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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원태와 오성준이 호언장담한 약속이 지켜지는 일은 없었다.
유현애에게 막대한 연봉을 제안한 팀 크로노스와 팀 블레이드는 이어지는 협상전에서 거짓말처럼 다른 팀에 그녀를 빼앗기고 말았다.
“…미안합니다, 용우 씨.”
백원태가 잔뜩 풀 죽은 얼굴로 사과했다.
용우는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아티팩트 보유자 유현애, 팀 반도호랑이의 품에!’
‘역대급 신인 유현애, 아티팩트의 힘은 과연?’
각성자 귀환 후 2주간의 기초 교육 기간이 끝나고 엠바고가 풀리자마자 사방팔방에 기사가 뜨고 있었다.
유현애는 업계 1, 2, 3위 팀의 제안을 거절하고 중상위권 팀인 반도호랑이에 들어간 것이다.
“후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할수록 속이 쓰리군요. 어쨌든 영입에 실패해 버리는 바람에 곧바로 자리를 마련하기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법이야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동생분 일은 곧 처리될 겁니다. 헌터관리부가 아직도 일 처리로 정신없는 와중이라 오히려 쉬울 것 같군요.”
비밀스러운 일은 정신없을 때 해치우는 게 최고였다.
그런 이유로, 용우에 의해 복원 특성과 추가적인 힐러 스펠을 터득한 우희의 힐러 라이센스 등급을 조절하고 일종의 희귀사례 판정이 났다고 처리해두는 일도 수월하게 처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뭘요. 날 믿고 그런 엄청난 비밀을 털어놔줬는데 내가 고마워해야죠.”
용우는 우희를 제외하면 오직 백원태에게만 스펠 스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어비스는 정말 우리의 상식을 무참하게 깨버리는군요. 스펠 스톤에 대한 게 알려지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겁니다.”
스펠 스톤의 존재가 알려지면 인류의 방위전략 그 자체를 수정하게 만들 수 있다.
헌터 육성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질 것이다.
“0세대 각성자의 존재 자체가 폭탄인데, 그보다 더한 폭탄을 들고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용우를 보면 볼수록 놀랍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마음에 드십니까?”
백원태가 화제를 돌려서 물었다.
용우는 이틀 전부터 크로노스 그룹의 트레이닝 센터에 와 있었다.
용인에 광활한 부지를 사들여서 건립된 이 트레이닝 센터는 국내 최고는 물론이고 아시아 전역을 통틀어도 최고급 시설을 자랑했다. 다양하고 뛰어난 훈련 시설은 물론이고 서비스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하다.
교외에 있는 만큼 고급 호텔급 숙박 시설도 붙어 있고, 훈련 인원을 위한 마력 시술 설비와 전문 의료진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먼 거리였기 때문에 용우는 이틀째 숙식하면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아주 좋더군요. 와보고 놀랐습니다. 다른 헌터 팀들도 보이던데요?”
“헌터 팀들의 재정이 빵빵하다고 해도 우리 회사처럼 자체적으로 전술훈련까지 포함한 모든 훈련이 가능한 시설을 갖춘 곳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헌터 팀들은 필요할 때마다 이런 트레이닝 센터를 이용하고 있었기에 이 트레이닝 센터는 크로노스 그룹에 많은 수익을 안겨주고 있었다.
“어쨌든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밥도 맛있고.”
VVIP 회원인 용우는 호텔을 포함한 이곳의 모든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었다.
원한다면 격투기부터 시작해서 전술, 마력 운용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트레이너도 무료로 쓸 수 있다기에 사양하지 않고 불러봤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격투기나 전술이야 용우가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지만 마력 운용법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구의 헌터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배워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실전적인 측면에서 보면 용우는 확실히 탁월하다. 지구상에 유일하면서도 치열한 경험을 통해 습득한 그 기술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인류는 몬스터와 싸우기 위해서 문명의 힘을 쏟아부어 왔다.
당연히 각성자에 대한 연구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자되고 있었고, 그만큼 뛰어난 인재들이 연구하여 결과를 내왔다.
인체의 문제와 특성을 진단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이 고도로 발달한 것처럼, 마력 기관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성장시키기 위한 방법 또한 계속해서 발전해 왔다.
용우는 자신이 감각적으로 체득하고 있던 영역이 이론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 이론을 기반으로 창조된, 마력 기관의 피로를 회복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부하를 줘서 발달시키는 훈련법을 접하고는 더더욱 놀랐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24만 명으로 시작, 소집단으로 갈라져서 3년 동안 노하우를 발전시켜 왔을 뿐이지. 연구 자료라고는 전부 개인의 경험을 공유한 수준이고 집단끼리의 교류도 인색했다.’
그에 비해 지구에서는 수십억 인류가, 21세기까지 발전된 인프라 위에서 다이나믹하게 정보 교류를 하면서 생존 투쟁을 해온 것이다.
다루는 분야가 같다면 그 발전 속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게 당연하다.
오히려 용우가 지구 인류가 12년 동안 이룩해 낸 성과에 뒤쳐지지 않았다는 점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용우가 이런 감상을 이야기하자 백원태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만족스럽다니 다행이군요. 얼마든지 쓰고 싶은 만큼 쓰세요. 혹시라도 여기서 하기 꺼려지는 훈련을 하고 싶어지면 이야기하시고.”
“알겠습니다.”
용우는 이곳에서는 어디까지나 7세대 각성자, 국내 2번째 배틀 힐러로서 훈련하고 있다.
아무래도 모든 능력을 발휘해 가면서 훈련하려면 백원태의 배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여기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용우가 이틀 전부터 이곳을 이용한 것은 각성자들의 의무교육 기간 때문이다.
한국의 모든 각성자는 귀환하면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고 15일간 의무적으로 헌터 관리부에서 운영하는 기초 교육을 수료하게 된다.
일단은 용우도 이 교육을 수료한 것으로 서류 조작이 이뤄졌기에 한동안 두문불출해야 했던 것이다.
“얼마나 있을 생각이십니까?”
“일주일만 채우고 갈 겁니다. 한 번 더 마력 시술 받고 가려고요. 여동생도 걱정할 테니 집에 갔다가 다시 오든가 해야죠.”
용우는 이틀 전, 이곳에 오자마자 마력 시술을 받았다.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 3번째 마력 시술이다.
앞선 두 번은 3천만 원 분량을 투입했지만 이번에는 그만큼을 투입하고도 여유가 많이 남는 느낌이라 2천만 원 분량을 추가로 투입했다.
그것만으로도 용우의 마력기관 상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전장에서 몬스터도 에너지 드레인으로 빨아먹고… 이런 좋은 시설에서 훈련까지 하면 뭐 금방 회복하겠지.’
용우는 지구에서 손에 넣은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 * *
그리고 4일 후, 용우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티팩트의 주인, 유현애가 크로노스 그룹의 트레이닝 센터를 이용하기 위해서 왔던 것이다.
반도호랑이도 대규모 훈련 시설을 갖지 못한 곳인지라 전술 훈련을 위해 크로노스 그룹의 트레이닝 센터를 예약한 모양이다.
“슈퍼루키 두 사람의 만남!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갈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소식을 전해준 트레이너가 웃으면서 말했다.
유현애만큼은 아니었지만 용우는 이미 헌터 업계의 주목받는 신인이었다.
지윤호의 뒤를 잇는 또 다른 배틀 힐러.
7세대 각성자 중에서는 전세계적으로 3명의 배틀 힐러가 배출되었다고 알려졌으며 용우도 그 중 하나였다. 한국인 중에서는 용우가 유일했기에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우희한테 미안하군.’
이미 여동생에게서 기자들이 취재한답시고 찾아온 것에 대해서 잔뜩 짜증을 내는 전화가 걸려왔었다.
용우는 관심 없는 척을 하면서 트레이너에게 말했다.
“글쎄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쪽에서는 저한테 관심도 없을걸요.”
“에이, 그렇진 않을 겁니다.”
“왜요?”
“고객님은 배틀 힐러지 않습니까? 게다가 프리랜서고. 아마 그쪽에서도 안면을 터두고 싶을걸요?”
그 말대로였다.
마력 트레이닝을 마치고 나오는 용우를 두 명의 여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온 것은 캐주얼하게 차려 입은 동글동글한 인상의, 하지만 키도 크고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근육질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꽤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지만, 용우의 시선은 그녀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 옆에 교복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은 소녀에게 눈길이 갔다.
‘유현애.’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서 용우도 그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단발머리 소녀다. 20세가 되었는데도 보는 순간 소녀라는 느낌이 드는 귀여운 얼굴에 키도 160센티에 못 미쳐서 체격이 작았다.
키는 작지만 신체 비율이 좋아서 주변에 비교될 만한 것이 없으면 작다는 느낌도 별로 안들 것 같았다. 외모도 예뻐서 언론에서 더 주목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두근!
용우의 심장이 거세게 고동쳤다.
‘이건?’
생각지 못한 증상이 일어난 것은 용우만이 아니었다.
“아……?”
유현애가 가슴을 움켜쥐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현애야?”
근육질의 여성이 놀라서 그녀를 붙잡았다.
치지직……!
용우와 유현애 사이의 허공이 일그러지면서 시퍼런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 * *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용우와 유현애의 거리가 5미터 이내로 줄어들고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양쪽의 마력 기관이 공명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사태를 빚어냈다.
“뭐야?”
근육질 여성이 놀랄 때, 유현애가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내서 외쳤다.
“도망, 치세요……! 통제가, 안, 되고 있……!”
일그러진 공간이 파문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시뻘건 빛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어떤 형상을 그려낸다.
용우가 이를 악물었다.
‘불꽃의 활!’
유현애가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가져온, 인류의 과학기술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이 깃든 무구(武具)!
“아, 이건, 대, 체……?”
유현애가 괴로워하며 무릎을 꿇었다.
소재를 알 수 없는 새빨간 광택을 흘리는 서양식 대궁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활만이 아니다. 그것을 쥔 정체불명의 존재도 있었다.
그 존재는 오로지 실루엣만이 존재한다. 뿌연 빛으로 그려진 인간을 닮은 실루엣이 불꽃의 활을 쥐고 있었다.
“역시.”
용우가 그 존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고동은 조용하게 가라앉은 후였다.
그는 이 존재를 알고 있다.
이 순간, 그가 아티팩트에 대해서 품었던 의문은 확신이 되었다.
파지지지직……!
격렬하게 날뛰며 복도를 무너뜨릴 듯 뒤흔드는 스파크 속에서 용우가 중얼거렸다.
“성좌의 아바타.”
스파크에 파묻혀 그 소리는 용우 자신에게만 들렸다.
“큭……!”
근육질 여성이 유현애를 뒤로 밀어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신체를 보호하며 전개된 마력은 지금의 용우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베테랑 헌터, 그것도 근접 전투계 능력자이리라.
하지만 그녀가 스파크를 뚫고 나아가는 것보다 용우가 더 빨랐다.
-허공장 전개!
항시 용우의 몸을 덮고 있는 허공장이 푸른빛의 막으로 가시화되면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몸 밖에서 재조립되면서 불꽃의 활을 덮었다.
“헉!”
근육질 여성이 깜짝 놀랐다.
용우의 허공장이 불꽃의 활을 감싸자 진동과 스파크를 발생시키던 마력 파동이 멎었기 때문이다.
“크으으으윽……!”
용우는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끌어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고작 이 정도에 애를 먹다니! 12년 봉인되어 있었다고 이 모양 이 꼴이라니 너무하는 거 아니냐? 근성 없는 마력 기관!’
용우는 약해진 자신의 마력 기관을 욕하면서 젖 먹던 힘을 다해 기술을 완성시켰다.
-반전(反轉)! 마력 차단!
순간 괴로워하던 유현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그녀가 괴로워한 이유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마력 기관이 최대 출력으로 가동했기 때문이다.
도구에 불과해야 할 불꽃의 활이, 오히려 주인을 도구 취급 하면서 힘을 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불꽃의 활로 끌려들어 가던 마력의 흐름이 뚝 끊겼다.
고통에서 벗어난 유현애는 고개를 들었고, 그리고 더욱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우우우우우!
공기가 진동한다.
불꽃의 활을 가둔 허공장이 서서히 압축되고 있었다.
인간을 닮은 빛의 실루엣이 그 속에서 형체를 잃고 흩어지고, 불꽃의 활 역시 찌그러지면서 한 점으로 수렴되어 갔다.
파지직…….
결국 작은 스파크를 마지막으로 불꽃의 활이 사라졌다.
“헉, 헉, 허억…….”
용우가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주저앉았다.
근육질 여성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유현애가 비틀거리며 다가와서 말했다.
“아, 저기… 감사합니다. 그게,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 이랬는지…….”
“당신.”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용우가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민폐야.”
“뭐, 뭐라고요?”
“아윽, 죽겠…….”
그의 직설적인 폭언에 유현애가 눈을 휘둥그레 뜨는 순간, 용우가 신음을 흘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어?”
유현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