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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32화 (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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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태는 오성준에게 용우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줘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는 돌아갔다.

그리고 그와 교대하듯이 한 사람이 들어왔다.

“크게 다치신 것 같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유현애와 함께 있던 근육질 여성이었다.

“전 이미나라고 합니다.”

그녀가 건네준 명함을 보니 팀 반도호랑이 제1부대의 근접 전투계 헌터들을 지휘하는 분대장이었다.

“현애가 직접 사과드려야 하는데, 또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괜찮습니다.”

“예?”

“이제는 저랑 마주쳐도 괜찮을 겁니다. 다만 다른 사람하고 같은 문제가 터질 수 있으니까 앞으로는 주의하라고 하세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단정 짓는 용우의 말투에 이미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했죠?”

“예. 한번도…….”

“최초의 사례를 일으킨 사람이라서 아는 겁니다. 걱정되시면 굳이 저와 대면시키실 필요는 없습니다. 리스크는 피하는 게 제일이니까요.”

그런데 그때 문이 열리면서 유현애가 들어왔다.

이미나가 당황했다.

“현애야.”

“죄송합니다.”

유현애는 들어오자마자 고개부터 숙였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살아는 있습니다.”

“…….”

까칠한 대답에 유현애의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녀는 곧 용기를 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혼란으로 가득 찬 그녀의 눈을 보며 용우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누구 때문에 아프고 피곤해서 싫습니다.”

“…….”

간결하게 요약된 팩트가 유현애의 멘탈을 묵직하게 후려쳤다.

그녀가 다시금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과실이 누구한테 있는가,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군요. 사과는 받겠습니다.”

“…….”

“아티팩트를 반쯤 전개해 두고 다니는 습관은 고치도록 해요. 말하자면 그거 칼의 잠금 쇠를 풀고 살짝 뽑아둔 상태하고 비슷한 거 아닌가? 언제든지 수월하게 뽑을 수 있는?”

“마, 맞아요.”

유현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마도 아티팩트라는 게 허공장처럼 여러 차원에 걸쳐 있는, 뭐 그런 건가 본데, 시각을 포함한 광학적 관측 수단에는 안 잡히겠지만 각성자들이 흘리는 마력장하고는 극미세 영역에서 반응합니다. 각성자라고 해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게 말이죠. 그러다가 나처럼 특정한 대상과 만나면 극미세 영역에서의 반응에 그치지 않고 아까 전 같은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겁니다.”

생각난 것을 줄줄이 쏟아내던 용우는 문득 유현애와 이미나가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 알아차리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당신네 팀의 전문가한테 가서 지금 들은 걸 말해주세요. 그럼 이해할 겁니다.”

“…어떻게 그런 걸 아시죠?”

“당신 때문에 지금 말한 문제의 본질을 직접 접하고 봉합까지 해준 사람이라서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말은 아무도…….”

“유현애 씨.”

용우가 피곤하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자기가 가진 것의 본질을 모르는 당신의 무지함과 부주의함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수도 있었던 사고가 터졌어요. 그리고 그 대상자는 나였고, 자칫하다가는 나 하나로 안 끝나고 대형 사고로 번질 수도 있었던 것을 내가 봉합해 준 겁니다.”

“죄송합니다…….”

흥분하던 유현애는 움츠러든 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반성하고 있는 건 알았으니까 됐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난 피곤하니까 이만 가줬으면 좋겠군요.”

용우가 더 대화하기 싫다는 의사를 명백히 하자 유현애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혼자 남은 용우는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아, 내 폰. 방에 두고 왔는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다는 질병, 휴대폰 중독에 사로잡힌 용우는 할 거 없어서 심심한데 각종 검사 때문에 병실을 떠날 수도 없다는 사실에 격렬하게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 * *

“아우, 그 아저씨 짜증나!”

호텔 방에 돌아온 유현애가 분통을 터뜨리자 이미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현애야, 그분 너 때문에 피해본 사람이거든?”

“알아요! 내 잘못이라는 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요. 고맙기도 하고. 근데 짜증나!”

유현애는 신경질 난 강아지처럼 쿠션을 물어뜯으면서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각성자가 된 후로는 처음이다. 자신에게 빨리 꺼지라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으으, 38살 아저씨가 무슨 우리 오빠보다 어리게 생겨서는.”

유현애만큼은 아니었지만 배틀 힐러인 용우도 꽤 언론을 탔기에 유현애도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애당초 그렇기에 인사나 할 겸 찾아갔던 것이다.

“…그건 상관없잖아?”

“그래서 더 짜증난단 말이에요! 40 다 되어가는 아저씨가 맞는 말만 툭툭 던져대는데, 우리 오빠 친구한테 빈정거림 들으면서도 한 마디도 못 하겠는 그런 기분이라 더 열 받아!”

쿠션을 안고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유현애가 침대 끄트머리에서 딱 멈춰 서더니 말했다.

“…친해져야겠어.”

“뭐?”

“친해져야겠다고요. 언니, 회사에 서포트 좀 해달라고 말해줘요. 그 사람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봐요. 내일 엄청 반성했다는 티가 팍팍 나는 얼굴로 선물이라도 사 들고 가봐야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결론에 도달한 건지 나한테 설명 좀 해주지 않으련?”

“그야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문제가 그 사람 만나고 터졌잖아요.”

“그랬지.”

“거기에 그 사람은 왠지 아티팩트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저한테 그 사실을 말해주기 싫어하니까 친해져서 듣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 그렇기는 한데…….”

“어차피 우리가 찾아갔던 것도 친해지자고 간 거였잖아요. 앞으로 중요한 작전 때 배틀 힐러를 고용해서 써보자는 의미로. 그러니까 어떻게든 최악의 첫인상을 씻어낼 필요가 있다고요.”

확실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완벽한 논리였다.

“근데 짜증난다 짜증난다 노래를 부르더니… 괜찮겠어?”

“물론이죠! 두고 봐요. 어떻게든 공략해 내고 말겠어. 여길 나갈 때쯤에는 오빠 동생 하며 하하 호호 웃는 우리를 볼 수 있을 테니까 기대하라구요.”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유현애를 보던 이미나가 말했다.

“의욕이 넘치는 모습 보기 좋아. 자, 그럼 이제 그 의욕을 살려서 훈련 가자.”

“네?”

“훈련해야지. 그러려고 온 건데. 헌터 라이센스 시험 전까지 언론에 시달리지 않고 훈련에만 매진하려고 온 거잖아.”

그 말대로이긴 하다.

유현애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스캔들 터뜨린 톱스타에 대한 관심 이상으로 뜨거워서 출퇴근할 때마다 기자들에게 시달리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팀 반도호랑이 측에서 유현애를 배려하여 외부에 신경 끄고 기초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해 준 것이다.

“…….”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유현애는 한참 신나게 놀다가 공부하라는 소리 들은 학생처럼 싫은 표정을 지었다.

“아, 언니. 오늘은 그냥 쉬면 안 돼요? 오자마자 큰 트러블도 있어서 컨디션이 꽝이라고요. 내 몸값이 얼만데 혹시 무리해서 훈련하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이잖아요.”

“현애야, 여기 하루 이용료 500만 원인 거 알고 하는 소리지? 널 위해서 비싼 코스들도 막 신청했는데?”

“…….”

유현애는 닥치고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훈련 스케줄 때문에 피곤에 절어 있던 유현애는 망연자실해했다.

“그 아저씨 오늘 체크아웃했다고요?”

유현애가 오전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는 사이에 용우가 체크아웃하고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

회사의 지원 팀에 부탁해서 사과하면서 건넬 선물까지 준비했는데 다 소용없게 되었다.

이미나가 닭 쫓던 개 꼴이 되어서 멍해져 있는 유현애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현애야.”

“언니…….”

“정신 차리고 훈련 가야지. 밥 먹은 지 30분 지났으니까 다시 훈련하러 가자.”

“어?”

유현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잠깐, 지금은 그런 말할 타이밍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거고 훈련은 훈련이야. 너를 위해 이런 코스 저런 코스 다 신청해 놔서 여기 일일 이용료가 500만 원이라니까?”

“언니!”

“자, 가자꾸나. 오전에 3시간 소화했으니까 오후에 3시간만 더 고생하면 돼! 내가 우울해할 겨를도 없이 제대로 굴려줄게!”

“으아아아아아……!”

각성자가 되기 전에는 운동과 별로 안 친했던 유현애는 하드한 훈련 스케줄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 * *

그렇게 11월 초가 되었다.

7세대 각성자들을 위해 일정을 앞당긴 헌터 라이센스 시험이 치러지는 시기다.

헌터 업계에 본격적으로 새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지만, 이 시험을 통과한 이들도 바로 업계에서 활약하지는 않는다. 통상적으로 그들이 데뷔전을 치르는 것은 연말이 지나고 새해를 맞이한 후였다.

왜냐하면 새로운 각성자가 헌터 팀과 계약해서 헌터가 되고, 실전에 데뷔하기까지는 최소한 3개월의 훈련 기간을 거치기 때문이다.

설령 각성자가 되기 전부터 군사 전문가였다고 할지라도 그 정도 훈련 기간 없이는 실전에서 전술적으로 각성자로서의 능력을 쓰기 어려웠다.

하지만 7세대 각성자 중에서는 예외 사례가 한 명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수송용 헬기에 탄 서용우는 요란한 로터 소리 속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전혀 긴장이 안 되나?”

문득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헬기 로터 소리가 요란해서 가볍게 말을 걸어오는데도 꽤나 목소리를 높여야 했는데, 그런 귀찮음을 감수하고 굳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딱히 심박수가 오르지는 않는 걸 보니 그런가 본데.”

용우는 신체 컨디션을 파악해 주는 헌터용 스마트 워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는 지금 제로가 아니라 7세대 각성자이며 지윤호의 뒤를 잇는 한국의 차세대 배틀 힐러 서용우로서 데뷔전을 치르기 위해 이곳에 있었다.

용우의 심드렁한 대꾸에 말을 걸어온 상대가 눈살을 찌푸렸다.

헌터 업계 역시 한국 사회 아니랄까 봐 선후배 관계를 따져가면서 서로 서열을 결정짓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선후배 관계만큼이나 강력한 서열 요소가 있었으니…….

‘아오, 새파란 7세대 핏덩이 주제에 나잇살만 많이 처먹은 노땅이라니…….’

바로 나이였다.

현역 헌터로 뛰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한창 때의 젊은이들이다. 경력이 긴 베테랑이라고 해도 용우보다 나이 많은 이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헬기 안의 헌터들이 용우를 보는 눈길이 곱지 않은 것은 그 이유만은 아니다.

용우는 모든 면에서 업계의 일반적인 관례를 깨는 존재였다.

배틀 힐러라는 이유로 헌터 라이센스 시험을 치르지도 않고 이렇게 실전에 나서는 것부터가 그렇다.

거기에 업계의 전설, 백원태와 친분이 있어서 프리랜서 신분으로 작전에 참가하고 있기까지 하지 않은가?

다들 거친 과정을 안 거친 파격적인 존재다 보니 헌터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용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민감하게 반응하기에는 너무 하찮은 악의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곧 실전에서 실력으로 납득시키면 그만이다. 자신이 그만한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적당히 잘해봐야지.’

제로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라면 모를까, 배틀 힐러 서용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히 한계가 있다.

용우는 그래서 너무 의욕을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참 못된 생각을 품은 채로 데뷔전 아닌 데뷔전에 임했다.

Chapter11 지혜의 빛이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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