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6화 (1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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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태는 용우에게 자신과 일하는 메리트를 설명했다.

“나와 손잡는다면 앞으로 헌터로 활동하기가 아주 좋을 겁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습니다만,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도 업계 영향력이 나만큼 큰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그 말에는 조금의 허세도 없었다.

팀 크로노스는 팀 블레이드와 한국 헌터 업계 1, 2위를 다투는 최강의 헌터 기업이었다.

헌터 기업으로서도 덩치가 크지만, 그저 방위 산업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헌터 활동으로 얻은 이익으로 다방면에 투자를 해서 대기업이 되었다.

“아내가 유능한 기업가라서 덕을 많이 봤지요.”

이 말도 농담이 아니었다. 백원태의 아내가 팀 크로노스를 모기업으로 삼아 확장한 크로노스 그룹의 총수였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바로 영입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생각이 있으십니까? 팀 크로노스에 오신다면 3년 계약으로 계약금 30억, 연봉 100억을 드릴 수 있습니다만. 물론 각종 옵션도 섭섭하지 않게 맞춰 드리죠.”

“…….”

농담 같은 액수였다.

0세대 각성자이며 배틀 힐러라는 특이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아무런 실적도 없는 용우에게 세계 톱클래스 스포츠 스타, 그것도 축구나 야구 같은 메이저 스포츠에서나 가능한 연봉을 제안한단 말인가?

‘와, 센데?’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용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업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지라, 일단은 프리로 일해보고 싶습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프리랜서로 뛰는 헌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드물었다.

심지어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까지 봐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헌터관리부와 국방부에서 게이트 발생 시에 콜(Call)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개인 자격으로는 게이트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게이트 브레이크 시에 설정되는 배틀 필드에 진입하는 것 역시 불법이죠.”

현재 프리랜서로 뛰는 헌터들은 기업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충분한 실적과 인맥을 다진 이들이었다.

“개인 사업자 등록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헌터관리부와 국방부의 콜을 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합니다. 업계 신입이 헌터로 활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통상 절차에서 벗어난 긴급 재난 상황만 기다렸다가 개입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이런 예외 상황조차도 과연 자신이 있는 지역에서 이런 사태가 터지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데 대구에서 사태가 터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까다롭군요. 하지만 이해는 갑니다.”

민간이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고는 하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국토방위다.

그런 문제에 개나 소나 개인 자격으로 무장을 갖추고 설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장일 것이다. 이미 문명국가라고 할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용우 씨가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하시고도 거절하신다면 프리랜서로 뛰시는 데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크로노스 그룹에는 팀 크로노스 말고도 여러 헌터 팀들이 있지요. 그 헌터 팀들이 필요할 때마다 용우 씨에게 오퍼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제게 호의를 보이십니까?”

용우는 의아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가 조카의 유품을 전해주고, 죽음을 전해준 것에 감사한다는 사실은 알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 제안하는 호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고마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건 물론 개인적으로는 백번 감사해도 모자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회사를 운영하는 몸이고 지금 용우 씨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사업 문제니까요.”

“제게 그 정도로 사업적인 가치가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객관적으로 볼 때, 배틀 힐러라는 것만으로도 연봉 40억 이상의 가치는 있습니다. 그 자질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말이죠. 그리고 용우 씨는 단순히 자질을 가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고.”

“그걸로 연봉 60억이나 70억쯤은 된다고 치고, 아무런 실적도 없는 상황에서 100억이 되는 근거는 뭡니까?”

“당신이 올라운더라는 점입니다. 지금 헌터 업계에 올라운더는 존재하지 않아요. 유니크하지요.”

1세대와 2세대 중에는 있었다. 올라운더라 불리는 존재가.

하지만 그들은 스펠 트리를 잘못 타서 ‘어설프게 이것저것을 할 수 있는’ 각성자들일 뿐, 제대로 된 전력이 못 되었다.

그에 비해 용우는 올라운더이면서도 각 분야에 특화된 베테랑 이상의 능력을 가졌다.

국내 유일의 배틀 힐러인 지윤호와 동급의,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주었으며 무투파 헌터들을 어린애 손목 비틀듯 쓰러뜨렸다.

“세대가 거듭날수록 각성자의 능력이 향상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세상에는 손도 대지 못한 위협들이 존재합니다.”

이미 산재한 위험들만 봐도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인류 앞에 들이대어지는 위험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난 한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인 전력으로 재앙을 공략할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서는 용우 씨,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제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걸 도와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계약으로 붙잡을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붙잡아야겠죠. 내가 이렇게 도와드리는데 우리 회사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주시는 정도의 배려는 해주실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백원태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싸늘해졌다.

“사심도 꽤 많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용우 씨가 말한 목표에 공감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당신이 진실을 밝혀낸다면 그때는 저도 그것을 공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동맹으로서 말입니다.”

솔직한 백원태의 말에 용우가 씩 웃었다.

“좋습니다. 호의를 받아들이죠.”

“알겠습니다. 내일 우리 회사에 와주십시오. 장비 구매에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장비라…….”

용우의 눈이 흥미로 빛났다.

각성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살려주는 헌터들의 전투장비에는 큰 관심이 있었다.

“장비를 개인적으로 구매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헌터들의 장비는 스포츠 용품과는 달라서 일반인이 쇼핑몰에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인맥이 없으면 애당초 장비 구매부터가 어렵습니다.”

그 말에 용우는 자신의 현실 인식이 너무 물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가 각성자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확신했으니 혼자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21세기 현대사회는 무법 지대였던 어비스와 달리 많은 제약들이 따라붙었다.

‘하긴 그러니까 문명사회인 거지만.’

법이고 뭐고 힘 있는 놈들이 아무 제약 없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은 문명사회가 아니라 야만이라고 부른다.

“프리랜서로 활동하시겠다고 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구매처를 연결해 드리는 것까지만 하겠습니다. 어때요? 벌써부터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용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관련 지식이 없어서 헌터용 장비를 갖추는 데 돈이 얼마나 깨질지 전혀 짐작이 안 된다. 백원태에게 받은 15억 원을 돌려줬으면 큰일 날 뻔했다.

“대신 한 가지 들려줬으면 좋겠군요. 왜 그렇게까지 혼자를 고집하는 겁니까? 당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일하기는 어려운 업계임을 알았을 텐데요.”

그 질문에 용우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차분하게 대답했다.

“예전에 저는 집단에 소속되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구에서의 경험담은 아니다. 어비스에서의 이야기다.

“어비스는 혼자서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 험난한 세상이었으니까요. 울타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저도 그중 한 사람이었죠.”

워낙 흉흉한 세상이었기에 여럿이 뭉쳐서 집단을 이루는 것은 중요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생존하기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집단은 성향을 갖기 마련이다. 개개인의 뜻과는 상관없는, 집단 그 자체를 대변하는 이념을 가질 수밖에 없고 용우가 속한 집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는 딱히 집단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상관없었다. 집단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순간, 집단의 이념에 동의하든 말든 집단의 일원으로 취급받는다.

외부에서 보는 것은 용우의 의사가 아니라 집단이 내세우는 총의(總意)였으니까.

“어디나 그렇겠죠. 모두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곳이 어비스였다는 것이다.

집단의 이념은 수많은 피와 죽음을 불러왔다.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어디 소속된다는 걸 가볍게 볼 수가 없군요.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랬군요.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백원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용우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혼자를 고집하는 것도 납득할 만했다.

“혹시 지금까지 말한 것 외에 개인적으로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말씀하신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하고 싶은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하나 더 필요한 게 생각나는군요.”

“뭡니까?”

“그건…….”

용우의 요구 사항을 들은 백원태는 흔쾌하게 도움을 약속했다.

Chapter6 게이트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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