법을 쓰고 있죠. 그들의 조직망을 쳐부수지 않으면 음지에서 곰팡이처럼 퍼져 나갈 거예요.”

이미 한국에서도 아니마 말기 중독자 몇 명이 ‘폭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찰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돈은 많이 드릴 수가 없어요. 헌터 관리부의 예산을 지출할 수 있는 건이 아니고, 경찰 측에서 최대한 예산을 짜낸다고 해도 용우 씨의 몸값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

“하지.”

용우는 밀고 당기기를 하지 않고 승낙했다.

깜짝 놀란 김은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요?”

“흥미가 생겼어. 그리고 어쨌거나 경찰 중에 그만큼이나 사망자가 나왔다면, 직무에 충실하다 죽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도울 만한 일인 것 같군.”

그렇게 용우는 경찰과 손발을 맞추게 되었다.

* * *

각성자들 중에 헌터가 되는 비율은 80%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20%는 무엇을 하는가?

서우희 같은 힐러는 각성자들 중에서도 소수다. 한국을 기준으로 헌터가 되지 않는 각성자 대부분은 헌터 업계가 아닌, 하지만 각성자를 우대하는 직업에 종사한다.

김은혜처럼 헌터 관리부에서 일하거나,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처럼 각성자를 필요로 하는 연구 조직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경찰 또한 그들의 선택지 중 하나였다.

주로 전투적 성향을 지녔으니 헌터로 활약하기에는 전투 능력이 애매한 자들이 택하는 진로가 경찰 특수기동대였다. 경찰은 각성자들을 우대했기 때문에 계급이 같은 다른 경찰들에 비해 봉급도 훨씬 많이 나왔다.

“음?”

오밤중이었다.

용우는 제로의 신분으로 인천항에 나와 있었다. 경찰의 팬텀 검거작전에 협력하기 위해서였다.

“반갑습니다. 오늘 잘 부탁합니다.”

경찰 특수기동대의 중대장이 악수를 청해왔다.

하지만 말만 반갑다고 할 뿐 그리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경찰이 헌터에게 도와달라고 한 것이 자존심이 상해서일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군.’

용우가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지닌 용우는 보통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청각을 갖고 있었고, 마력을 이용해서 감각을 컨트롤하면 잡음을 제거하고 자신이 원하는 소리만 집중해서 듣는 것도 가능했다.

“헌터 관리부는 대체 뭔 생각이래?”

“그러게. 근데 몸값이 장난 아니게 비싼 헌터라던데.”

“자기 몸값이 비싸면 비싼 거지, 작전에 협력하러 와서 저렇게 얼굴도 안 보이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정체가 기밀이라니 무슨 옛날 북파공작원도 아니고…….”

용우는 경찰들이 자신을 꺼림칙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뭐 그럴 만도 하군.’

사실 누가 같이 일하는데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겠는가?

헌터 업계에서야 압도적인 경력을 쌓으면서 자신을 향한 꺼림칙한 시선을 불식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헌터 업계 안에서의 이야기다.

목숨 걸고 범죄자와 싸우는 경찰 입장에서 얼굴도 보이지 않고 신원 정보는 기밀로 감춰진 이를 꺼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서용우로서 왔으면 좀 달랐을까?’

사실 용우도 이런 일에 굳이 제로의 신분으로 오고 싶진 않았다. 헌터 관리부가 단순히 경찰 특수기동대를 서포트하는 수준이 아니라 수틀리면 혼자서도 팬텀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그런 무력을 원했기에 어쩔 수 없었을 뿐.

‘그리고 그런 힘의 소유자 중에 이 일에 참가해 줄 사람이 나 정도뿐이었다는 거지.’

헌터 업계를 살펴보면 그 조건에 부합하는 헌터들은 제법 많이 있다. 차준혁까지 갈 것도 없이 이미나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단지 그런 이들은 이런 일에 협력할 이유도, 여유도 없을 뿐이다.

‘하긴 나도 프리랜서가 아니라 팀 크로노스 소속이기라도 했으면 여기 올 일도 없었을 테니.’

용우는 작전 브리핑을 듣고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조용히 한쪽 구석에 가 있었다.

‘각성자는 3명인가?’

주변을 관찰해 보니 경찰 특수기동대에도 각성자들이 섞여 있었다.

경찰에서도 각성자를 우대하기 때문에 성향상 경찰이 맞는 사람들이 지원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은퇴한 헌터들이 경찰이 되는 경우도 있다. 특수 경력자로 취급하기 때문에 나이가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경찰 입장에서도 은퇴 헌터들은 기존 규정에 얽매여서 내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들이었다.

‘시작되는 모양이군.’

어느 순간, 속닥거리던 주변 분위기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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