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9화 (1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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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등급 몬스터, 악마숲.

포격은 물론이고 웬만한 미사일을 맞아도 흠집조차 안 나는 움직이는 성채.

그 외형은 마치 숲의 일부분을 지반째로 들어낸 것 같다.

등 쪽에는 높이가 10미터를 넘는 나무 20여 그루가 우거져 있었고 그로부터 뻗어나간, 수십 개의 나뭇가지들이 촉수화되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쪽으로는 암석이 지네처럼 수십 개의 다리 형태로 변형되어서 저 거체를 느릿느릿하게 이동시킨다.

‘은신은 안 통하지.’

악마숲은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존재를 타깃팅한다.

하지만 용우가 은신 간파 능력으로 은신을 꿰뚫어 보듯 악마숲 역시 같은 능력을 가졌다. 은폐물로 가리는 방법은 통해도 은신 스펠은 무용지물이었다.

‘이제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어디 쏴봐라.’

만약 악마숲이 아닌 다른 5등급 몬스터였다면 용우는 단신으로 맞설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숲이라면, 그리고 고공에서 강하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용우의 경험상 악마숲은 보유 마력과 허공장의 견고함, 그리고 졸개들을 거느려서 군단을 이룬다는 점 때문에 5등급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본체의 전투능력만 보자면 공략하기 어렵지 않았으니까.

물론 저 나뭇가지 촉수에서 발사되는 씨앗 포탄 때문에 접근도 못 하고 있는 헌터들 입장에서는 그런 평가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악마숲으로부터 뻗어 나온 수십 개의 나뭇가지 촉수가 전방위를 커버하면서 대공방어와 원거리 포격 양쪽을 수행한다.

그중 한 발이 마하4의 속도로 용우에게 날아들었다.

“아, 안 돼!”

지상에서 3부대원이 그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백원태가 강하게 보증하기에 어떻게든 믿어보려고 했는데 저런 말도 안 되는 자살 돌격이라니?

투아아아앙!

그러나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은 3부대원들이 자신의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뭐, 뭐야?”

마하4로 날아간 씨앗 포탄이 용우에게 적중했다.

그런데 용우는 산산조각 나는 대신 약간 궤도가 꺾인 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씨앗 포탄은 그와 충돌한 지점에서 비껴 날아갔다.

“설마 저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본 것은 3부대장뿐이었다.

그가 교전 중이던 저등급 몬스터를 해치우고 몸을 돌리자마자 그 광경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허공장? 체외 허공장 보유자라니 누구지?”

용우가 상시 자신의 몸을 뒤덮고 있는 허공장을 넓게 전개, 각도를 비스듬하게 바꿔서 씨앗 포탄을 비껴낸 것이다.

그리고 용우의 손에 마술처럼 소총 한 자루가 나타났다.

총신의 길이만 해도 1.5미터에 달하는, 개인화기라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라이플이 홀연히 출연한 것이다.

“뭐야? 어디서 갑자기 저런 게 나타난 거야? 은신으로 숨기고 있기라도 했나?”

그들이 보고 있는 게 마술 쇼가 아닌지 의심되는 장면이었다.

파아아아앙!

순간 한 줄기 붉은 섬광이 지상에 내리꽂혔다.

용우가 대용량 증폭탄두로 증폭된 원거리 공격 스펠을 발사한 것이다.

쿠과과과과……!

악마숲의 표면을 따라서 열파가 퍼져 나갔다.

저격수가 중얼거렸다.

“염동충격탄이 아니라 염동염마탄이잖아?”

그것은 염동 충격탄보다 더 상위의, 고열을 동반하는 장거리 공격 스펠이었다.

“저격수가 저런 짓을 한다고? 대체 누구지? 어떻게 저럴 수가…….”

저격수가 경악했다.

그때 일격을 가한 반동으로 궤도가 비틀어진 용우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이걸로도 안 뚫리나?’

시공의 보물고라는 스펠을 지닌 용우는 다른 헌터들과 달리 무기의 휴대성을 고려할 이유가 없었다. 아공간의 용량이 허용하는 한 그 어떤 무기든 넣어두고 쓸 수 있다.

그래서 가장 대용량의 증폭탄두를 쓸 수 있는 대몬스터 저격총 ‘제우스의 뇌격’을 선택한 것인데…….

‘제기랄. 이 거리에서,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각도로 염동염마탄을 5배나 증폭해서 때렸는데 뚫리질 않다니.’

용우는 스스로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짜증을 냈다.

물론 다른 헌터들이 그의 심리를 알았다면 어처구니 없어했을 것이다.

투아앙! 투아아아앙!

그가 태세를 바로잡고 제2격을 쏘는 것보다 악마숲이 더 빨랐다.

5개의 나뭇가지 촉수가 그를 겨누고 집중포격을 퍼부었다.

-블링크!

그러나 씨앗 포탄들이 발사되기 직전, 그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지고 포격은 허무하게 빗나갔다.

“뭐야? 어디 갔어?”

3부대원들이 당황할 때 블링크로 100미터 떨어진 지점에 나타난 용우가, 악마숲이 그를 인지하기 전에 제2격을 날렸다.

-염동염마탄(念動炎魔彈)!

5천도의 초고열을 발하는 에너지 탄환이 악마숲을 때렸다.

콰아아아아!

제2격을 날린 용우가 총을 아공간에 처넣고는 대신 다른 무기를 꺼냈다.

3부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돌격창? 저건 또 어디서 나타난 거야?”

용우가 꺼내든 것은 인간이 쓰기에는 너무나 거대해 보이는 중병(重兵)이었다.

중세시대의 기사들이 썼던 랜스를 훨씬 두껍고 무겁게 만들어놓은 각성자용 무기, 돌격창.

파지지직!

용우가 그것을 들고 마력을 주입하자 길이 5미터, 중량 49킬로그램에 달하는 꼬챙이 형태의 랜스가 푸른 스파크를 발하기 시작했다.

‘놈의 시야가 회복되기 전에 끝낸다.’

퍼져나가는 열파를 뚫고 용우가 낙하, 그대로 돌격창을 집어던졌다.

-초열투창(焦熱投槍)!

그것은 신체능력이나 투창기술을 초월하여 창을 ‘발사’해주는 스펠이었다.

투아아아앙!

굉음이 청각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돌격창이 목표지점을 강타한 후였다.

용우가 약해져서 출력이 부족함에도 낙하시의 가속에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으면서 중력의 힘이 더해지자 초음속에 도달한 것이다.

“큭……!”

1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점에 있던 3부대원들이 신음하며 주저앉았다.

돌격창이 초음속으로 내리꽂히는 순간 악마숲의 허공장이 가시화되면서 공간이 격하게 뒤흔들렸기 때문이다.

푸른 파문이 3킬로미터 저편까지 퍼져나가면서 공간이 진동하는 가운데,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뚜, 뚫었어!”

그 말에 다들 놀라서 악마숲을 바라보았다.

돌격창이 악마숲의 허공장을 뚫고 박혀 있었다.

“맙소사!”

3부대장이 입을 쩍 벌렸다.

미군의 벙커버스터가 직격해도 안 뚫리는 5등급 몬스터의 허공장을 단독으로 뚫다니?

돌격창을 초음속으로 내리꽂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거기에 스펠을 덧씌웠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단독으로 저런 일이 가능하다니, 대체 누구지?’

국내에 저런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최정상급의 헌터들뿐.

하지만 3부대장이 아는 한 국내 최정상급 헌터들 중에 저렇게 다방면의 고위 스펠을 터득한 자는 없었다.

‘아니, 그런 헌터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없어.’

그때였다.

우우우우우!

어느새 다시 대몬스터 저격총-제우스의 뇌격을 꺼내 든 용우가 커다란 섬광의 구체를 발사했다.

-거인의 주먹 망치!

직경 5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빛의 구체가 돌격창의 자루 끝부분, 찌른 후에 때려서 박아 넣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넓적한 부분을 때렸다.

투아아아앙!

다시금 공간이 진동했다.

겨우 허공장을 뚫었던 돌격창이 악마숲의 본체 깊숙이 박혔다.

키에에에엑!

등장 이후 처음으로 악마숲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흔들었다.

“좋아.”

용우는 에어 브레이크 스펠을 낙하산 대용으로 써서 감속, 그대로 활강하면서 악마숲의 등위에 착지했다.

‘오기 시작했군. 하지만 이미 늦었어.’

용우는 악마숲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이 달려오는 것을 감지하고는 미소 지었다.

악마숲은 말하자면 항공모함에 가깝다.

벙커버스터 여러 발을 맞아도 멀쩡하게 버텨내는 방어력, 그리고 끔찍할 정도로 우수한 대공 방어력과 원거리 포격 능력을 자랑한다.

또한 많은 몬스터를 거느리고 그들에게 에너지 보급을 해줄 능력까지 있다.

그러나 부하 몬스터들이 전부 외부로 전개해 있을 때 위에 올라타면 그에 대응할 수단이 빈약해지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씨앗 포탄을 쓸 수도 없으니까!

용우가 기습적으로 하늘에서 강하하면서 공격했기에 악마숲에게는 대공 포격을 하는 것 말고 다른 대응을 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뒤늦게 부하 몬스터들을 불러들였지만 용우는 이미 등에 올라탄 후다.

크으으으으!

물론 악마숲의 등이 완전히 무방비하지는 않았다.

외부로 나뭇가지 촉수를 뻗고 있는 20여 그루의 커다란 나무들의 둥치가 괴성과 함께 열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나무로 이루어진 2미터 크기의 괴인들이 용우에게 돌격해 왔다.

“잘 왔다.”

용우가 아공간에서 소총을 꺼내서 그들을 겨누었다.

-염동염마탄(念動炎魔彈)!

고열의 에너지탄이 선두에서 달려오던 괴인을 관통하고 그 뒤쪽에게 박혀서 폭발했다.

키에에에엑!

열파가 숲을 휘감으면서 불길이 번져 나가자 악마숲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21세기의 인류 문명은 참 대단하지. 안 그래?”

어비스에서였다면 이런 식으로 싸울 수는 없었으리라. 용우의 현재 상태로는 상당히 아슬아슬한 사투를 벌여야 했을 터.

하지만 팀 크로노스를 통해서 구입한 첨단 장비들은 그에게 너무나 수월한 전투를 가능케 하고 있었다.

콰콰콰쾅!

용우는 연달아 염동염마탄을 갈겨서 나무 괴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본체인 20여 그루의 나무들까지도 파괴했다.

밑동이 부러진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져서 불꽃에 잡아먹힌다.

쿠우웅!

나무들을 잃은 악마숲이 주저앉았다.

콰직……!

그리고 다른 몬스터들이 등으로 올라오기 전에, 용우는 새로운 장비 6개를 꺼내서 땅에 꽂아 넣었다.

그것은 언뜻 보면 돌격창을 2미터 길이로까지 소형화시킨 것처럼 보이는 장비였다.

다만 그것에는 별도의 동력원이 있었으며, 둥근 꼬챙이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위이이이잉!

홈이 나선형으로 파인 드릴 형태를 하고 있었다.

또한 자루 끝에는 소형 제트 엔진이 달려 있어서 분사로 땅을 뚫기 위한 추진력을 얻는다. 그리고 힘차게 회전하는 드릴이 땅을, 정확히는 땅처럼 보이는 악마숲의 등껍질을 파고 들어간다.

“세상 정말 멋지군. 21세기는 최고야.”

용우는 6자루의 드릴 랜스들이 자루 끝까지 박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저앉은 악마숲의 등 위로 몬스터들이 기어 올라와서 포효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어, 그래. 안녕.”

용우는 손을 한번 흔들어주었다.

-블링크!

그리고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져 버렸다.

“…….”

닭 쫓던 개 꼴이 된 몬스터들이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고…….

삑.

갑자기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삑, 삑, 삐비비비빅…….

연달아 울려 퍼지는 기계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이윽고 하나의 음이 되어 이어졌다.

꽈아아아아앙!

그리고 드릴 랜스에 설치된 폭탄이 일제히 폭발해서 그 자리를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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