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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라는 직업 세계에는 프리랜서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을 통틀어서 채 10명도 안 되긴 하지만, 용우 말고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힐러였다.
현재 한국의 배틀 힐러는 단 2명, 서용우와 지윤호뿐이다.
하지만 전장에 투입되는 힐러가 배틀 힐러만인 것은 아니다.
특히 재정이 넉넉한 상위권 팀은 힐러를 게이트 바깥에만 대기시키지 않고 반드시 내부에도 투입한다.
그들의 역할은 게이트 안쪽의 캠프에 대기하다가 부상자가 발생할 시에 대응하는 것이다. 전투원들의 엄호를 받으며 전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기에 결코 안전한 입장이 아니었다.
프리랜서 대부분은 그런 힐러들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프리랜서 헌터 중에는 3명의 전투원들이 존재한다.
온갖 소문이 따라다니는 정체불명의 올라운더 제로.
대중의 관심을 꺼리는 것으로 유명한 배틀 힐러 서용우.
그리고 5세대 각성자이며 한국 헌터업계의 근접전투 최강자로 인정받는 차준혁.
제로와 차준혁이 만난 것은 5월 초, 울산에서였다.
* * *
헌터 업계에서 그 헌터의 존재감을 형성하는 것은 실적이다.
재능이 있다. 실력이 뛰어나다…….
그런 평가를 받는 자들은 많다.
하지만 실제 작전에서 전술 수행을 위한 좋은 부품 이상으로 평가받는 이는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제로는 충격의 데뷔전 이후, 아직 채 1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확보한 인물이었다.
백원태와 오성준이라는 걸출한 인물들이 지지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실적은 파격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다.
헌터 업계 내부에서 그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상식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이는 유일무이한 올라운더.
수직 이착륙 수송기에서 내린 그가 걸어오는 것만으로 일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것이다.
“저게 제로인가?”
“소문대로군. 현장에서도 절대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더니.”
“전장에도 장비 없이 돌입한다더니 그것도 사실인가 본데.”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한 사람이 제로에게 다가갔다.
180센티를 넘는 장신에 수염을 멋지게 기른 세련된 용모의 남자, 팀 이그나이트의 CEO 다니엘 윤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제로.”
“그렇군요.”
그와 악수하는 용우의 눈빛은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헬멧의 바이저에 가려져서 다니엘 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늘은 잘 부탁합니다.”
울산에 발생한 5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 팀은 작년에 입은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지 못한 상황이라, 만전을 기하고 싶었습니다.”
50미터급 게이트의 발생 빈도는 생각보다 높다.
2027년 한 해 동안 한반도에서 50미터급 게이트가 발생한 횟수는 6회.
그리고 2028년 들어서는 2번째 발생이었다.
팀 이그나이트 1부대는 작년 말, UN의 요청으로 해외 파견을 나갔다가 6세대 부대원 2명이 전사하는 뼈아픈 사태를 겪었다.
일단 인원을 확충하긴 했지만 아직 그때의 전력을 완벽하게 회복하지는 못했다고 자평하는 상태다. 새로 영입한 7세대가 잠재력을 개화하여 1부대에 들어오기까지는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이번 게이트는 제한 시간이 짧습니다.”
현재 50미터급 게이트는 게이트 브레이크까지 6시간 27분을 남기고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게이트치고는 상당히 시간이 짧은 편이다.
그만큼 작전 시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기에 위험도가 높아진다.
“7등급이 출현할 경우에는 제로 당신과 차준혁, 두 사람이 전술의 중심이 될 겁니다.”
지금의 제로에게는 그 정도의 존재감이 있었다.
그가 참전했다는 이유로 전술의 중심이 바뀔 정도로.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 말입니까?”
“지휘관 개체나 군주 개체가 나오는 사태 말입니다.”
그 말에 용우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규모 게이트에서도 지휘관 개체가 출현하면 공략 난이도가 확 올라간다.
50미터급에서 지휘관 개체나 군주 개체가 출현한다면 그야말로 악몽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6, 7등급 몬스터조차도 통제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겠지만…….
‘무인 병기로 주의를 끌어서 흩어놓는 작업을 못 하는 것만으로도 전술이 엉망이 되지.’
인류의 대(對)몬스터 전술은, 특히 고등급 몬스터와의 전투는 그들의 지능이 낮다는 점에 기대는 면이 컸으니까 말이다.
다니엘 윤이 인사를 마치고 물러나자 용우는 작전 브리핑을 들으러 가려고 했다.
“당신이 제로입니까?”
약간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은 남자는 독특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헝클어진 긴 백발을 뒤로 질끈 묶었는데 염색한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나이 든 노인처럼 자연스럽게 탈색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색이다.
‘알비노도 아닌데.’
피부는 구릿빛이고 눈은 진한 흑갈색을 띤 걸 보면 알비노도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상대가 존대했기에 용우도 같은 태도로 대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차준혁이라고 합니다.”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용우는 헬멧 안에서 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겉으로 보기에 차준혁은 그리 강해 보이는 인상이 아니었다. 약간 멍한 인상의 잘생긴 청년이다.
게다가 체격도 별로 크지 않았다. 몸은 빈틈없이 단련되어 있는 것 같지만 키는 170센티를 겨우 넘기는 정도다.
‘어떻게 싸우는지 궁금하군.’
하지만 용우는 그가 약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마력장이 지구로 돌아온 후로 만난 그 어떤 헌터보다도 정밀하게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각성자들은 다들 무의식적으로 약간씩 마력 파동을 흘리고 다닌다. 통제력이 뛰어난 자들이라고 해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얼마나 조금 흘리냐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차준혁은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는 전혀 마력 파동이 퍼져 나가지 않았다.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통제력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용우와 인사를 나눈 차준혁이 다니엘 윤에게 다가가 물었다.
본래 차준혁은 팀 이그나이트 소속이었다.
2년간 팀 이그나이트 소속으로 일하면서 명성과 인맥을 쌓은 뒤 독립해서 프리랜서로 뛰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팀에서 나갔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팀 이그나이트가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주는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 CEO인 다니엘 윤이 그의 독립을 지지해 주었고, 일감을 따주기도 하면서 긴밀한 사이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음? 뭐가 말인가?”
“지금 표정이 굉장히…….”
“어땠는데?”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맞아떨어졌다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만.”
“그냥 최악의 사태가 안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걱정했을 뿐이다.”
다니엘 윤은 웃어넘기고는 화제를 돌렸다.
“어땠나, 제로와 만난 소감은?”
“자세한 건 싸우는 걸 봐야 알겠지만… 그냥 봐도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겠습니다.”
“어떤 점에서?”
“마력장이 아예 느껴지지 않습니다.”
“음?”
“아마 길거리에서 지금의 그를 만난다면… 각성자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차준혁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다니엘 윤은 그 심각성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차준혁이 천재이기 때문이다.
5세대 각성자 중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세계 최고 성적을 기록한 그는 업계의 모두가 입을 모아서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정도로 상식을 파괴하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인지 세상을 보는 그의 감각은 다른 각성자들과는 동떨어져 있는 면이 있었다.
“그러니까… 마력의 통제력이 뛰어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로? 나도 이해할 수 있게 예를 들어봐라.”
“음…….”
차준혁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 모인 헌터들을 대부분 북한산 정도라고 치죠.”
“왜 하필이면 북한산이냐?”
“그럭저럭 높은 산 아닙니까?”
“딱히 높은 산은 아니지만 낮은 산도 아니지. 뭐 그렇다 치고?”
“거기에 비교하면 저는 에베레스트 산 정도 됩니다.”
“…….”
너무 노골적인 자화자찬이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차준혁에게는 전혀 우쭐거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럼 제로는?”
“성층권이나 중간권쯤 되는 것 같습니다.”
왜 산을 예로 들다가 갑자기 성층권이나 중간권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너보다 더 대단하다, 그런 뜻으로 말하는 거 맞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렇게 말하다니… 그도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인 건가?”
“그건 잘 모르겠군요.”
차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인가?”
“그의 통제력은 타고난 재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재능이 아니라면 고도로 단련된 기술일까?”
“그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두 가지는 아닙니다. 마치 교차로를 지나가는데 한가운데 겹겹이 시체가 쌓여 있는 것 같은…….”
“…….”
역시 이 녀석의 감각은 잘 모르겠다.
다니엘 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브리핑 현장으로 보냈다.
* * *
50미터급에서 7등급 몬스터가 출현하는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그것은 불운이다.
아무리 그것을 제압 가능 한 전력을 보유했더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 작전은 게이트 브레이크까지의 제한 시간이 빡빡하다. 리스크가 큰 전투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것이 모두의 심정이었다.
“젠장, 나왔군.”
따라서 정찰로 7등급 몬스터가 발견되었을 때, 팀 이그나이트 1부대의 헌터들이 욕설을 내뱉은 것은 비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휘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7등급 몬스터가 출현했을 경우를 상정한 전술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음용인가.”
드론이 촬영한 7등급 몬스터의 영상을 본 용우가 중얼거렸다.
게이트 내부 필드는 눈 덮인 산악 지형이었다.
상당히 가혹한 환경이다.
기온은 영하 27도에 바람이 세게 불고 있어서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더 낮았다.
그리고 그 가혹함만큼이나 아름답고 몽환적인 풍경이다.
산악 지형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숲은, 지구의 숲처럼 침엽수림이 아니라 환영의 불꽃이 나뭇잎 대신 하늘거리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전신이 새하얀 암석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용이 쿵쿵거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몽환적인 숲속을 헤치며 나아가는 그것은 현실의 존재라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위압적이다.
상상 속의 드래곤처럼 목이 길었고 머리에는 상아빛을 띤 뿔이 돋아나 있다. 그리고 얼음으로 만들어진 눈동자 안쪽에서는 온도가 없는 푸른빛이 불꽃처럼 일렁거리면서 존재감을 발한다.
긴 목으로부터 몸통과 꼬리가 이어지는데 주둥이부터 꼬리 끝까지의 길이는 50미터에 달한다. 저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크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날개다.
편의상 ‘날개’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진짜 날개와는 다르다.
환상처럼 푸른 불길이 등에서 분출되고 있다. 마치 망토처럼 펄럭이는 그것은 얼음용의 의지에 따라서 조종되는 한기 발생 장치다.
용우는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7등급부터는 ‘생명체’라는 인상이 희박하다 못해 없지.’
암흑거인도 그렇고 이 얼음용도 그렇다.
극단적으로 성향이 치우친 에너지 덩어리가 괴물의 형상을 띠고 움직이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든다.
[코어 몬스터는 7등급 얼음용, 6등급 얼음나무장로, 6등급 은색눈곰으로 판명.]
[5등급 몬스터는…….]
빠르게 정찰 데이터가 쌓여간다.
그리고 서포터들이 무인 병기를 이용, 위험도가 높은 몬스터들의 이목을 끌어서 뿔뿔이 흩어놓고 수를 줄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규모가 이 정도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작전 시간이 길어지는군. 하필 혹한이라 기계도, 사람도 힘든 환경이고…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작전이 꽤 빡빡하겠어.’
용우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전술 데이터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직 정찰이 끝나지 않은 이 시점, 게이트 브레이크까지는 불과 5시간 42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