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20화 (20/225)

4

쿠과아아앙……!

주저앉은 악마숲의 등에서 폭발이 치솟았다.

드릴 랜스는 원래부터 대형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다. 그렇기에 내장된 폭탄의 위력은 대단히 강력했다.

하지만 악마숲의 등짝을 전부 날려 버릴 정도는 아니다.

그것은 용우가 폭발 위력을 증폭시키는 스펠을 세팅해두었기에 나온 위력이었다.

솨아아아아아!

악마숲에서 새카만 연기가 간헐천처럼 힘차게 솟구쳤다.

그것은 악마숲의 코어가 부서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즉, 방금 전의 공격으로 악마숲은 확실하게 죽은 것이다!

“…….”

그 광경을 본 팀 크로노스의 3부대 헌터들은 다들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게 말이 돼?”

저격수의 중얼거림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용우가 강하를 시작하고 나서 악마숲을 쓰러뜨리기까지는 47초.

단 한 명의 헌터가 불과 47초 만에 5등급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아무리 악마숲이 군단의 요새 역할을 하기에 일단 접근전에 들어갈 수만 있으면 의외로 취약한 면모를 보인다고는 해도…….

‘직접 봤는데도 믿을 수가 없군.’

어떻게 공략하는지 그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으면서도 자신이 선 채로 꿈을 꾼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팀 크로노스의 3부대 맞습니까?”

그들이 멍청하니 있을 때 옆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을 본 3부대원들이 얼어붙었다.

흙투성이가 된 헌터용 배틀 슈트를 입은 용우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침착함을 찾은 것은 역시 경험 많은 3부대장이었다.

“맞습니다.”

“혹시 부상자가 있습니까? 치료 스펠을 쓸 수 있습니다.”

“네? 설마 힐러십니까?”

부대장이 놀라서 물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스펠의 다양성만으로도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인데 거기에 치료 스펠까지 가졌단 말인가?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진짜 올라운더란 말인가?’

분석가들은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포인트를 최대한으로 받아서 그 포인트를 모조리 투자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올라운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성자 튜토리얼의 생환 확률이 60%에 달하는 지금도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용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 그럼 꼭 좀 응급처치를 부탁드립니다.”

용우는 초주검 상태가 된 3부대원을 치료하며 말했다.

“제가 지원할 테니 일단 후퇴합시다.”

“네? 아, 네.”

용우가 동료를 치료하는 광경을 보며 잠시 넋 놓고 있던 3부대장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용우가 치료 스펠을 써서만은 아니다.

‘응급처치가 아니라 치료를 했어. 복원 특성까지 가진 건가?’

딱히 의학적인 진단이나 조치 없이 그냥 치료 스펠을 펼쳤는데 부상자의 상태가 확연히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지원 부대가 올 때까지 15분은 남았는데 저도 악마숲을 죽이느라 마력을 많이 써서 여기서 버티고 있긴 힘들 것 같군요. 악마숲이 없으니 이제 무인 병기들의 서포트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혹시 근처에 수송 가능한 이동 수단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쪽이 타고 오신 수직 이착륙선을 부르지요. 그런데 혹시 성함이…….”

“음…….”

용우가 그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헬멧 안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백원태와 합의한 사항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당분간 용우는 팀 크로노스의 일원들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을 것이다.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헬멧 안쪽에 목소리 변조기까지 달았다.

그가 팀 크로노스와 협업할 때 스스로를 칭할 이름은…….

“코드네임 제로, 그냥 제로라고 불러주시죠.”

왠지 자기가 말하면서도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이미 백원태와 합의를 해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 * *

팀 크로노스의 사장, 백원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충돌을 느끼며 전투 보고 자료를 보고 있었다.

흥분된다.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이 무겁다.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에 크나큰 죄악감이 느껴질 정도로…….

‘미치겠군.’

구 DMZ에서 일어난 전혀 예상치 못한 연쇄 게이트 브레이크로 인해서 3부대에서 4명의 전사자가 나왔고 중상자들도 다수 발생했다.

경영자로서도,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그들의 비극에 숙연함을 느끼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들을 전멸 위기에서 구원한 용우의 전투 기록을 보고 있자니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다.

‘악마숲을 혼자서, 그것도 47초 만에 잡다니.’

그 교전 기록은 다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남아 있었다.

하필 상대가 악마숲이라서 드론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촬영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 영상이 담아내고 있는 교전 과정은, 백원태가 용우의 훈련을 보고 상상했던 것을 초월하고 있었다.

혹자는 용우가 해치운 것이 악마숲이라는 점을 들어 그의 능력을 폄하할지도 모른다.

악마숲은 5등급 몬스터 중에서는 강점과 약점 모두가 극단적으로 뚜렷한 존재니까.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은 마하4로 발사되는 씨앗 포탄이다.

이로 인해 악마숲은 악몽 같은 대공 방어 능력과 원거리 포격 능력을 겸비하기에 헌터들이 고등급 몬스터들을 공략할 때 필수적으로 거치는 화력 지원을 받기 어렵다.

5등급 몬스터 상대라면 일단 원거리와 중거리에서 벙커버스터를 비롯한 미사일과 포격으로 두들기고, 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무인 병기들의 공격으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게 기본이다.

아무리 허공장이 물리 충격에 대해 엄청난 방어력을 보인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한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일정 수준 이상의 타격을 계속 가하면 5등급 몬스터의 허공장도 조금씩 깎여 나가고, 그것이 헌터들이 접근전을 벌일 때 크나큰 유리함을 제공한다.

그러나 악마숲을 상대할 때는 그런 기본 전술을 쓸 수가 없다. 일단은 씨앗 포탄을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미끼 포격으로 씨앗 포탄을 소모시킨 뒤 접근해서 싸울 수밖에 없지.’

하지만 이번에는 악마숲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았기에 미끼 포격도 준비되지 않았다. 3부대가 궁지에 몰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악마숲이 접근전에 취약함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과연 서포트도 없이 혼자서 씨앗 포탄을 뚫고 들어가서 잡을 수 있는 헌터가 몇이나 될까?’

전 세계를 통틀어도 10명이 넘을지 의문이다.

‘훈련 중에 측정된 용우 씨의 마력은 페이즈 6 정도였지. 그런데 이런 일을 해내다니.’

각성자의 마력기관은 근육이나 심폐 능력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단련과 영양분 보충, 즉 마력 시술을 통해서 성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근육과 달리 성장 한계에 도달해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가능한데, 일반적으로 ‘한계 돌파’라 불리는 이 과정을 몇 번 거쳤느냐가 각성자의 마력 수준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처음 마력기관을 생성한 단계를 페이즈1로 부르므로, 페이즈 6이라고 하면 한계 돌파를 5번 성공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한국의 헌터들을 기준으로 볼 때 그 정도면 평균 수준에 불과했다. 뛰어난 헌터들은 대체로 페이즈7 이상이며,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국 최고 마력 보유자는 페이즈11에 도달했으니까.

‘그야말로 불가해한 전투 능력. 화력 중시형 장비를 썼고, 올라운더이기에 가능한 스펠 콤비네이션을 썼다고 하지만 수치상으로는 악마숲을 저렇게 쉽게 해치울 수가 없는데…….’

백원태는 그 비밀이 용우의 허공장에 있으리라 추측했다. 분명 헌터 업계의 상식에 속하지 않는 활용법이 있을 것이다.

‘헌터관리부에서의 일을 수습하지 않았더라면 너무나 큰 것을 잃을 뻔했다.’

서용우의 존재는 첫날부터 정부의, 그리고 헌터 업계의 고위급 인사들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그 정보가 더 확산되는 일은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기밀 정보로 취급되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언제까지 0세대 각성자의 존재를 비밀로 감춰둘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헌터 업계의 고위층들은 일단 최대한 그 비밀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것에 합의했다.

‘용우 씨가 연예인 타입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용우가 관심을 갈구하는 타입이었다면 곤란했을 것이다.

실제로 헌터들 중에도 그런 타입이 꽤 많아서 방송 출연도 하고, 광고를 찍는 등 연예계 활동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까.

하지만 백원태를 포함한 업계 고위층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용우는 그런 관심을 질색하는 타입이었다. 오죽하면 헌터로서의 데뷔전에서 코드네임 제로라는 장난스러운 가면을 쓰는 것까지 받아들였겠는가?

‘그럼…….’

용우의 전투 기록을 태블릿이 마르고 닳도록 보고 또 보던 백원태는 사장으로서 처리해야 하는, 3부대에 대한 결재안이 올라온 후에야 흥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Chapter7 징크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