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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34화 (3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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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가 헌터 활동을 시작하고 난 뒤로 서우희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기자들이 집 주변에 매복했다가 인터뷰를 하자고 달려들어서 무례한 질문을 퍼부어대었고, 그녀가 일하는 병원으로 취재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게다가 종종 인터넷 방송인이라는 것들이 그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기들의 방송 콘텐츠로 삼기까지 했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이런 사실을 들은 용우는 머리끝까지 화가 올랐다.

콱 죽여 버리고 싶은 살의가 끓어올랐지만, 지구로 돌아온 이상 그럴 수는 없었기에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백원태에게 소개받은 대형 로펌을 통해서, 악마 같은 변호사들의 힘으로 괴롭혀 주는 쪽을 택한 것이다.

‘도가 지나쳤던 놈들은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진짜 쓴맛을 보여줘야지.’

그렇게 다짐한 용우가 우희에게 물었다.

“우희야, 우리 이사 갈까?”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우희의 반응은 신경질적이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이곳이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그런데 최근 스트레스의 원흉인 용우가 이사를 입에 올리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용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아파트가 좋긴 하지만 둘이 살기에는 좀 좁잖아. 너도 드레스룸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고…….”

우희의 아파트는 20평형에 방 2개짜리였다.

둘이 살기에 딱히 좁진 않지만 그렇다고 공간이 넉넉한 느낌도 아니다.

우희가 생각하는 기색이자 용우가 계속 말했다.

“여기는 세를 주거나 팔고 아예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자. 기왕이면 보안도 잘되는 곳으로.”

“음…….”

“주상 복합이나 아니면 정원이 있는 빌라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그렇게 말하던 용우가 문득 한 가지 생각난 바가 있어서 한층 더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 혹시 우희 네가 혹시 결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럼 내가 따로 나가 사는 편이 낫겠고.”

그 말에 우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용우를 바라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도 참. 그런 사람 없어. 나도 혼자보다는 오빠랑 같이 사는 게 좋아. 집에 가족이 있는 느낌이 오랫동안 그리웠거든. 오빠도 금방 바빠져서 생각한 것만큼 많이 얼굴을 보고 살지는 않게 됐지만 오히려 그게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다행이고. 아니, 다행은 아닌가? 음…….”

“하지만 좀 의외네.”

“뭐가?”

용우가 의아해하자 우희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보통 이런 때는 클리셰가 있잖아.”

“클리셰?”

“그 나이 먹고 결혼도 안 하냐고 신경을 긁거나, 여동생이 남자 사귄다고 하면 오빠가 심술을 부린다거나.”

“우린 15년 동안이나 떨어져 살았잖아. 우희 너는 훌륭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데 그런 오지랖을 왜 부리냐?”

그렇게 말하던 용우가 왠지 우희의 눈치를 보았다.

우희가 물었다.

“왜?”

“오지랖이라고 하니까 생각난 게 있어서 그러는데…….”

“뭔데?”

“화내지 말고 들어줘. 알겠지?”

“화를 내고 안 내고는 말의 내용에 따라서 정해져야 하지 않을까?”

우희가 눈꼬리를 치켜 올리자 용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동안 좀 생각을 해봤는데, 우희야. 당분간 생활비는 내가 댈 테니까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뭐어?”

우희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직장을 그만두라니. 오빠 때문에 주변이 시끄러우니까 나는 직장에도 나가지 말고 닥치고 집 안에 처박혀 있으라, 이거야? 오빠가 엄청난 능력자라 돈 잘 버는 건 알지만 이런 식으로…….”

“잠깐! 잠깐만! 내 이야기 좀 끝까지 들어줘. 부탁이다.”

용우가 간절하게 말하자 발끈했던 우희가 입을 다물었다.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투였다.

“오해하지 마. 그런 이유로 직장을 그만뒀으면 하고 바란 게 아냐.”

“그럼?”

“네가 의대 입시 준비에 전념했으면 해서 그랬던 거야.”

“…….”

우희가 흠칫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나 없을 때 내 방에 들어가 본 거야?”

“그건 절대 아냐.”

우희는 용우와 함께 살면서 몇 가지 룰을 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절대로 서로의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용우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 거실에 책 놔뒀더라. 의학서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수능 참고서였거든.”

“딱 한 번 깜빡했던 건데… 그때 그걸 본 거야?”

“그거 보니까 감이 오더라고. 닥터 힐러가 되고 싶은 거지?”

우희는 병원에서 힐러로 일하면서 종종 게이트 제압 작전을 펼치는 헌터 팀에 의료 지원을 나간다. 위급한 환자를 응급처치해서 살리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수술 보조를 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2027년 연 수익이 10억 원을 넘긴 고소득자였다.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우희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의대에 들어가서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쌓고, 정식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닥터 힐러로 불리는 그 존재는 우희 같은 일반 힐러보다 훨씬 높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우희가 닥터 힐러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대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끔 무력함을 느낄 때가 있었어. 예를 들면 응급 환자가 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나 숨을 붙여놓는 것뿐이거든.”

아무리 기적 같은 치료 능력을 가졌어도 그녀는 도구일 뿐이었다. 전문적인 의료 지식을 가진 의사가 휘두르는 뛰어난 도구.

그래서 일하는 짬짬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각성자로서의 능력만 믿고 거만을 떨기에는 병원에서 우희가 마주하는 현실은 항상 무겁고 참혹했으니까.

그런 노력은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다들 우희가 힐러라는 이유로 비위를 맞추는 것만이 아니라 믿음직한 동료로 인정해 주었다.

“물론 이제는 그런 무력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지.”

용우 덕분에 우희는 힐러로서 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

더 이상 응급환자를 두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복원 특성을 손에 넣은 이상 그녀는 의학적 진단을 신경 쓰지 않고 누구든 치료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그녀의 위상은 수직상승 중이었다. 수입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욕심이 생겨. 공부를 하면 할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욕심이 생기더라.”

닥터 힐러가 되어서 자신의 능력을 정말 제대로 써보고 싶다.

의료의 길은 넓고도 깊다.

그녀가 힐러로서 한층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고 해서 그걸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응급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존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뿐이다.

이 능력과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더해지면 장애를 가진 사람을 치료하고, 불치병에 걸려 절망하는 사람조차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내년쯤에 본격적으로 준비하려고 했어.”

입시를 위해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해야 했다.

만약 한 번에 의대 입학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정식으로 의사가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녀가 각성자, 특히 힐러이기 때문에 의대에 들어가기는 유리하다. 힐러를 우대하는 특별전형도 있고, 입학할 경우 학비는 전액 국가 지원금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그 외에도 사람이 살려면 돈 들어갈 구석이 많은 만큼 충분한 돈을 모아두고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참, 15년 만에 나타난 오빠가 반년도 안 되어서 갑자기 내 인생 계획을 앞당겨 준다고 하니… 굉장히 마음이 복잡하네. 좋아해야 할 일인데, 마냥 좋지만은 않아.”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우희는 혼자 살아왔다.

가족을 모두 잃었기에 어려운 상황에도 지탱해 주는 사람 없이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족이 손을 내밀어서 도와주겠다고 하니 굉장히 낯설고, 거부감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점은 용우가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오빠가 목숨 걸고 번 돈이잖아. 그걸 덥석 받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헌터 일은 목숨이 걸린 일이다.

용우가 아무리 유능한 헌터라도 몬스터와의 전투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용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냐. 그런 돈이니까 더… 너를 위해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보다 의미 있게 쓰는 법은 없어.”

진심이었다.

용우는 이미 돈이 아쉽지 않다. 지구로 돌아온 후로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너무 빠르게 풍족해져 버렸다.

지금의 용우에게 있어서 돈이란 그저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수단이다. 편의를 위해, 욕망을 위해 돈을 쓰고 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위해서 돈을 쓰지 않는다.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여동생을 가만히 바라보던 용우가 말했다.

“투자금 회수한다고 생각해.”

“뭐?”

“내가 돌아와서 아무것도 아닐 때, 너는 기꺼이 마력 시술하라고 3천만 원을 투자해 줬잖아. 그 빚 받는다고 생각하라고.”

“…그거랑 이거랑 같아?”

“같지. 네가 돈을 잘 번다고 해도 3천만 원이 절대 적은 돈은 아니었잖아. 그런데 그때 너는 나한테 나중에 갚으라는 소리조차 안 했어.”

그랬었다.

우희는 애당초 용우에게 나중에 다시 받겠다는 생각으로 그 돈을 대신 내준 게 아니었으니까.

“원래 형편 어려울 때 투자한 돈은, 잘되면 몇백 배의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거잖아. 투자 잘해서 대박 났다고 생각해라.”

“풋.”

차분하게 설득하는 용우의 말에 우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도 참, 이런 때 그런 말을 하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해?”

“…아, 안 어울리나?”

“어휴, 가족한테 투자금이니 이익이니 하는 소리를 하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야? 하여튼.”

용우에게 핀잔을 준 우희가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오빠의 마음은 알겠어. 고맙게 받을게.”

“우희야.”

“그리고 이사도 가자. 집은 내가 골라도 된다고 했지?”

“물론이지.”

“관리가 귀찮으니까 개인 주택이나 너무 넓은 집은 좀 그렇고,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를 찾아보자.”

그렇게 남매가 이사를 결정짓고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지 며칠이 지났을 때…….

용우는 헌터 관리부 2팀장 김은혜로부터 긴급한 전화를 받았다.

* * *

헌터 업계에 있어서 2028년 1월은 특별한 시즌이었다.

7세대 각성자들이 훈련을 마치고 실전에 투입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주목받는 것은 7세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헌터, 한국 유일의 아티팩트 보유자 유현애 역시 1월 말에 첫 실전에 투입된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데뷔전은, 그녀가 속한 팀 반도호랑이 1부대의 역량을 생각하면 꽤나 안전권으로 잡혔다.

이는 딱히 유현애에게만 베풀어지는 특혜는 아니었다.

부대 운용에 여유가 있는 팀들은 신인들이 들어오면 적응 기간을 주기 위해 안전한 임무를 노리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내가 불려가게 된 거지?”

헬멧과 음성 변조기로 정체를 감춘 용우가 물었다.

그러자 수송용 헬기로 그를 데리러 온 김은혜가 상황을 브리핑했다.

“유현애가 투입된 것은 강남의 20미터급이었어요. 팀 반도호랑이의 1부대 수준을 생각하면 완전 거저먹기죠.”

20미터급은 팀 반도호랑이의 1부대가 공략 대상으로 삼는 게이트의 최저 라인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다른 헌터 팀에게 양보하는 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졌어요. 당연하지만 정보 통제 중이라 언론에는 나가지 않았죠.”

김은혜가 태블릿에 브리핑 자료를 띄워서 보여주었다.

“몬스터가 전술적인 행동을 한다?”

“네. 읽어보면 알겠지만 명백히 지휘관으로 보이는 개체도 있었다고 해요.”

“이제까지 한 번도 없던 사례인 거지?”

“적어도 한국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가 입수한 정보 중에서는 없었죠.”

“놀랍군…….”

용우가 어비스에서 겪어본 적이 없는 미지의 적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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