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38화 (3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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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

절대로 돌아보기 싫은 시절의 꿈을.

그곳은 붉은 하늘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뭐야, 너냐?”

메마른 바람을 타고 들려온 물음에 용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큭큭… 아, 하필이면 너라니, 상상도 못 했는데.”

죽어가는 백인 청년의 공허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용우는 무표정했다.

슬픔도, 기쁨도, 심지어 지친 기색조차도 없다.

백인 청년을 관찰하듯 바라볼 뿐이다.

“기분 나쁜 새끼…….”

백인 청년이 툭 내뱉었다.

그렇다.

용우는 다 죽어가는 그를 앞에 두고도 전혀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죽여.”

백인 청년이 용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른 놈들도 다 죽였지? 이제 나밖에 안 남은 거 아닌가?”

용우는 부정하지 않았다.

전장에 투입된 것은 30명이었다.

끝도 없이 넓은 전장에서 30명은 이 시점까지도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무인 병기들과 함께 괴물의 군세를 격파했다.

강대한 괴물들이 넘쳐났고 그 수에 한계가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겼고, 이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파벌에 속한 자들은, 파벌에 속하지 않은 회색분자들을 사냥하려고 했다.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필요할 것 같은 상황에, 그들은 자신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은 자들을 사냥해서 수를 줄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다.

전장에는 그들이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나타나서 통제 불가능한 혼돈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이 사냥감으로 점찍었던 이들은 그 혼돈을 영리하게 이용하면서 반격해 왔다.

괴물의 수가 줄어들수록, 인간의 수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만이 남았다.

“성좌의 아바타들은?”

“할 일을 마치고 사라졌지. 언제나 그랬잖아.”

용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파벌을 이룬 자들이 회색분자들을 사냥한 것에는 승산을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한 명이 죽을 때마다 그 목숨 혹은 영혼을 대가로 강림하는 성좌의 아바타.

그들을 불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 목적 하나만큼은 지나치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성좌의 아바타 7개체가 모두 강림해서 해일처럼 전장을 휩쓸었으니까.

“새삼스럽지만…….”

백인 청년이 말했다.

“역시, 이 세계에는 증오밖에 없어.”

용우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 세계는 증오가 지배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선의와 사랑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증오의 파도에 쓸려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돌아가면 다를까?”

백인 청년이 물었다.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으리라. 그는 용우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아니, 어차피 돌아갈 수 없겠지. 나도, 너도 알아. 이 세계에 출구 따위 없다는 걸.”

“그렇게 생각했다면 왜 여태까지 살아 있었지?”

용우는 참지 못하고 묻자 백인 청년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기에는 무서웠으니까. 살아 있는 게 죽는 것보다는 덜 무서웠으니까 살아 있었던 거야.”

“…….”

“너도 그렇지 않나? 나를 죽이러 온 거잖아. 하지만 이렇게 내가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지. 무서우니까 그런 거잖아.”

용우는 반박하지 못했다.

무서웠다.

어쩌면 이 남자와의 대화가 살아 있는 동안 타인과 나누는 마지막 대화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눈앞의 인간을 증오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죽여 버리고 나면 혼자 남는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렇지? 인정해. 너도 똑같아. 하지만 말이야. 너도 결국…….”

용우는 그의 말을 끝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콰직!

들고 있던 검을 던져서 그의 숨통을 끊었을 뿐이다.

후두두두두…….

그리고 빗소리처럼 땅을 두들겨 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청년의 아공간이 해제되면서 그 안에 보관되어 있던 물건들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였다.

“…멍청한 소리를 유언이랍시고 지껄이다니.”

용우의 중얼거림은 그 소리에 파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청년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힘이 흘러들어 오는 감각 때문에, 그 자신조차 들을 수 없었다.

* * *

“…….”

새벽에 눈을 뜨니 창밖으로 빗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꿈의 마지막에 들었던 그 소리와 무척이나 비슷한 느낌이 드는 소리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뜬 용우는 창문으로 다가가서 거기에 손을 댔다.

“확실히 출구 따윈 없었지…….”

용우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출구 따위는 없었다. 어비스는 그곳에 발 들인 모두를 죽이기 위한 세계였다.

인간을 죽여 그들이 갖고 있던 물건을 얻는다.

인간을 죽여 그들의 체내에 녹아들었던 스펠스톤과 마력석을 얻는다.

그리고 인간을 죽여… 그들을 이루던 근본적인 힘의 일부를 얻는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살해하는 자가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세계.

더 큰 힘을, 더 많은 자원을 얻어서 하루라도 더 생존할 수 있었던 세계.

용우는 그 세계의 기억을 떨쳐내려는 듯 비를 노려보며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 * *

2028년 1월이 지나고 2월이 되었다.

용우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동생과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이사할 집 매물들을 살피고, 중간중간 트레이닝 센터에 2~3일씩 들어가서 훈련도 하고, 그러다가 배틀 힐러 서용우로서 전투에도 한번 참가했다.

용우의 명성은 서서히 높아지고 있었다.

이미 그가 신인이라고 볼 수 없는 기량을 지녔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어느 정도 급수가 되는 팀에서는 위험도가 높은 임무에 투입될 때면 그를 쓰고 싶다는 요청을 보내왔다.

용우가 데뷔한 지 3개월, 단 3회의 전투에 참가했을 뿐이다.

그런데 용우는 들어오는 일을 감사하면서 하는 게 아니라 ‘일을 고를 수 있는’ 위치에 올라 있었다.

그것은 물론 용우의 능력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틀 힐러라는 포지션이 대체 인력을 찾을 수 없는 희귀한 인력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 * *

“으아아, 아저씨 거짓말쟁이…….”

유현애는 훈련장 바닥에 쓰러진 채로 신음하고 있었다.

용우가 의아해했다.

“내가? 왜?”

“트레이너 노릇 안 한다더니 미나 언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람을 굴려대잖아요!”

두 사람은 헌터 관리부가 빌려준 훈련장에서 이루어진 훈련 형식으로 불꽃의 활 연구를 하고 있었다.

훈련이 시작되고 1시간이 지나자 유현애는 마력이 바닥나서 탈진해 버렸다.

용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난 너한테 뭔가 가르친 기억이 없는데?”

“와, 어이없어…….”

유현애는 기가 막혔다.

용우는 막무가내식 교관이었다.

처음에는 불꽃의 활로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하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이건 왜 못하냐,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 저렇게도 해봐라 하는 식으로 시범을 보여주는 식으로 유현애에게 마력을 다루는 기술을, 그리고 불꽃의 활의 새로운 용법을 쥐어짜 내게 만들었다.

“나 오늘 여기서 배우라고 강요받은 게 한둘이 아니거든요?”

“그건 딱히 가르치려고 한 건 아닌데. 그냥 연구하는 데 필요한 일들을 시킨 거지.”

“…….”

“네가 지시를 따르지 못하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준 것뿐이야.”

용우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아티팩트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유현애가 그가 원하는 상황을 연출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현애가 워낙 못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줬을 뿐이다.

“내가 너를 ‘가르치려고’ 했으면 이런 식으로는 안 했어.”

“그럼 차라리 제대로 가르쳐 주든가요!”

“싫어.”

“왜요? 설마 그냥 귀찮아서?”

“잘 아네.”

“…….”

“귀찮은 데다 내가 널 가르칠 이유도 없지. 내가 널 가르쳐 봤자 너희 팀에서 너를 훈련시키려고 세운 계획을 망칠 뿐일걸.”

“그럴 리가. 불꽃의 활의 허공장을 컨트롤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구요.”

용우는 팀의 선배 헌터들이나 트레이너들도, 연구원들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고 있었다.

불꽃의 활의 주인인 유현애조차도 생각지 못한 부분들을 지적해서 새로운 용법을 끌어내었다. 거기에 허공장을 몸의 일부처럼 활용하는 법까지 알려주었다.

“확실히 체외 허공장에 대해서는 연구가 별로 안 된 것 같더군.”

세계적으로도 체외 허공장을 가진 각성자는 극소수였다.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스펠과 특성의 대부분은 진행하면서 얻는 포인트를 지불해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희귀한 스펠과 특성도 있는데, 체외 허공장도 그런 경우였다.

습득하기 까다로운 만큼 사용자가 적고, 그래서 연구 데이터도 적다.

“하지만 나는 허공장을 다루는 법을 딱히 이론화해서 익히고 있는 게 아니라서… 그냥 하다 보니까 할 수 있게 됐을 뿐이지.”

“그런 것치고는 잘 가르쳐 줬잖아요?”

“잘 가르쳤나? 내가 보기엔 네가 잘 배운 것 같은데.”

용우의 심드렁한 말에 유현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나 칭찬한 거예요?”

“그럴걸.”

“그런 거면 그런 거지 그럴걸은 뭐예요?”

유현애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자 용우가 흥 하고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너는 감각이 뛰어나.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설명이 참 개판이었는데…….”

“알긴 아네요.”

“응? 뭐라고?”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딴청을 부리는 유현애에게 용우가 눈을 흘겼다.

어쨌든 유현애의 센스는 굉장했다. 개떡같이 가르치면 찰떡같이 알아듣는 수준이다.

특히 불꽃의 활 자체에 내재된 허공장을 끌어내어 컨트롤하는 법을 몇 번의 시범과 지시만으로 터득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시범 몇 번과 지시만으로 해내다니, 확실히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하지.’

용우도 그녀의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몸 쓰는 재능은 별로인데 감각적인 부분은 확실히 탁월하군. 각성자 튜토리얼 성적 우수자라 그런가? 아니면 프로 게이머 출신이라서?”

각성자 튜토리얼에 소환되기 전까지 그녀는 현역 프로 게이머였다.

18세, 고교 2학년 때 데뷔해서 국내 리그의 연승 기록을 갈아치우고 리그 중위권이었던 소속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 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듬해에는 여성 프로 게이머 최초로 국내 개인전에서 우승컵을 거머쥐고 세계 대회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최강의 여성 프로 게이머 중에 한 명으로 인기 절정의 프로 게이머였던 것이다.

“각성자가 되는 바람에 다 물거품이 됐지만요.”

각성자는 프로 게이머가 될 수 없었다.

프로 게이머만이 아니다. 그 어떤 스포츠도 각성자가 공식전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유는 각성자의 피지컬이 기존에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수준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세계 정상급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도핑을 해도 각성자들에게 범접할 수 없을 정도니 당연한 일이었다.

문득 용우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

“뭐가요?”

“각성자 튜토리얼이 게임 같은 성격을 띤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겉보기가 그럴 뿐이지.”

클리어 조건이 정해진 스테이지를, 지시에 따라서 공략한다는 점에서는 정말 게임처럼 보이는 것이 각성자 튜토리얼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목숨을 건 투쟁을 강요받는 시험장이다.

“넌 무섭지 않았어?”

“무서웠죠. 제가 미친 것도 아닌데 안 무서웠을 리가 없잖아요.”

“그럼 이미 공략 자료가 축적된 구간을 지날 때도 무서웠을 텐데, 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미개척 영역까지 공략한 거지?”

용우는 그 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공략할 능력이 있는가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공략하지 않아도 살아남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목숨을 걸고 미지의 위험에 도전했는가?

유현애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뭐, 아저씨도 알잖아요.”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여기 와서 용우의 뜻에 따라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유현애의 눈에 독기가 오르고 있었다.

용우는 그런 모습이 귀엽다는 듯 피식 웃고는 말했다.

“…맘대로 해라. 듣다 보니 별로 짜증 나는 호칭도 아니군.”

“칫.”

유현애가 재미없다는 듯 혀를 차고는 대답했다.

“각성자 튜토리얼에서는 왠지 강박관념에 등을 떠밀리는 기분이 들잖아요. 그래서 안전권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게 굉장히 큰 스트레스였어요. 매일 밤 악몽을 꾸는 것 같은, 혹은 뒤에서 무서운 사람이 안 가면 죽여 버리겠다고 속삭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라 반쯤 자포자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죠. 근데 설마 아저씨는 안 그랬어요?”

“난 각성자 튜토리얼에 가본 적이 없어.”

“음? 그럼 어떻게 각성자가 된 건데요?”

“내가 다녀온 곳은 각성자 튜토리얼하고는 좀 많이 다른 곳이지.”

용우는 그렇게만 말했다.

어쨌든 유현애의 대답으로 용우가 그동안 어렴풋이 품고 있던 의문 한 가지가 풀렸다.

‘아무리 전투에 적합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소환된다고 하더라도, 그 모두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안전권에 머물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지. 그 점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대책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건가.’

참으로 악질적인 시스템이다.

개개인의 의사를 짓밟고 목숨을 건 게임에 내던지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 목숨을 아끼며 겁쟁이로 남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다니.

‘만든 놈들은 자기들이 세운 뜻을 위해서라면 자기랑 상관 없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상관없다는 놈들이겠지.’

당장 유현애만 하더라도 프로 게이머의 꿈을 영영 잃지 않았는가.

누군가는 지금의 인생이 더 나은데 뭐가 불만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헌터 일은 매 전투마다 죽음의 리스크를 져야 하고, 부상이나 전투 스트레스로 망가지는 사람이 수두룩한 일이다.

그런 헌터로서의 삶을 강요받는 것은, 과연 유현애에게 있어서 스스로의 재능을 증명하고 열정을 불태우던 프로게이머의 삶보다 나은 것일까?

‘이 모든 것을 계획한 놈들… 반드시 찾아서 죽여 버린다.’

그런 놈들 때문에 자신의 여동생이 평생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문득 용우가 유현애에게 말했다.

“충분히 쉰 것 같으니 다시 시작하지.”

“으아아…….”

유현애가 또다시 찾아올 고통의 시간을 상상하며 울상을 지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3월 초가 되었다.

용우는 헌터 관리부로부터 일을 받아서 수송기에 탄 채로 브리핑 데이터가 들어있는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그가 이번에 투입되는 전장은…….

‘50미터급이라.’

인류의 힘으로 대적할 수 있는 한계점으로 불리는 존재, 7등급 몬스터가 출현한 게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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