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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하고… 다른데?”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용우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팬 서비스를 하던 그녀는 머리와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테가 굵직한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 전에 봤던 것과는 웃옷도 달랐다. 그새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모양이다.
“후다닥 화장실 가서 변장하고 나온 거예요.”
“변장? 그게?”
“사람들은 의외로 이렇게만 해도 잘 못 알아본다구요.”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유현애는 용우가 지금껏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모자와 안경을 써도 귀여운 외모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고, 20대라기보다는 여고생처럼 보이는 사복이 활달한 느낌을 주었다.
용우가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푹 찌르며 말했다.
“말을 해봐요, 응? 그렇게 못 본 척하고 가는 게 어디 있어요?”
“팬들한테 둘러싸여서 팬 서비스하는 사람을 알은척해서 나한테 무슨 득이 있는데?”
“그런 때는 눈인사라도 해줄 수 있잖아요. 그냥 무시하고 쌩 가버리다니 섭섭하다구요.”
“미안하군. 그보다 이렇게 쫓아와도 되나?”
“어차피 도망칠 생각이었으니까 괜찮아요.”
“…….”
“미나 언니 이벤트란 말이에요. 근데 내가 거기 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몰려들어서 엄청 민폐 끼치고 있는 중이었어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늘어놓는 이유를 들으니 납득이 갔다.
“어쨌든 도망쳐서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네. 놀아줘요.”
“…….”
어쨌거나 행정 데이터상으로는 39세 아저씨인 용우에게 놀아달라고 달라붙는 21세 여자애의 이 뻔뻔함과 붙임성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혹시 바빠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놀아줘요. 은혜도 갚을 겸 제가 한턱 쏠게요. 이 근처에 비싼 집 많으니까 아무 데나 골라잡아도 돼요.”
아주 막무가내였다. 용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속사포처럼 묻는다.
“근데 여긴 웬일로 나와 있었는데요? 집, 이 근처 아니지 않아요?”
“여동생이랑 같이 쇼핑 나왔어.”
“음? 그럼 여동생분이 근처에 있어요?”
“아니, 먼저 집에 갔어.”
“…….”
“왜 그런 눈으로 보냐?”
“아니, 보통 같이 나오면 같이 들어가지 않아요? 식사라도 하고…….”
“점심이야 같이 먹었지. 여동생은 공부도 해야 하고 해서 먼저 돌려보낸 거야. 난 사람 많은 데 걸어 다니는 게 취미라서…….”
“엑? 그게 취미? 사람 많은 데가 뭐가 좋은데요?”
“아직 이 세상은 괜찮다는 느낌이 드는 점.”
“…….”
유현애는 퍽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용우를 바라보았다.
용우는 설명하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원래는 주변 구경하다 아쿠아리움에라도 갈까 했는데…….”
“아쿠아리움 좋아해요?”
“제일 큰 수조 앞에 앉아서 멍 때리고 보고 있으면 편안해져서 좋아. 몇 시간이고 그러고 있을 수 있지.”
“우와, 취미가 하나같이 인생 다 산 사람 같아요.”
“…그럴지도.”
활달하게 재잘거리던 유현애가 움찔했다. 한 박자 늦게 대답하는 용우의 표정에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피로감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현애가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그럼 사람 적은 곳은 싫어요?”
“아니, 누구랑 같이 있을 때는 사람 없는 데가 더 좋아.”
“그럼 여기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 카페로 가요. 거기 전망도 좋고 창가 쪽에 룸을 만들어놨거든요. 전에 미나 언니랑 같이 가봤는데 방음도 나쁘지 않았어요.”
용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현애는 그를 데리고 최고층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창가 쪽 룸 자리에 앉은 용우가 말했다.
“좋군.”
건물이 빽빽한 서울의 도심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고층의 전망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용우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지자 유현애가 물었다.
“전망대 좋아해요?”
“전망대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걸 좋아해. 아파트 옥상이나 빌딩 옥상 같은 곳… 아니면 아직 한창 짓고 있는 빌딩 공사 현장 같은 곳 있잖아. 그런데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것도 좋아하고.”
“응? 그런데는 어떻게 올라가는데요? 출입 금지 아닌가?”
“텔레포트로. 각성자가 되기 전에는 영화 같은 데서나 봤던 시추에이션이라서 해보고 싶어서 해봤는데… 재미있더군. 앙상한 철골 위에 서서 바람에 흔들리면서 풍경을 보는 것도 기분이 꽤 좋아.”
“와, 완전 부러워……!”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유현애의 표정이 반짝반짝 빛나 보여서 용우가 피식 웃었다.
“전망은 왜 좋아해요?”
“왜 좋아하냐니… 보통 다들 좋아하지 않나? 전망대는 인기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 아저씨는 왠지 이상한… 아니, 독특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
“에이, 다 큰 아저씨가 삐지지 말아요.”
“너는 참…….”
용우는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아까 전하고 비슷해. 세상이 아직 멀쩡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모르는 얼굴들이 수도 없이 지나다니는 것도, 문명의 빛이 반짝이는 도심의 풍경도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이 괜찮다는 안정감을 준다.
용우에게 있어서 그것은 계속해서 확인하지 않으면 현실감을 유지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
유현애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아까처럼 장난스럽게 말하자니 그렇게 말하는 용우의 표정이 너무 쓸쓸하고 피로해 보였다. 그리고 유현애는 저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안다.
‘은퇴한 사람들…….’
팀 반도호랑이에도 있었다.
누적된 전투 스트레스 때문에 PTSD에 시달려서 은퇴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는 절망과 피로감을 안고 있었다. 더 이상 전장에서 버틸 수가 없어서 도망쳤는데, 또 전장에서 완전히 떨어져 보니 악몽이나 불안 증세를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은 가까운 곳으로 돌아오고 마는 그런 사람들.
유현애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녀 자신도 이미 실전의 무서움을 혹독하게 경험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유현애의 기색을 알아차린 용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근데 여긴 커피값이 굉장한데. 하긴, 이런 풍경을 즐기는 값이라고 생각하면 괜찮군.”
이 전망대 카페는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용우의 집 근처에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의 5배를 넘었다.
“뭐, 전망도 전망이지만 남들 눈길 신경 안 쓰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미나 언니랑은 가끔 와요.”
“이미나 씨는… 연예인으로 활동하나? 이벤트에 사람이 많이 왔던데.”
“TV 안 봐요?”
그런 질문을 받을 줄 몰랐다는 듯 유현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긴 하는데 요즘 건 거의 안 봐. 여동생이 틀어놓은 걸 조금씩 보는 정도지.”
“요즘 걸 안 보면 언제 걸 보는데요?”
“작년에 2012년도 것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2014년도 걸 보고 있어.”
요즘 세상은 그런 세상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과거 특정 시점의 TV 프로들, 드라마, 영화, 신문과 인터넷 기사까지 모아서 볼 수 있는 세상.
용우는 자신이 어비스로 끌려간 시점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현재로 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용우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어비스에서의 3년, 그리고 그가 없는 사이에 흘러가 버린 12년의 세월은 높다란 암벽 같았다.
그 벽을 앞에 둔 채로는 도저히 그 너머의 풍경을 상상할 수 없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실감하기 어려워서, 이따금씩 주변의 모든 것이 몽상에 불과하고 사실은 아직도 어비스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
유현애는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용우가 끌려갔던 어비스가 어떤 세계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24만 명이 실종되었다가 그 혼자만이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겪은 일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했음은 유추할 수 있었다.
“언니가 최근에 시합 나갔었거든요. 코리안 헌터 파이팅 토너먼트라고…….”
“아, 그거 광고하는 거 본 적 있어. 각성자들 모아서 격투기 시합 시키는 거지?”
“맞아요. 남녀 혼성으로 이루어진 시합이었는데 거기서 언니가 3위 했어요.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입상해서 요즘 인기가 굉장하다구요.”
“대단한데.”
“언니가 각성자 되기 전부터 아시아에서는 알아주는 격투기 선수였거든요. 그래서 실력이 대단해요.”
“그랬군.”
용우는 딱히 헌터 업계의 개개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전혀 몰랐다.
“아저씨는 그런 거 관심 없어요? 아저씨 엄청 세잖아요?”
“없어. 돈은 지금도 다 쓰지도 못할 정도로 벌고 있고… 사람들 관심은 받기 싫어. 바깥을 돌아다녀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정도가 딱 좋아.”
“그건 좀 이해가 가네요. 저도 가끔 그랬으면 할 때가 있어요.”
유현애가 팔짱을 끼고 자기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가 봐도 어린애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것 같은 모습이라 용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근데 아저씨는 뭐 나에 대해서는 궁금한 거 없어요? 계속 나만 물어보고 있네.”
“글쎄. 사적으로는 딱히? 일할 때 서로 방해만 안 되면 어디서 뭘 하든 상관없잖아?”
“…….”
“너 그 표정 무섭다.”
“그렇게 보였다니 다행이네요. 그러라고 지은 표정인데!”
유현애가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보고 있으면 질리진 않는군.’
자기도 모르게 웃던 용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긴 있어.”
“뭔데요? 얼른 물어봐요.”
“왜 팀 반도호랑이를 골랐어? 팀 크로노스나 팀 블레이드 쪽의 조건이 훨씬 좋았다고 들었는데.”
용우는 크게 궁금하진 않았지만 그나마 궁금했던 사항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유현애가 정말 싫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아니, 결국은 일 이야기구나 싶어서요.”
“인터뷰 같은 데서 대답한 질문이었나?”
“좀 지겨울 정도로요.”
“미안해. 나중에 따로 찾아보지.”
“뭘 또 그래요? 내가 특별히 리바이벌해 줄게요. 더 좋은 조건 걷어차고 우리 팀을 고른 건 사장님이 제 팬이라서 그랬어요.”
“…응?”
예상 못 한 이유에 용우가 눈을 크게 떴다.
그 표정이 재밌었는지 유현애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프로 게이머 시절부터 제 팬이었다구요. 개인 방송 하면 와서 후원금 막 펑펑 쏴주고…….”
“…….”
“그리고 협상전 미팅 때 그러시는 거예요. 솔직히 경영자로서는 무조건 잡고 싶은데, 팬으로서는 그러지 못하겠다. 다른 데도 아니고 팀 크로노스나 팀 블레이드가 열정적으로 원하는 상황이니까 둘 중 하나 골라잡고 좋은 대접 받아라. 멀리서나마 응원할 테니까, 헌터가 되고 나서도 가끔 개인 방송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유현애는 그 태도에 감동해서 팀 반도호랑이를 골랐다.
“다른 데가 더 좋은 조건을 들이밀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그때의 저한테는 어느 쪽이든 실감이 안 갈 정도였거든요. 갑자기 연봉 60억, 70억… 그런 액수가 막 들이대지니까. 그래서 마음 가는 대로 골랐어요.”
약간 부끄러워하며 웃는 유현애를 잠시 바라보던 용우가 물었다.
“후회는 없어?”
“음…….”
유현애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반반이에요. 만족하는 마음이 반, 후회하는 마음이 반.”
“더 좋은 환경에 대한 열망은 있는 건가?”
“으, 아저씨.”
“왜?”
“그런 식으로 묻지 말아줄래요? 말투가 완전 존댓말 빠진 인터뷰어 같잖아요.”
“주의하지.”
용우가 어깨를 으쓱하자 유현애는 눈을 한 번 흘기고는 말했다.
“더 좋은 환경이라기보다는… 우리 팀은 굉장히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사장님이랑 미나 언니만이 아니라 다들 유쾌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유현애가 투입된 첫 전투에서 5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다.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이상 전투를 수행할 수 없게 되어서 은퇴하게 된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장례식에 갔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이 팀에 안 왔으면 이런 일도 없지 않았을까.”
팀 반도호랑이 1부대가 겪은 일은 어디까지나 불행한 사고였을 뿐이다.
하지만 유현애는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녀가 없는 전장에서 지휘관 개체가 출현할 때까지 종종 악몽에 시달렸고 팀원들을 보기가 어려웠다. 모두가 그녀 탓이 아니라며 위로해 줬지만, 그 말들은 마음속까지 와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져 갔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요. 팀 크로노스나 팀 블레이드에 갔더라면… 그래서 거기서 똑같은 일이 터졌다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좀 더 피해가 적지 않았을까.”
매해, 매 분기마다 업계 실적 1위를 다투는 그 둘은 중상위권 팀인 팀 반도호랑이와는 격이 다르다.
그들이라면 같은 상황에서도 더 나은 대처력을 보여줬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죽지 않고 끝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헌터가 팀을 선택한다는 건 스포츠 선수가 팀을 선택하는 것하고는 다르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셈이에요. 전 아무것도 몰랐던 거죠.”
“그럼 이적할 생각인가?”
“그것도 생각 중이에요. 하지만 이제 와서 팀을 나가 버리면 사정이 어려워진 팀을 배신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한숨을 쉬던 유현애는 누군가 이 사실을 물어봐 주길 바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디어의 인터뷰는 물론이고 친하게 지내는 이미나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니, 오히려 그녀가 상대라서 말하지 못한 고민이었다.
“아저씨가 부럽네요. 혼자서 해도 다들 제발 와달라고 할 정도로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나도 아저씨처럼 강했더라면…….”
“그런 생각은 하지 마.”
용우가 딱 잘라서 말했기에 유현애가 흠칫했다.
“유능한 사람이든 무능한 사람이든 마찬가지야. 특히 전장에서는…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는 게 고작이지.”
“…….”
그 말에는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었다. 힘든 경험을 한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그런 무게감이.
“무엇보다 넌 이 업계에서는 햇병아리에 불과하잖아. 네 팀원들도 네가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들으면 애송이가 건방지다고 화낼걸. ‘아티팩트 가졌으면 다냐!’ 하고.”
“그러는 아저씨도 햇병아리잖아요!”
“나는 햇병아리지만 닭들보다 잘났을 뿐이지.”
“우와, 재수 없어…….”
조금 전까지의 감정은 흔적도 없이 식어버린 유현애가 투덜거렸다.
용우는 빙긋 웃으며 생각했다.
‘이 녀석은 확실히 쓸 만해.’
유현애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특별하기에 평범한 수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자각과 향상심이 있다.
‘만약 필요해진다면 그때는…….’
대화를 나누며 일어난 감정과는 별개로 냉정하게 유현애의 가치를 따져봤다.
용우는 그런 자신을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그런 자신이 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비스에서 생존하기 위해 터득한 사고방식은 이미 그의 존재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으니까.
용우가 그런 자신을 외면하듯이 슬슬 해가 저물어가는 창밖의 도심 풍경을 바라볼 때, 유현애가 말했다.
“슬슬 배고픈데 밥 먹으러 가요.”
“…….”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설마 저녁까지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뭐 그런 건 아니겠죠?”
바로 그런 마음이 담긴 표정이었다.
유현애는 계산서를 흔들면서 말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다고 그랬잖아요. 제가 추천하는 가게로 가자구요. 여자들 좋아하는 가게도 알아놔야 나중에 여동생분도 데리고 가고 그러지 않겠어요?”
“…그건 좀 마음이 동하는군.”
용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Chapter16 혹한의 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