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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에우라스라고 말한 정체불명의 존재는 3등급 몬스터, 오우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
한쪽 팔이 뜯겨 나가고 몸에 큰 구멍이 뚫려서 심장이 파괴된 시체였다.
그 몸에 맥동하는 뇌전이 골격의 형태로 입혀져서 꿈틀거리는 광경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기괴함과 강렬함의 결정체였다.
‘이놈은 뭐야?’
시체가 일어났다고 해서 언데드가 나타난 줄 알았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것은 어비스에서도 본 적 없는 기괴한 존재였다.
‘권희수 박사의 가설대로 실체 없는 존재가 ‘빙의’된 것 같은 꼬락서니군.’
다만 다른 지휘관 개체와는 다른 것 같다. 오우거의 시체를 빌려 움직이고 있는데도 거의 6등급 몬스터에 필적하는 마력이 느껴진다.
<나의 행사를 방해하는 너는 누구냐?>
“스스로 알아봐.”
용우는 싸늘하게 대답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무지막지한 뇌전은 흩어졌고 적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거리에서 명중시키기란 쉬운 일이다.
-염동충격탄(念動衝激彈)!
그러나 초음속으로 날아간 에너지탄은 목표를 꿰뚫지 못했다.
파지지지직!
에우라스의 앞에서 일어난 푸른 스파크가 그것을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허공장!’
허공장을 외부로, 그것도 뇌전과 섞어서 전개했다.
저것은 방어인 동시에 공격이다.
“피해!”
용우는 브라보 분대원들에게 외치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꽈아아아아앙!
용우가 전개한 허공장과 에우라스가 전개한 뇌전의 허공장이 충돌했다.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용우가 튕겨 나갔다.
“크윽!”
용우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충격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꽈르릉! 꽈광!
그런 용우를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뇌전이 덮쳤다.
용우는 뇌전을 허공장으로 비껴내며 총을 들었다.
-구전광(球電光)!
그러나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빠르게 뇌전의 구체가 날아와 폭발했다.
‘스펠이군! 젠장, 구전광인가?’
육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생한 뇌전의 구체가 주변에서 연달아 폭발했다. 망막을 태워 버릴 것 같은 빛과 충격파가 허공장을 뚫고 용우를 두들겨 댔다.
‘이 힘만 센 새끼가……!’
일반인이라면 벌써 죽었을 충격이다. 용우도 내장이 진탕했다.
감각 보호 스펠을 걸어두길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미친 듯이 터지는 뇌성에 고막이 터져 나가고, 시야를 온통 하얗게 불태우는 전광에 망막이 손상되었을 것이다.
‘견적 나왔다. 죽여주마.’
용우는 뇌광에 난타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섬전처럼 빠른 사고를 통해 행동을 결정했다.
-인설레이트 필드!
허공장 너머로 절연성을 띤 방어막이 전개되었다. 아직 남아서 꿈틀거리는 뇌전이 그 표면을 범접하지 못하고 미끄러져 간다.
‘힘센 건 인정하지.’
용우는 방어막을 내세워서 뇌전의 폭풍을 뚫었다.
‘하지만 특정 속성에 특화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넌 나한테 안 돼.’
꽈광! 꽈과과광!
뇌전의 격류가 쏟아져서 폭발한다.
그러나 그중 단 한 발도 용우에게 닿지 않았다.
허공장과 중첩된 투명한 방어막 위를 미끄러진다. 그리고 폭발 시의 충격파가 강할 공격들은 용우가 휘두르는 에너지 칼날에 맞고 모조리 튕겨 나갔다.
<감히!>
에우라스가 격노했다. 자신의 공격이 용우에게 모조리 막히고 있음을 안 것이다.
“감히?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주제에 날 보고 감히라고?”
용우가 피식 웃었다.
‘M-링크 시스템 가동.’
동시에 슈트의 팔 안쪽에 달린 스위치를 당겨 M-링크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우우우우우!
양 손바닥과 팔등, 그리고 명치에 설치된 투명한 원형 파츠에 소모재가 채워지면서 푸른빛을 발한다. 뿐만 아니다. 팔과 다리, 몸과 헬멧까지 액상 물질이 흐르는 길이 빛의 띠로 화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용우의 마력이 폭증해 갔다.
‘풀 파워 가동 시간은 길어봐야 3분.’
프로토타입 M슈트의 소모재는 빠르게 소모된다. 길어봐야 3분일 것이다.
‘네놈을 백 번은 죽일 수 있는 시간이지.’
용우가 살기등등하게 웃었다.
파지지직!
에우라스가 다시금 강맹한 뇌전을 방출했다. 꿈틀거리는 뇌전이 폭풍처럼 용우를 덮쳐왔다.
<아니?!>
그러나 소용없다.
M-링크 시스템으로 마력 출력이 증폭되면서 허공장의 견고함도 몇 배로 올라갔다.
뇌전은 절연성 방어막에, 충격파와 뇌성은 허공장에 완벽하게 차단된다. 연달아 폭발하는 뇌광의 한복판에 구형의 공백이 생겨나 있었다.
용우는 시공의 보물고에서 양손 대검을 꺼내 들었다. 그의 마력을 받은 칼날이 부서질 듯 요동치면서 시퍼런 스파크를 발했다.
파지지지직!
용우는 앞으로 전진하면서 양손 대검을 휘둘렀다.
-용참격(龍斬擊)!
호쾌하게 양손 대검을 휘두른 궤도를 따라서 시퍼런 빛이 뿜어져 나갔다.
파삭!
단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특수 코팅이 불타 버린 양손 대검이 부서져 나갔다.
위력은 확실했다. 칼날이 질주한 궤적 10미터 범위에 있는 모든 것이 그 빛에 베어져 나간다. 에우라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숙주로 삼은 오우거 시체가 비스듬하게 잘려서 부서지고 있었다.
<감히, 버러지 주제에……!>
하지만 목이 날아갔는데도 에우라스는 죽지 않았다. 다만 극도로 불안정해져서 시체를 움직이는 뇌전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용우는 멈추지 않았다.
-에어 바운드!
주먹을 내지르자 대기가 폭발하면서 에우라스를 멀찍이 밀어내었다.
그리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그 손에 총 한 자루가 나타났다.
개인화기라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총신의 길이만 해도 1.5미터에 달하는 대(對)몬스터 저격총, 제우스의 뇌격이.
-염동충격탄(念動衝激彈)!
푸른 에너지탄이 에우라스의 몸을 관통했다. 원래부터 너덜너덜해졌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면서 폭발했다.
콰과과과광!
용우가 허공장을 넓게 펼쳐서 그 충격파를 받아냈다. 그러지 않았다면 쓰러져 있던 헌터들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파지지직……!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완전히 흩어지지 않고 대기 중에 흐르던 뇌전이 한곳으로 뭉치더니 인간과 흡사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기억해 두겠다, 내 화신을 해친 자여!>
뇌전으로부터 격노한 텔레파시가 쏟아져 나왔다.
<다시 만나는 날, 네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일방적으로 처발린 잡것이 뭐 그렇게 혓바닥이 길어? 버러지 새끼, 네놈은 백 번을 덤벼봤자 안 돼.”
<이……!>
격노한 인간 형상의 뇌전은, 결국 반박하지 못하고 흩어졌다.
용우는 M-링크 시스템을 끄고 통신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정체불명의 적, 일단 에우라스라고 부르겠다. 에우라스와 교전해서 섬멸했다. 부상자들이 있으니 빠르게 지원 바란다.”
다행히 에우라스를 쓰러뜨리자 통신이 복구되었다. 다른 헌터들이 달려오는 동안 용우는 쓰러진 찰리 분대원들에게 치료 스펠을 한 번씩 걸어서 숨통을 틔워주고는 오우거 로드에게로 다가갔다.
오우거 로드의 몰골은 처참했다.
찰리 분대원들은 포박을 위해서 오우거 로드의 팔다리를 자르고 그 단면을 지져 버렸다. 그 상태에서 에우라스가 발하는 뇌전과 충격파에 두들겨 맞기까지 해서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이대로 놔두면 곧 죽겠군.’
용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치료 스펠을 펼친다 한들 살릴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크르르, 케르, 크르르키룩…….”
으르렁거림이라기에는 기묘한 리듬이다. 용우는 오우거 로드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들어주지. 짖어봐라.”
용우가 텔레파시 스펠을 펼치자 오우거 로드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크으윽……. 아무리 불완전한 강림이었다고는 하나 군주의 뜻을 저지하다니, 네놈의 정체는 뭐냐?>
‘에우라스라는 놈은 이놈들에게 ‘군주’라고 불리는 개체인가.’
마치 7인의 고스트처럼, 그러나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의 시체에 빙의해서 나타난다. 그리고 지휘관 개체와는 달리 텔레파시 능력을 가졌다.
“군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기습으로 재미를 봤을 뿐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딱히 내가 아니더라도 금방 처맞고 찌그러졌을 거다.”
용우가 코웃음을 쳤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허를 찔려서 피해가 나왔을 뿐, 1부대의 수준이면 다른 분대가 합류하는 시점에서 에우라스를 충분히 정리하고도 남았다.
“네놈들은 뭐지?”
<말할 것 같으냐?>
“상관없다. 어차피 너는 포획되었고…….”
-리모트 힐.
용우는 원격 치료 스펠로 오우거 로드를 치료해 보았다. 살리기는 무리지만 조금이라도 길게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부상으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이제 인류가 얼마나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목숨을 붙여놓은 채로 고통을 주는 기술을 발전시켰는지 그 몸으로 맛보게 될 거야.”
<크크큭…….>
오우거 로드는 두려워하기는커녕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용우의 거짓말을 간파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통과 죽음. 그것이 너희들이 나를 다루려는 방식인가?>
“외계 지성체와의 퍼스트 콘택트치고는 아주 유감스러운 방식이지.”
<그런 방식으로는 내게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글쎄, 시험해 보면 알겠지.”
<우리에게 죽음이란 의미가 없다. 너희는 우리를 죽일 수 없다. 그저 파괴할 뿐, 우리의 생명을 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용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우거 로드의 말은 노골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빙의했을 뿐이니 그 육체가 아무리 파괴당한다 한들 진짜 죽는 건 아니라 이거군. 고통도 마찬가지라는 건가?”
<하잘것없는 존재여, 진정한 불멸의 무서움을 알겠느냐?>
용우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네 몸 아니라서 아플 일도 죽을 일도 없어서 무섭지도 않다 이건데,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냐?”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요는 그 몸이 너희들에게 있어서는 원격조종할 수 있는 군사 병기라는 거잖아? 그걸 조종하는 네 실력이 형편없어서 전과도 없이 망가졌는데 그렇게 정신 승리 하고 있으면 부끄럽지 않냐?”
<…….>
“너희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참 불쌍한 놈들이다. 얼마나 인재가 없으면 너 같은 놈을 쓰고 있는 거지?”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한 가지는 확실하군.”
용우가 싸늘하게 웃으며 단언했다.
“너희는 인간이거나 아니면 인간과 아주 유사한 지적 생명체겠어.”
단순히 대화가 통하는 것을 넘어서, 사고방식이나 감정의 원인이 인간과 유사하다. 짧은 대화만으로도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르긴 하겠지만 그 차이는 다른 문화권의 인간 수준 정도인 것 같은데?’
물론 용우는 여기에 대해서 심도 깊은 분석을 해볼 만한 지식이 없었다. 나머지는 이 대화 내용을 전해 받을 전문가들의 일이 될 것이다.
<이놈……!>
오우거 로드는 분노해서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이 무엇인지 들을 기회는 없었다.
“이런. 죽어버렸군. 한 번 더 치료할걸 그랬나.”
용우가 혀를 찼다.
결국 오우거 로드의 몸이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던 것이다.
“어디의 외계인 새끼들인지 모르겠지만 게임 감각으로 지구를 노리고 있었다 이거지? 자신들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주마.”
용우가 경멸을 담아 중얼거렸다.
짧은 대화였지만 많은 정보를 얻었다. 특히 용우 자신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정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