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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가 눈을 떴을 때는 집도, 호텔의 자기 방도 아니었다.
호텔 객실 비슷한 느낌이지만 아무리 봐도 호텔은 아닌 것 같은 묘한 인테리어의 방이었다.
“아, 용우 씨. 깨어났군요.”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본 용우의 표정이 묘해졌다.
“왜 사장님이 여기 계십니까?”
백원태가 당장 감격의 포옹이라도 할 기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음? 그야 용우 씨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업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달려왔습니다.”
“…….”
“표정이 왜 그럽니까? 걱정되어서 달려온 사람한테.”
“아니, 그냥 좀… 깨서요. 보통 이런 때는 제 여동생이 와서 과일이라도 깎고 있어야 하는 거 할 것 같은데 왜 선글라스를 쓴 칙칙한 아저씨가 반겨주는 건지.”
“용우 씨, 누가 15년 전에 실종된 사람 아니랄까 봐 말하는 게 완전 쌍팔년도 드라마네요.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노땅 소리 듣습니다.”
키득거리던 백원태가 표정을 바꾸고 물었다.
“그래서…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두 사람한테 이야기는 들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던데요.”
“음…….”
“말하기 어려운 겁니까?”
“아뇨. 이거 과금하셔야 하는 정보라서.”
용우의 말에 백원태가 뿔이 난 얼굴로 휴대폰을 들며 말했다.
“알았습니다. 당장 질러 드리죠, 까짓것.”
“농담입니다.”
“…….”
용우는 자신을 노려보는 백원태에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 사장님이니까 그냥 말해주겠다’는 소리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무슨 반응이 나올지 무섭다.
“지난번에 아티팩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짐작 가는 바가 있다고 했었죠.”
“그랬었죠. 어비스의 7성좌… 라고 했던가요?”
“예. 엠바고가 풀리면서 전 세계의 아티팩트 정보를 듣고 짐작이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7세대에 와서야 처음으로 등장한 각성자의 무기, 아티팩트.
각성자들이 귀환한 지 3주가 지난 지금 아티팩트 보유자는 전 세계에 7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이 가진 아티팩트는 다음과 같다.
불꽃의 활
광휘의 검
빙설의 창
굉음의 도끼
새벽의 해머
뇌전의 사슬
대지의 로드
“7개 모두 성좌의 이름하고 똑같습니다.”
“그 성좌란 대체 뭡니까?”
“글쎄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본 것은 어비스에서 누군가 죽으면, 우리가 영혼이라고 믿었던 것이 하늘로 올라가서 그 성좌에 먹히는 것.”
그리고 그 성좌가 빛나며 지상에 아바타가 강림했다는 것이다.
“아바타는 마치 갑옷을 입은 인간 같았습니다. 대화가 가능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아바타는 성좌의 형상을 한 무기를 써서 괴물… 그래요. 몬스터들을 격멸했죠.”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한 번씩 아바타가 강림한다.
그 힘은 실로 ‘강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초월적인 것.
어비스의 전사들 중에는 그것을 신성한 무언가로 해석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용우에게는…….
“마치 죽은 자의 영혼을 제물로 받고 강림해 주는, 인신공양을 받는 고대의 사악한 신 같았습니다.”
그저 한없이 두렵고 혐오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
문득 용우는 백원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뭔가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은데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
“아, 용우 씨.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백원태는 휴대폰을 들더니 보안 폴더에 넣어둔 앱을 켰다. 그리고 그 앱에서 몇 차례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더니 하나의 이미지를 띄웠다. 척 봐도 굉장히 중요한 기밀 데이터에 접촉하려는 것 같았다.
“혹시 용우 씨가 본 그 아바타, 이 이미지와 닮았습니까?”
“어떻게 이걸?”
용우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백원태의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이미지는 기묘한 디자인의 붉은 갑옷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 손에는 유현애의 것과 똑같은 불꽃의 활이 들려 있었다.
척 봐도 여성임을 어필하는 그 갑옷은 지구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갑옷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준다면 게임 캐릭터라고 생각할 이미지였다.
“이건 말하자면 몽타주 같은 겁니다. 목격 정보를 종합해서 그리게 한 거죠.”
“이걸 목격했다고요? 누가?”
“우리입니다.”
그렇게 말한 백원태는 허공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옛날 일을 회상하는 것처럼.
“나와 오성준을 포함한 초창기의 헌터들이 가장 많이 목격했고… 지금까지도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최대급 규모의 게이트에서 목격되고는 합니다.”
백원태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비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용우 씨는 그동안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았을 것이고, 직접 실전을 경험하면서 헌터들의 수준이 어떤지도 알았겠지요.”
“예.”
“그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왜 이 세계가 이렇게 멀쩡한지.”
“…….”
그 말은 확실히 용우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용우가 말했다.
“제가 그동안 알게 된 바에 따르면… 12년 동안 각성자들의 평균 수준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죠.”
“그렇다면 헌터 업계를 기준으로 볼 때, 헌터들의 전투 능력 향상은 그 이상이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용우는 트레이닝 센터에 와보고서 그 점을 확신했다.
그동안 인류가 각성자에 대해서 연구한 성과가 너무나 크다.
초창기 헌터들과 지금의 헌터들은 40년 전의 격투기 선수와 지금의 격투기 선수 이상으로 기술 수준의 차이가 클 것이다.
“그렇습니다. 나만 해도 그 발전 속도를 실시간으로 체감했었죠.”
백원태는 한국 헌터 업계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자신도 은퇴 전까지는 업계의 발전과 발맞춰서 계속 발전했던 헌터이기도 했다.
“각성자로서의 출발점, 그리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효율, 최종적인 완성도가 모두 크게 상승했는데 거기에 장비와 전술의 발전까지 더해졌지요. 사장님이 각성자가 되셨을 당시만 해도 마력 포션은커녕 증폭 탄두조차 없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증폭 탄두만 해도 내가 국군 소속으로 실전에 투입되고 나서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왔죠. 당연하지만 초기 제품은 지금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조악한 퀄리티였고.”
“그렇다면 전투 능력 면에서 초창기 헌터들과 지금의 헌터들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결론이 나오죠.”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금의 헌터들이 강해졌다는 점이 아니다.
당시의 헌터들이 약했다는 점이다.
헌터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중심으로 한 인류의, 몬스터에 대한 전투 능력 자체가 약했다.
“그런데도 인류는 문명을 지켜냈습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에요.”
물론 인류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초창기 몇 년 동안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몇 년간 세계 인구는 격감했다. 한때 70억 명을 넘었던 세계 인구는 지금은 50억 명 미만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디서는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고, 그중에는 지금의 헌터들조차 큰 희생을 치러야만 닫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초창기 헌터들이 피해를 그 정도 수준으로 억제했다고?
당시에는 5등급 몬스터만 출현해도 게이트 제압을 포기하고 일대를 다 날려버릴 전략병기 투입을 각오해야 했을 텐데?
“심지어 40미터급을 제압한 사례들도 있더군요.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여럿.”
용우가 경험한 두 번의 전투를 근거로 추측해 본 바로는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헌터들이라면 모를까, 당시의 헌터들은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능력도, 장비도, 서포트 시스템도… 심지어 헌터들의 머릿수마저도 절대적으로 열악하지 않았던가?
“물론 초창기에는 지금보다 게이트 발생 빈도가 낮았다고 하더군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7년 시점까지 연간 게이트 발생 횟수가 늘어나다가 그 후로는 큰 변동이 없다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실제로 그랬지요. 사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5등급 몬스터만 해도 절망적이었죠.”
백원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시의 우리는 5등급은 물론이고 6등급 몬스터까지도, 게이트 안에서 막아냈습니다.”
거기에는 비밀이 있었다.
초창기 헌터들이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
백원태는 휴대폰 화면에 다른 이미지를 띄워 보였다.
그 이미지들은 처음 보여준 이미지와 비슷한 디자인 코드를 가진 다른 존재들이었다.
이미지는 모두 7장.
용우가 말한 어비스의 성좌 숫자와 똑같았으며…….
“그 모든 것은 이 이미지 속의 인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용우가 어비스에서 본 성좌의 아바타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 *
초창기 헌터들이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었던, 5등급 이상의 몬스터들.
25미터급 이상의 게이트에서 출현하는 그 몬스터들을 막아낸 것은, 사실은 헌터들이 아니었다.
“바로 이 정체불명의 7명입니다. 우리가 ‘고스트(Ghost)’라고 부르는 이들이 인류를 지켰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들의 출현은 굉장히 기괴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어느 순간 홀연히 나타나는 적도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은 누군가의 시체에 빙의(憑依)하듯이 나타났습니다.”
“빙의라고요?”
백원태가 선택한 용어는 묘한 느낌을 주었다.
빙의라면 귀신이 사람의 몸을 빼앗는 현상을 말한다.
아무리 각성자가 마력이라는 힘을 이용해서 초자연현상을 일으키는 자들이라지만 빙의는 너무나도 오컬트스러운 용어가 아닌가?
“그래요. 빙의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군요.”
그들은 오로지 게이트 안쪽에서만 나타났다.
그리고 대부분 각정자 중에 사망한 자가 나왔을 때 출현하는데…….
“숨이 끊어진 시체가 호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몸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리고 눈에 총기가 돌아오며 생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마력을 발했죠.”
그러면 허공에서 조각조각 출현한 갑옷이 시체를 감싸 완성되면서 몽타주 이미지 속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출현 방식이 그들을 ‘고스트’라는 코드네임으로 부르게 된 이유였다.
“그들의 존재가 비밀로 묻힌 것은 분명 그것이 큰 이유를 차지했습니다. 인류를 구한 영웅들이 시체를 이용하는 네크로맨시(Necromancy)를 구사하는 사악한 존재들이라니, 밝혀져 봤자 누구에게도 득 될 것이 없었지요.”
그리고 인류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 많은 영역을 커버해 낼 수 있게 될수록 그들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제가 아는 한 가장 최근의 목격 정보는 국내에서 1년 반 전에 나타났던 건입니다. 하지만 1년 전 유럽에서도 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년 전에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65미터급 게이트가 유럽에서 출현했으며,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던 8등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 사건이었다.
그것이 8등급 몬스터를 쓰러뜨린 세계 최초의 사례였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사례였다.
세계 곳곳에는 게이트 브레이크로 풀려난 8등급 몬스터가 영역을 구축한 것은, 인류가 그들을 사냥할 수 없기 때문이었으니까.
“언론은 인류가 또 한 번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떠들어댔지만… 우리는 그것이 인류가 아니라 고스트들에 의한 것임을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인류의 힘은 8등급 이상의 몬스터에게는 닿지 못한다.
백원태를 비롯한 업계 중진들은 그 절망적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용우가 말했다.
“…사장님 말대로라면 그들은 인류의 수호신인 셈이군요.”
“우리가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다만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지는 불명이지요.”
“각성자 튜토리얼과 관련이 있을 것 같군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백원태는 자신 또한 같은 가설을 세우고 있음을 암시했다.
“고스트의 존재 자체는 꽤 많이들 알고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일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고 봐도 되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공공연한 비밀 취급을 받죠. 갈수록 나타나는 일이 줄어들다 보니 최근에 업계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르기도 합니다만.”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을 뿐입니까?”
“인터넷에서도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도시괴담처럼.”
백원태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용우 씨의 귀환은 정말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인지도 모르겠군요.”
아직까지는 달라진 게 없다.
대전 30미터급 게이트 안에서 막바지에 벌어졌던 일을 제외하면, 납득할 수 없는 일은 무엇 하나 없었다.
하지만 분명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비스.
0세대 각성자.
아티팩트.
그리고 고스트…….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기록하지 못했던 이 특별한 퍼즐들이 모였을 때 완성되는 그림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