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47화 (4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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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라고 항상 훈련과 전투만 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헌터 팀들은 소속된 헌터들에게 충분한 휴가를 보장하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기에 전쟁터에서 혹사당한 군인들의 정신이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렇기에 헌터 팀들은 헌터들에게 경제적 부유함을 제공하고 그것을 누릴 시간을 보장해 주었다.

용우는 프리랜서이기에 다른 헌터들보다 더 일정 조정이 여유로웠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용우는 정신이 없었다.

‘이사라는 게 생각보다 큰일이군.’

실종되기 전에도 이사를 해본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시절이라 그저 부모님이 이사를 진행하면 따라갔을 뿐이다.

어른이 되어 직접 이사를 진행해 보니 이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용우는 얼마 전, 의대 입시 준비를 위해서 직장을 그만둔 우희와 함께 인테리어 업체도 알아보고, 가구 등등을 보러 다니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새로 이사 갈 집은 보안이 잘되는 고급 아파트 최고층이었다. 지금 사는 우희의 아파트보다 훨씬 넓었기 때문에 집에다 놓을 가구를 이것저것 사야 했다.

그 쇼핑 과정에서 우희가 한마디 했다.

“오빠, 돈 많이 번 건 알겠는데… 너무 생각 없이 쓰는 거 아냐?”

용우의 쇼핑 스타일은 아주 심플했다.

우희가 이것저것 보다가 가장 좋다고 판단하는 게 나오면 그냥 사버렸다.

가격표 따위는 보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가격대 성능비 따위는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용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써봤자 티도 안 나.”

“…….”

“그리고 절약도 벌이에 맞춰서 해야지, 이만큼이나 돈을 벌어놓고 쓰지도 않고 처박아두면 그게 세상에 죄짓는 일 아닐까?”

“와…….”

용우가 지구로 돌아온 후로 채 1년도 안 되어서 자산 규모가 천억 원을 돌파한 것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우리 오빠 왜 이렇게 재수 없지?’

재수 없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랑 같이 나온 김에 차나 보고 갈까?”

용우는 그동안 한가롭게 빈둥거리며 지내지 않았다.

헌터로서 일하는 한편 변해 버린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를 했다.

그 공부 중에는… 15년 넘게 처박혀 있던, 진정한 의미에서의 장롱면허증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동안은 멀리 나갈 일이 있으면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우희 차를 타고 나갔지만 슬슬 차가 하나 있는 게 편할 것 같았다.

“어떤 차를 사려고?”

“비싸고 좋은 차.”

“…….”

“왜?”

“아니, 참… 세상에 이렇게 짜증 나는 대답이 또 있을까 싶어서.”

우희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마음대로 해. 그래, 돈 많이 벌었으면 비싸고 좋은 차 타야지.”

60억 원짜리 아파트도 여동생이 여기 좋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질러 버린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용우가 물었다.

“근데 요즘은 어디 차가 좋은지 모르겠어. 페라리나 포르쉐는 아직도 명품 취급 받는 것 같기는 한데…….”

“스포츠카가 갖고 싶은 거야?”

“갖고 싶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굳이 그걸 사야 할 정도는 아니고. 좀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차가 좋겠어.”

용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도 남자라서 스포츠카에 로망이 있지만 당장 필요한 건 여동생을 어디다 데려다주거나 쇼핑하러 다닐 때 유용한 차였다.

용우와 우희는 몇몇 자동차 매장을 돌아보면서 차를 골랐다.

그러다가 문득 자동차 매장에 비치된 잡지를 발견한 우희가 중얼거렸다.

“아, 이거 오빠 나온 그거다.”

“음?”

용우가 의아해하자 우희가 헌터 업계를 다루는 잡지를 펼쳐서 보여주었다.

“7세대 헌터 10대 유망주라는 기획 기사에 오빠가 나왔어.”

“아, 여기. 기억난다.”

용우는 잡지 이름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인터뷰 거절했는데 그냥 기사를 냈군.”

특집 기사의 표지를 장식한 것은 유현애였다.

전에 들은 바로는 그녀는 미디어 노출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 길 가다 보면 알아본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달라거나 같이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방송 출연은 하지 않지만 인터뷰에는 잘 응해주고, 또 외모가 예쁘기 때문에 언론에서 주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비해 용우는 미디어 노출이 거의 없다. 지금까지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 왔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거절했어도 사진은 실려 있었다. 용우는 공식적인 사진 자료를 허락한 적이 없어서 파파라치들이 찍은 사진 중에 괜찮아 보이는 것을 실어놓았다.

‘파파라치한테 찍히는 것도 대책을 강구하고 싶은데…….’

용우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얼굴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게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파파라치가 원거리에서 찍어대는 것까지 막을 방법이 없다.

은신 말고도 광학 장비 대책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항시 쓰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코멘트라…….”

어쨌든 기자는 용우의 인터뷰를 따지 못한 대신 용우와 함께 게이트 제압 작전을 수행했던 헌터들을 인터뷰해서 기사를 썼다.

‘배틀 힐러는 이렇게 공을 들여서 기사를 써야 할 정도로 귀중한 자원이라는 뜻이겠지.’

국외까지 시선을 넓혀 보면 용우 말고도 7세대 각성자 중에 추가로 배틀 힐러가 나오기는 했다.

현재 용우를 포함해서 전 세계의 배틀 힐러는 총 15명이다.

하지만 경력이 오래된 배틀 힐러들은 슬슬 은퇴를 고려하고 있으니 내년쯤이면 그 수는 다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용우를 제외하면 한국에는 새로운 배틀 힐러가 나오지 않았다.

“오빠가 마음먹으면 유명해지는 건 순식간이겠지?”

“전 세계적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될걸?”

“…….”

용우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우희는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말로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전 세계의 기자들이 벌 떼같이 몰려들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오빠가 무덤까지 비밀을 지켜내길 바랄 뿐이다.

“어쨌든 여기 차들이 괜찮네.”

용우와 우희가 와 있는 곳은 에오제스라는 브랜드의 자동차 매장이었다.

그들은 전기차만을 다루는 브랜드로 10년 전부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으며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았다.

용우가 에오제스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차들의 디자인이 가장 미래적이라서였다.

다른 고급차 브랜드들이 비교적 예전의 틀을 지키면서 새로운 것을 첨가한 디자인인데 비해 에오제스의 차들은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콘셉트 디자인에 가까운 미래적인 디자인을 뽐냈고 그러면서도 실용성을 다 갖춘 4도어 모델들도 내고 있었다.

‘옛날로 치면 람보르기니스러운 디자인이랄까?’

람보르기니는 지금도 여전히 그 미래적인 디자인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판매되는 라인업 중에는 4도어 세단이 없어서 용우는 입맛만 다셔야 했다.

“이걸로 할까? 뒷좌석도 있고, 공간도 좁지 않아서 마음에 드는데.”

“오빠 마음대로 해.”

“너도 태워줄 건데 정말 괜찮겠어?”

“조금… 아니, 많이 요란하긴 하지만, 고급 차는 다 요란하니까 괜찮아.”

우희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그럼 이걸로 하지. 옵션은 대충… 이거랑 이거 빼고 전부 다 넣어서.”

용우가 고른 에오제스 화이트울프는 기본가만 해도 5억 원을 훌쩍 넘는 하이엔드 모델이었다. 용우가 고른 옵션들을 합치면 가격은 훨씬 더 뛰어오른다.

용우가 실종된 동안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는 해도 고급 차량 가격의 상승폭은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었다. 슈퍼카 소리를 듣는 차들은 대개 이 정도 가격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좀 경제 개념이 망가지긴 했군.’

그런 차를 일시불로 질러 버린 용우는 스스로의 경제 감각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 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의 벌이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소시민적 경제 감각을 유지하기에는 계속 계좌에 꽂히는 현금 액수가 너무 강렬하다.

“전기차가 일상화된 세상이 15년도 안 되어서 올 줄은 몰랐는데.”

“나도 그랬어. 세상이 꽤 빠르게 변했지.”

용우는 자동차를 보면서 세월의 간극을 느꼈다.

상온 핵융합 기술로 인해 전기는 예전보다 훨씬 값이 저렴해졌고, 전기차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완전히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았다. 2027년 판매량을 기준으로 가솔린차의 점유율은 채 5%도 되지 않는다.

현재 가솔린차는 전기차보다 비쌌고, 아예 판매가 금지된 국가도 많았다. 그리고 허용된 국가에서도 전기차보다 훨씬 비싼 세금을 물어야 해서 점점 사장되어 가고 있었다.

용우가 실종된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술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전투에 관련된 기술들만이 아니다. 실생활에서도 체감되는 변화가 컸다.

예를 들면 용우가 구입한 차에는 자동 주행 모드가 있었다.

그렇다고 운전자 뜻대로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운전자가 운전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도심의 지정 구역에서는 아예 자동 운행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농담 같은 세상이야.’

실현 불가능 하다고 여겨졌던 상온 핵융합 기술이 실현되면서 인류의 에너지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했다.

더 이상 게이트와 몬스터는 일방적인 재해가 아니다.

인류는 마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연구하면서 아주 많은 성과를 얻었다. 기존의 과학기술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은,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상온 핵융합 기술만이 아니다.

마력석을 이용해 만들어낸 신종 미생물은 방사능을 급속 제거 하는 기적을 가능케 했다.

마치 게이트 재해가 지평선 너머로 나아가기 위한 대가라도 되는 것처럼, 인류는 그 전에는 장기적으로 인류의 존망을 위협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얻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용우는 때때로 심한 탈력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사라졌던 15년의 간극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사실은 저 간극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득한 절망감이 들었다.

세상은 이미 자신을 버리고 저 먼 곳으로 나아가 버렸고, 자신은 영원히 그 흔적을 더듬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런 감각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새 차를 샀는데 거기에 두근거리기보다는 게이트가 그리워지다니.’

오로지 전장에 서서 목숨을 걸고 싸울 때뿐이다.

그때만큼은 영혼을 갉아먹는 이 절망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확실히 내 정신에는 문제가 있군.’

용우는 스스로가 망가져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전장에 나서는 시간이 두려우면서도 기대된다.

자신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어지는 그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의 무력감과 절망감에 삼켜지지 않을 수 있다.

‘과연 나는…….’

그렇기에 용우는 생각한다.

‘…이런 세상을 끝내 버리고 나면, 그 후에도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뒤틀린 세계가 자신이 기억했던 모습을 되찾고 나면, 그때 자신은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 * *

쇼핑을 마친 뒤, 용우는 우희를 먼저 돌려보내고는 대형 쇼핑몰이 들어선 역 주변을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군중 사이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용우의 몇 안 되는 취미 생활 중에 하나였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이렇게 사람 많은 곳으로 나와서 그들 사이를 걸어 다니거나, 어디 한곳에 앉아서 조용히 그들을 구경한다.

모르는 얼굴 수백 수천 개가 스쳐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할 정도로 기분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사람이 많다.

언젠가 내 손으로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무런 적의 없이 스쳐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그 사실이 어비스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그의 마음에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위안을 주었다.

와아아…….

용우는 댄스 팀인지 아니면 아이돌 연습생인지 모를 여자애들이 광장의 계단에서 댄스 연습을 하는 걸 구경하다가 문득 한쪽에서 들려오는 환성을 들었다.

‘무슨 이벤트라도 있나?’

용우는 호기심을 느끼며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가보았다.

쇼핑몰의 지하 시설로 통하는 입구 쪽에 패널에 세워져 있었는데…….

‘이미나 씨?’

거기에 왠지 아는 얼굴이 프린트되어 있는 게 아닌가?

팀 반도호랑이의 헌터 이미나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뭔가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저 사람 연예인 활동도 하고 있었나?’

무슨 이벤트인지 궁금해서 포스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던 용우는, 그곳에서 또 아는 얼굴을 만나고 말았다.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던 유현애였다.

“…….”

여고생으로 보이는 아이들과 같이 셀카를 찍어주고 고개를 돌리던 유현애와 용우의 눈이 딱 마주쳤다.

용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고는 몸을 돌려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거기! 아저씨!”

이벤트에 몰려든 군중에게서 벗어나서 사람이 없는 곳을 걷고 있자니 뒤쪽에서 유현애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우가 못들은 척 하고 걸음을 빠르게 하는데 유현애가 쫓아오는 발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져왔다.

“얍!”

그리고 용우를 쌩 하고 지나치더니 깡총깡총 뛰는 듯한 움직임으로 그 앞을 가로막는다.

“아니, 눈도 마주쳐놓고 모르는 사람인 척 도망치는 게 어디 있어요?”

씩 웃는 그녀에게 용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조금 전하고… 다른데?”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용우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팬 서비스를 하던 그녀는 머리와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테가 굵직한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 전에 봤던 것과는 웃옷도 달랐다. 그새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모양이다.

“후다닥 화장실 가서 변장하고 나온 거예요.”

“변장? 그게?”

“사람들은 의외로 이렇게만 해도 잘 못 알아본다구요.”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유현애는 용우가 지금껏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모자와 안경을 써도 귀여운 외모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고, 20대라기보다는 여고생처럼 보이는 사복이 활달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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