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7화 (1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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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크로노스의 본사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해 있었다.

용우가 실종된 2012년이었다면 이만한 위세를 지닌 회사의 본사 빌딩은 강남에 있었으리라.

그러나 강남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한차례 대파괴를 겪었고, 그 후로도 서울에서 가장 자주 게이트가 출현하는 지역이 되면서 땅값이 폭락해 버렸다.

‘내가 알던 그 동네가 아니군.’

실종되기 전, 용우는 홍대나 합정 쪽으로는 자주 놀러 나왔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나와 보니 그가 기억하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사실이 좀 씁쓸하게 느껴졌다.

크로노스의 빌딩은 이 땅값 비싼 동네에 엄청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외부에는 성벽처럼 높다란 벽을 그럴싸한 디자인으로 치장해서 둘러쳐 놓았고 서로 높이가 다른 여러 개의 건물을 하나로 묶어놓았으며, 본사 건물과 벽 사이로도 4개의 작은 빌딩들이 동서남북을 에워싸듯이 배치되어 있었다.

“저 벽은 뭡니까? 그냥 폼인가요?”

용우가 안내역으로 나온 직원에게 묻자 그가 웃었다.

“게이트 브레이크에 휘말릴 경우를 대비한 방어벽입니다. 사이사이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건 평시라 그렇고, 유사시에는 다 메꿔지는 것은 물론이고 바깥쪽에 외벽이 올라와서 한 겹 더 둘러지게 되어 있죠.”

“호오.”

“헌터 팀들의 본부는 번듯한 기업 건물처럼 보여도 본질적으로는 군사시설이니까요. 물론 유사시에는 시민들의 피난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요.”

“그렇군요. 훌륭하군.”

15년간 달라진 세상의 상식을 일깨워 주는 건축물에 용우는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곧 엘리베이터가 사장실이 있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백원태가 미소 지으며 용우를 반겼다.

“환영합니다, 용우 씨. 어떤가요? 우리 본사를 본 감상은?”

“굉장하군요. 미래에 왔다는 실감이 듭니다.”

“15년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죠. 뭔가 마시겠습니까?”

“커피로 부탁합니다.”

곧 비서가 가져다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백원태가 말했다.

“부탁한 것들은 전부 준비해 놨습니다. 장비는 장비 관리부에 가서 카탈로그를 보면서 선택하면 될 겁니다. 그런데 정말 공방을 소개해 줄 필요 없겠습니까?”

백원태는 용우에게 우수한 장비를 제작하는 공방을 소개해 주려고 했다.

크로노스 그룹은 헌터 장비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기에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규격품을 팀 크로노스에서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장비 공급처를 그것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팀 크로노스 자체적으로도 장비 개발부가 존재하고 있으며, 외부에 실력이 뛰어난 장인들이 모인 공방과도 계약을 맺고 장비를 납품받고 있었다.

그런 공방과 거래를 할 경우에는 규격품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화된 장비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베테랑 헌터들 중에는 거의 변태 같은 사양의 전용 장비를 쓰는 이들이 많았다.

“나중에는 부탁드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규격품이면 충분합니다. 팀 크로노스가 채택할 정도면 어쨌든 다들 품질은 보장된 것들 아닙니까?”

“그렇지요. 내가 아내에게 타박을 받으면서도 장비품 퀄리티 문제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백원태가 웃었다.

팀 크로노스에서 쓰는 모든 장비를 크로노스 그룹의 생산품으로 하자는 이야기는 꽤 나왔지만 백원태는 그 점에 대해서는 바늘구멍 하나 찾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곧 백원태가 용우와 함께 장비 관리부로 향했다.

“사장님이 직접 안내해 주시는 겁니까?”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서 일정을 비웠습니다. 부담되십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보다 낫죠. 제가 낯을 좀 가리거든요.”

용우는 백원태가 마음에 들었다.

2세대 각성자인 그의 나이는 45세.

용우의 사회적 연령이 38세라고 해도 확실히 연상이다. 게다가 대기업 사장이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한국 사회 특유의, 나이가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연하의 상대를 낮춰 대하는 태도가 나오는 쪽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백원태는 용우를 대등한 인격체로 예의를 갖춰 대하고 있었고, 그 점이 용우에게 큰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여깁니다. 부서마다 건물이 다른 경우가 많아서 꼭 5층까지는 내려와서 이동해야 하니 좀 번거롭죠. 하지만 건물마다 기능을 특화해서 짓다 보니 어쩔 수가 없더군요.”

백원태가 웃으며 설명했다.

장비 관리부는 사장실이 있는 건물과는 다른 건물에 있었다.

용우는 대형 물류 창고처럼 보이는 장비 관리부를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대단한 규모군요. 팀 크로노스에서 이 장비들을 다 씁니까?”

“물론 각성자보다는 비각성자들의 장비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기본 장비들은 공용이니까요.”

헌터라는 직업군은 각성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각성자는 전 세계에 2년마다 2만 명 미만으로밖에 공급되지 않는 희소한 인적 자원이다.

이들 중 헌터가 되어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의 비율은 80% 정도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전사자와 은퇴자가 발생해 왔다.

당연히 각성자 헌터만으로 전 세계를 커버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진 헌터 팀이라면 각성자보다 일반인 헌터의 수가 훨씬 많다.

그러나 누가 봐도 기업이 사병을 거느린 것으로 보일 수 있기에 이에 대해서는 특별법에 따른 복잡한 행정적 명분이 주어져 있기도 했다.

“대응 시스템이 갖춰지고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장비들도 개발된 지금, 2등급 몬스터 무리까지는 분대급 화력으로도 안전하게 잡을 수 있습니다.”

일반인 헌터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1, 2등급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과 각성자 헌터를 전술적으로 서포트하는 것이었다.

“용우 씨가 실종된 15년 동안 전투 병기 중에 가장 발전한 것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무인 병기?”

용우는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목격한 전투의 기억을 떠올렸다.

전장에서 활약하는 무인 병기들은 자신이 머나먼 미래로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뛰어났다.

“그렇습니다. 무인 병기야말로 대(對)몬스터 전투의 핵심이죠.”

전장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전술적 포인트에 인간이 도달하기 전에 물자를 공급한다.

일반인 헌터들과 함께 저등급 몬스터들을 사냥하거나, 몬스터를 원하는 지점으로 몰아가는 등의 서포터 역할도 톡톡히 한다.

“그래서 국방부도, 헌터 팀들도 무인 병기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무인 병기 조종사들도 높은 대우를 받고 있고.”

무인 병기라고 해서 명령 한마디만 내리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조종해서 뚝딱 결과를 내주는 그런 물건이 아니다.

상황이 명쾌할 때라면 단순한 행동은 자동조종으로 시킬 수 있지만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하려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간 조종사의 존재가 필수였다.

“헌터로 일하기 위해서는 무인 병기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무인 병기와 함께 싸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헌터가 될 수 없죠.”

백원태가 빙긋 웃었다.

곧 용우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장비 관리부의 인원에게 장비들을 추천받았다.

‘정말… 중세 판타지 시대에서 생존 투쟁하다가 갑자기 SF 시대로 내던져진 기분이군.’

용우는 어비스에서야 냉병기로 싸웠지만 그 전에는 군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하지만 장비 관리부에서 추천해 주는 장비들을 보니 정말 이런 게 존재했나 싶은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하긴 난 스마트폰 적응도 어려워하고 있으니.’

지구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는 뭘 봐도 놀람의 연속이었다.

용우는 자기가 없는 동안 세상이 저 멀리 나아가 버리고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대실종이 일어난 2012년은 한창 스마트폰이 활발하게 보급되던 시기였지만 용우는 그때까지도 폴더폰을 썼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워낙 낯설어서 여동생에게 옛날 휴대폰 같은 건 없냐고 물어봤다가 노인네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헌터로 활동하려면 첨단 기술에 익숙해지는 것은 필수 사항인 모양이었다.

‘안 되지. 벌써부터 나이 먹고 머리가 굳은 기분이라니.’

서류상으로는 38세라지만 용우 자신이 느끼기에는 26세다.

그런데 벌써부터 학습 능력이 떨어져서 변해 버린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최대한 빠르게 이 시대의 전투에 적응해 주지.’

용우는 자신에게는 너무나 낯설지만 동시에 남자의 로망을 불태우는, 반짝반짝한 현대 병기들을 보며 의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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