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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인류의 대(對)몬스터 전투 능력은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
그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원거리 타격 능력이다.
보다 먼 곳에서, 보다 정확하고 강하게 타격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더 강력한 몬스터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즉, 헌터 업계 최정예라 불린다는 것은 그만큼 원거리 타격 능력이 출중하다는 뜻이다.
게이트 브레이크까지 앞으로 3시간 7분.
[얼음나무장로 클리어!]
팀 이그나이트는 상당수의 5등급 이하 몬스터들을 처리한 뒤 6등급 몬스터, 얼음나무장로를 쓰러뜨렸다.
게이트 브레이크까지 앞으로 2시간 10분.
[은색눈곰 클리어!]
팀 이그나이트는 게이트 안에서 발견된 2마리의 6등급 몬스터를 모두 잡아냈다.
이때까지 용우와 차준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2가지다.
일단 팀 이그나이트 1부대는 어떤 환경에서든 6등급 몬스터를 피해 없이 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용우와 차준혁은 7등급 몬스터, 얼음용 공략의 핵심이었기에 최대한 체력과 마력을 온존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지휘부가 세운 작전은 간단했다.
위험성이 높은 6등급과 5등급을 포함, 몬스터들의 개체수를 어느 정도 줄이고 나면 용우와 차준혁이, 저격수 8명과 무인 병기의 지원을 받으면서 얼음용을 쓰러뜨린다.
‘이놈들… 진심이었군. 아니, 물론 브리핑을 장난으로 하진 않겠지만.’
사실 용우는 이 작전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팀 이그나이트의 분위기는 상당히 독특했다.
아니, 독특하다 못해 기묘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유연성이 뛰어난 정도가 아니잖아.’
정상급 팀의 분위기는 이미 팀 블레이드와의 작전을 통해서 겪어보았다.
그렇기에 팀 이그나이트 또한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설마 외부인 2명을 중심에 두고 그들에게 작전의 성패를 거는 작전이라니, 외국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팀 이그나이트는 실로 파격적인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콰광… 콰과과광!
멀리서 연달아 폭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7등급 얼음용은 그 등급만큼이나 강대한 몬스터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즉각적인 원거리 공격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얼음용은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눈 폭풍을 일으킬 수 있지만 한순간에 주변을 빙결시켜 버리는 능력은 컨디션이 최고조일 때도 200미터 범위에 국한된다.
그렇기에 거리를 유지한 채로 원거리에서 두들겨 대는 것이 얼음용 공략의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시간인가.’
주어진 시간과 자원은 한정적이다.
아무리 뛰어난 헌터들이더라도 쓸 수 있는 마력은 제한되어 있으며, 게이트 브레이크까지는 앞으로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콰과과광!
서포트 팀이 화력을 집중한다.
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무인 포대들이 원거리 포격을 날리고, 대형 드론들이 고도를 날면서 반응 탄두가 탑재된 항공 폭탄을 투하한다.
‘벙커 버스터만 5발째…….’
역시 7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다 보니까 화력을 아끼지 않는다.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숲은 이미 초토화되어서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화력 집중에 5명의 저격수가 고용량 증폭 탄두로 난타하는 데도 얼음용은 멀쩡한 모습이다. 허공장이 조금씩 깎여 나갈 뿐, 본체에는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며 두들겨 맞던 얼음용은, 허공장이 80% 이하로 깎이는 순간 모든 것을 무시하고 한 지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젠장. 얼음용, 포인트-22로 이동 중.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C-1은 바로 이동하도록. 드론과 사륜 바이크를 지원한다.]
얼음용이 공격을 무시하고 돌진하자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저격수들이 곧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정거리에 들어가는 순간 끝이기 때문이다.
“안 되겠군. 잡히겠어.”
차준혁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저격수들은 고지대에 자리를 잡고 얼음용을 두들겨 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자리를 이탈하는 속도가 늦다. 서포터들이 보내준 고지대 이동용 드론에 매달린 채로 내려와서 사륜 바이크에 타고 이동하지만 얼음용이 다가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저대로라면 30초 안에 거리가 200미터 안쪽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 거리에서 얼음용의 빙결 파동이 터지면 살아날 방법이 없다.
용우가 차준혁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가죠.”
“음?”
“일격을 먹이고 이탈합시다. 그걸로 놈의 시선을 끈 다음에는 내가 유인하죠.”
“이 시점에서 말입니까?”
차준혁이 놀라서 물었다.
아직 얼음용의 코어 에너지 반응은 90% 이상, 허공장은 80% 이상 남아 있다.
차준혁은 한국 최고급 마력에 체외 허공장까지 가진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얼음용에게 다가가는 순간 얼음 기둥으로 변해 버릴 것이다.
“한 방은 내가 막아주겠습니다. 그리고 한 방만 막으면 충분히 이탈할 수 있어요.”
“…믿어보죠.”
차준혁이 양손 대검을 쥐면서 말했다.
우우우우우!
곧 차준혁의 배틀 슈트가 곳곳에서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도 M슈트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용우가 말했다.
“서포터 팀. 공격 중지 하도록. 우리가 진입한다.”
[뭐라고? 이 타이밍에?]
“C-1이 퇴각할 시간을 벌어주겠다.”
[잠깐! 그런 미친……!]
용우는 무전을 무시하고 차준혁과 함께 텔레포트 스펠을 발동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얼음용의 목 위에 있었다.
화아아악……!
영하 150도의 한기가 휘몰아치는 광풍에 실려서 두 사람을 덮쳤다.
파지지지지직!
차준혁이 펼친 허공장이 격렬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근거리에서 얼음용의 허공장과 스치는 것만으로도 격렬하게 마모되고 있는 것이다.
‘길어봤자 15초……!’
차준혁은 이를 악물었다.
M슈트로 출력을 증폭시키고 있는데도 허공장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깎여 나간다. 15초만 지나도 그의 허공장은 사라져 버리고, 그는 얼음용의 허공장에 압사당하고 말 것이다.
‘간다!’
텔레포트 전부터 이미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간 끌지 않고 곧바로 스펠을 발한다.
-염마용참격(炎摩龍斬擊)!
극한의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그가 혼신의 일격을 날렸다.
그것은 근접전투계 헌터들이 애용하는 용참격의 상위 스펠이다. 초고열을 머금은 빛의 칼날이 10미터 길이로 뻗어나가면서 얼음용의 허공장을 갈랐다.
‘호오.’
그것을 본 용우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이 녀석, 마력이 공식 데이터보다 높군.’
차준혁은 공식적으로 한국 최고 마력 보유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으며, 데이터상으로는 페이즈11이다.
하지만 여유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용우는 그가 페이즈12에 도달했음을 알아차렸다.
[머, 멈췄다!]
서포터들이 놀라는 소리가 무전으로 날아들었다.
차준혁의 일격은 얼음용의 허공장을 뚫고 그 거대한 목에 작은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것이 무작정 저격수를 쫓아 달리던 얼음용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 직후였다.
화아아아아아악!
어떤 조짐도 없이, 얼음용의 전신이 순백의 폭발을 일으켰다.
* * *
일순간이었다.
눈 한번 깜빡할 찰나 만에 반경 200미터를 얼려 버리는 극저온의 한기 파동이 터져 나간 것이다.
[안 돼!]
서포터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으면서 차준혁은 경악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그가 용우의 제안을 따른 것은 다니엘 윤에게서 귀띔받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비상할 정도로 감이 좋았다.
그 감은 일상생활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전투 상황에서는 거의 초능력처럼 그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그 감이 용우의 제안을 따라도 좋다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상황에서는 이 정도인가. 일부러 받아본 건 확실히 좀 무모한 짓이었군. 마력이 거의 절반은 깎였어.”
용우는 주변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와 차준혁의 주변에 두꺼운 얼음벽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용우가 펼친 허공장 위로 형성된 얼음벽이었다.
콰지직……!
그 얼음벽이 깨져 나간다.
적을 처치했다고 생각하는 얼음용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텔레포트!
용우는 차준혁을 데리고 얼음용의 목 위에서 이탈, 원래 대기하던 2킬로미터 떨어진 고지대에 내려주고 말했다.
“자.”
그리고 아공간에 넣어두었던 차준혁의 양손 대검 한 자루를 던져주었다.
이 또한 이번 작전에서 핵심이 되는 요소였다.
용우가 아공간에 차준혁의 장비를 잔뜩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새것을 공급해 주는 것.
마력이 높은 근접전투원에게 있어서 고민거리 중 하나는 고등급 몬스터를 전력으로 공격할 경우 무기가 망가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늘 공격의 위력을 적당한 수준으로 컨트롤하다가 결정적인 기회가 올 때만 전력 공격을 가하고는 한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바로바로 무기를 제공해 주는 존재가 있다면 훨씬 제약 없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양손 대검을 받아 든 차준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당신 정말 미쳤군…….”
그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용우가 얼음용의 빙결 파동을 일부러 그 자리에서 받아냈다는 것을.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빙결 파동이 터지기 전에 이탈할 수 있었는데도 일부러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저등급 몬스터도 아니고 7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하다니,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더 말도 안 되는 건… 진짜로 아무런 대미지 없이 받아냈다는 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허공장만으로 받아내는 건 마력이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아무리 차준혁의 허공장과 중첩했다고 해도.
‘이 남자의 마력은 나보다 위다. 적어도 페이즈13, 어쩌면 14 이상…….’
용우가 차준혁의 마력이 페이즈 12임을 알아차렸듯이, 차준혁도 용우의 마력이 비상식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M-링크 시스템으로 증폭되었다는 것까지 감안해도 지금의 방어는 불가능해. 빙결에 대응하는 +α가 있었던 건가?’
차준혁이 경악할 때 용우가 헬멧 속에서 웃었다.
“잠깐 대기하고 있으시죠. 저놈 시선 좀 끌러 다녀올 테니.”
용우는 그렇게 말하더니 아공간에서 마력 포션을 꺼냈다.
그것은 마력석을 가공, 특정한 몬스터의 시체로부터 추출한 물질과 합쳐서 만든 농축액이다. 앰플 형태로 제공되기에 자동 주사기를 팔뚝에다 대고 쓰기만 하면 되었다.
“흠……!”
앰플 하나당 150만 원이나 하는 마력 포션이 주입되자 마력 기관에 급격히 활력이 돌았다.
‘효과 끝내주는군.’
얼음용에게 접근해서 한 방 때리고 이탈하는 것으로만 4할이 넘는 마력이 날아갔다.
그런데 그 마력이 급속도로 차오르고 있었다.
문제는 한 번 쓰면 4시간 동안은 쓸 수 없다는 것이지만…….
‘필요하면 적당히 몬스터들한테서 빨아먹으면 되겠지.’
다른 헌터들이라면 모를까, 용우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갖고 있다.
그는 아공간에서 대(對)몬스터 저격총, 제우스의 뇌격을 꺼내 들었다.
총신의 길이만 1.5미터에 달하는 그 총은 땅에 세워두면 용우보다도 더 클 정도라 개인화기라고 부르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나 용우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다룬다.
‘자, 얼음용. 고작 600미터다. 이 정도면 꽤나 먹음직해 보이는 거리겠지?’
눈에 보이는 지점으로 한 번 텔레포트해서 얼음용과의 거리를 좁히고, 블링크 2번으로 가장 좋은 포인트로 이동한 용우가 조준을 마치고 방아쇠를 당겼다.
-염동염마탄(念動炎魔彈)!
고열이 응축된 에너지탄이 극초음속으로 날아가 얼음용을 때렸다.
콰아아아아앙!
저격은 한 발로 끝나지 않는다.
2발, 3발, 4발…….
다른 이들의 저격보다 현격히 높은 위력으로, 그것도 연달아 날아드는 저격에 얼음용이 돌아보았다.
크아아아아아!
얼음용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멀어져 버린 저격수 C-1을 잡으러 가는 것보다는 고작 600미터 거리에 있는 용우를 잡으러 가는 쪽이 이득이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팀 이그나이트를 경악하게 만드는 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