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33화 (3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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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정보 공간에 새카만 표면에 붉은빛을 발하는 기이한 눈 두 개가 달려 있는 가면을 쓴 7명이 모여 있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는 하나 성별도, 체격도, 인종도 제각각임을 알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보며 말했다.

“구세록의 기록이 또 한 줄 실현되었다.”

구세록(救世錄).

그것은 이들 7명이 따르는 멸망을 막기 위한 지침서였다.

구세록에 대한 7명의 생각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신이 내린 신성한 계시라고 믿었고, 누군가는 이미 멸망한 다른 세계의 누군가가 보내온 멸망을 극복하기 위한 지침서라고 생각했다.

그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구세록으로 인해서 초월적인 힘을 갖고 지난 15년간 인류를 지켜온 7인조차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세록이라 이름 붙은 정체불명의 구조물이 지구에 등장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는 점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구세록은 지구를 찾아올 재앙과 그것을 막기 위한 방법을 이들에게 전달해 왔고, 그것은 위대한 예언처럼 미래를 알아맞혀 왔다.

단 하나, 0세대 각성자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아티팩트.”

“7세대부터 나올지 8세대부터 나올지가 변수였는데 7세대에 나오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각성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과연 아티팩트의 등장이 빠른 것이 인류에게 득일까? 장담할 수 없는 문제군.”

구세록은 기록하고 있었다.

7세대 혹은 8세대 각성자들부터는 몬스터들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힘, 아티팩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사실은 아티팩트가 아니라 레플리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지만.”

하지만 이곳에 모인 7명은 알고 있었다.

7세대 각성자들, 그중에서도 성적 최상위권자 7명이 가져온 7개의 아티팩트가 진품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부터 매 세대마다 똑같이 7개씩 늘어날 레플리카에 불과하다는 것을.

왜냐하면 이들 7인이야말로 구세록과의 계약으로 7성좌의 힘, 그 진품을 손에 넣은 계약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아티팩트가 등장한 이상, 구세록이 기록한 재앙의 다음 장(章)도 찾아올 것이다.”

“지혜의 빛이라…….”

구세록은 예언하고 있었다.

인류는 아티팩트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겠지만, 그 반동으로 몬스터가 잃었던 지혜의 빛이 해방될 것이라고.

“예언이란 참으로 모호해. 지혜의 빛이 무슨 뜻일까?”

“역시 몬스터 중에 지성체가 등장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가장 알기 쉬운 해석일 것이다.

“정말로 끔찍한 재앙이 되겠군. 부디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겠지.”

* * *

실전이라는 것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변수에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실력일 것이다.

[A팀 중상자 발생! H-1, 긴급 지원 바란다!]

[팀장님! C팀 현재 2, 3등급 무리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화력 지원 바랍니다!]

게이트 안쪽, 지구 어딘가를 연상시키는 평범한 산악 지형 속에서 무전을 통해서 다급한 목소리가 있었다.

‘개판이군!’

앞장서서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A, B, C팀의 역할.

용우가 속한 D팀은 전투가 진행되는 도중에 부상자나 지친 이들과 교체해 주는 교체 대기조였다.

지형 때문에 정찰 정보가 미흡한 상황에서 전투를 수행해 나가던 그들은 예기치 못한 몬스터들의 등장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왜 백 사장님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어.’

백원태는 용우에게 일감을 따주고는 당부했다.

‘만약의 경우에는 그 사람들 안 죽게 잘 돌봐줘요. 용우 씨라면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보통 그런 소리는 베테랑들에게 신입을 맡기면서 하지 않던가?

그런데 왜 신입인 용우에게 그런 소리를 하나 했더니만, 직접 와보니 알겠다.

‘평소에는 이 정도는 처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겠지. 하지만 피로도가 높아져서 변수에 대응을 제대로 못 하고 있어.’

각성자 튜토리얼이 끝날 때쯤 되면 게이트 발생 빈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그러다가 귀환 게이트 활성화 당일이 되면 끔찍할 정도로 많은 게이트가 쏟아진다.

게다가 각성자들이 귀환한다고 해서 게이트 발생 빈도가 확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한 달에 걸쳐서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린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이들도 피로도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정찰과 그 데이터 분석도 꼼꼼하지 못했고, 행동에 인내심이 부족했으며,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이 느렸다.

평소에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이거.’

용우는 일반인 헌터 한 명과 함께 A팀에 합류했다.

“왔군! 여기다!”

팀장이 멀리서 용우를 발견하고 외쳤다.

그때였다.

쉬이이익……!

날개를 펼치면 8미터에 달하는 검은 맹금류의 모습을 한, 그러나 깃털 대신에 비늘이 돋아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눈과 뭍짐승처럼 기다랗고 흉흉한 아가리를 가진 2등급 몬스터 어둠약탈자가 강습해 왔다.

“안 돼!”

팀장이 비명처럼 외치는 순간이었다.

-마격탄!

용우가 소총을 갈겼다.

타앙! 타타탕!

어둠약탈자가 스펠 연타를 맞고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용우는 추락해서 지면을 미끄러져 오는 어둠약탈자의 거구를 훌쩍 뛰어서 피하고는 등 뒤에서 날이 두꺼운 장검을 뽑아 들었다.

파지지직!

마력을 주입하자 장검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파악!

용우가 검으로 어둠약탈자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뭐야, 저거?”

“힐러 아니었어?”

그 광경을 본 A팀원들이 경악했다.

근접 전투계 각성자, 그것도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릴 만한 베테랑이나 가능할 법한 움직임이 아닌가?

‘스펠을 제한하고 해치우려니 귀찮군.’

스펠을 마음껏 쓸 수 있다면 이 국면을 혼자서 뒤집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틀 힐러로 위장한 이상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참 답답하다.

용우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팀장에게 물었다.

“환자는 어딥니까?”

“아, 여, 여기입니다.”

팀장은 자기도 모르게 용우에게 존댓말을 쓰고 말았다.

용우는 복부와 왼팔이 피범벅이 되어서 쓰러진 일반인 헌터를 바라보았다. 언제 숨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중상이었다.

“치료하는 동안 방어 확실히 부탁드립니다.”

용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정신을 집중해서 고위 치료 스펠을 발했다.

-리스토어 힐!

“어, 어어억……!”

찢어진 세포조직이 급격하게 원래대로 돌아가고, 부러진 뼈가 다시 맞춰지는 과정은 고통을 동반한다.

환자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만큼 상처가 빠르게 낫고 있었다.

“됐습니다.”

배틀 힐러가 없는 상황에서는 중상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출입구 밖으로 퇴각해서 대기 중인 의료 팀에게 가는 것뿐.

용우가 없었다면 이 중상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완치된 건 아니니까 문 밖으로 퇴각해서 의료반한테 보내요.”

“왜 완치시키지 않았습니까?”

팀장의 질문이 용우가 정말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내주었다.

“제가 완치되어도 전투 속행이 불가능할 환자 하나 살리는 데 마력을 다 쓰고 이탈하길 바라십니까?”

“아.”

지금은 아직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언제든 응급 상황에 투입될 수 있는 배틀 힐러의 마력은 귀중한 전투 자원인 것이다.

“배틀 힐러와 일해본 적이 없어서 생각이 미치지 못했군요. 미안합니다.”

팀장은 순순히 사과하고는 다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전투를 보면서 용우는 업계 최정상급 팀들과의 격차를 느꼈다.

‘헌터 개개인의 수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서포트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군.’

일반인이 듣기에는 뉘앙스가 좋지 않겠지만 헌터 팀에게 게이트 제압은 ‘사업’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리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해도, 아니,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더더욱 채산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목숨 걸고 싸웠는데 돈은 안 벌린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이겠는가?

정부에서 주는 포상금만으로는 부족하다. 헌터 팀은 헌터들의 높은 몸값부터 시작해서 돈 나갈 구석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한 전투에 투입하는 예산을 한정적으로 잡는다.

무인 병기들도, 거기에 탑재된 탄약도 한정된 수량만 투입한다.

신형 무인 병기를 아낌없이 투입하기보다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구형을 선호하고, 최대한 부서지는 일을 피하면서 소극적으로 운용한다.

이 모든 것이 용우에게는 정말로 보기 답답한 것들이었다.

‘앞으로 이런 꼴을 보면서… 무엇보다 약한 척을 하면서 일해야 한단 말이지.’

용우는 왠지 프리랜서 배틀 힐러로 뛰는 자신의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 *

용우가 스스로의 처지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의 입지는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데뷔전을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용우에 대해서는 미덥지 않아하는 시선이 대다수였다.

일단 실적이 전무한 신인이었고, 특정한 헌터 팀에 소속되지 않은 만큼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도 못한 인력이다. 미덥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27년이 끝나고 2028년 새해가 밝았을 때.

배틀 힐러로서 2번의 전투를 훌륭하게 수행한 용우를 원하는 목소리는 전국 각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제로를 원하는 목소리도 말이죠.”

정체불명의 헌터, 제로의 명성은 한국 헌터 업계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구 DMZ 전투에서 단독으로 악마숲을 잡은 것을 시작으로…….

대전 30미터급 게이트에서 팀 블레이드를 구원하는 놀라운 활약.

그리고 12월에 또 한 번 35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에서 활약하면서 헌터 업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당연히 슬슬 언론에서도 냄새를 맡고 그의 정체를 캐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전투를 수행한 이들에게 코멘트를 따내는 것을 시작으로 한 장이라도 사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백원태가 말했다.

“아직까지는 사진 한 장 안 나가게 잘 막았습니다.”

언론은 제로의 사진조차 구할 수 없었다.

헌터들의 활동은 군사작전이기에 사전 협약이 없으면 언론의 접근이 금지된다. 거기에 제로가 언제 투입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 정보 통제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용우가 물었다.

“언제까지 감출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대외적으로야 정보 통제가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물밑으로는 이미 어디론가 새어나갔을지도 모르지요.”

용우의 신분을 7세대 각성자로 위장한 것은 그야말로 시간끌기다.

0세대 각성자의 비밀은 언젠가 밝혀지고 말 것이다.

일단 비밀을 알고 있는 인원이 수십 명이나 되기 때문에 어디서 정보가 샐지 모른다.

혹은 용우 자신이 그 힘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용우의 존재를 영원히 비밀로 감추고 싶었다면 헌터 업계에 발 들이게 해서는 안 되었다.

제로가 활약할 때마다 소문이 퍼져 나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활약상을 보여주니까.

헌터 관리부 상층부에서는 차라리 용우에게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면서 존재를 감춰뒀어야 했다는 비난이 있었다.

아니면 힐러 라이센스만을 발행해 주고, 헌터가 아닌 힐러로 일하게 했어야 한다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용우는 귀환 시점부터 비상식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인류가 구축한 각성자에 대한 상식이 용우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

용우는 그야말로 규격 외의 존재였다.

그저 범람하는 물처럼 덮쳐오는 몬스터라는 재해를 막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헌터들과는 다른,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

‘그리고 그런 일이 가능하지도 않았겠지.’

용우는 자신을 억압하는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의 행동을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행했다면 끔찍한 참사가 터졌을 것이다. 죽 용우를 지켜봐온 백원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어쩌면…….’

백원태는 서용우 본인을 제외하면 누구보다도 서용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서용우에게 제공하는 각종 편의를 통해서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왔다.

그 데이터는 한 가지, 굉장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용우의 마력이 지구로 귀환한 후로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

‘…지금도 대단한데 이대로 성장을 계속한다면?’

일반적으로 각성자의 잠재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두 가지다.

가장 우선시되는 기준은 각성자 튜토리얼에서만 얻을 수 있는 초월적인 힘, 특성과 스펠.

얼마나 쓸모 있는 특성과 스펠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가 각성자가 앞으로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를 알려준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각성자들이 강해진다고 이야기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각성자로서의 피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 마력.

이 또한 세대를 거듭할수록 평균 수준이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은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결정되는 요소가 아니라 개인의 재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평균 수준이 계속 향상된 것에는 기술적 발전이 기여한 바가 크다.

마력 시술법이 보급되고, 마력 기관을 단련하는 법이 연구되면서 다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마력을 늘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용우 씨는 별격의 존재다. 과연 7세대가 아니라 8, 9세대까지 가더라도 용우 씨 같은 존재가 나올 수 있을지…….’

그렇기에 백원태는 기대하고 있었다.

용우야말로 모두가 갈구하는 진실에 손이 닿을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세계가 뒤바뀐 이 모든 비극의 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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