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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대는 결국 지휘관 개체 포획에 실패했다.
오우거 로드가 죽은 시점에서 게이트 소멸이 시작되자 1부대는 발 빠르게 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용우는 한발 빠르게 문 밖으로 나왔다.
그 역시 에우라스와의 교전으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치료 스펠을 써서 치료하기는 했지만 안정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좋았다.
간이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던 용우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큰 신세를 졌다. 자네를 데려오길 천만다행이군.”
오성준이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에우라스라는 적의 출현으로 1부대에서 전사자가 한 명 발생했다. 용우가 아니었다면 피해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례식장이 결정되는 대로 알려주십시오.”
이 작전 전까지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사람이다. 하지만 같은 전장에서 싸우다 죽어갔으니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알겠다. 그리고…….”
오성준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어땠나, 1부대는?”
지금 분위기에서 물어볼 질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용우는 그의 복잡한 심경을 가늠하듯 잠시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사장님이 왜 은퇴했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엉뚱하게 들리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오성준은 그 대답이 1부대에 대한 최고의 찬사임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
작년 9월에 대전에서 2부대를 위기에서 구했을 때, 용우는 오성준에게 감탄했다. 도저히 현역에서 은퇴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실력이었으니까.
그래서 그가 은퇴한 것은 어디까지나 사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성준은 거대한 사업체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최전선에서 일개 헌터로 목숨 걸고 싸우기보다는 팀 블레이드 소속의 헌터들이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1부대의 전투를 보자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5세대 헌터들이 햇병아리티를 벗고 헌터로서 물이 오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오성준은 뛰어난 헌터였다.
그의 전투 감각은 그야말로 초일류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쌓은 헌터이며, 지금 기준으로도 높은 편에 속하는 페이즈9의 마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뚜렷한 한계에 부딪쳐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특성과 스펠만은 어쩔 수 없지. 냉정하게 판단해서 나는 2군에서나 쓸모가 있는 수준이고, 그럴 바에는 사장으로서의 일에 전념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각성자들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이유는 오로지 각성자 튜토리얼에서만 얻을 수 있는 힘, 특성과 스펠 때문이다.
그 둘이야말로 각성자의 잠재력이다. 2세대 각성자인 오성준은 이 근본이 부실했다.
비유하자면 프로 복서이면서도 잽과 스트레이트 두 종류의 펀치만으로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오성준이 아직 현역으로 통용될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를 증명해 줬다. 그는 분명 시대의 전설로 남을 만한 헌터였다.
“7세대들의 잠재력이 개화할 때면 8등급 몬스터 공략도 가시권에 들어올 거다. 그날이 오면 재해지역을 수복하는 것을 목표로 1부대에 모든 자원을 집결시켰지.”
각성자들이 출현하면서 인류는 게이트 재해에 대항할 힘을 손에 넣었다. 잃었던 영토를 수복하고, 사회를 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영토를 수복한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구 북한 영토 중 고작 2할 정도만을 병합한 것도, 중국이 7개국으로 찢어져 있는 것도, 그리고 구 영국령이 죽음의 땅으로 남아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으며 최종 병기인 핵무기로도, 심지어 몇 년 전부터 실전 투입된 레이저 수소폭탄이나 신의 지팡이 같은 최첨단 전략 병기로도 무찌르지 못한 재앙.
8등급 이상의 몬스터들이 한때 인류의 영토였던 곳을 차지했다.
인류가 이 재해 지역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지속적으로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서 몬스터들의 수가 늘어나면 폭격을 가해서 확산을 막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위태위태한 방어전이었다. 8등급 이상의 몬스터들이 영역 의식을 가져서 망정이지,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녔다면 인류는 파멸했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고 이런 위태위태한 상황을 지속할 수는 없다. 1부대는 오성준이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벼리고 있는 검이었다.
“솔직히 우리 부대만으로 해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때는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목표가 가까워졌다 싶으니 새로운 난관이 앞을 가로막는군.”
“…….”
용우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구에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13년 동안 구축된, 게이트 재해에 대한 상식이 있었다. 그것은 절망적일지언정 뚜렷한 기준이었기에 오성준은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달려왔다.
그러나 용우의 등장을 기점으로 상식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전장을 지배하는 룰이 바뀌자 바로 앞까지 다가왔던 목표가 신기루처럼 멀어져 갔다.
“좋게 생각하시죠.”
“어떻게 말인가?”
“룰이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진행되었다는 의미라고. 그건, 즉 끝도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의미죠.”
“…….”
오성준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곧 그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끝이라…….”
퍼스트 카타스트로피는 인류의 상식을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더 이상 진정으로 안전한 장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허공에 뻥 뚫린 구멍을 보게 될까 두려워했다.
그 구멍에서 튀어나온 괴물이 자신의 집을, 동네를 파괴할까 무서워 떨어야만 했다.
더 이상 그런 일이 없는 세상은 모두가 꿈꾸어온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1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게이트 재해가 인류가 계속해서 싸워야만 하는 질병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말았다.
오성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꿈꾸어온 것은 절망 속에서 숨통을 틔우는 것이었지, 절망 그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하게 만들 겁니다.”
용우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반드시.”
* * *
구세록의 계약자 7인은 술렁이고 있었다.
“다니엘 윤, 정보를 얻었나?”
그들은 정보 공간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소통한다. 때로는 물리적 제약을 초월하여 서로에게 힘을 빌려주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원한다면 게이트 안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개입하는 것조차 가능했다. 이미 인간을 초월한 권능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본질은 땅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결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특히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일을 알려면 지극히 인간다운 과정, 즉 정보 공유가 필요했다.
현재 한국을 담당하는 것은 다니엘 윤이다.
그는 정부와 헌터 업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팀 이그나이트의 CEO라는 신분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팀 블레이드의 1부대가 지휘관 개체 포획을 시도했을 때, 정체불명의 적이 나타났다.”
다니엘 윤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이 얻은 정보를 이야기해 주었다.
“지휘관 개체라면 코어 몬스터인데 그걸 포획해? 그런 짓을 했다고?”
다들 술렁였다.
인위적으로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켜서 코어 몬스터를 포획한다니,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포획 자체는 성공하고 게이트 브레이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는군.”
“혹시 그것도 0세대 각성자가 한 건가?”
“아니, 그건 온전히 팀 블레이드가 해낸 일이다.”
다니엘 윤의 말에 몇몇 이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선택 받지도 못한 땅의 잡것들이 그렇게까지…….”
“젠장, 반도의 원숭이들이 주제를 모르는군.”
구세록을 추종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국적을 초월하여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동지들이다.
그러나 그들 개개인은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는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강하게 집착하면서 서로 갈등을 빚었다.
다니엘 윤이 코웃음을 쳤다.
“한심한 놈들.”
그러자 그를 향해 살기가 쏘아졌다. 하지만 다니엘 윤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에우라스라고 불리는 놈이다.”
다니엘 윤이 에우라스에 대한 정보를 말해주자 다들 술렁였다.
“몬스터의 시체에 빙의해서 나타난다고?”
“마치 우리 같지 않은가?”
그렇다.
그들 7명이 바로 ‘고스트’라 불리는, 아직 인류의 힘이 못 미치는 몬스터들을 쓰러뜨려 세계를 수호해 온 존재들이었다.
“게다가 에우라스라는 놈의 힘은 뇌전이었지. 뇌전에 특화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성좌의 힘과 대응할 가능성인가?”
이들 7인은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의 신성한 7성좌의 힘을 가진 자들이다.
그 힘은 7세대 각성자와 함께 지구에 출현한 7개의 아티팩트의 오리지널이었다.
다니엘 윤이 말했다.
“에우라스가 뇌전의 사슬에 대응하는 존재라면, 최소한 그런 존재가 6명은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지.”
“그렇다면 그들이 종말의 7군주라는 뜻이군.”
구세록에는 게이트 재해의 원흉이 되는 종말의 7군주라는 존재가 언급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강력한 존재로 7성좌의 힘에 대응하는 힘을 가졌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지휘관 개체의 출현 이상으로 골치 아픈 사태군. 그놈들은 어느 게이트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데다가 우리처럼 사실상 불멸일 것 아닌가?”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으로 봐서는 그렇겠지.”
“음…….”
다들 신음했다.
사실 다니엘 윤은 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했다.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와 거래할 때 유리하게 쓸 수 있는 카드였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그렇듯 다니엘 윤 역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못했다. 고스트로 활동할 때도 최우선적으로 한국을 보호해 왔기에 한국이 지금까지 무사히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에우라스에 대한 것은 감추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정보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반드시 알아둬야 할 정보이기에 공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확실히…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처음으로, 우리의 싸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인지도 모르겠군.”
구세록의 계약자들은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지혜의 빛으로 끝나지 않아. 다음은 ‘몽상가’가 놈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구세록은 앞으로 게이트 재해가 더 끔찍해질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지혜의 빛’의 의미는 몬스터들 중에 지성체가 출현하는 것임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예고된 구절들은 얼마나 더 끔찍할 것인가?
어쩌면 인류가 지금까지 해온 싸움은 거대한 재앙의 프롤로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절망적인 예감이 구세록의 계약자들을 사로잡았다.
“방법을 찾아야 해.”
“놈들이 변한다면, 우리 역시 변해야만 한다.”
“어차피 우리들뿐이니까.”
“이 세계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들뿐.”
그것은 16년간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확신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다니엘 윤은 그 사실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