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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장은 각성자용 체육관이었다.
즉, 일반인이 아니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자들이, 스펠이라는 초능력까지 사용해도 버텨낼 수 있는 특수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다들 공무원으로는 보이지 않는군.”
시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원은 9명.
용우는 그들 중 6명이 각성자임을 알아보았다.
“공무원 나리들은 모니터 룸에 있지. 여기서의 시험 데이터는 그쪽에 출력되니까.”
그렇게 말한 것은 체격이 큰 중년 남자였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수염을 멋지게 기른, 검은 슈트가 어울리는 남자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군. 팀 블레이드의 사장 오성준이다.”
팀 블레이드는 팀 크로노스와 실적 1, 2위를 다투는 국내 굴지의 강호였다.
오성준은 2세대 각성자로 지금은 반쯤 은퇴해서 팀 경영에 주력하고 있는 몸이다. 하지만 그가 헌터로 활동하며 올린 실적은 업계의 전설이었다.
“서용우입니다.”
용우는 무덤덤하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음?”
그렇게 악수를 나눈 오성준의 표정이 변했다.
악수를 마치고 용우가 손을 떼자 그가 비틀거린다.
“사장님?”
그러자 활동적인 복장의 젊은 청년이 놀라서 달려왔다.
오성준이 동요를 드러내며 용우를 바라보았다.
‘뭐였지?’
그는 용우와 악수를 나누면서 가벼운 수작을 부렸다.
스펠은 아니지만 마력을 다루는 기술, 접촉면으로 마력을 흘려 넣어서 대상의 마력기관을 파악하는 ‘촉진(觸診)’을 펼친 것이다.
그런데 촉진을 펼치는 순간, 원하는 정보가 돌아오는 게 아니라 대신 허공에 몸을 던진 듯한 공허감이 밀려오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준이 제법이군.’
용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지만 속으로는 서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성준은 그를 엿보지 못했다.
역으로 용우에게 자신을 샅샅이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다.
‘스펠로 형태화되지 않은 마력 운용 기술을 쓸 수 있다니, 거의 우리의 중반기 수준이야.’
용우는 오성준이 누군지 몰랐다.
유명세로 따지면 오성준이 지윤호보다 더 유명하다. 하지만 용우가 지윤호에 대해서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배틀 힐러에 대해서 검색해 봤기 때문이지 업계 정보를 차근차근 습득해서는 아닌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자리에 있는 인물 중 절반은 헌터 업계의 유명인들이었지만, 용우가 아는 얼굴은 지윤호뿐이었다.
‘헌터 팀의 사장이면 한가락 하는 사람이겠지. 업계 상위권은 다 이 정도는 하나? 아니면 이 사람이 특출한가?’
용우는 흥미를 담은 눈으로 장내의 인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거 진짜 어이없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거 국가기관 시험 아닌가?’
아무리 봐도 전원 민간 기업 소속인 게 분명하다.
각성자가 아닌 인원들은 가운을 입은 차림새만 봐도 연구자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신경 쓸 만한 사람은… 지윤호와 팀 블레이드의 사장 말고는 둘인가.’
하나는 뒤쪽에 말없이 서 있는 당당한 체격의 중년 사내로 척 봐도 범상치 않은 마력의 소유자였다.
정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위압적으로 보이는데 용우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묘한 눈길을 보낼 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또 하나는 마르고 신경질적인 인상을 주는 각성자 남자였다. 노골적으로 다른 이보다 전투적인 기세를 풍기고 있어서 신경에 거슬렸다.
“시험은 어떤 식으로 진행합니까?”
“일단은 힐러 시험부터 하겠습니다.”
시험관으로 나선 것은 용우가 신경 써야겠다고 판단한 각성자, 마르고 신경질적인 인상을 주는 남자였다.
그가 시험장 한편에서 사람보다도 커다란 상자를 끌고 오더니 한쪽 면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쉬이이익…….
그러자 상자의 4면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기묘한 것이 무엇을 드러내었다.
‘고깃덩어리?’
그것은 그야말로 고깃덩어리 혹은 살덩어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말랑거리는 느낌의 피부로 둘러싸였고, 어린아이보다도 크다. 하지만 관절도 이음새도 없는 그냥 덩어리일 뿐이다.
단순한 형태인데도 보고 있자면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뭡니까?”
“생명공학으로 만든, 살아 있는 고깃덩어리입니다. 실험용으로 만들어진 건데 힐러 시험 때도 유용하죠. 검증되지 않은 힐러에게 사람이나 동물을 상처 입혀서 치료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을 살덩어리 위에 대었다. 그러더니 마력을 발하며 슥 그었다.
-접촉 파괴!
스펠이 발동하면서 손가락이 긋고 지나간 곳에 뜯겨져 나간 것 같은 상처가 생기더니 출혈이 발생했다. 살덩어리 안에는 뼈는 없었지만 내장들이 있어서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긴 상처를 내어서 출혈을 일으킨 시험관이 말했다.
“치료해 보세요.”
하지만 용우는 그 말에 따르는 대신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시험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시험이 보통 이런 식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채점 기준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일들을 해야 하냐는 말입니다. 보통 이런 건 시험관 쪽에서 시범은 보여주지 않습니까? 아니면 하다못해 영상이라도 보여주거나? 그렇지 않습니까, 김은혜 팀장?”
용우가 김은혜를 보며 동의를 구하자 그녀가 침을꿀꺽 삼켰다.
헌터관리부의 일개 팀장인 그녀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그래도 그녀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죠, 보통은.”
그러자 다들 표정이 불편해졌다. 어디까지나 시험받는 입장인 용우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용우가 살짝 웃으며 지윤호를 바라보았다.
“마침 여기에 국내 굴지의 배틀 힐러가 있으시군요. 시범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지윤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안 하겠다고 하면 나쁜 놈이 될 것 같네요. 좋아요.”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손을 들어서 시험용 고깃덩어리를 가리켰다.
-리모트 힐.
1초 후, 지윤호의 머리에서 후광 같은 빛의 파문이 퍼져 나갔다.
동시에 살덩어리의 상처 부위에서도 희미한 빛이 일더니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가는 게 아닌가?
“역시 지윤호로군.”
다들 감탄했다.
치료계 스펠이라는 것은 무작정 쓰는 것보다 의학적 지식을 토대로 쓰는 것이 월등히 효율적이다. 그렇기에 용우의 여동생 서우희도 병원에서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수술 보조를 맡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각성자로서의 능력이 힐러로 특화되었고, 그중에서도 최고 수준에 도달한 자들은 이런 상식을 뛰어넘는다.
‘복원(復元) 특성을 가졌군.’
용우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 특성을 획득한 자들은 의학적 문제에 대한 고려가 거의 불필요하다.
그저 환자와 상처를 타깃팅하고 스펠을 발동하면 ‘육체가 돌아가야 할 올바른 상태’로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몸에 박혀 있는 이물질조차도 알아서 빠져나오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교본입니다. 이제 갓 시험을 치르는 신입에게 이런 걸 바라진 않아요.”
시험관은 깔보듯이 말하고는 다시금 스펠을 써서 고깃덩어리에 조금 전과 동일한 상처를 만들어내었다.
“그렇군요.”
용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들어 고깃덩어리를 가리켰다.
-리모트 힐.
1초 후, 용우의 머리에서 후광 같은 빛의 파문이 퍼져 나갔다.
동시에 살덩어리의 상처 부위에서도 희미한 빛이 일더니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갔다.
“…….”
그 광경을 본 자들은 순간적으로 오싹해졌다.
‘뭐야?’
만약 이곳에 있는 것이 헌터관리부의 공무원들이었다면 이토록 빠르게 지금 일어난 일의 의미를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윤호랑 같은 스펠인 건 그렇다 치고… 타이밍이랑 효과까지 완벽하게 똑같잖아?’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각성자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용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보인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아주 잘 아니까.
당황하는 그들 앞에서 용우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이상적인 교본대로 했으니 이건 만점으로 통과한 거겠죠? 다음은 뭡니까?”
“…….”
시험관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별것 아니라는 듯이 보여준 한 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이 용우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