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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14화 (1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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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전, 용우와 우희는 초조하게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우희도 직장에 연락해서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운명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 결정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할 만큼 우희는 신경이 굵지 못했다.

“우희야.”

자기 혼자만이라면 모를까, 우희의 운명까지 걸렸다 보니 용우도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용우는 긴장을 풀 의도로 우희에게 반쯤 농담 섞인 말을 건넸다.

“영어 잘해?”

“오빠보다 잘할걸?”

“설마. 난 이래봬도 외국인들하고 손짓 발짓 더해가면서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해보겠다고 필사적으로 배운 실전 영어 능력자라고.”

“요즘 세상에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데? 내가 취직해 보겠다고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한 줄 알아? 어디 한번 둘이서 영어로만 이야기해 볼래?”

“다행이군.”

“갑자기 뭔 소리야?”

“영어 잘하면 미국 가도 괜찮을 거 아냐.”

“…….”

우희가 째려보자 용우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시답잖은 않은 말장난을 하고 있으니 조금은 초조함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딩동.

인터폰에서 누군가의 방문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세요?”

“실례합니다. 여기가 서용우 씨 댁 맞습니까?”

그리고 방문자는 김은혜 팀장이 아니었다.

* * *

“이른 시간에 실례합니다.”

양해를 구하며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쓴, 점잖은 얼굴의 중년 사내와 수행원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여성이었다.

‘끝까지 한 마디도 안 했던 그 사람이군.’

용우는 그가 어제 시험장에 있던 사람 중 하나임을 알아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태도로 보건대 높은 직위를 가졌음을 알 수 있었던 각성자.

“팀 크로노스의 사장 백원태라고 합니다.”

과연 그는 오성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물이었다.

2세대 각성자로 2년 전에 큰 부상을 입고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그 전까지는 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렸던 헌터다.

“어제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서용우 씨.”

“아무것도 안 하신 걸로 기억합니다만.”

“당신에 대한 정보를 듣고 그 자리에 간 것 자체가 불쾌하지 않았습니까?”

“불쾌했지요.”

“그럼 사과할 이유가 있는 셈이군요.”

“설마 사과를 하려고 찾아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래야 했던 이유를 변명하고자 합니다. 아, 내 선글라스는 폼으로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눈이 상해서 빛을 받으면 통증이 와서 쓰고 있는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신경 안 씁니다.”

“고맙습니다.”

백원태가 말을 이었다.

“내가 그곳에 갔던 이유는 서용우 씨, 당신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헌터관리부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 어비스라는 세계에서의 경험에 대해서 듣는 것에 대가를 요구하더군요.”

띠리링.

그 말과 동시에 용우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그 화면을 본 우희가 기겁해서 외쳤다.

“5억 원?”

모바일 뱅킹 앱이 5억 원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를 띄웠던 것이다.

5억 원을 송금한 것은 수행원 여자였다. 그녀가 말했다.

“계약서도 준비해 왔습니다. 일단 말씀 나누신 후에 검토해 보시지요.”

“이걸로 일단 1시간을 사고자 합니다.”

“쿨하시군요.”

백원태의 태도에는 용우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어떻게 자신의 계좌를 알았는지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김은혜에게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맡길 때 알려준 정보였으니까.

“어비스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예. 대답할 수 있는 것에 한해서, 성실하게 대답해 드리죠.”

그러나 이어지는 백원태의 질문은 용우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혹시 신유정이라는 아이를 알고 있습니까? 당시에 17살이었지. 방과 후 학원 수업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실종되었으니 교복을 입고 있었을 겁니다.”

“혹시…….”

그 말에 용우는 그가 자신을 찾아온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랑 같이 실종된 사람입니까?”

“내 조카였습니다.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요.”

“…….”

“나도, 누님도 그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나타났지요.”

2012년에 실종된 24만 명, 그중에서 15년 만에 살아서 귀환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용우는 자신을 향한 그의 시선에 가슴이 아파왔다. 어제 시험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품었던 그에 대한 선입견과 불쾌한 감정은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이 질문에는 성실하게 대답해 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용우는 강한 의무감을 느꼈다.

“신유정, 신유정…….”

용우는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24만 명.

세계 인구에 비하면 적지만 한 인간이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숫자다.

그중에서 용우가 기억하는 사람은 한줌에 불과하다.

그래도 인상 깊은 인물들, 그중에서도 한국인이라면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비스에 간다고 해서 그곳에 모인 인간들에게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힘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기에, 용우는 대부분 어설픈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럴 필요 없이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상대들은 좋든 나쁘든 기억에 남아 있었다.

“혹시 누님분은 남편분과 이혼하셨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백원태는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가 찾는 사람은 24만 명이나 되는 실종자 중에서 용우가 얼굴과 이름 뿐만 아니라 사연까지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맞아요. 어떻게 아는 겁니까?”

“오른손에 화상 흉터가 있고요.”

“그, 그것도 맞아요.”

“그렇다면… 맡아둔 것이 있습니다.”

용우는 머뭇거리면서 말하더니 허공의 한 지점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그의 손이 허공으로 쑥 들어가는 게 아닌가?

다들 깜짝 놀라면서 그 광경을 바라볼 때, 용우가 그 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어서 백원태에게 내밀었다.

“이건…….”

그것을 받아 든 백원태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회중시계였다.

구입할 당시에는 분명 고급스러운 물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원태의 손에 들린 그 회중시계는 망가지고 더러워져서 더 이상 작동하지도 않았다.

‘아, 삼촌! 진짜 센스 꽝이네. 여고생이 회중시계 받고 좋아할 거 같아? 어휴, 우리 삼촌 이렇게 센스 없어서 어째?’

스위스에 여행 다녀오면서 지갑을 털어서 사온 회중시계를 선물해 줬더니만 그렇게 투덜거리던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그런데 그 회중시계를 계속 갖고 있었을 줄이야.

“유정아…….”

백원태는 신유정이 살아 있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회중시계를 끌어안고 조용히 흐느낄 뿐이었다.

* * *

한참을 흐느끼다가 또 오랫동안 침묵하던 백원태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질문이었다.

“…정말 당신 혼자뿐입니까?”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용우는 그가 묻는 의미를 알아들었다.

“예.”

“하, 하하하하하…….”

백원태가 공허하게 웃었다.

24만 명이다.

자그마치 24만 명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그들 중 살아서 돌아온 것은 단 한 명뿐이라니, 이렇게 잔혹할 수가 있나?

확실히 서용우의 존재는 폭탄이다.

정부가 그를 신경 쓰는 이유는 0세대 각성자의 비밀 때문만이 아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어느 날 갑자기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린 대실종의 피해자들을 자극할 폭탄인 것이다.

“당신의 진술서를 봤습니다. 많은 정보가 있진 않았지만 어비스라는 곳은, 각성자 튜토리얼을 만든 자들이 그 전에 만든 프로토타입 정도라고 추측했는데, 우리의 추측이 맞습니까?”

“아닙니다.”

용우는 딱 잘라서 그 추측을 부정했다.

백원태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아니라고요?”

“전혀 아닙니다. 혹시 당신들은 어비스를 바탕으로 각성자 튜토리얼이 만들어졌다, 즉 어비스 역시 각성자를 만들어서 세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커리큘럼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용우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백원태는 그 미소에 짙은 증오와 분노가 섞여 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럼 어비스란 대체 무엇입니까? 무슨 목적으로 24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납치한 겁니까?”

“솔직히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요?”

“예.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비스는 교육 과정 따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가르침을 받지도 못했고, 목적을 설명해 주는 존재도 없었습니다. 그저 싸울 것을 강요받았을 뿐이죠. 그건 미래를 대비해서 인재를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장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병력이 없으니까 급하게 기초 교육만 시키고 투입해서 어떻게든 전선을 굴리는… 그런 분위기에 가까웠죠.”

백원태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각성자 튜토리얼이 ‘교육’이라면 어비스는 ‘실전’이었단 말입니까?”

“예.”

“무엇과의 실전이었습니까?”

“지금 이 세상이 싸우고 있는 것들.”

즉, 몬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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