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37화 (37/225)

5

헌터 업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팀 반도호랑이가 고작 20미터급에서 5명의 전사자가 나올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것만으로도 이슈가 될 일이다.

그러나 헌터 관리부의 소관으로 각 헌터 팀의 고위층을 모아서 속사정을 밝히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성을 가진 몬스터라니.”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몬스터들에게 조직적인 행동을 강요하는 지휘관의 능력까지 갖췄다니, 인류가 만나본 최악의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곧바로 헌터 업계 수뇌부가 모여서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최대한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다행히 같은 날 발생한 게이트에서 지성체 몬스터… 음, 일단은 지휘관 개체라고 명명하죠. 지휘관 개체가 등장한 곳은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또 언제 그런 놈들이 등장할지 알 수 없죠. 전술 매뉴얼 수정이 시급합니다.”

몬스터와 직접 맞서 싸우는 헌터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상식이 무너지는 공포에 오싹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놈들에 대해서 연구해 볼 최소한의 자료는 수집되었다는 거로군요.”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시체가 놀랍도록 온전한 상태로 수거되었다.

목을 잘라서 숨통을 끊었기 때문에 뇌까지도 형태를 잃지 않았다. 이미 긴급 소집 된 연구원들이 정밀 검사로 데이터를 모으고 있었다.

“제로. 확실히 대단한 자로군.”

헌터 관리부 수뇌부 역시 제로에게 요구한 추가 의뢰가 무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당장 팀 반도호랑이를 위기에서 구해야 하는 급박함 속에서 코어 몬스터 하나를, 되도록 연구할 만한 데이터를 끌어내면서 최대한 온전한 시체로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다. 현장에서 뛰는 입장에서는 욕 나오는 소리다.

그런데 제로는 모든 요구 사항을 완벽하게 달성했다.

헌터 관리부 장관이 말했다.

“백원태 사장, 그의 처우에 대해서는 당신의 결단이 옳았던 것 같군요.”

그 자리에는 백원태와 오성준도 참석해 있었다.

백원태가 미소를 짓자 오성준이 아니꼬워하며 코웃음을 쳤다.

“당분간은 정찰 매뉴얼에 지휘관 개체가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을 최우선으로 할 것을 추가해 둬야만 하겠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몬스터와 싸우기 위한 전술 매뉴얼 수정에 들어갔다. 이 작업이 빠르고 정확가게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 엄청난 출혈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 * *

악몽의 데뷔전을 치른 지 3일이 지난 날의 저녁, 유현애는 마포구의 5성 호텔 크로노스 호텔에 발을 디뎠다.

“우와…….”

팀 반도호랑이에서 같이 보내준 매니저를 로비에 대기시키고 최상층의 레스토랑, 그중에서도 VIP룸으로 안내된 그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각성자가 된 후로 이런저런 호사를 누려보았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재킷에 청바지라는 캐주얼한 차림새를 한 청년이었다.

전문 코디네이터들의 손길을 거쳐서 근사한 차림새를 한 유현애는 뭔가 억울함을 느끼며 물었다.

“왜 약속 장소가 이런 곳이에요?”

“공짜라서.”

“…….”

용우의 대답에 유현애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농담입니다. 하지만 대신 돈 내주겠다는 스폰서가 있는데 굳이 안 써먹을 이유도 없죠.”

“아저씨는 돈 엄청 많이 벌었을 거라고들 그러던데.”

“전에도 말했지만 난 당신에게 아저씨라고 불릴 이유가 없습니다만?”

“아, 죄송해요. 서용우 헌터님이라고 부를게요.”

유현애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용우가 불편해졌다.

“그건 좀 너무 부담스러운데…….”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서용우 씨로 하죠, 유현애 씨.”

“네.”

용우가 말을 이었다.

“여기로 약속 장소를 잡은 것은 남들 눈 피하기 좋아서입니다. 나나 당신이나 서로 만난다는 게 알려져서 좋을 거 없잖아요?”

“저기요.”

“말씀하시죠.”

“그냥 말 놓으세요. 솔직히 되게 부담스러워요. 저랑 나이 차가 여고생만큼 나는데.”

왜 하필 여고생이지?

용우는 그녀의 엉뚱한 비유에 당혹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하지.”

“어쨌든 저를 이런 곳으로 불러내셨다는 건, 저한테 정체를 들켰다는 걸 인정하시는 거죠?”

“그래.”

“거봐요. 결국 그럴 거면서 왜 그렇게 완강하셨담.”

“현재 내 정체는 헌터 관리부의 기밀로 지정되어 있어서, 그걸 알게 되는 순간 헌터 관리부의 특별 관리 리스트에 올라가거든. 축하해, 유현애 양. 당신도 오늘부터 거기에 이름이 올라갔어.”

“…….”

“농담 아니야. 여기서 나가자마자 헌터 관리부에서 소환할 거야.”

“으아, 너무해…….”

“너무하긴. 비밀이란 건 이유가 있으니까 비밀인 거야. 그냥 혼자서 가슴에 묻어두지 그랬어?”

“그치만… 내가 누구한테 고마워하고 있는지 정도는 확실하게 하고 싶었는걸요. 으으으…….”

유현애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이미 알고 있잖아?”

“그거 말고요.”

“더 알아봤자 좋을 게 없을 텐데? 제로의 정체가 서용우다, 거기까지만 아는 것과는 달라. 폭탄을 끌어안은 기분이 될걸? 그래도 알고 싶어?”

사악하게 웃는 용우의 물음에 유현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히 허세라고 보기에는 용우의 능력이나 배경이 너무 심상치 않았다. 그 능력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인지 자기 눈으로 본 유현애가 아닌가?

“…이왕 여기까지 왔잖아요. 원래 게임은 히든 요소까지 다 클리어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요.”

“좋아. 그렇게까지 각오했다면 말해주지. 2012년에 일어난 대실종을 기억하나?”

“기억은 못 하죠. 저 올해로 21살이거든요? 그때 저 5살이었다고요.”

“…….”

용우 입장에서는 자신이 대학생일 때 유치원을 다녔던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눈앞에 앉아 있는 셈이다.

잠시 세월의 흐름을 느낀 용우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래도 알긴 알아요. 미나 언니도 그때 삼촌이 실종됐다고 그랬거든요.”

“미나 언니라면, 너희 팀의 이미나 분대장 말인가?”

“네. 그런데 그게 왜요?”

“난 그 사건으로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이다.”

“네에?”

유현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용우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통칭 0세대 각성자라고 하지. 참고로 대실종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나 혼자야. 전 세계에 유일하지. 친한 사람 중에 대실종 피해자가 있다니까 경고하는데… 혹시라도 발설할 생각은 하지 마. 절대로 뒷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거다.”

유현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용우가 경고한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체감이 되고 있었다.

용우가 말을 이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건 네게 협력을 받고 싶어서야.”

“협력이라면 어떤 협력이요?”

“네 아티팩트를 연구하는 데 협력해 주면 좋겠어.”

“…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드리고 싶지만 죄송해요. 그건 제 의사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유현애의 아티팩트, 불꽃의 활에 대한 연구는 이미 여러 기관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협상권은 유현애가 아니라 팀 반도호랑이 측에 있었다. 애당초 그런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안심해. 네가 OK하면 그 문제는 내 쪽에서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정확히는 백원태와 오성준이 해결해 줄 것이다.

“팀에 비밀로 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연구라고 해도 네가 여기저기 연구소에 불려가서 협력해 주던 것과는 좀 다를 거야.”

“어떻게 다른데요?”

“내가 원하는 건 이론적으로 아티팩트를 분석하는 게 아냐. 그 힘을 실체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알아내고 그 본질을 파악하는 것. 두 가지 목적 중에 전자는 나보다도 네게 더 이익이 되겠지.”

아티팩트는 용우에게도 미지의 존재다.

어비스의 7성좌로부터 내려온 성좌의 아바타들과 여러 번 접촉해 봤지만 그들의 힘을 차분히 파악하거나 연구할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유현애의 협력을 받을 수 있다면 큰 이익이 될 것이다.

‘정신파 기록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하고.’

유현애에게 들킨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타국의 아티팩트 소유자들도 동일한 능력을 가졌다면 행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확실하게 파악해둘 필요가 있었다.

“어쨌거나 아티팩트에 대해서는 빨리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아직 기사로는 안 나갔지만 이런 정보가 나왔거든.”

용우는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태블릿을 유현애에게 밀어주었다.

그것을 받아 들고 화면을 켜본 유현애는 깜짝 놀랐다.

“아티팩트 보유자가 죽었어요?”

남중국 소속의 아티팩트 보유자가 사망했을 거라는 추측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징 궤멸 후 7개로 갈라진 중국, 그중에서 남중국은 지방 군벌의 지배가 그대로 굳어진 군사독재국가였다.

그들은 아티팩트 보유자의 데뷔전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는데, 그 결과는 전혀 보도하지 않고 정보를 은폐하고 있었으니 결과를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남중국의 일 때문에 다른 국가들은 아티팩트 보유자들의 실전 투입을 뒤로 미뤘어.”

아티팩트 보유자가 지성을 가진 지휘관 개체를 불러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가설 때문에 아티팩트 보유자의 실전 투입을 뒤로 미루기로 한 것이다.

“아마 넌 당분간은 작전에 투입되지 않을 거야. 너 없는 전장에서도 지휘관 개체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말에 유현애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제가 OK하면 정확히 뭘 하게 되는 거죠?”

“헌터 관리부에서 지금 놀고 있는 훈련장을 대여해 주기로 했어. 거기서 나랑 훈련을 하게 될 거야.”

“훈련요?”

유현애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지금도 하드한 훈련 스케줄에 시달리고 있는 몸이었으니까.

용우가 웃었다.

“뭐, 훈련이라고 해도 내가 네 트레이너 노릇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야. 훈련 형식의 연구라고 보면 되겠지.”

“알겠어요. 받아들일게요.”

“의외로 순순하군.”

“저도 불꽃의 활에 대해서는 좀 더 알고 싶거든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서용우 씨는 제가 아는 누구보다도, 저보다도 더 불꽃의 활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고. 그것도 0세대 각성자라 그런 건가요?”

“그렇다고 해두지.”

“제대로 알려주는 게 없네요. 알겠어요. 덕분에 목숨을 구했는데 제가 협력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릴게요.”

“고맙군. 중요한 이야기는 끝났으니 이제 그만 식사를 내오라고 해도 될까? 여기 요리는 정말 맛있는데.”

“네. 저도 배고파요.”

곧 예쁘게 플레이팅된 요리가 하나하나 나오기 시작하자 유현애는 폰카로 신나게 사진을 찍어 메신저로 이미나에게 자랑하면서 행복해했고, 용우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생각했다.

‘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저러면서 좋아하지? 요즘 애들 진짜 모르겠네…….’

아무래도 그는 15년간 세상에 뒤쳐진 만큼, 나이를 먹은 것이나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그런 인정하고 싶지 않은 깨달음이 슬금슬금 가슴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Chapter12 유령의 얼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