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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12화 (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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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힐러임을 입증하는 시험들은 너무나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원거리에서 치료하기, 여러 대상을 두고 랜덤하게 선택되는 대상을 치료하기, 움직이면서 치료하기, 트레이닝 기기 속에서 공격을 피하면서 치료하기까지…….

용우는 모든 시험에서 지윤호가 보인 시범을 그대로 따라 해서 통과해 버렸다.

이쯤 되자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지윤호도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각성자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배틀 힐러는 현역 중에서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12명 밖에 없고 대한민국 헌터 업계에서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게다가 그는 희소성만 있는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헌터들과도 손발을 맞출 정도의 실력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용우는 그런 그가 보이는 시범을 너무나 간단히 따라 한다.

처음에는 적당히 시범에 나선 지윤호였지만 첫 시험 다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매번 진심으로, 이름을 날리는 헌터들도 다들 놀랄 수밖에 없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것도 이 사람한테는 전혀 힘든 게 아니라는 거지. 막 귀환한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0세대 각성자라는 소리를 듣고 과연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다.

세간에서는 그 존재에 터무니없는 환상을 투영해서 전설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자리의 헌터들은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에서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싸움으로 인류 사회를 유지하는 실적을 쌓아온 그들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허무맹랑한 가상의 존재에게 환상을 품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경험해 왔다.

예를 들면 1세대 각성자들만 봐도 안다.

세상은 1세대 각성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들은 궁지에 몰린 인류를 구원한 영웅들이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그들의 각성자로서의 능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2세대까지도 각성자들은 각성자 튜토리얼을 살아남아서 통과하는 것에 급급했으며, 각성자 튜토리얼에서 얻은 포인트가 낮아서 각성자로서의 잠재력도 별로 높지 않았다.

뒷세대로 갈수록 각성자 튜토리얼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분석되고, 보다 뛰어난 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는 공략법이 연구되면서 각성자의 능력도 상승세를 보였던 것이다.

‘2세대까지도 그랬는데 0세대라면 말할 것도 없잖아? 24만 명이 실종됐는데 한 명밖에 돌아오지 못했으면…….’

그 세대의 생존율이 높을수록 상위권 각성자들의 잠재력도 높다.

이것은 지금까지 현실에서 증명되어 온 사실이었다.

서용우가 헌터관리부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그를 포함한 24만 명의 실종자들은 각성자 튜토리얼이 아니라 ‘어비스’라고 불리는 세계로 소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3년 동안 목숨을 건 싸움을 했고, 왠지 귀환하고 나니 그가 경험한 시간과 현실 사이에 12년이라는 시간적 오차가 발생해 버렸다.

지윤호가 소속된 팀 크로노스를 포함, 정상급 팀들은 ‘어비스’라는 세계가 각성자 튜토리얼의 원형이라고 추측했다.

인류에게 각성자라는 방위 수단을 공급하는 정체불명의 존재들.

그들이 아직 각성자 튜토리얼이라는 효율적인 커리큘럼을 개발하기 전에 벌인 일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대단한 능력을 얻었다는 보장이 없다.

막무가내로 생존 경쟁을 한다고 해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효율화된 커리큘럼은 주먹구구식 교육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효율성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괴물.’

전설 속에서 튀어나온 0세대 각성자는, 그런 현실주의자들의 합리적인 분석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는 수수께끼의 괴물이었다.

문득 용우가 물었다.

“이 시험, 배틀 힐러 시험 맞습니까?”

그는 지금 첨단 센서가 장착된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만?”

“지금까지의 시험은 배틀 힐러임을 증명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용우는 자기 앞에 선 상대, 팀 블레이드의 무투파 헌터를 보며 말했다.

“대체 대인전이 왜 시험에 들어가는지 모르겠군요? 배틀 힐러하고는… 아니, 몬스터와 싸우는 게 일인 헌터하고는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럼 시험을 포기하겠습니까?”

시험관들은 설명하는 대신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어쩔 거냐는 뻔뻔함을 보였다.

용우가 그렇게 말한 남자를 노려보더니 헬멧을 옆에 던져 버렸다.

“그러죠.”

“뭐?”

“시험 포기하겠습니다.”

용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보호구들을 훌렁훌렁 던져 버리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김은혜에게 말했다.

“팀장, 헌터는 됐어. 힐러 라이센스 준비해 줘.”

“뭐하는 거에요? 잠깐만 참으면 되는데…….”

“싫어. 내일까지 활동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 힐러 라이센스가 내 손에 들려 있지 않으면, 바로 미국 쪽에 연락을 넣을 거야. 15년이나 지나서 그런지 세상이 많이 좋아졌더군. 나 같은 사람도 시간만 들이면 그럴싸한 비디오 레터를 만들 수 있는 앱이 있더라고. 그 내용이 뭔지는 상상에 맡기지.”

“……!”

그 말에 김은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리고 충격이 그 자리를 강타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팀 블레이드의 사장, 오성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용우는 그의 존재 자체를 무시해 버리고는 시험장 문으로 걸어갔다.

“먼저 차로 가 있을게. 아, 혹시 여기서 할 업무가 남았나? 그럼 나 혼자서 알아서 가지.”

“이 새끼가! 사장님을 무시하는 거냐!”

대인전 시험으로 용우를 상대할 예정이었던 청년 헌터가 폭발했다.

그가 뛰어들어서 용우의 어깨를 붙잡고 돌려세웠다.

“야.”

용우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거 놔라.”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0세대 각성자라고 추켜세워 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지? 여기 계신 분들이 얼마나 하늘 같은 선배님들인지…….”

“말귀 못 알아먹는 새끼네. 귀 먹었냐?”

팍!

순간 청년이 벼락처럼 뒤로 물러났다.

“큭……!”

청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용우가 팔을 쳐내는 것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자식!”

그는 그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듯 분노하며 돌진해왔다.

발차기로 용우를 물러나게 한 다음 옆으로 돌아서 뛰어들면서 훅을 날린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눈앞이 빙글 돌았다.

‘어?’

다음 순간 그의 복부를 충격이 관통했다.

투학!

청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서 의식을 잃었다.

“깜짝 놀라서 손이 나가버렸군. 정당방위다.”

용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눈을 까뒤집고 혼절한 청년에게서 몸을 돌리며 김은혜에게 말했다.

“가지.”

“멈춰라.”

그 앞을 두 사람이 가로막았다.

시험관 노릇을 하던 마르고 신경질적인 남자, 그리고 그동안 가만히 보고만 있던 거구의 남자.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그들이 3미터까지 접근하는 순간 용우가 심드렁하게 경고했다.

“둘 다 저 양아치 새끼보다 더 못한 꼴로 만들어준다.”

그 말에 그들이 움찔했다.

둘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헌터들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청년이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본 자가 아무도 없었다.

“난 모르모트도 아니고, 이 나라한테 받은 은혜도 없어서 공짜 봉사는 사절이다. 나한테서 뭔가 얻어내고 싶으면 정중한 서비스와 돈다발을 들고 와.”

“미쳤군.”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고 있나?”

헌터들의 말에 용우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나에 대한 정보는 기밀 사항으로 처리된다더군. 그런데 왜 민간 기업 분들이 나에 대해서 알고 여기 와 계실까? 국가기관 시험인데 왜 이 자리에는 전부 민간 기업 사람들밖에 없고?”

“우리는…….”

“듣기 싫으니까 입 다물어.”

“그만.”

뒤에서 보고 있던 오성준이 나직하게 말했다.

“시험을 볼지 말지는 본인의 자유야. 보내주게.”

용우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안하고 김은혜에게 말했다.

“팀장, 난 분명히 말했다. 내 말대로 안 되면 난 미국 갈 거야. 인터넷을 보니까 0세대 각성자가 연락만 해줘도 1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사람도 있더라?”

“이 새끼가!”

그 말에 거구의 남자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가 성큼 다가와서 용우의 멱살을 잡는 순간이었다.

빠각!

“…….”

순간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용우의 멱살을 잡으려고 뻗었던 팔이, 중간에 똑 부러져 있었다.

“아아아악!”

한 박자 늦게 비명이 울려 퍼졌다.

용우가 싸늘한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대인전의 기초조차 모르는 놈들이 나한테 광대놀음을 시켜?”

과연 지구에서는 각성자들이 각성자를 상대로 싸워서 죽일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물론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일이 있었을 테니 꽤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지구상에 용우만큼 각성자를 상대로 죽고 죽이는 전투를 많이 치러본 자는 없었다.

‘괴물 상대로야 달인이겠지.’

용우는 이들을 깔보지 않았다.

이미 헌터들이 괴물을 상대로 얼마나 잘 싸우는지는 돌아온 첫날 견식했으니까.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헌터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당장 악수를 통해서 촉진이라는 수작을 걸어왔던 오성준만 봐도 안다. 각성자로서의 피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 마력기관은 그가 용우보다 강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금의’ 용우와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이지만.

하지만 문제는 각성자로서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냐가 아니다.

괴물을 상대하는 법과 인간을 상대하는 법은 완전히 달랐다. 이들의 스킬은 제한적이었고, 각성자끼리의 전투법에 대해서는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에 비해 용우는 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양한 스펠을 갖고 있으며, 각성자와 싸우는 법도 통달했다.

“어이가 없다. 당신들 대체 뭐 믿고 나한테 이러는 건데?”

모두가 얼어붙은 것처럼 침묵하는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급하게 움직였다.

지윤호가 팔이 부러진 남자에게 달려가서 치료 스펠을 발했다.

-리스토어 힐!

치료 스펠 중에서도 고위급으로 평가되는, 기적에 가까운 효과를 발휘하는 스펠이 펼쳐졌다.

“헉… 허억……. 고, 고맙습니다, 윤호 씨.”

부러진 뼈가 원래대로 돌아가자 남자는 창백한 안색으로 지윤호에게 감사했다.

그는 방금 전까지의 흉흉한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두려움에 찬 눈으로 용우를 바라보았다.

“생각이 바뀌었어.”

용우가 말했다.

“경고한다. 내일까지 헌터 라이센스랑 힐러 라이센스 둘 다 발급해 두도록. 만약 그렇게 되지 않거나, 혹은 지금 이 일로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하면…….”

순간 시험장이 아니라 그 너머, 모니터 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헌터관리부의 간부들이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카메라가 아닌, 정확히 그들이 있는 지점의 벽을 노려보는 용우의 시선이 마치 벽을 넘어서 그들의 심장을 옥죄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후회하게 될 거야. 며칠 동안 알아보니까 난 이 나라에 아쉬울 게 전혀 없더라고. 그럼.”

용우는 몸을 돌려서 시험장을 나섰다.

등을 보인 채로 걸어가는 그의 태도는 무방비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그를 공격하거나 막아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Chapter5 죽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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