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3화 (1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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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은 존재조차 모를 지저의 어둠 속.

지하 300미터의 비밀 공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상하군.”

붉은 정장을 입은 남자는 얼굴에 쓴 가면 안쪽에서 중얼거렸다.

새카만 표면에 붉은빛을 발하는 기이한 눈 두 개가 달려 있는 가면이었다.

“어비스의 봉인이 파괴된 지 12년.”

그것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지난 세월과 일치했다.

“7번째의 문이 열렸고…….”

그것은 각성자 튜토리얼이 열린 횟수와 일치했다.

“인류에게는 앞으로 5번의 기회가 더 남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그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기둥이 있었다.

소재를 알 수 없는, 매끈하게 만들어진 검은 기둥의 표면에는 스크래치처럼 수많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한복판에는 빛나는 탑의 모습이 있었다.

그 탑에는 각 층마다 하나씩, 총 12개의 문이 달려 있었는데, 그중 1층부터 6층까지의 문은 활짝 열린 채로 빛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7층의 문은 반쯤 열린 채로 빛이 옅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비스에서 살아 돌아온 자가 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의 시선이 빛의 탑 아래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빛의 탑보다 10배나 거대하게 그려진, 빛나는 선이 아니라 어둡고 핏빛을 띤 선으로 음각된 영역이 있었다.

“단순히 구세록(救世錄)의 기록이 어긋난 거겠지.”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정장의 남자와 똑같은 가면을 쓴, 금발 단발머리에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럴 리가 없다. 만약 구세록의 내용이 틀렸다면 지금까지 인류가 존속할 수도 없었을 테니.”

“왜 없어? 당장 우리는 마지막 문이 열린 후의 미래조차 모르는데?”

“불경한 소리.”

“불경? 웃기고 있네. 구세록은 전지전능한 신의 계시가 아니야. 그저 다른 세상에서 날아온, 멸망을 이겨낼 방법이 적힌 가이드북일 뿐. 이번에 그게 증명된 거고.”

“…….”

남자가 여자를 노려보았다. 가면 너머로도 그의 눈이 살의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자는 웃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말고 얌전히 지켜봐.”

“내게 명령하는 건가?”

“경고하는 거야. 난 구세록에 기록되지 않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지켜보고 싶거든. 만약 일을 저지를 거면 서로 피 터질 각오를 하고 해.”

싸늘하게 말한 여자의 모습이 어둠 속에 녹아들듯 사라져 갔다.

* * *

시험장을 뒤집어놓고 집으로 돌아온 용우는, 그때까지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약한 모습으로 여동생의 눈치를 보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오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반정부주의자야?”

시험장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들은 서우희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아냐.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그런데 왜 정부 기관 상대로 그런 짓을 한 건데?”

“…그놈들이 양아치 같은 수작을 부리는 게 빤히 보이는데 당해주기 싫어서 그랬지.”

“아니, 오빠 말대로라면 그냥 좀 참았으면 깔끔하게 해결되는 문제였지 않아?”

“음, 그랬을지도 몰라.”

“근데 왜 그랬어?”

따져 묻는 우희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비록 각성자가 되어서 그 전까지와는 다른, 대접받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오빠가 국가기관을 뒤집어놓고 왔다고 하는데 걱정이 안 된다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용우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하며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놈들이 내게 목줄을 채우려고 했으니까.”

“목줄 좀 차면 어때서…….”

울컥 해서 말하던 우희는 흠칫하며 말을 삼켰다.

“…미안해. 실언이었어.”

우희는 용우가 무슨 일을 겪고 왔는지 들었다. 그리고 헌터관리부에서 용우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도.

그렇기에 그런 그들의 수작에 넘어가서 목줄을 차는 것이 용우에게 얼마나 흉흉한 의미로 다가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괜찮아.”

쓴웃음을 짓는 용우를 보며 우희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용우는 아니다.

그에게는 대단히 특수한 사정이 있고, 그로 인해서 그의 입장 또한 보통 사람과 같은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 권력을 등에 업은 자들이 용우에게 탐욕과 악의를 갖고 있다면?

그래서 그에게 목줄을 채우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요구해 올 가능성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옛날 일을 다룬 영화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지.’

대한민국의 국가 권력이, 나라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인권을 얼마나 쉽게 짓밟을 수 있는가를 다룬 영화들이 있었다.

‘이미 그런 일도 있었고.’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12년간의 인류 역사는 몬스터와 맞서는 인류의 숭고한 투쟁만을 기록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의 세상은 뜻이 다른 인간끼리 서로 피를 흘려가며 만들어낸 것이다.

‘잘 생각해 보자. 남의 일이 아니잖아.’

만약 용우가 혈육이 아닌 타인이었다면, 그의 입장보다는 자신에게 올 피해가 훨씬 크게 다가왔으리라. 그 사실에 분노해서 소리나 질러댔겠지.

‘우리 오빠의 일이야.’

하지만 용우는 그녀의 혈육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우희는 그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우희는 자신의 입장에서 용우를 다그치기보다는 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부모를 잃고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살아 돌아오기까지 온갖 힘든 경험을 해왔다. 대부분의 일반인들과는 동떨어진 그 경험들은 그녀에게 용우의 입장을 상상해 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던 우희가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할지 생각은 해뒀어? 만약 그쪽에서 오빠를 범죄자로 몰면?”

“그럼 계획한 대로 미국 쪽에 연락을 넣고 이 나라를 떠날 방법을 찾을 거야. 우희야,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도 같이 가야겠지. 오빠가 그렇게 떠나면 나 혼자 그 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

용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뭐가?”

“내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용우는 자신의 행동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픈 과거를 넘어서 홀로 잘 살아가고 있던 여동생의 인생을 망쳐놓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자의와는 상관없이 어비스로 납치당해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용우는 자신을 향한 악의에 민감했다.

악의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 악의의 정체를 통찰하고 쳐부술 방법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악의가 자신을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면 그때는 도저히 솟구치는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것은 일종의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에 의해서 인생을 강탈당하고, 소통조차 불가능한 괴물들과 싸우고… 그리고 종국에는 자신을 겨눈 인간의 악의를 살의로 쳐부숴야 했던 그의 정신은 망가져 있었다.

“오빠.”

다음 순간, 용우는 흠칫했다.

자신에게 다가온 우희가 양손으로 얼굴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나를 봐.”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동생의 얼굴이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보아온 얼굴이다. 하지만 여전히 낯설어 보인다.

그가 알던 여동생은, 자신에게 용돈을 타가며 깔깔 웃던 꼬꼬마 중학생 서우희는 이제 없다.

눈앞에 있는 것은 그가 모르는 세월을 이겨낸 사람의 얼굴이다.

어느새 오빠보다 나이 들고 어른이 되어버린 동생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그런 소리는 하면 안 되는 거야.”

“…….”

“오빠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어떡해야 해? 화를 낼 수밖에 없잖아?”

용우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숨을 쉬며 그에게서 떨어진 우희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있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다음에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정말로 혼자였어.”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한참 동안이나 사회 분위기는 우울한 잿빛을 띠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적 여건 때문에 4년제 대학조차 나오지 못한 그녀가,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악착같이 살아왔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이었다.

각성자 튜토리얼에 소환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그녀의 삶은 더 암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에 감사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녀는 평생 동안 악몽으로 따라다닐 정신적 상처를 대가로 지금의 삶을 얻은 것이니까.

“좋은 일 따위 없었어.”

분명 빈곤에서 벗어났고, 의사를 도와 사람을 살린다는 일에서 의미와 자부심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늘 공허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악몽은 일상의 일부였고, 악몽에서 깨어나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감각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마치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진짜 서우희는 죽고, 껍데기만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에 열중해서 얻는 충실감도 그때뿐.

직장 동료들의 소개로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해봐도 도무지 상대에게 몰입할 수가 없었다.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금방 끝나 버리는 일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하지만 오빠가 돌아온 후로는 아주 오랜만에… 진짜 내가 된 것 같았어.”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용우를 보면서 우희는 불행한 기억의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보석처럼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떠올려 냈다.

의지할 사람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면서 행복하게 웃었던 그 시절을.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자 우희는 용우를 고생해서 번 아르바이트 급료를 쪼개서 꼬꼬마 중학생에게 용돈을 주던, 상냥한 오빠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더 이상 의지할 곳 없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용우는 한참 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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