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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뻥 뚫린 어둠 속으로 진입하는 순간, 용우는 마치 물속으로 다이빙한 것 같은 저항감과 부력을 느꼈다.
그 감각은 잠깐이었다. 채 5초도 지나지 않아서 어둠이 걷히고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용우는 헬멧 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붉은 숲이었다.
하지만 그 붉음은 가을철 단풍이 들었을 때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나뭇가지에 나뭇잎 대신 달린 불그스름한 불꽃들이 이글거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산불이 난 상황은 아니다. 그저 지구에 있을 수 없는 마법 같은 풍경일 뿐.
‘어비스……!’
용우가 어비스에서 경험한 풍경이다.
주변 풍경이 지구로 돌아와서 몬스터를 봤을 때만큼이나 강렬했다.
잠시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오성준이 말했다.
“케이블 연결부터 하지.”
그 말에 용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의 손에는 게이트 너머에서 가져온 케이블이 들려 있었다.
게이트 안과 밖은 무선통신이 연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몬스터의 시체에서 얻은 특수 소재로 만든 케이블로 안팎을 이어야 했다.
이렇게 이어놔도 케이블이 긴 시간을 버텨주지 못해서 중간중간 사람을 투입해서 교체해 줘야 했고, 또 노이즈가 심해서 영상을 전송하거나 하는 건 무리였지만 간단한 음성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지도 데이터가 뜰 거다.”
용우가 통신 중계기의 케이블들을 교체하는 동안 오성준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말했다.
게이트 너머는 지구와는 다른 세계다.
그곳은 마치 세계의 일부를 잘라놓은 것처럼 제한적인 공간 속에 기괴하고 신비한 세계의 모습을 구현해 두고 있었다.
따라서 헌터 부대가 게이트 제압을 위해 투입된 순간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정찰이다.
드론과 RC카 등을 이용해서 주변을 정찰, 지형 정보를 수집해서 지도 제작에 들어간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자들이 주요 변수를 입력해 주는 것만으로도 맵핑 머신이 정묘한 지도를 제작해 주었다.
‘역시 놀랍군. 투입된 지 채 5시간도 안 되었는데 이렇게 완벽한 정보라니…….’
용우는 그동안 지식을 공부해서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헬멧 안쪽으로 지도 데이터가 영상으로 떠오르고 현재 생존해 있는 부대원들의 위치와 신체 상태까지 띄워주는 것을 보고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역시 지구의 전투 수행 기술은 어비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어비스에서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용우는 10배… 아니, 100배의 전과를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부유 중계기는 3체 모두 살아 있군. 다행이야. 일이 좀 수월해지겠어.”
오성준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게이트 안쪽의 하늘은 언뜻 보면 지구의 하늘과 똑같아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곳은 거대한 건물 안의 공간이나 마찬가지다. 무한히 펼쳐진 듯한 하늘은 사실 그런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천장에 불과한 것이다.
그 하늘이 충분히 높다고 판단된 경우, 헌터 팀들은 부유 중계기라는 기계를 쏘아 올린다.
로켓으로 쏘아 올려져서 프로펠러로 고도를 유지하는 이 부유 중계기는 게이트 안에서의 원활한 무선통신을 가능케 하며, 또한 카메라로 지상을 촬영하여 지도 데이터를 갱신해 주는 등 전술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방어전을 수행 가능한 인원들을 여기에 집결시켜야 서포터 팀을 진입시킬 수 있어. 일단 북서쪽 150미터 지점부터 가지.”
“알겠습니다.”
통신이 연결되어 있기에 뿔뿔이 흩어진 아군이 상황을 파악하기 쉬웠다.
오성준은 당장 구명 조치가 필요한 중상자가 있는 포인트를 우선적으로 골랐다.
투두두! 투두두두!
달려가는 도중 숲에서 불쑥 2마리의 몬스터가 튀어나오자 오성준은 주저 없이 소총을 갈겼다.
‘주시견.’
용우가 지구로 돌아온 뒤 처음으로 잡았던 1등급 몬스터였다.
대형견만 한 덩치를 자랑하고 개의 그것보다 5배는 큰 흉측한 하나의 안구만을 가진 괴물.
키에에에엑!
1등급 몬스터조차도 소총 1정만으로는 잡기 어렵다.
하지만 오성준의 소총은 일반 탄두를 쓰고 있지 않다.
-마격탄(魔擊彈)!
소총탄에 마력이 부여되면서 주시견의 허공장을 뚫고 몸에 박혔다. 2마리의 주시견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총소리를 들은 다른 몬스터들이 몰려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내가 앞장설 테니 사격 지원을 부탁한다.”
오성준이 소총의 등에 메고 대신 다른 장비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현대전에는 너무나도 안 어울리는, 기다란 양손 대검이었다.
각성자용으로 특수 제작된 그 검은 길이 160센티미터, 무게는 3.5킬로그램에 달한다. 일반인이 쓰려면 충분한 완력과 무게중심을 활용하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각성자라면, 그중에서도 근접 전투를 특기로 하는 무투파 헌터라면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쓸 수 있었다.
파지지직……!
마력을 받은 양손 대검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일반인이 전력 질주 하는 것보다 빠르게 숲속을 뛰어가는 그들의 앞을 몬스터들이 가로막았다.
덩치는 송아지보다도 더 크고 다리가 기이할 정도로 긴 2등급 몬스터 긴다리늑대.
그 괴물이 두 다리로 일어나더니 긴 앞발을 뻗어서 휘둘러 왔다.
팍!
그러나 오성준은 시퍼런 스파크가 튀는 양손 대검으로 그 공격을 받아쳤다.
일격으로 긴다리늑대의 앞발을 잘라내고 몸통에 앞차기를 찔러 넣는다.
그리고 그 옆쪽에서 뛰어드는 또 한 마리의 긴다리늑대의 공격을 크게 몸을 숙여서 피하고, 거기서 다시 일어나는 움직임으로 양손 대검에 기세를 주어서 반격했다.
푸확!
긴다리늑대의 몸통에 깊숙한 상처가 나면서 검은 피가 솟구쳤다.
‘움직임이 상당하군.’
용우는 오성준이 싸우는 것을 보면서 놀랐다.
회사 경영하느라 반쯤 현역 은퇴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우우우우!
그런데 그때였다.
나무 사이사이에서 날아든 세 줄기의 투명한 빛이 오성준을 덮쳐서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큭!”
오성준이 신음했다.
주시견 3마리가 안구의 마력을 해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상대의 움직임을 붙잡는 포박의 마안(魔眼)이었다.
카르릉!
중상을 입은 긴다리늑대가 시퍼런 안광을 발하며 아가리를 벌리고 뛰어들었다.
“흡!”
그러나 오성준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위기가 아니었다.
파지지직!
허공장이 펼쳐지면서 긴다리늑대를 막아냈던 것이다.
체외 허공장을 보유한 헌터는 극소수다.
그리고 2세대 헌터인 오성준은 바로 그 극소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2세대 헌터, 그것도 근접전투계이면서도 계속 최전선에서 활약해올 수 있었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허공장으로 긴다리늑대를 저지한 오성준이 양손대검을 내리쳤다.
투콱!
긴다리늑대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사이 옆으로 돌아간 용우가 주시견들에게 소총을 갈겼다. 스펠의 위력이 증폭탄두로 인해 몇 배로 증폭되면서 발사되었다.
-염동충격탄!
각도를 잘 잡고 쏜 단 일격으로 3마리의 주시견이 갈가리 찢어졌다.
“가죠.”
“그러지.”
오성준이 칼날에 묻은 검은 피를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첫 번째 포인트에 도착한 용우는 다시금 놀람을 금치 못했다.
‘기가 막히는군.’
불꽃이 잎사귀를 대신하는 기묘한 숲 어디로 가나 몬스터들이 넘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부상자들을 포함한 6명의 부대원들은 놀라운 수단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숲 한편에서 솟아오른 벼랑, 그 중간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각성자 저격수가 작은 구멍을 낸 다음 거기에 폭탄을 넣어서 구멍을 확장해서 몸을 숨긴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광학 위장포를 씌워놓으니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감쪽같은 위장이 완성되었다.
“다들 괜찮은가?”
“사장님!”
숨어 있던 자들은 각성자 저격수 1명과 그를 서포트하던 일반인 헌터 5명이었다.
그들은 사장이 직접 구조를 위해 뛰어왔다는 사실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제로, 응급처치를 부탁한다.”
일반인 헌터 한 명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을 본 오성준이 부탁했다.
용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치료 스펠을 펼쳐서 그를 치료했다. 마력을 아껴야 했기에 완치시키지는 않았지만 고비를 넘기기에는 충분했다.
오성준이 저격수에게 물었다.
“마력은?”
“전투 수행 가능합니다.”
“포션은 썼나?”
“예.”
“장기전은 무리겠군.”
각성자 헌터들은 전투를 수행할 때 마력석을 정제해서 만든 마력 포션으로 마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마력 포션은 한 번 쓰면 최소 4시간의 텀을 두어야 했다. 그 안에 또 써봤자 거의 효과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아……!
그때였다.
은신처 밖, 먼 곳에서 공간을 뒤흔드는 것 같은 포효가 들려왔다.
[사장님?]
그리고 전술 회선으로 통신이 들어왔다.
“나다. 현재 포인트-1에 와 있다.”
[이쪽은 현재 땅울음용과 교전 중입니다! 지원 부탁드립니다!]
통신으로 비명에 가까운 외침들이 연달아 들려오고 있었다.
지도 데이터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그들의 위치 정보를 보면 교전이라기보다는 날뛰면서 추격해 오는 몬스터에게서 정신없이 도망치는 형국이다.
“곧 가겠다.”
그렇게 대답한 오성준이 2부대원들에게 물었다.
“서포트 병기들은?”
“미니 전차들은 전부 잃었고, 드론은 2체가 살아 있습니다. 부유 중계기가 살아 있으니 밖으로 나가면 다시 컨트롤 가능 할 겁니다.”
“알겠다. 자네들은 여기에서 대기하게.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나서…….”
“사장님.”
그때 용우가 입을 열었다.
“이분들 데리고 출입구로 후퇴하십시오.”
“뭐라고?”
“최대한 빨리 출입구 쪽에서 방어전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서포터 팀을 추가적으로 진입시킬 수 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상황이 있다.”
“저쪽에는 저 혼자 가겠습니다.”
“자네 실력은 믿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리가 1.7킬로미터나 됩니다. 사장님과 같이 가려면 늦을 겁니다.”
그 말에 오성준의 말문이 막혔다.
곧 그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자네라면 늦지 않게 갈 방법이 있단 말인가?”
오성준은 신체능력이 뛰어난 무투파 헌터이기에 이동속도도 빠르다. 그런데 그가 느려서 데려갈 수 없다고 하다니?
하지만 용우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예. 맡겨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