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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등급 몬스터 땅울음용.
고등급 몬스터들이 다들 그렇듯 상대하기 힘든 괴물이다.
대전의 30미터급 게이트를 제압하기 위해 진입한 팀 블레이드의 2부대는 초반 정찰 결과 2마리의 5등급 몬스터가 코어 몬스터로서 존재함을 알아냈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고 더 신중함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 그들의 실수였다.
첫 번째 5등급 몬스터를 사냥한 직후에 땅 밑에 숨어서 잠들어 있던 땅울음용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정찰 데이터를 기반으로 잘 굴러가고 있던 전술 플랜은 순식간에 박살 났다.
5등급 몬스터들이 교차로 날뛰기 시작하자 2부대는 전열을 유지할 수 없었다.
무인 병기들을 내던져서 시간을 끌면서 퇴각했고, 전열을 재정비하기도 전에 다른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아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길! 제기랄!’
2부대의 근접전투원 분대를 이끄는 분대장은 날듯이 달리고 있었다.
숲을 질주하는 그의 움직임은 원숭이도 기겁할 수준이었다.
탁 트인 평지도 아니고 방해물이 많은 숲속을 시속 50킬로미터로 질주하다가 가볍게 도약,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하반신을 당기는 것만으로도 허공으로 5미터 이상을 솟구친다.
콰작!
간발의 차이로 땅울음용의 아가리가 그가 붙잡았던 나무를 물어서 부러뜨렸다.
땅울음용은 5등급 몬스터 중에서는 덩치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면 크다.
납작 엎드려 달리는 체고가 3미터, 전체 몸길이가 17미터를 넘는 덩치는 대형 트레일러보다 더 큰 것이다. 이런 괴물이 자기를 잡겠다고 달려오는데 ‘작다’는 생각이 들겠는가?
땅울음용은 황토빛을 띤, 도마뱀에 가까운 등짝부터 꼬리까지는 매끈하게 갈린 암석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비늘로 뒤덮여 있다.
눈은 청회색을 띠고 있으며 이마에는 빛을 발하는 두 개의 붉은 뿔을 가졌다.
화아아아악!
그리고 입에서는 불을 뿜는데 이 화력은 일격에 인간을 불탄 시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에어 바운드!
분대장은 자신을 삼키려고 날아드는 불꽃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파아아앙!
그러자 대기가 폭발하면서 불꽃을 가로막는 벽으로 화했다.
그 반동으로 분대장의 몸이 더욱 높이 솟구쳐서 땅울음용과 거리를 벌렸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아!
땅울음용이 포효했다.
그러자 반경 40미터 정도의 지면이 수프가 끓어오르듯 진동하는 게 아닌가?
“미친!”
분대장이 경악했다.
콰과과과과!
그리고 토사가 폭발적으로 솟구치면서 그를 강타했다.
“아아아악!”
토사에 맞고 날아가는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라면 땅에 추락하면서 토사에 깔려 버린다!
-에어 브레이크!
그때 그의 몸을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기류가 감싸 안았다.
쉬이이이이!
그리고 그 기류가 아래쪽으로 분사되면서 그의 추락을 막고, 그대로 궤도를 틀어서 쏟아지는 토사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뭐야? 이건 누구 재주야?’
분대장은 토사에 맞은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그런 의문을 떠올렸다.
그런 그의 앞으로 땅울음용이 쿵쿵거리며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그때 측면에서 날아든 에너지탄이 땅울음용의 머리통을 쳐서 무릎 꿇렸다.
[알파-1. 시간을 벌어줄 테니 빠져서 재정비하십시오.]
낯선 목소리가 통신기로 분대장의 코드네임을 불렀다.
‘누구야? 이 코드네임은… 제로-0?’
2부대원 중에는 문밖에 대기 중인 대기 전력까지 포함해도 이런 코드네임이 없다.
“당신, 누구야?”
분대장이 허둥지둥 일어나면서 물었다.
[제로.]
대답과 동시에 또 한 발의 저격이 땅울음용의 정수리를 강타해서 땅에 처박았다.
꽈아아앙!
그 광경을 본 분대장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새 위치가 바뀌었어?’
저격이 발사된 위치가 방금 전과는 크게 다르다.
순간적으로 다른 저격수가 쏜 것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그의 헬멧 안쪽에 떠오르는 지도 데이터에도 같은 인물이 100미터나 이동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고장 났나?’
그런 의심이 들 때였다.
[빨리 빠지시죠. 시간을 벌어주겠다고 했는데 못 들었습니까?]
그 말에 분대장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제로라고 했지? 은혜는 잊지 않겠다!”
뿔뿔이 흩어진 다른 부대원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뛰어가던 분대장은 퍼뜩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잠깐, 제로?’
그는 뒤늦게 그 이름이 요 며칠간 헌터 업계의 핫 이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구 DMZ에서 악마숲을 혼자 잡은 그 남자? 그가 우리를 도우러 왔다고?’
* * *
용우는 높은 언덕 위에서 스코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욕 나올 정도로 좋네.’
객관적으로 보면 용우의 사격 실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물론 격렬한 전투 상황에서도 썩 괜찮은 명중률을 자랑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은 신체 능력과 감각이 워낙 좋아서 가능한 재주다. 사격 전문가의 실력은 총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고 용우는 아직 이 부분이 취약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그런 용우의 취약함마저도 전자동으로 메꿔주고 있었다.
띠디디… 띠딕!
대몬스터 저격총-제우스의 뇌격에 달린 전자식 스코프가 조준 완료를 알렸다.
-염동충격탄!
초음속으로 발사된 푸른 에너지탄이 500미터 저편에 있는 땅울음용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때려서 주저앉혔다.
너무나도 정밀한 저격이다.
이것은 용우의 실력이 아니라 총의 성능이 뛰어나서였다.
제우스의 뇌격에 탑재된 조준장치가 허공을 날고 있는 부유 중계기와 링크해서 관측 데이터를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저격 궤도를 연산해서 완벽한 저격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4발째. 슬슬 대미지가 드러나는군.’
용우가 귀환한지 아직 채 3주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용우의 마력기관은 아직 회복 중이라 위력이 충분하지 못했다. 이 컨디션으로 어비스 땅울음용을 만났다면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리라.
하지만 지구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증폭탄두로 사거리와 위력이 몇 배로 증폭된 염동충격탄을 연타로 꽂아넣자 5등급 몬스터인 땅울음용도 타격을 받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뒤늦게 용우의 위치를 파악한 땅울음용이 포효했다.
거리는 100미터.
그러나…….
꽈과과광!
분대장을 공격했을 때와는 달리 전 방위가 아니라 전방으로 집중, 부채꼴로 적용된 ‘땅울음’이 용우가 있는 언덕까지 미쳤다.
대지가 수프처럼 끓어오르면서 터져 나간다.
하지만 용우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제로, 무사한가?]
오성준의 통신이 들어왔다.
“멀쩡합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쓰는 건가? 혹시 순간이동 스펠도 갖고 있나?]
정답이었지만 용우는 긍정해 주는 대신 까칠하게 대꾸했다.
“사장님, 호기심 채우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만?”
[아, 미안하군. 이쪽은 입구로 퇴각 완료 했다. 현재 부상자를 내보내고 추가적으로 서포트 팀과 무인 병기들이 진입하는 중이다.]
“무인 병기 투입까지는 얼마나 걸립니…….”
꽈과과과과과!
“…까?”
용우는 블링크로 한 차례 더 땅울음용의 공격을 피하며 물었다.
[…앞으로 5분. 5분 안에 반입과 세팅을 끝내겠다.]
“알겠습니다. 근데 땅울음용은 제가 계속 동쪽으로 유인 중입니다만 암석거인은 어쩔 겁니까?”
제3자가 보기에 용우는 비상식적인 전술수행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여유가 넘쳤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직접 땅울음용으로 접근해서 싸움을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팀 블레이드의 전술 계획에 따라서 원거리 저격으로 차분하게 땅울음용의 허공장을 깎아내는 일만 하고 있었다. 아직 또 한 마리의 코어 몬스터가 남아있는 데다가 어떤 변수가 출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흠.”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동한 지점에서 통신을 하는 동안 5마리의 1, 2등급 몬스터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제로?]
“전투 중이니 잠깐만!”
용우는 신경질적으로 외치고는 주시견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사일런트 엣지!
보이지 않는 칼날을 전개해서 그 뒤에서 뛰어드는 긴다리늑대의 팔을 잘라내고…….
-에어 바운드!
주먹을 내지른 곳에서 대기가 폭발, 그 폭압이 부채꼴로 분사되자 몬스터들이 죄다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용우의 손에 제우스의 뇌격 대신 일반 사이즈의 소총이 마술처럼 나타났다.
콰아아아!
에너지탄이 발사되면서 5마리의 몬스터들이 쓸려나갔다.
“후우.”
용우는 몬스터들의 시체로 다가가 에너지 드레인을 썼다.
마력 포션을 쓸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 아껴두어야 한다.
다행히 용우에게는 다른 헌터들과 달리 에너지 드레인과 정화, 2개의 스펠 콤비네이션으로 마력을 보충할 방법이 있었다.
마력을 흡수한 용우는 다시 제우스의 뇌격으로 땅울음용을 한 방 때려준 다음 달리면서 말했다.
“됐습니다. 계속 말하세요.”
[그대로 계속 땅울음용을 동쪽으로 유인해 주면 2부대원들이 전열을 정비해서 합류, 그놈을 처치할 거다.]
“암석거인은?”
현재 이 게이트 안에 있는 코어 몬스터는 2마리다.
땅울음용과 마찬가지로 5등급 몬스터인 암석거인.
2부대가 재정비하고 용우와 함께 땅울음용을 사냥한다 하더라도 암석거인까지 상대할 여력이 있을까?
[우리는 땅울음용을 잡으면 그 시점에서 이탈한다. 나머지는 서울에서 오는 후속 부대의 몫이다. 게이트 브레이크까지는 충분히 시간이 남아 있으니 나가서 재정비한 뒤 재진입해서 그들을 돕는 것도 방법이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더 이상의 인명피해가 나오지 않는다면 굳이 내가 위험을 감수하고 잡아줄 필요까지는 없겠지. 여기까지 먼 길을 오는 후속부대가 허탕을 치게 만드는 것도 그렇고.’
위급상황이라면 모를까, 작전이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는데 굳이 혼자 다 하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용우는 땅울음용을 멀리 유인하면서 야금야금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것에만 주력했다.
하지만 불안요소는 용우가 모르는 곳에서 시한폭탄처럼 터지길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