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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의 반응을 본 김은혜가 슬쩍 물어보았다.
“어비스에도 그런 개체는 없었나요?”
이때를 틈타 정보를 하나라도 빼먹어보겠다는 그녀의 수작이 빤히 보였지만, 용우는 상황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주기로 했다.
“없었지. 정확히는 있었지만 없었다고 해야 할까?”
“무슨 뜻이에요? 선문답하자는 거 아니죠?”
“그런 의미는 아니야. 어비스에 언데드와 타락체라는 게 있었어.”
“그게 뭔데요?”
“언데드는 게임에 종종 나오지? 그거랑 비슷해. 스켈레톤이라거나 데스 나이트라거나, 뭐 그런 것들 있잖아.”
“…죽은 인간이 몬스터가 된다고요?”
“그래. 생명체는 아니지만 어차피 몬스터라는 명칭 자체가 딱히 그것들을 생물학의 카테고리에 넣기 위해서 지어진 건 아닐 테니 상관없겠지.”
“…….”
“장난치는 거 아니니까 진지하게 들어둬. 참고로 타락체도 비슷하지. 이건 특별한 타입의 몬스터에게 오염당해서 인간성을 잃고, 하지만 인간의 지식과 지성을 지닌 몬스터가 되어버리는 거야. 둘 다 최악의 적이지.”
“그게 지구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건가요?”
“장담은 못 하겠군. 하지만 내가 어비스에서 싸웠던 괴물들과 지구의 몬스터들은 아무리 봐도 동일한 존재야. 그렇다면 언데드나 타락체도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용우가 태블릿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 요는 이 늑대 인간과 오우거가 다른 개체들과는 다르다는 거군.”
늑대 인간은 전설 속의 늑대 인간을 구현한 듯한 실루엣을 지녔으며, 흰자위고 동공이고 없이 한없이 새카만 눈을 가진 흉포한 존재다.
오우거는 키가 4미터에 달하는 배불뚝이 거인형 괴물로, 불곰조차도 들고 찢어버릴 정도의 압도적인 근력에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투석 등의 도구 활용이 가능하다.
이 둘은 3등급 몬스터였다.
그러나 팀 반도호랑이가 진입한 20미터급 게이트의 코어 몬스터로 보이는 2개체는 등급 한계를 뛰어넘었다.
헌터 관리부에서는 다른 개체들과 둘을 구분하기 위해 우두머리 늑대 인간과 오우거 로드라는 임시 명칭을 붙였다.
“둘 다 4등급 수준의 코어 에너지 반응인가. 아무리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이더라도 이것만이라면 30미터 이상급까지 처리하던 팀에서 긴급 지원 요청까지 날아올 건수는 아닌 것 같은데, 또 내가 알아둬야 할 문제가 뭐가 있지?”
“일단 게이트 안쪽에서 가장 고등급 개체가 이 둘이 아니라는 거죠.”
“뭐? 코어 몬스터라면서?”
“네. 그런데 가장 고등급 개체는 4등급 블랙 드레이크에요. 물론 저 둘도 4등급 수준이기는 하지만 정찰 당시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죠. 그래서 블랙 드레이크를 코어 몬스터로 오인했고, 그게 지금 같은 상황이 된 이유 중에 하나였다는군요. 그리고 코어 몬스터 둘은… 동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해요.”
“음?”
“4등급 몬스터의 마력은, 출력만 봐도 전 세계 최고 기록인 페이즈 12와 대등한 수준이에요.”
즉, 인간이 허용된 한계치까지 마력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고등급 몬스터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은 몬스터를 사냥한다.
인간에게는 단순한 마력 수치만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전투 능력을 향상해 주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효율로, 뛰어난 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스펠.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활용성을 극대화시켜 주는 장비와 전술 서포트 시스템.
“그런데 이 코어 몬스터들은 스펠을 썼어요.”
“스펠을? 정말인가?”
용우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3등급 몬스터들이 지성을 갖춘 데다 스펠까지 쓴다니?
그런 경우는 어비스에서도 없었다.
‘하! 지구도 만만치 않은데?’
그런 그에게 김은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상부에서는 당신에게 한 가지 의뢰를 추가하고 싶어 해요.”
“무슨 의뢰지?”
“그건…….”
김은혜가 말한 의뢰 내용은, 용우가 헬멧 속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 * *
‘위험해…….’
팀 반도호랑이 1부대의 근접전투원 분대장 이미나는 위기감이 뒤통수를 두들겨 대는 것을 느꼈다.
상황은 심각했다.
몬스터들은 마치 인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움직였다.
4등급 블랙 드레이크를 코어 몬스터로 오인했을 때, 마치 그 착각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헌터들이 블랙 드레이크를 공략하기 전, 주변을 청소하기 위해 유인 작전을 펼치자 거기에 넘어가는 척 하다가 매복 기습을 해왔다.
이것은 헌터들의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갈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상황에서 근접 전투원들이 어떻게든 전열을 가다듬을 여유를 확보하려고 나섰을 때, 그들은 한 번 더 의표를 찔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오로지 인간에게만 허용된 무기임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
스펠.
몬스터들이 그 힘을 써서 그들을 공격해 온 것이다.
당연히 맨손인 줄 알았던 상대가 갑자기 총을 꺼내서 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헌터들은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놀라운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휘관 노릇을 하는 우두머리 늑대 인간과 오우거 로드는 유기적으로 연계까지 하고 있었다.
인간은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먼 곳에서도 서로 소통 가능한 울부짖음으로 동시다발적인 타격을 가해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전술이라기에는 실로 조잡하고,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몬스터가 지성이 없는, 야수와 같은 존재임을 당연시하는 인간들에게는 그야말로 의표를 지른 치명타였다.
‘고작 20미터급에서 이 지경까지 몰리다니…….’
팀 반도호랑이 1부대에게 있어서 20미터급 게이트는 공략 대상 중에서도 최하급이다. 그들은 35미터급까지도 희생 없이 공략해 낸 전적이 있고, 앞으로 40미터급 이상 공략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그들이 20미터급에서 5명의 전사자를 냈다. 그중에 각성자 헌터가 3명이나 되었다.
크르르르…….
의문에 매달리는 것 자체보다는 의식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어가던 이미나의 생각이 끊겼다.
전방과 양옆을 포위하듯이 3마리의 늑대 인간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큭…….”
그녀를 부축하고 있던 유현애가 신음했다.
“현애야…….”
“언니, 잠깐만 쉬고 있어요.”
유현애는 도망가라는 말을 하려던 이미나의 말을 잘라 버리고는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이제 코어 몬스터 하나만 쓰러뜨리면 되잖아요. 얼마 안 남았어요.”
팀 반도호랑이 1부대는 의표를 찔려서 전열이 붕괴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부대장과 이미나가 난전을 뚫고 접근해서 4등급 블랙 드레이크의 목을 베었고, 팀의 최고 베테랑들이 즉석에서 임시 분대 구성을 하면서 오우거 로드를 한쪽으로 유인해 감으로써 다른 부대원들이 그 공백 지대로 도망칠 기회를 제공했다.
4등급 블랙 드레이크를 몬스터를 격파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이미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죽을 뻔했다. 하지만 저격수 포지션을 포기하고 달려온 유현애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여기까지 도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오우거 로드를 유인해 간 임시 분대가 사냥에 성공했음을 알렸다.
이제 남은 것은 우두머리 늑대 인간과 잔챙이들뿐이다.
유현애와 이미나가 도망치면서 버티다 보면 분명 전투 가능한 인원들이 집결해서 구하러 올 것이다.
‘도와줘, 불꽃의 활.’
유현애의 손에 들린 것은 모두가 첨단 장비로 무장한 상황에서는 너무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무기였다. 특별한 도료로 칠한 것처럼 새빨간 광택을 흘리는 대궁(大弓)이다.
크르릉!
그런 그녀에게 늑대 인간 3마리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미나를 지키면서 싸우는 입장에서는 도저히 손쓸 도리가 없어 보이는 동시 공격이다.
그러나.
-마인드 부스트!
순간 그녀의 눈에 보이는 풍경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체감하는 시간 감각이 가속하면서 적들의 움직임이 하품 날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보인다.
서로의 시간이 어긋나 버린 것 같은 그 감각 속에서 그녀가 뒤쪽으로 몸을 던졌다.
-염동산탄(念動散彈)!
활시위를 잡아당기자 거기에 불꽃이 맺히면서 화살의 형상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발사!
화아아아악!
쏘아지는 순간, 화살이 10개로 쪼개지면서 전방을 부채꼴로 강타했다.
그리고 날아간 산탄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불꽃이 흩어지기도 전에, 유현애는 다시금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마격탄(魔擊彈)!
화아아악!
마격탄 일격으로 늑대 인간의 어깨가 뜯겨 나갔다.
훌륭한 전과였지만 유현애는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스펠을 썼다.
-염동충격탄(念動衝激彈)!
콰아아아아!
대용량 증폭 탄두조차 따라올 수 없는 막대한 증폭치에 화염 속성까지 더해진 일격이 공간을 관통했다.
3등급 몬스터가 단 일격으로 죽어버렸다.
“헉, 헉…….”
유현애의 화력은 압도적이다. 마력 기관은 아직 페이즈5에 불과함에도 단순 화력 면에서는 부대의 다른 저격수들을 크게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한 마리를 처치하는 동안 범위 타격에 맞고 날아갔던 늑대 인간들이 양옆을 포위하고 있었다.
‘언니를 노릴 정신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지만!’
유현애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늑대 인간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유현애는 범위 타격으로 전방을 튕겨내면서 옆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쉭!
그런데 앞에서 달려들던 늑대 인간이 돌멩이를 투척하는 게 아닌가?
유현애가 그것을 피하느라 자세가 흐트러진 사이 접근해 온 늑대 인간이 기다란 팔을 휘둘렀다.
파지지직!
허공에 물결 같은 파문이 퍼져나가면서 늑대인간의 공격이 막혔다.
유현애가 전개한 허공장이다. 그녀는 체외 허공장 보유자였던 것이다.
‘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아직 훈련도, 실전경험이 부족한 그녀는 격렬한 전투 상황에서 허공장을 길게 유지하지 못했다.
허공장이 풀리자 늑대인간이 기다린 팔로 공격해왔다.
파각!
유현애는 불꽃의 활로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체중 차가 워낙 커서 그 일격으로 몸이 허공에 내던져지듯 붕 떠올라 버렸다.
파악!
뒤에서 접근하던 늑대 인간이 도약해서 그녀를 후려갈겼다. 튕겨 날아간 그녀의 몸이 나무에 처박혔다.
“……!”
비명도 지를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아, 안 돼…….’
아티팩트의 성능은 현존하는 그 어떤 헌터 장비도 따라올 수 없다.
하지만 유현애의 불꽃의 활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활이라는 점이다.
물론 불꽃의 활은 화살을 갖고 다니다가 일일이 하나씩 꺼내서 시위에 걸어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굉장한 편의성을 가졌다. 그래도 활이라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총에 비해 활은 숙련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무기다. 그리고 유현애는 각성자 튜토리얼에 소환되기 전까지는 활쏘기를 배우기는커녕 활을 잡아본 적도 없었다.
3개월간 집중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녀는 활쏘기가 서툴렀다. 특히 역동적인 상황에서 빠르게 조준하고 쏘는 능력은 형편없었다.
“현애야!”
이미나가 다급하게 외치며 달려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현애에게 부축을 받아야 했던 그녀가 벼락처럼 움직인다. 통증을 잊고 신체 능력을 활성화하는 각성제를 투입했기 때문이다.
각성제 투입은 후유증이 크지만 지금은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야아아아아!”
이미나가 소총을 난사해서 늑대 인간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탄창이 비어버리는 순간 주저 없이 소총을 내던지고 뛰어들어서 발차기를 날렸다.
빠악!
허벅지를 강타당한 늑대 인간이 휘청거리는 순간, 이미나가 시퍼런 눈빛으로 도약해서 어퍼컷을 날렸다. 그리고 물 흐르듯이 팔꿈치로 목을 찍고,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혼신의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라이트닝 블로!
폭음이 울리며 늑대 인간이 나가떨어졌다.
반동으로 튕겨 나간 이미나가 낙법을 치면서 일어났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눈앞이 핑 돈다.
“으윽, 고작 이 정도로…….”
그녀는 이미 중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불곰도 일격에 죽여 버릴 공격을 날렸으니 반동이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
이미나에게 맞은 늑대 인간이 울부짖으면서 일어났다.
“제기랄, 3등급 주제에 더럽게 터프하네…….”
이미나가 허탈하게 웃으며 투덜거렸다.
그녀는 팀 반도호랑이에서 근접 전투원으로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컨디션이 정상이었다면 늑대 인간 3마리 정도는 맨손으로도 몰살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날린 일격은 타점도 정확하지 않았고, 위력도 절반 미만이었다. 그래서는 3등급 몬스터의 목숨을 취할 수 없다.
“어디 끝까지 해보자 그래.”
이미나는 허리춤에 꽂힌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마력을 주입하자 마력 반응 코팅이 된 나이프 칼날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용참격(龍斬擊)!
측면에서 다섯 줄기의 에너지 칼날이 날아들었다.
이미나는 기겁해서 몸을 틀었다.
놀라운 반응속도가 그녀의 목숨을 구했지만, 팔과 허벅지를 깊숙이 베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아악!”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크르르르…….
늑대의 울음소리가 마치 비웃는 듯한 울림을 담고 들려왔다.
그리고 나무 사이에서 거대한 늑대 인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회색 털에 이족보행을 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늑대 인간과 같았지만 덩치가 월등히 크다. 키만 해도 3미터 50센티를 넘는 데다 비정상적으로 근육이 두껍다.
“우두머리 늑대 인간…….”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던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땅을 박찼다.
그리고 옆으로 굴러서 빠져나가려던 이미나의 몸통에 발차기가 꽂혔다.
“커어……!”
장난감처럼 튕겨 날아가는 이미나를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비웃듯이 내려다본다.
순간 이미나의 마음속에서 죽음의 공포가 솟구쳤다.
‘끄, 끝인가?’
그녀가 절망하는 순간이었다.
투학!
갑자기 뭔가가 후려치는 소리가 울리면서 우두머리 늑대 인간의 다리가 푹 꺾였다.
-라이트닝 블로!
꽈아아아앙!
뒤이어 귀가 먹먹해지는 폭음이 울려 퍼지며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나가떨어졌다.
“흠.”
그리고 그 너머에는 새카만 헌터용 배틀 슈트를 입은 남자가 주먹을 날린 자세로 서 있었다.
“여기는 제로.”
그가 손을 헬멧에다 대어 통신기를 작동시키며 말했다.
“아티팩트 보유자 유현애, 그리고 코드 A-1 발견. 둘 다 중상이지만 살아 있다. 그리고…….”
크아아아아!
몇 미터나 나가떨어졌던 우두머리 늑대 인간이 일어나서 포효하는 가운데,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코어 몬스터, 우두머리 늑대 인간과의 전투를 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