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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를 선언한 용우는 가장 긴급한 일부터 처리했다.
-리모트 힐!
용우의 머리에 후광이 일며 원격 치료 스펠이 유현애와 이미나에게 적용되었다.
‘어?’
유현애는 몸 상태가 갑자기 호전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이미나가 물었다.
“당신은……?”
“제로.”
헬멧 안쪽에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들을 지원하러 왔습니다.”
“혼자 온 겁니까?”
“그렇습니다.”
“…….”
순간 유현애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나의 반응은 달랐다. 베테랑 헌터인 그녀는 업계에 도는 제로의 소문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소문의 절반만 사실이라고 해도 이 상황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으리라.
“현애야, 이리로 와.”
“주변의 몬스터들이 추가로 몰려들 수도 있습니다. 경계하십시오.”
용우가 그렇게 말할 때, 살기등등해 있던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스펠을 발했다.
-용참격(龍斬擊)!
날카로운 다섯 줄기 에너지 칼날이 용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위로 3미터 50센티를 넘는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거구가 놀랍도록 민첩하게 옆으로 뛰었다가, 다시 몸을 꺾어서 삼각형 궤도를 그리면서 용우에게 돌진해 왔다.
‘어?’
유현애는 다음 순간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경악했다.
‘허공장?’
푸른빛으로 가시화된 허공장이 비스듬한 형태로 펼쳐지면서 다섯 줄기 에너지 칼날을 비껴내 버리는 게 아닌가?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미숙한 자신과는 전혀 다른 허공장 운용에 유현애가 감탄할 때였다.
파지직…….
그녀의 손에 들린 불꽃의 활이 진동하면서 마력 기관을 자극했다.
‘이 느낌은… 설마 그때 그?’
놀라는 그녀 앞에서 용우와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격돌했다.
용우는 덮쳐오는 우두머리 늑대 인간을 가볍게 피하고는 측면에서 발차기를 날렸다.
투학!
스펠이 실린 발차기가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 작렬,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움직임을 막았다.
-에어 바운드!
이어 공기가 폭발하면서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거구가 몇 미터나 튕겨 나갔다.
동시에 용우의 손에 마술처럼 소총 한 자루가 나타났다.
-염동충격탄(念動衝激彈)!
푸른 섬광이 마하2의 속도로 공간을 꿰뚫었다.
그 공격의 타깃은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두 마리의 늑대 인간 중 하나였다.
아직 부상이 없던 늑대 인간이 단 일격으로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다.
크르르릉! 카릉!
그 광경을 본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격노했다. 용우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이미나에게 부상을 입은 늑대 인간과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용우의 좌우를 점하고 달려든다.
“멍청하긴.”
그들이 앞뒤에서 접근해 오는 순간, 용우의 모습이 꺼지듯이 사라졌다.
직후 늑대 인간의 뒤쪽에서 나타난 용우가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염동충격탄(念動衝激彈)!
그 일격이 늑대 인간의 머리통을 뒤통수에서부터 꿰뚫어서 날려 버렸다.
하지만 위로 날리는 각도였기 때문에 우두머리 늑대 인간에게는 미치지 않았다. 우두머리 늑대 인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머리 잃은 부하의 시체까지 한꺼번에 베어버리기 위해 스펠을 발했다.
-용참격(龍斬擊)!
하지만 소용없다.
용우는 다시금 공간을 뛰어넘어서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뒤를 점했기 때문이다.
파지지직!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등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발생했다.
용우와 우두머리 늑대 인간, 둘의 허공장이 서로 다른 파문을 그리면서 충돌했고 그 결과 마력 기관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강렬한 마력 파동이 주변을 강타했다.
“하하하.”
그리고 용우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유현애와 이미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용우의 손이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허공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통과해서 오른 손목을 붙잡은 것이다.
“지성이 있고, 스펠도 쓴다. 하지만 거기까지로군. 허공장 잠식에 저항조차 못 해.”
퍼어엉!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과 함께 폭음이 울려 퍼졌다.
카아아아아!
그리고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용우가 붙잡았던 지점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오른 손목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두머리 늑대 인간에게 용우가 명백히 조롱하는 투로 말했다.
“다른 스펠이 있으면 어디 한번 꺼내보시지? 할 수 있으면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아서 일단 노력은 해야 하거든?”
키에에에에!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허우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한 걸음 거리가 벌어지는 순간 냅다 발차기를 날렸다.
-용참격(龍斬擊)!
발톱으로 용참격을 발하면서!
“발로도 쓸 수 있었군. 하지만 그게 다인가?”
그러나 용우는 이번에도 허공장을 변형시켜서 간단하게 그것을 비껴내고는 접근,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몸통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라이트닝 블로!
뇌광이 폭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튕겨 나갔다.
“정말 그게 다야?”
그렇게 묻는 용우의 목소리에 기묘한 울림이 실려 있었다.
‘뭐지?’
도저히 인간의 목소리를 눈앞에서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음질이 떨어지는 라디오 스피커로 듣는 듯한 그런 울림.
키이이, 이이이익?
“정말 인간이 맞냐니? 그럼 내가 인간 말고 뭘로 보이냐?”
크르릉! 캐개갱캥! 크르르르…….
“놈들이라. 그건 고스트를 말하는 건가? 네놈들, 고스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군?”
한 걸음, 한 걸음 우두머리 늑대 인간에게 다가가는 용우를 보면서 유현애와 이미나는 오싹해졌다.
“…저기, 언니.”
“왜?”
“저 사람, 지금 설마… 몬스터랑 대화하고 있는 건가요?”
“그, 글쎄…….”
이미나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밖에 안 보였기 때문이다.
용우가 말했다.
“더 보여줄 게 없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죽어라. 수습해야 할 일이 많아서 더 이상 시간을 못 끌겠군.”
크아아아아!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이판사판으로 달려들었다.
파악!
그러나 이 괴물이 용우에게 채 두 걸음도 다가오기도 전에, 무릎 아래쪽 높이에 구현되어 있던 보이지 않는 칼날에 걸렸다.
‘역시 사일런트 엣지는 가격대 성능비가 최고야.’
용우가 차갑게 웃었다.
인간이라면 그대로 다리가 깨끗하게 잘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다리는 뼈에까지 이르는 깊숙한 상처가 나는 것에 그치고, 오히려 칼날이 부러져 버렸다.
카아아아아!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절룩거리며 뛰어들었다.
하지만 용우는 격투전으로 상대해 주지 않았다.
-마격탄!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뛰는 것과 동시에 뒤로 뛰면서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
연사로 날아간 소총탄이 우두머리 늑대 인간을 저지했다.
피투성이가 된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허우적거리듯이 양팔을 휘둘러 댔다. 그러나 용우는 마치 늑대 인간을 놀리듯이 그 모든 공격을 피해버렸다.
이미나는 그 광경을 보며 얼어붙었다.
‘강해.’
그녀는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다.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우두머리 늑대 인간과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우가 보여주는 전투능력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 싸우기는커녕 마치 어린애를 데리고 놀듯이 우두머리 늑대 인간을 철저하게 농락하고 있다.
“대충 다 본 것 같군. 끝내자.”
어느 순간, 용우가 질렸다는 듯 말하면서 파고들었다.
-용참격(龍斬擊)!
나이프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 칼날이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파악!
깨끗하게 잘린 늑대 인간의 목이 높이 날아올랐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슈우우우우……!
그리고 목을 잃은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시체가, 절단면에서 검은 증기 같은 기운을 세차게 뿜어내며 쓰러졌다.
“특별한 개체라고는 해도 목 날리면 죽는 건 똑같군.”
용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몸에 손을 뻗었다.
치이이이익!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몸에서 발생한 연기 같은 기운이 용우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흠, 연구용으로 쓰겠다고 했으니 적당히 먹어야지.’
용우는 소모한 마력을 보충하는 선에서 에너지 드레인을 멈췄다.
헌터 관리부의 추가 의뢰는 두 가지.
코어 몬스터들의 전투 데이터를 최대한 끌어내 줄 것.
연구용으로 쓰고 싶으니 가능한 한 코어 몬스터의 신체를 훼손시키지 않고 쓰러뜨릴 것.
‘이런 상황에서 참 개소리를 잘도 지껄인단 말이지.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 놈들의 마인드란.’
보수를 상당히 세게 걸기는 했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용우 자신에게 그 의뢰를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들어주면 그놈들 버릇 나빠질 텐데.’
용우는 그들이 다른 헌터들에게 똑같은 억지를 부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통신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 * *
용우의 활약은 우두머리 늑대 인간을 처치하고 이미나와 유현애를 구출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전장에 흩어져 있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그들을 하나로 집결시켰다.
그가 투입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되자 출입구 쪽에 포진한 서포터 팀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혼자서 순식간에 상황을 뒤집다니, 소문이 과장 된 게 아니었군…….”
“저런 헌터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용우가 해낸 일은 최소한 베테랑 분대 하나를 투입해야 가능할 일이었다.
문밖에서 시간차를 두고 그 상황을 보고 받는 김은혜도 전율을 금치 못했다.
‘한 사람이 모든 포지션의 능력을 다 가지면 이런 일도 가능한 건가?’
역사적으로 단 한 사람도 존재한 적이 없는 환상의 올라운더.
‘설마 이 급박한 상황에 그 의뢰까지 수행해 내다니…….’
김은혜는 상부의 요구를 전달하면서,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용우는 너무나 쉽게 그 의뢰를 수행해 버린 게 아닌가?
‘이런 사람을 구금해 두려고 수작을 부렸다니, 나도 참… 호랑이 아가리에 목을 들이밀고 있었네.’
새삼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깨닫자 오싹한 공포가 몰려왔다.
“더 이상의 코어 몬스터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이트 소멸이 시작됩니다.”
코어 몬스터는 게이트의 핵심이다.
코어 몬스터의 생명 반응이 끊어진 시점부터, 게이트는 기둥을 잃은 건물처럼 소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소멸이 정말 건물이 무너지는 것처럼 극적으로 빠른 것은 아니다. 다른 세계의 일부를 잘라놓은 것 같은 유사 세계는 외곽부터 서서히 축소되어 가는데 그 시간은 짧아도 30분, 길면 3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구조 작업을 완료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것은 팀 반도호랑이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문 안쪽에는 아직도 구조해야 할 부상자들이 있었고, 수습해야 할 전사자들의 시신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때 언급하기는 뭐 하지만 이번 작전을 손해 보고만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몬스터들로부터 마력석도 최대한 채취해야 했다.
그 작업이 끝나기 전, 게이트에서 나온 용우가 김은혜에게 말했다.
“그럼 난 먼저 수송기에 가 있지.”
“수고하셨어요. 추가 의뢰비는 사흘 안으로…….”
“잠깐만요!”
그의 뒤를 따라온 유현애가 외쳤다.
“오늘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헐레벌떡 다가온 그녀가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잠깐만이면 돼요.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난 당신이랑 할 비밀 이야기가 없습니다만.”
유현애는 거기서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용우가 빤히 알아볼 수 있도록 천천히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고. 마. 워. 요. 서. 용. 우. 씨.’
순간 용우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알았지?’
그냥 찔러봤다고 하기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지 않았나?
애당초 용우와 그녀는 접점 그 자체가 별로 없었다. 목소리도 변조하고, 얼굴도 감추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알아봤단 말인가?
용우가 배틀 힐러고, 제로도 배틀 힐러로서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근거가 너무 부족한데. 진짜 그냥 아무 근거 없이 찔러본 건가? 그런 거겠지?’
헬멧으로 얼굴을 감추고 있었기에 용우의 당혹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왜 입을 뻐끔거립니까?”
“…….”
용우가 태연함을 가장하고 묻자 유현애가 움찔하더니 얼굴을 사과처럼 붉혔다.
그녀 딴에는 만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당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제스처로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한 모양이다. 하지만 용우가 거기에 호응해 줘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 나중에 연락할게요!”
“연락처는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내 연락처가 당신한테 흘러가면, 그 경로가 조사될 것이고 반드시 처벌받게 될 테니까 허튼수작은 하지 않길 권고합니다.”
“…….”
유현애는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그야말로 철벽의 뻔뻔함이다.
“그럼 이만.”
용우가 몸을 돌리자 유현애가 발끈해서 그의 곁에 따라붙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춰서 으르렁거린다.
“진짜 이러기예요? 나 다 알고 있거든요?”
“뭘 안단 말입니까?”
“아저씨!”
“날 언제 봤다고 아저씨입니까?”
“그게 중요해요?”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불릴 이유가 없습니다만.”
“그럼 서용우 씨라고 불러요?”
“왜 나를 그런 이름으로 부릅니까?”
“으으으, 진짜 얄미워!”
발을 동동 구르던 유현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더니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었다.
“지난번 일도, 이번 일도 정말 감사해요. 근데 아저씨,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아요. 지난번하고 이번에 아저씨가 쓴 허공장이 똑같다고 불꽃의 활이 알려줬으니까.”
“…….”
“어디 가서 말하지 않을 거예요. 팀에도 안 말할 거고요. 그냥 지난번 일도, 이번 일도 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었어요.”
유현애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서 가버렸다.
용우는 그녀를 흘끔 돌아보고는 헬기에 올랐다.
‘아티팩트 때문에 알아본 거였나. 아티팩트가 허공장에만 반응하는 거면 다행이지만 정신파를 기록하는 기능이라도 있는 거면…….’
마력 패턴이 그렇듯 인간의 정신파 역시 고유한 개성이 있다.
그리고 용우조차도 마력 패턴은 바꿀 수 있어도 정신파는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은 어비스에서도 통용되는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어비스 종반기에는 변신 능력을 가진 자들조차도 정체를 속이기가 어려웠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대부분 정신파를 기억하고 구분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용우는 지금도 그런 능력을 가졌다.
‘골치 아픈 일이 되겠어.’
백원태와 상의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