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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의 아공간에는 어비스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있었지만…….
“세상에. 오빠, 도대체 마력석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 거야?”
지구에서도 큰 가치를 지닌 자원, 마력석도 있었다.
마력석은 일반적인 광물과는 달리 별도의 정제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파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마력석들은 크기가 곧 가치였다.
그런 마력석이 거실에 쌓여간다.
주먹 크기의 마력석도, 그보다 2배는 더 큰 마력석도 수십 개씩 쌓이다 보니 정말 산더미 같다는 말이 어울린다.
우희에게는 현실감이 없는 광경이었다.
계속 마력석을 꺼내서 쌓던 용우가 말했다.
“역시 다 꺼내놓는 건 무리겠군.”
“이게 다가 아니야?”
“아직 10분의 1도 안 꺼냈어. 한꺼번에 꺼내면 재난일 것 같아서 하나씩 꺼내고 있었는데… 안 되겠군.”
“…….”
“마지막에 폭발시킬 때도 엄청 많이 썼는데… 생각보다 많이 남았네. 원래는 이걸 현금화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관두는 게 낫겠지?”
“오빠 인맥을 생각하면 현금화하는 거야 가능하겠지만…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니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지 않을까?”
우희가 현실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용우는 구 DMZ 지역에서의 전투 한번으로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용우에게 있어서 마력석이 전투자원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현금화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용우는 마력석들을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다른 것을 꺼냈다.
“그건 뭐야?”
우희가 용우의 손에 들린 것에 시선이 못 박힌 채로 물었다.
주먹만한 유리구슬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 안쪽으로부터 붉은 기운이 안개처럼 꿈틀거리면서 안과 밖을 넘나든다. 그 몽환적인 느낌은 이상할 정도로 시선을 잡아끌어서, 용우가 아공간에서 꺼내는 순간부터 우희는 거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스펠 스톤.”
“이게?”
“리모트 힐이 담겨 있으니까 한번 써봐.”
용우가 스펠 스톤을 건네주자 우희가 당황하며 물었다.
“어떻게 쓰는데?”
“쉬워. 거기에 마력을 주입하면서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이미지를 떠올려봐.”
우희가 그 말대로 따르자 스펠 스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
공기가 진동하면서 스펠 스톤이 우희의 손 위에서 녹아서 흩어진다. 붉은 빛의 기운이 우희의 몸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아…….”
우희는 낯익은 감각이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이 감각은 처음이 아니다. 분명 예전에 느껴본 적이 있었다.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그곳에서 포인트를 지불하고 스펠을 얻었을 때와 동일한 감각이다.
한참동안 그 감각에 취해 있던 우희는, 눈을 뜨자마자 어질거림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아.”
용우가 잽싸게 그녀를 붙잡아서 쓰러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괜찮아? 마력이 좀 크게 소모됐을 거야.”
“아, 그런 거 같아. 각성자 튜토리얼에서는 이렇지 않았는데…….”
하지만 각성자 튜토리얼 내부에서 힘을 쓸 때의 감각은 지구에 돌아와서 힘을 쓸때의 감각과는 좀 다르다.
그쪽에서는 공간 전체에 참가자들을 보조하는 정체모를 힘이 가득 차 있어서, 스테이지에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마력 부족으로 쓸 수 없는 스펠을 쓸 수 있게 되기도 하고 터득하지도 않은 스펠을 잠깐 대여라도 한 것처럼 쓸 수 있을 때도 있었다.
“퇴근한 후라 다행이네…….”
한순간에 마력이 절반 이상 소모된 것을 깨달은 우희가 실소했다.
“오빠, 그럼 내가… 이제 원격치료가 가능해진 거야?”
“그래. 시험해봐.”
“꺄악! 뭐하는 거야!”
우희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용우가 손가락으로 팔뚝을 긋자 칼로 찢긴 것 같은 상처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우는 태연했다.
“치료해봐.”
“오빠, 아무리 힐러가 앞에 있다고 해도 이러면 안 돼.”
우희는 용우를 한번 쏘아보았다. 같이 지내면서 생각한 건데 용우는 가끔씩 굉장히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었다.
“알았으니까 해봐.”
용우가 귀찮아하며 재촉하자 우희가 정신을 집중해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새로 익힌 스펠이 어떤 것인지 탐색해볼 필요는 없었다.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익힌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이것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으니까.
-리모트 힐.
스펠이 발동하자 우희의 머리에 후광 같은 빛의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일부러 2미터 이상 떨어져서 선 용우의 상처 부위에서도 빛이 일면서 급격하게 상처가 아물어가는 게 아닌가?
“와…….”
자신이 해놓고도 믿기지가 않는지 우희가 탄성을 흘렸다.
상처가 다 치료되자 용우가 말했다.
“역시 힐러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잘 하네. 스펠 스톤으로 스펠을 터득하는 건 마력기관에 부담이 좀 있는 편이니까 다음은 사흘 후로 하자. 어차피 그 전에 대전에도 내려갔다와야 할 것 같으니…….”
“아, 7세대 각성자들 귀환 보러 간다고 했었지?”
“백 사장님이 같이 가자고 성화라서. 어쨌든 사흘 후에 복원 특성을 습득하는 걸로 하자고.”
“응?”
용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말에 우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 뭐라고 했어?”
“사흘 후에 복원 특성 습득하자고.”
“잠깐. 잠깐만 타임.”
우희는 혼란스러웠다.
“스펠 스톤으로는 스펠만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이름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특성도 익힐 수 있어. 안 그랬으면 내가 어떻게 특성을 터득했겠냐?”
용우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가 어비스에서 손에 넣은 다양한 특성과 수많은 스펠은 모두 스펠 스톤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
“어, 하지만 복원 특성이라니… 그걸 익히면 난 힐러 등급이 올라가버리는데…….”
복원 특성은 힐러의 격을 최고로 높여주는 특성이다.
이 특성을 획득한 힐러들은 환자를 치료할 때 의학적 문제에 대한 고려가 거의 불필요하다.
그저 환자와 상처를 타깃팅하고 스펠을 발동하면 ‘육체가 돌아가야 할 올바른 상태’로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몸에 박혀 있는 이물질조차도 알아서 빠져나오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용우가 말했다.
“올리면 되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말해?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다들 알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귀환할 때부터 있었던 특성이지만 쓸 수가 없었고, 그런데 나한테 코치를 받다 보니 뒤늦게 개화했다는 식으로 둘러대면 되지 않을까? 백 사장님한테 부탁하면 헌터관리부 쪽을 이용해서 일종의 희귀사례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우희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하고 싶었다.
‘근데 될 것 같아.’
정말로 그렇게 하면 해결이 될 것만 같아서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황당해하던 우희가 물었다.
“오빠. 혹시 오빠는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도 각성자로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아니, 그건 불가능해. 일반인에게 마력기관을 형성시키는 방법은 모르거든. 어비스에서는 그럴 일도 없었고, 연구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럼 지금 오빠 아공간이 있는 스펠 스톤만큼의 특성과 스펠을 각성자들에게 주고 나면 끝이겠구나.”
“음? 아닌데?”
용우가 무슨 말을 하냐는듯 묻자 우희가 어리둥절해했다.
“그럼?”
“스펠 스톤이야 필요하면 내가 또 만들 수 있어. 마정석만 있으면 되는데 마정석이야 넘치도록 많으니까…….”
“…….”
그 말에 우희는 잠시 멍청하니 용우를 바라보다가 외쳤다.
“진짜로?!”
우희는 용우에게는 그야말로 헌터 업계의 파워 밸런스를 자기 뜻대로 조율할 힘이 있음을 깨닫고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 * *
7세대 각성자들의 귀환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빅 이벤트였다.
소환된 자들의 혈육과 친지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들이 귀환 게이트 앞으로 모여들어서 카운트다운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광경은 그 자체로 축제나 다름없었다.
다만 그 축제에는 기쁨만이 있지 않으리라.
기다리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에 환호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죽어서 돌아오지 못한 것에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것은 마치 전쟁이 끝난 후의 풍경과도 비슷하리라.
“엄청난 인파군…….”
귀환 게이트의 생성 위치는 매번 달라진다.
지난번에 한국의 귀환 게이트가 생성된 지역은 서울 용산구였는데 이번에는 대전이었다.
그래서 용우는 대전에 와서 고층 호텔 옥상에서 귀환 게이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전에 귀환 게이트가 형성되는 순간, 열차표가 엄청난 기세로 매진되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면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원태가 수직 이착륙 수송기를 타고 대전으로 오는 김에 같이 가자고 제안해서 따라왔던 것이다.
즉, 용우가 호텔 옥상 위에 있는 헬기포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적법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용우는 내려가서 귀환 게이트와 접촉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인파를 보니 그럴 의욕이 싹 달아나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를 선택했다.
귀환 게이트는 마치 홀로그램 같았다.
허공의 한 지점에 빛으로 그려진 원, 그리고 그 한복판에 떠올라 있는 카운트다운 타이머.
‘게임에서 적당히 소스를 베껴온 것 같은 싸구려 디자인이야. 디자이너가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디자인을 전공한 작자는 아니겠어.’
용우는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이제 채 10분도 남지 않았다.
타이머의 숫자가 00 : 00 : 00로 변하는 순간 7세대 각성자들의 귀환이 시작된다.
두두두두두……!
그때 매끈한 실루엣을 자랑하는 헬기 한 대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포트 끝의 난간에 몸을 걸치고 있던 용우는 헬기가 발생시키는 기류에 머리칼이 휘날리자 눈살을 찌푸렸다.
옥상 포트의 빈자리에 헬기가 내려선다. 그리고 그로부터 회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내렸다.
“실례합니다.”
남자는 내리자마자 용우를 향해 걸어왔다.
180센티를 넘는 장신에 수염을 멋지게 기른, 세련된 용모의 남자였다. 나이는 30대 중후반 정도일까?
“혹시 서용우 씨 맞습니까?”
“그렇습니다만.”
백원태는 이 호텔 세미나실에서 헌터관리부 장관을 만나느라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척 봐도 사업가로 보이는 남자가 등장하다니, 완전히 이 틈을 노리고 있었다는 느낌밖에 안 든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니엘 윤입니다.”
그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 적힌 그의 직함을 본 용우가 놀랐다.
‘팀 이그나이트 CEO 다니엘 윤’
한국 헌터 업계의 최고봉은 팀 크로노스와 팀 블레이드, 두 헌터 팀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팀 이그나이트는 둘 바로 밑에 자리한, 지난 7년간 한국 헌터 업계 실적 3위를 놓쳐본 적이 없는 헌터 팀이었다.
‘해외 업계와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었지.’
용우는 그동안 공부한 헌터 업계의 지식을 떠올렸다.
어느 나라나 자국의 헌터 팀, 그리고 군수 산업에 해외 자본이 유입되는 것에 대해서 까다롭게 군다. 국토방위와 관련된 문제니 당연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헌터 전력은 평준화되어 있지 않다.
상황이 열악한 나라들은 해외 헌터 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도저히 사회를 유지할 수 없었다.
자국을 방위하는 것만으로도 빡빡하지만, 국제 사회의 시선을 생각하면 UN의 요청에 응해서 열악한 나라들에 지원을 보내야만 했다.
팀 이그나이트는 그런 국제 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기업이다.
정부의 묵인하에 국내 대기업들보다는 해외 자본의 투자를 받아서 성장해 온 그들은 팀의 구성부터가 이질적이었다.
다수의 해외파 헌터들이 ‘선진적인 한국 헌터 업계의 노하우를 배운다’는 듣기 좋은 명분으로 소속되어 활동 중이었다.
‘명분에 그치지만은 않는다고 했지.’
보통 팀 이그나이트와 계약한 외국인 헌터들은 3~5년 계약으로 높은 보수를 받으며 활약한 뒤 그 노하우를 갖고 자국으로 돌아간다.
실제로 한국 헌터 업계는 선진적이다. 현재의 몬스터 대응 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도 한국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을 정도다.
이것에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한국이 받은 타격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는 점이 작용했다. 한반도의 치명적인 타격은 거의 북한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용우는 그의 명함을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제게 용무가 있으십니까?”
“예. 시간 괜찮으시면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백원태 사장과 같은 이유입니다.”
그 말에 용우가 흠칫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다니엘 윤은 헬기 조종사를 포함한 인원들이 모두 옥상 포트에서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말을 이었다.
“아버지와 형이 당신과 같은 때 실종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윤성태, 형은 리암 윤이라고 합니다.”
용우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잃어버린 혈육에 대해서 묻고 있는데도 그에게서는 응당 느껴져야 할 열기가 없었다.
분명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뿐이다. 용우는 그것이 능숙하게 만들어진 가면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묘한 놈이군.’
용우는 자신에 대한 악의를 알아차리고 통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가 살아서 어비스에서 나올 수 있게 해준 그 능력은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 능력은 명확하게 형상화된 악의를 감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언제든지 악의로 돌변할 수 있는 조짐조차도 포착해 낸다.
그런데 그 조짐이란 때로는 굉장히 이상한 것이다.
반감이나 적의가 아니라 호의가 그렇게 보일 때도 있었으니까.
‘순진한 어린아이가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낼 때, 그게 악의가 있어서 하는 짓은 아니지.’
다니엘 윤이 품은 감정은 적의나 악의가 아니다. 하지만 용우는 그에게서 언제든지 악의로 돌변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의 조짐을 포착해 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저 조짐일 뿐이지. 이 자는 내게 적의가 없다.’
용우는 그의 의문에 답해주기 위해 성심성의껏 기억을 뒤져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유감입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다니엘 윤은 침중한 표정으로 옥상 포트를 나섰다.
하지만 옥상 포트에서 나온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차갑게 웃었다.
“생존자의 기억에 남지 못한 걸 보면 아마 두각을 드러내진 못하고 죽은 모양이군. 하긴 딱히 위치만 내세울 줄 알았지 재주는 없는 인간들이었으니까.”
그는 혈육에 대한 정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죽음을 비웃고 있었다.
“0세대 각성자라… 일단은 지켜봐야겠지.”
그는 닫힌 옥상 포트의 문을 흘끔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